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5화 (115/273)

115화 이무기 (3)

“즉, 너희들에겐 명분이 없다고. 이 밀입국자들아.”

중화 청년단 소속 단원들 사이에서 X됐다라는 말이 연거푸 튀어나왔다.

떠돌이 상인에게 구매한 통역 아이템이 그들의 말을 내가 알아듣기 편한 방식으로 전달해 주기 때문에 한국 욕이 들려온 것이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희생을 발생시킨 레이드, 그런데 맛있는 부분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희생을 정당화할 명분까지 사라져 버렸네.’

당연히 가장 곤란한 사람은 류웨이를 비롯해 이번 레이드를 주도한 간부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골로 간, 김동천이라는 인물은 중화 청년단을 이렇게 평가했다.

거긴 그리 이성적인 집단이 아니라고.

자기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일반 단원들이라고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으니까.

“우리가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거라 생각하시는 거요?”

류웨이의 협박성 멘트에 나는 손잡이만 남은 성검을 녀석에게 겨누며 반문했다.

“물러서지 않으면 어쩔 건데?”

“헙!”

20cm가 조금 넘는 크기의 흰색 막대기.

하지만 그 막대기에 마력을 붓는 순간 엄청난 위력을 가진 빛의 칼날이 생성되며, 때로는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광선 빔 같은 공격이 발사된다는 것을 앞선 전투에서 보여 주었다.

덕분에 성검의 손잡이가 자신에게 겨눠지자 류웨이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그에 피식 실소를 흘린 나는 성검을 회수하며 짧게 말했다.

“꺼져.”

류웨이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들댄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갈등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이대로 미친 척하고 우리에게 덤벼들지, 아니면 남은 병력이라도 잘 간수해서 복귀를 할지.

하지만 내가 두 손가락으로 지켜 보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자 그는 결국 부하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복귀한다!”

덤벼든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자신이 없을 테니 당연했다.

쪽수는 그들이 6~7배 이상 많을지언정 질적인 면에선 우리가 우위이고, 이쪽에는 지친 상태였다고는 하나 레벨 125의 로드급 엘더를 처치한 파티도 있으니 말이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소!”

그냥 가면 되지, 저런 애들은 꼭 사족을 붙이더라.

그래서 나도 류웨이에게 한마디 했다.

“갈 때 가더라도 로드급 엘더 토벌 메시지에서 익명 또는 실명 체크들 좀 빨리해 줘! 쪽수가 많아서인지 정산도 오래 걸리잖아!”

약 올리듯 내뱉은 그 대사에 더 이상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레이드 공적 정산이 시작되고 5분이 경과 했습니다.]

[1분 이내에 익명 여부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실명으로 순위표가 공개됩니다.]

그러자 시스템이 내 이야기에 답을 하듯 메시지를 띄웠고,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류웨이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들이 맥도 못 추고 물러나는 거 보면 통쾌해서 좋긴 한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북한 사냥팀의 리더 리명수의 물음이었다.

뒷감당이 가능하겠냐는 뜻으로 물은 말에 곧이어 내 곁으로 모인 강이솔, 윤시아, 김현수, 최도겸 등 협회의 주요 인사들도 우려를 표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요.”

이런 내 반응에도 아직 신뢰도가 부족한 리명수는 쉬이 걱정을 떨쳐 내지 못했지만.

“그렇습니까? 협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런 거겠죠.”

“하하,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우리 사냥꾼 협회의 주요 인물들은 내 말을 맹신했다.

아마 이 양반들은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거다.

[레이드의 공적 순위를 표기합니다.]

1위. 서** 9.61%(나)

2위. 서** 5.43%(윌리아)

3위. 시에나 5.06%

4위. 윤시아 0.32%

5위. 김현수 0.25%

6위. 최도겸 0.22%

.

.

.

그리고 순위표가 떠올랐다.

역시나 상위권을 차지한 건 마지막에 결정적인 활약을 한 우리 파티와 사냥꾼 협회의 고레벨 멤버들이었다.

10위 안에 중국인의 이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류웨이가 1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화 청년단을 지휘한 게 조금이나 평가에 영향을 준 모양이다.

