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7화 (117/273)

117화 이무기 (5)

[필드 보스 이무기 스트라토스 / 레벨: 150]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몬스터는 10여 일 전 북한에서 마주했던 레벨 125의 로드급 엘더 노틸드였다.

녀석을 처치하면서 나는 극상급 스킬 2개를, 윌리아와 시에나도 각각 1개의 극상급 스킬을 습득했다.

지금까지 극상급 스킬은 던전의 보물 상자에서 우연히 하나 얻은 게 끝이었으니, 그만큼 레벨 125의 로드급 엘더는 이전에 상대했던 레벨 100 이하의 몬스터들과 급이 다르단 뜻이었다.

그렇다면 레벨 150의 필드 보스는 또 얼마나 강력할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노틸드보다는 월등히 강할 것이다.

“토벌은 힘들겠네요.”

“그럴 것 같아요.”

“동감.”

이건 지레 약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주제 파악이다.

노틸드만 해도 중화 청년단의 수많은 희생으로 체력을 뺀 후에 사냥꾼 협회 멤버들의 백업을 받아 토벌한 거다.

그런 몬스터를 상회하는 괴물을 3명+1마리로 싸워 승리한다?

어불성설이다.

“아무래도 목적을 바꿔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린 애초에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때문에 이무기의 둥지를 방문해 보고 어찌하지 못할 만큼 놈이 강하다면 탐색으로 목적을 바꿀 생각이었다.

“윌리아 님은 멍멍이와 함께 잠깐 이곳에 대기해 주세요. 멀리서 전체 상황을 살피고 우리가 위험해 보인다 싶으면, 텔레파시로 알려 주세요.”

“네.”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임무를 분담한 나는 시에나와 함께 움직였다.

‘은신.’

나와 시에나 모두 은신 스킬의 보유자였기에 은밀한 침입이 가능했다.

물론, 레벨이 높은 몬스터라면 눈치껏 감지해 낼 수도 있지만, 마침 녀석은 자고 있어서 의외로 쉽게 탐색을 이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꽤 크군.’

이무기의 둥지는 타원형 형태의 공동으로 마치 올림픽 경기장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이무기는 공동 구석에 처박혀 똬리를 틀고 있었는데, 그런 녀석의 등 뒤로 쿠션처럼 황금빛의 코인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뿐 아니다.

‘책장? 설마 저기에 꽂혀 있는 책들 전부 스킬북인 건가?’

스킬북을 닮은 눈에 익숙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장이 한쪽에 놓여 있었다.

족히 100권은 되지 않을까 싶은 분량.

‘저것들도 전부 장비인 거 같군.’

더구나 세트로 조립되어 있는 갑옷들과 그런 갑옷들이 쥐고 있는 검들도 무시할 수 없는 자태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거다! 저게 분명 유일 등급의 장비일 거야.’

유리처럼 투명한 칼날에 새하얀 가드와 손잡이가 달린 롱소드를 발견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무기.

마치 나를 유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쉬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 검이 이무기의 머리 바로 앞에 꽂혀 있었으니 말이다.

‘괜히 이곳이 보물 지도에 표기된 게 아니야.’

이곳을 털어먹는 게 가능하면 우린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이무기의 둥지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나 이무기가 대량의 보물을 곁에 끼고 있다는 점을 빼면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무기의 모습에 괜히 미간에 검을 꽂아 넣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지만…….

시스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꾹 참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투를 위한 공간이 너무 협소해.’

똬리를 틀고 있는 이무기가 드넓은 공동의 5분의 1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만약 놈이 몸을 쭉 편다면 공간은 더욱 좁게 느껴질 것이다.

놈의 레벨도 레벨이지만, 환경 역시 만만치 않게 불리하다.

고로 공략 난이도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저 검만 챙겨서 튀어 봐?’

순간적으로 치솟은 충동.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탈출 스크롤이라는 아이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위험한 곳을 조사하겠다며 들어섰던 것이고.

“두 분 모두 탈출 스크롤 꺼내서 손에 꼭 쥐고 계세요.”

“어? 뭐 하려고?”

시에나는 무사히 내부를 살피고 출구로 나온 것에 안도했으나, 내가 돌발 행동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당황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에 답을 하기보다 움직이는 선택을 했고, 시에나는 윌리아처럼 급히 탈출 스크롤을 꺼내 쥐었다.

그리고 나는 은신을 유지한 상태 그대로 이무기의 머리를 향해 달려갔다.

