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6화 (116/273)

116화 이무기 (4)

“이거야 원 우리가 북한 원정을 온 건지, 사냥꾼 협회의 뒷정리를 온 건지.”

나는 투덜대는 준장 계급의 군인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북한 원정군 후발대이자, 적응군의 총지휘를 맡은 마태식 준장이었다.

우리 아버지처럼 이번 대재앙으로 인해 출세 가도에 오른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꼴을 보아하니, 아버지의 라이벌이 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민간 단체인 우리와 달리 여러분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실전 한번 없이 이미 전부 정리가 된 일에 확인 서명만 하면 되는데,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이신지?”

“앞을 보셔야죠. 마침 북한과 사이도 좋은데, 이 일을 계기로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통일을 말하는 겁니까?”

“아무래도 당장 통일은 무리겠죠. 하지만 연합 또는 동맹 체계를 구축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서로의 국토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협약도 맺어 놓으면 좋고요.”

“하아…….”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줬음에도 마태식 준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가 더 커질 뻔한 북한의 피해를 막은 것은 사실이니 앞으로 한국과 관계가 발전될 발판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뒤처리쯤으로 여기고 귀찮아하는 티를 풀풀 풍기다니.

아아, 이 인간은 안 되겠다.

차라리 아버지의 출세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니, 내가 대신 치워 놔야겠다.

‘대통령에게 마태식 준장은 비협조적인 데다가 권위적인 인물이라 불쾌했다고 언질 넣어 놓으면 되겠지.’

이렇게 머리가 굳어 있는 사람이 원정군 사령관이라니.

역시 계급이 높다고 전부 유능한 게 아님을 증명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여러분의 활약이 부끄럽지 않게, 이번 일이 나라에 득이 될 수 있게끔 힘써 보겠습니다.”

그나마 현장 지휘관인 주영우 중령, 이 인간은 좀 낫다.

듣기로는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다고 하던데.

나는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주영우 중령은 내게 경례를 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한국인으로서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이라도,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는 법을 아는 인물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러났다.

“주제넘은 짓 하지 말게.”

“……. 죄송합니다.”

그런 주영우 중령을 마태식 준장이 아니꼽다는 식으로 한마디 했다.

역시 군대는 나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계급이 높은 상대가 뭐라 하면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는가.

“감히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저런 태도라니. 제가 따로 항의를 넣어 두겠습니다.”

“이거 한번 해 보자는 거 아닙니까? 뭐 저런 인물을 원정군 사령관 자리에 앉혀 놓는 건지.”

그리고 이런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강이솔과 사냥꾼 협회 관계자들이 내 뒤를 따르며 한마디씩 했다.

어제 이름이 밝혀진 김에 나는 그냥 동료들에게 얼굴도 깠다.

그래서인지 나와 더욱 친밀해졌다고 생각해서일까?

마치 어미를 뒤쫓는 새끼 오리들처럼 줄줄이 내 뒤를 따랐다.

나는 굳이 그들이 하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다.

“저런 인물이 협력 대상이라면 귀찮긴 하네요.”

“그렇죠?”

대신 한마디 붙여서 더욱 불을 지폈다.

그리고 북한 내에 둔 사냥꾼 협회 임시 진지로 향하는데.

수원의 김현수가 협회 원정군 멤버들을 모아 놓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들려왔다.

“내가 협회장님을 만난 건 고3 전국 체전에서였어. 알겠지만 나는 검도 국대 출신이야. 학창 시절부터 여러 대회에 입상을 하면서 당시엔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됐었지. 그래서 유명하지 않은 학교, 처음 듣는 이름의 상대와 1회전에서 붙게 돼 가볍게 이길 거라 생각했거든?”

“설마 그 상대가?”

“맞아, 그게 바로 서백호. 우리 협회장님이셨지어. 검도 세계는 의외로 좁아, 그래서 유망한 선수가 있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이름이 알려지는데, 서백호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됐냐고? 하하, 고3 김현수가 고1 서백호에게 아무것도 못 하고 개처발렸어. 그렇게 완전히 마음이 꺾여 있을 때, 협회장님이 기권하고 대회장에서 내려가더라.”