12위 정도면 제법 괜찮은 위치이니, 보상도 준수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본인은 하나도 기쁘지 않을 것이다.

‘대충 보니, 우리 공적을 전부 합쳐도 30% 정도네.’

즉, 나머지 공적은 중화 청년단이 가져갔다는 뜻이니, 그들이 약 70% 정도의 대미지를 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거 너무 맛있어서 치아가 썩을 지경이네.’

나는 멍청한 상사 덕에 맥없이 죽어 버린 중화 청년단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보상을 획득하시겠습니까?]

‘그래.’

눈앞에 떠오른 보상 메시지를 수락했다.

먼저 경험치.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를 토벌하여 경험치 8,905,000을 획득했습니다.]

[최초 토벌 보상은 가장 큰 공을 세운 1인에게 제공됩니다.]

[마족을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5,000,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겨우 8%대의 기여도로 30%대의 기여도를 차지했던 광역 보스 레이드보다 경험치 획득량이 많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고도 레벨업이 2번에 그쳤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레벨이 그만큼 올랐다는 뜻이니까.’

그나저나 녀석의 생김새만 보고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 몰라 궁금했는데, 마족이었다니.

마족이라 하면 이야기 속에서 악마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존재 아닌가.

어째 상대하게 되는 몬스터 명칭들이 점점 무서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뭐 어떠하리, 난 보상만 두둑하면 그만이다.

[엘더 매지션 로드 노틸드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810,2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마력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10칸을 획득했습니다.

-드레이크 안장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변신을 획득했습니다.

[마족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3,000,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분신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획득한 보상은 이렇다.

많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흥미로운 것들뿐이었다.

[드레이크 안장 / 희귀]

-레벨 90 이하 드레이크를 펫으로 길들일 수 있다.

-드레이크는 최대 2톤의 무게를 들거나 등에 지고 날 수 있으며, 최대 이동 속도는 마하 1에 달한다.

드레이크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25미터에 달하는 대형 비행 몬스터이다.

전형적인 아룡계 몬스터이며, 기본레벨이 90이라 와이번의 상위 호환 몬스터라 할 수 있다.

산세가 험하거나 자연이 우거진 곳에 터를 잡은 경우가 많아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다행히 서식지 중 아는 곳이 하나 있어서 길들이는 데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비록 녀석의 덩치가 커서 실내나 던전 같은 곳에는 함께 들어가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강력한 화염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야외 전투에서는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레이크를 펫으로 길들이게 되면 좋은 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간지 나잖아!’

멋이란 게 폭발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높은 운송 능력이 달려 있어서 30인 이하 정예 병력을 빠르게 이동시킬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다음 보상을 살폈다.

[분신 / 극상급 스킬북 / 액티브]

-사용자와 흡사한 전투 능력을 가진 분신 1개체를 만든다.

-분신이 보유한 마력은 30이며, 이 마력 내에서 자유롭게 사용자의 스킬을 구사한다.

-분신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며, 충실하게 사용자의 지시에 따른다.

-지속 시간: 1분

-소모 마력: 10

-재사용 시간: 30분

무려 극상급 스킬.

그리고 내용을 본 나는 북한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려다 참았다.

이 스킬은 활용도가 너무도 많다.

나는 강한 적을 상대하다가 승기를 잡으면 확실히 마무리를 짓기 위해 폭주 스킬을 사용한다.

그런데 만약 나와 분신이 동시에 폭주를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비록 재사용 대기 시간이 30분이나 되긴 하지만, 이보다 강력한 한 방 스킬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류웨이가 간 방향을 향해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본의 아니게 그들 덕분에 더욱 강해지고 말았다.

[변신 / 극상급 스킬북 / 액티브]

-신장 3미터 이하, 몸무게 200kg 이하의 몬스터나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

-다른 성별과 종족으로 변신한 상태에서는 생식 능력이 없다.

-지속 시간: 1시간

-소모 마력: 10

분신 다음 보상은 마치 라임을 맞춘 듯한 스킬, 변신이다.