공기를 즈려밟고 달리듯 아주 조용하게 발소리도 없이.

-꿀꺽.

이어서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새하얀 손잡이와 유리처럼 투명한 칼날이 아름다운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촤악!

어림없다는 듯, 발아래에서 공격을 예측하는 붉은 점(검술 스승 기능)이 생성되고.

날카로운 기세의 무언가가 솟구치며 나를 제지했다.

그건 강기를 담은 검이었다.

“흡!”

적의 방해에 나는 검을 잡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네임드 리빙아머 칼데아 / 레벨: 130]

이무기의 보물을 보호하는 가디언이 등장했다.

‘그럼 그렇지, 몬스터가 아무런 대비 없이 잠만 처잘 리가 없지.’

-콰아아앙!

한껏 조용했던 공동에 리빙아머의 공격이 이어지며 사방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요란한 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잠꾸러기 이무기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별수 없군.’

아무래도 이곳은 레벨 150의 필드 보스 이무기와 레벨 130의 네임드 리빙아머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곳 같다.

즉, 지금의 우리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여긴 한참 더 성장하고 와야 할 것 같다.

‘튀어!’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도주를 시작했고.

그런 나의 뒤를 리빙아머가 거의 반쯤 하늘을 날면서 쫓아 오다가 공동 출구에 다다르자, 더는 내 뒤를 쫓지 않았다.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을 끌어들이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가족끼리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 아닌가.

저기 있는 것들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다 먹을 생각이다.

“휴, 무서워라. 리빙아머 포스가 저 정돈데, 이무기는 얼마나 강할지 감이 안 오네.”

잠시 후, 지상으로 돌아온 우린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쉬운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탐색 목적은 달성했다.

우리가 손에 넣은 보물 지도에는 난이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니,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곳을 뚫으려면 못해도 레벨 24는 더 올려야 할 것 같네요.”

그건 윌리아의 평가였다.

공감한다.

적어도 레벨 130은 되어야 도전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최소 도전 조건 같은 거고, 우리가 지금의 퀄리티를 유지한 채 레벨을 올릴 경우의 이야기다.

우린 항상 동 레벨의 몬스터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 왔는데, 이는 아이템과 스킬의 스펙이 남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현재 윤시아나 김현수 등 최상위권 멤버들은 레벨 60을 넘어섰는데, 과거 내가 레벨 60이던 시절이 지금의 그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얼떨결에 단기 목표가 생겼네요. 타도 이무기.”

“목표가 뚜렷하면 그만큼 성장도 빠른 법이니까.”

하지만 우린 마냥 유쾌하게 목표를 반기지 않았다.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말이다.

“아, 성장이 빠르다는 말은 취소.”

“으음…….”

우리는 하루에 2레벨업을 하는 게 당연하다 느껴질 만큼, 성장에 브레이크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우선 사냥터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네. 레벨이 100을 넘은 지 한참 됐는데도 계속 성장의 탑만 이용할 순 없으니까.”

시에나의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는 경쟁력 있는 주력 사냥터가 없다.

그래서 아직도 성장의 탑 10층을 주요 사냥터로 이용하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성장의 탑 10층(레벨: 90~100)에 비견되는 효율을 가진 곳으로 동대문 지하 미궁 3단계(레벨: 70~100)와 월광도 북부 호수(레벨: 100)가 있지만.

단순 레벨업 효율에서는 그 두 곳도 성장의 탑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설마 사냥할 곳이 없어서 레벨업에 지장이 생길 줄이야.’

그만큼 우리의 성장 속도가 시스템의 예측을 넘어선 거란 뜻이니,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새로운 사냥터와 몬스터의 업데이트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우리가 하루 1렙업 페이스라도 유지할 수 있던 것도 고레벨의 엘더나, 필드 보스가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바로 날아가서 토벌한 덕이다.

그리고 한국만으로 만족을 못 해서 북한과 일본까지 웨이포인트로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

이무기 사냥을 위해 빠른 성장을 하려면 새로운 사냥터를 발굴이 필수였다.

즉, 이무기 사냥이 중단기 목표라면, 사냥터 발굴은 당장의 과제인 셈이다.

* * *

서울의 윤시아.