“네? 왜요?”

“내 모습이 너무 간절해 보여서 그랬던 거 아니겠어? 나중에 알고 보니, 협회장님은 검도 이외에도 많은 운동을 하고 있었더라고, 엄청난 재능충이었던 거지.”

“이야, 역시 협회장님은 학창 시절부터 남달랐군요? 그리고 멋있네요. 그냥 이길 수도 있는데, 간절한 상대에게 승리를 양보한다는 게.”

“맞아, 그리고 협회장님이라는 벽이 너무 거대해서인지 이후로 누굴 만나든 쉽게 느껴지더라고, 덕분에 내가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야. 협회장님이 은인인 셈이지.”

내가 이름을 공개하고 얼굴을 깐 이후, 김현수는 그동안 잘 참아 와 놓고 더는 근질거리는 입을 참기가 힘들었는지, 어제부터 계속 저 레퍼토리를 떠들고 있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배탈이 나서 기권을 한 거였는데, 그는 자기 편한 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있었다.

웃긴 건 저 이야기에 대한 반응들이 너무 좋다는 거다.

다들 나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하긴. 협회의 대표란 인물이 얼굴도 가리고, 이름도 숨기고 활동하는 게 은근히 걸렸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밝힐 걸 그랬나?’

금칠은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내 이름이 계속 거론되니 조금 낯간지러운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강이솔에게 말했다.

“저 인간한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전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끝났다.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성장을 이어 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겐 보물 지도라는 확인해야 할 것도 있고.’

* * *

북한 일은 일사천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응수는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인 신은선 위원장과 한반도 연합의 출범을 합의하였다.

하지만 연합이라고 해도 그건 이번 사건처럼 한반도에 큰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공동 대응을 하기 위한 명분인 거지, 정치 및 행정 부분에서는 여전히 남한과 북한이 각자의 틀을 유지하기로 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당장은 크게 체감할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사냥꾼 협회는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 북한에서 프리패스 2,000장을 발부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 프리패스를 소지하고 있다면 북한 지역 생존 구역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

즉, 우리만 북한의 통행권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특혜 중의 특혜지.’

물론, 한 달 주기로 프리패스 번호를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이는 도난 및 강탈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 별수 없다.

다만 이 혜택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이래서야 북한이 연합을 맺은 게 대한민국 정부인지 사냥꾼 협회인지 모르겠다면서.

충분히 이해되는 불만이었다.

때문에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북한 정부에 프리패스권을 발부해 주면 같은 양의 프리패스권을 발부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 북한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그리하여 양국은 100장의 프리패스를 나눠 가졌다.

‘우리 협회의 2,000장에 비하면 참 소소한 양이지만…….’

뭐든 시작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한반도 연합은 이제 막 출범했을 뿐이다.

우리 협회가 가진 프리패스권은 북한에 가고자 하는 사냥팀이 있을 경우, 요청 시 반출해 주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처음 프리패스를 받았을 때만 해도 누가 북한에 갈까 싶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냥팀이 모험심을 발휘하며 북한 땅을 수시로 오갔다.

그리고 모험심 외에도 사업을 목적으로 북한에 방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거리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화장품과 샴푸, 린스 같은 공산품이 북한에서는 꽤 귀하다 하여 많은 이들이 한탕을 노리고 넘어가기도 했다.

북한에도 여자 사냥꾼은 많고,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여유 코인이 있으니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북한 문제는 나름의 안정을 되찾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음으로 걱정해야 할 건 중국 문제지.’

다행히 중국은 내가 유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

중화 청년단은 갑작스러운 단장의 죽음에 혼란에 빠졌으며, 후계 선정에 들어갔는데, 완전히 콩가루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들의 문제는 쉬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단장의 죽음이 내부 권력 다툼으로 생겨난 문제라는 의심이 더해지고 있어서 아무도 한반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우린 평화롭게 제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모처럼 레벨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 * *

북한의 사태가 해결되고 10일이 지났다.

이제 곧 생존 2개월째가 막을 내릴 시점.