이 역시 극상급 스킬이었다.

‘오오, 이 스킬이 있다면?’

변신 스킬북을 본 순간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 짜릿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여기저기 분탕 치고 다니기 좋을 것 같은 스킬이 아닌가.

생식 능력이라는 이상한 사족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내게는 너무도 요긴한 스킬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쉽게 해결되겠는데?’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드레이크 안장, 분신과 변신.

덤으로 귀한 마력 포션까지 여럿 얻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아닌가.

“두 분은 어때요?”

한껏 기분이 업된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의 보상도 확인했다.

“전 와이번 길들일 수 있는 안장이란 아이템에 대폭발이란 극상급 스킬을 얻었어요.”

“엥? 나도 와이번 안장 나왔는데? 그리고 혈광포란 극상급 스킬 얻었고.”

대폭발은 윌리아가 가진 기존 폭발의 강화 버전이라 할 수 있고, 시에나의 혈광포는 노틸드가 사용하던 붉은 광선포 스킬이다.

하나같이 강력한 범위 스킬로 각자가 가진 전투 스타일에 시너지를 줄 수 있는 필살기급 스킬들을 얻었다.

내 분신을 포함해 극상급 스킬이 연달아 나오다니…….

‘노틸드급 이상부터 보상 등급이 극상급으로 넘어가는 걸까? 아니면 레이드에서 높은 퍼센트를 가져갔기 때문에 특별히 나온 걸까?’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극상급 스킬은 각자 얻은 사람이 쓰면 될 것 같다.

“저도 드레이크 안장 먹었는데, 세 비행 몬스터가 함께 날아가면 장관이겠네요!”

내가 드레이크 안장을 얻은 것처럼 윌리아와 시에나도 와이번 안장을 하나씩 획득했는데, 3마리의 공중 몬스터가 편대 비행을 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질 것 같았다.

“이거 뜻하지 않게 엄청난 선물을 받고 말았네요.”

그리고 대체적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동료들은 만족스러운 보상을 얻었다.

덕분에 강이솔이 ‘선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당연히 선물을 준 상대는 류웨이다.

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우리도 그들에게 무언가 선물해야겠죠?”

“네?”

영문을 몰라 의문을 표하는 강이솔.

하지만 때마침 북한의 책임자 리명수가 나서면서 화제가 전환되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승리를 기념하는 연회를 여시겠다고 합니다!”

“오오오!”

나는 강이솔의 어깨를 두들기며 물러났다.

‘잠깐 자리를 비울 생각인데. 뭐 큰 문제는 없겠지?’

* * *

대재앙이 시작되고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내 손에 죽은 사람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누가 봐도 악인이란 점이다.

그렇다 보니,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합리화가 가능했다.

그런데…….

악인이라고 하기 애매한, 죽여야 할 적이 생겼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상 두고두고 나와 내 주변에 해가 될 수밖에 없는 적이.

‘일단 그들의 상황을 보자. 보고, 대화의 여지가 있으면 경고만 하고 돌아가는 거야.’

나는 본국으로 귀환 중이던 중화 청년단 소속 단원 한 명을 은밀하게 납치했다.

그리고 그에게 웨이포인트 점퍼를 사용하게 하여 베이징에서 동남부 쪽에 자리한 텐진시로 넘어왔다.

중화 청년단의 본부가 텐진시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은신 스킬과 높은 운동 능력을 이용해 중화 청년단 본부에 은밀히 숨어들었고.

[리하오란 / 레벨: 75]

중화 청년단 단장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젠장!”

“왜 그래?”

“류웨이가 거하게 똥을 싸질렀어.”

“설마 그 많은 병력을 끌고 가고도 실패했다는 거야?”

“실패한 게 뭐야? 아주 농락을 당했더군!”

류웨이가 통신 아이템을 갖고 있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와 통신을 주고받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의 상황이 벌써 중화 청년단 단장의 귀에 들어와 주요 멤버들과 함께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이 이대로 물러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더 큰 전력을 한반도에 투입하겠어.”

“북한과 남한 정부는 아예 무시하는 거고?”

“그래.”