이 이름값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서백호 파티가 격이 달라서 그렇지, 그녀 정도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냥꾼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특별한 이유는 여러 무술을 전문가 수준으로 배운 서백호나, 검도 국가대표였던 김현수(수원), 특전사 출신인 박성만(제주) 등과 달리, 대재앙 발생 전에는 싸움 한번 해 본 적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철저하게 센스 하나로 수많은 전투 전문가들을 앞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윤시아를 서백호는 이렇게 평가했다.

‘윤시아 씨의 전투 방식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습니다.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달까요?’

이는 그녀의 무기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서백호가 처음 보았을 땐 도끼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창을 주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냥 능력치 좋은 장비를 얻으면 그걸 쓰는 거다.

무기를 자주 바꾸면 전투 기술에서 깊이가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캐치하고 대련이나 연습을 통해 놀라운 속도로 적응해 냈다.

그야말로 천재의 표본.

그런데, 이렇게 잘난 윤시아에게 날개를 달아 줄 아이템까지 등장했다.

[창술 스승 헤르슨 / 등급: 희귀]

바로 서백호가 지닌 검술 스승 오티스에 이은 두 번째 스승 아이템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창의 모든 것을 알려 주겠다. 머릿속에 잘 새기도록.]

“오케이.”

창술 스승을 획득한 이후 윤시아의 발전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그녀는 마치 스펀지처럼 창술 스승의 지식을 흡수해 나갔고, 그로 인해 전투력 또한 크게 상승하여 레벨업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그녀의 라이벌인 김현수, 최도겸, 박성만이 레벨 62~60 정도였는데, 그녀 혼자 65로 치고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윤시아가 물이 올랐다.’

최근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윤시아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가 창술 스승 헤르슨을 얻고 나서야 서백호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뭐, 저런 괴물이 있지? 검술 스승을 완전히 굴복시키다니?]

창술 스승 덕에 서백호가 검술 스승 아이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창술 스승은 서백호를 괴물이라 표현했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운이 나쁜 건가? 너는 최고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저 괴물로 인해 최고가 될 수 없겠구나.]

윤시아는 크게 놀랐다.

창술 스승 헤르슨이 누군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다.

김현수를 봐도 쓸만하다는 정도였는데.

서백호에 대한 반응은 몹시 격렬했다.

이런 상황에 못난 성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겠지만…….

다행히 윤시아는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

자신을 이끌어 주는 리더가 잘나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다만 뛰어난 리더가 있다고 모든 걸 그에게 맡긴 채 뒤처질 수는 없으니, 뱁새가 황새 쫓는 꼴이 되더라도 열심히 뒤를 쫓기로 했다.

-챙! 채애앵! 챙!

“져, 졌습니다.”

“대단한걸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창술 스승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났네요.”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거면 된다.

가끔 간부들과 대련을 해 주는 서백호에게 자신의 실력을 내비치고 인정을 받는 것만으로 윤시아는 충분히 만족했다.

서백호를 향한 그녀의 감정은 거의 신앙심에 가까워서 작은 칭찬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지.’

서백호는 한강 다리 붕괴 사건 때 윤시아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자,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선구자다.

신앙심처럼 그를 받들고 따른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물론, 대부분은 신앙심보다는 애정으로 감정이 발전하겠지만, 이는 윤시아가 애정이라는 오글거리는 단어와 거리를 멀리하는 성격을 가져 벌어진 참사였다.

“요즘도 구조 활동을 계속하고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정말 열심이시군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윤시아 씨.”

“저도 협회장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윤시아는 틈이 나는 대로 착취당하는 사회적 약자 구조에 힘을 쓰고 있다.

최근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약자 구조는 부하들에게 넘길까도 생각했지만…….

서백호의 격려를 받았으니 더욱 약자 구조에 힘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시아는 자신의 충동적인 결정을 후회했다.

“오빠?”

“응?”

괜히 평소보다 열을 올려 가며 깡패형 사냥꾼들에게 착취당하던 사람들을 구조했더니, 그 안에 이상한 이물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백호 오빠 아니야?”

“누구?”

윤시아에 의해 구조된 제법 예쁘장한 여성.

그 여성이 우연히 용산을 방문했던 서백호를 만나자마자 느닷없이 그에게 달려갔다.

“나야, 다혜!”

서백호의 전 여자 친구 포지션에 해당하는 인물의 등장.

여자의 돌발 행동에 칼을 빼든 사냥꾼 협회 관계자들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굳어 버리고.

윤시아는 신성한 협회장님에게 엉겨 붙는 경우 없는 여성의 모습에 입꼬리를 씰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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