[상태창]

-레벨: 106

-칭호: 이끄는 자(모든 능력치+3)

-능력치

근력: 66(+33) 순발력: 69(+30) 마력: 64(+34)

그사이 우리 파티는 레벨 106을 맞춘 상태이며, 내 평균 능력치는 이제 곧 100에 육박한다.

레벨업을 하면 능력치 포인트를 준다.

레벨 1~50구간이 1.

레벨 51~100구간이 2.

레벨 101부터 능력치 포인트를 3씩 줘서 상승 폭은 더욱 커진 상태다.

일반인의 능력치가 기본 5로 통일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제 내 능력치는 일반인의 20배에 달한다는 뜻이 된다.

이제 10미터 이내의 담벼락은 도약 스킬 없이도 수직 점프로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고, 100미터 거리는 단 네 걸음을 내딛는 3초 이내에 돌파할 수 있다.

레벨과 능력치뿐만 아니라, 장비도 전체 희귀 등급 이상에 성검을 제외하고는 모두 +3강까지 되었다.

그리고 엘프 마을에서 아칸의 세이버 내장 스킬인 ‘일섬’과 장미의 채찍의 ‘난무’를 스킬북 형태로 추출하여 익히는 데 성공했다.

원랜 추출한 스킬북을 방어구 등, 스킬이 없는 장비에 이식시킬 생각이었다.

내장 스킬은 장비의 강화율에 따라 위력도 상승하니까.

하지만 알고 보니, 전투 스킬은 무기에만 이식시킬 수 있었고.

두 스킬의 범용성을 생각해서 한 무기에 묶어 두기보다 직접 익히는 선택을 했다.

-똑. 똑.

아무튼, 레벨 100을 넘어서며 더욱 강해진 우리는 현재 월광도 북부에 위치한 이상 지형으로 생긴 부속 섬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이곳을 탐색 중인 이유는 바로.

[보물 지도]

1. 용이 되길 꿈꾸는 이무기의 둥지

-보물의 산, 유일 등급의 장비

이곳이 바로 김동천에게 빼앗은 보물 지도 속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섬의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폭이 겨우 50미터 정도 될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도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곳에 무언가가 있을 테니, 우리는 위험천만한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갔고.

그곳에서 수중 동굴을 발견했다.

물론, 우리가 바닷속에 뛰어들자마자 수중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중간한 수중 몬스터 정도는 가볍게 찜쪄 먹을 정도로 성장했고, 가볍게 놈들을 뚫고 수중 동굴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월광도가 이젠 무서워질 지경이야. 왜 이렇게 비밀이 많은 거야?”

수중 동굴의 규모는 꽤 컸다.

마치 일전에 보았던 드래곤의 둥지를 연상시킬 만큼.

때문에 나는 불만 어린 대사를 내뱉어야 했고, 시에나는 그런 나를 보며 핀잔을 주었다.

“너한텐 좋은 거 아냐? 비밀 중에 크게 해가 되는 건 없었잖아. 다 득이 되면 됐지.”

“제가 운 좋게 잘 성장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100번은 골로 갔을걸요?”

내 말을 반박하기는 힘든지 시에나는 ‘하긴’이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윌리아가 내 말에 오류가 있다며 정정해 주었다.

“운이 좋은 게 아닙니다. 백호 님이 그저 뛰어 나신 거죠.”

“하하, 그런가요?”

그래서 헤실 웃음을 흘리는데, 시에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요즘 둘이 수상해. 부쩍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그런 거 없다.

우린 아주 건전해.

“어? 저기 빛이야.”

그렇게 얼마나 거대한 외길 동굴을 따라 이동했을까?

잠시 후, 우리는 새하얀 빛이 스며드는 공간을 볼 수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마 저곳이 우리가 찾는 장소로 보였다.

이후, 우리는 숨을 죽이고 천천히 빛을 향해 접근했고.

-쿠우우우……. 푸우우.

거대한 뱀이 여느 동물들처럼 길게 숨을 쉬며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드 보스 이무기 스트라토스 / 레벨: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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