“그러다가 현지 세력과 충돌하게 되면?”

“당연히 제거하는 거지.”

아쉽게도 그들의 성향은 나와 양립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누구냐!”

그런데 그때.

중화 청년단의 단장인 리하오란이 은신 스킬을 사용 중인 나를 감지해 내는 묘기를 보여 주었고.

결국, 나는 중화 청년단 본부, 그리고 단장실에 자리한 최고 간부들과 대면을 하게 되었다.

“라이칸스로프?”

“엘더인가?”

3미터의 신장과 늑대를 닮은 얼굴을 가진 수인.

그것이 변신 스킬로 위장한 지금 나의 모습이다.

나는 허리춤에서 손잡이 부분을 천으로 감싸 특징을 숨긴 거마도를 뽑아 들었다.

칼날의 길이만 1.8미터.

위압적인 크기의 검에 중화 청년단 본부 최고 간부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당황하지 마! 그래 봤자 한 마리다!”

역시 은신 스킬을 알아챌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라 그런 걸까?

리하오란은 동료들을 다독이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암살형 엘더 몬스터인가? 운이 없었구나, 괴물! 네놈이 들어선 이 방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곳이니!”

오만하기 그지없는 리하오란의 외침.

덕분에 동료들이 당황한 기색을 떨쳐 내며 하나같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 리하오란과 비슷한 레벨을 갖고 있었으며, 희귀 등급의 장비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챙! 챙!

“어?”

단 3합 만에 목이 날아가는 리하오란의 모습에, 함께 모여 회의를 하던 최고 간부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풍경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촤아악! 촤아악!

덕분에 더욱 손쉽게 나머지를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중화 청년단 최고위 간부가 전부 쓸려 나갈 때까지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 단장님! 괴물! 괴물이 침입했다!”

머지않아 호위로 보이는 이들이 들이닥쳤지만, 그들 역시 내 상대가 되지 않았고.

나는 변신 스킬이 풀리기 전에 유유히 중화 청년단 본부를 헤집고 달아났다.

원래는 주요 인사들만 암살하고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으나, 변신 스킬 덕분에 더욱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걸로 중화 청년단은 외부에 시선을 돌릴 여력이 없겠지.’

대가리가 죽었으니, 새로운 대가리를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덤으로 엘더 몬스터로 보이는 범인도 잡아야 하고.

* * *

싱거울 만큼 빠르게 중국 일을 해결하고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북한으로 돌아오니 없는 살림에도 고생해 준 한국 원정대를 위한 만찬이 마련돼 있었다.

“내 와이번이 이름이 와일번이고, 네 와이번 이름이 와이번이야. 알겠어?”

시에나는 북한에서 생산됐었다는 맥주를 몇 병 마시고 윌리아에게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주정을 부렸다.

“솔직히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내 나이가 위니까 일번을 해야 한다는 거지!”

“아, 네. 하세요. 와일번.”

윌리아는 적당히 시에나와 어울려 주다가 날 발견하고 후다닥 튀어왔다.

시에나가 귀찮아진 것이고, 시에나도 그걸 알아챘다.

“내가 헛소리했다고 백호한테 이르러 가냐!”

헛소리를 했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인데,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뒤늦게 눈치를 챘다.

하필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이 내 등장으로 잠시 조용해졌고,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백호?”

“협회장님 본명이신가?”

“서 씨시니까. 그럼, 강백호?”

“이 새끼 취했네.”

푸웁!

시에나가 마시던 맥주를 뿜고, 원래부터 내 정체를 알고 비밀에 부쳐 줬던 수원의 김현수도 어쩔 줄 몰라 했다.

김현수가 내게 눈을 힐끔거린다.

어떻게 무마할 거냐고.

딱히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이름이 알려져도 상황 없다고 생각한 게 꽤 됐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종일 가의도에서 생활하시고, 아버지는 서울로 출퇴근한다고 해도,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세팅을 완벽하게 갖춰 놨다.

딱히 내 약점이랄 게 없단 뜻.

그런데도 이름을 알리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이것이다.

‘……. 말할 타이밍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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