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사냥터 찾기 (2)
나는 이미 하나의 하늘섬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성장의 탑 10층을 클리어하면 올라갈 수 있는 휴양섬 이카루스다.
이카루스는 휴식을 위한 모든 게 구비되어 있는 공간으로, 지금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이카루스에서 초대권을 구매해 선물하면 시련의 탑을 클리어하지 않은 사람도 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해외여행을 간듯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이카루스.
때문에 하늘섬이라 하면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최도겸이 보여 준 하늘섬은 다를 것이다.
사냥터를 찾고 있는 내게 이 하늘섬의 존재를 알려 왔다는 뜻은 그곳이 사냥터로서 기능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굉장히 높이 떠 있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지상 1.5km 지점에 떠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땅만 살피고 다니면 못 알아챌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이상 지형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강원도다.
덕분에 사냥꾼 협회에서는 강원도를 가리켜 필드형 던전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환경에, 일일이 하늘을 살피고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최도겸에게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와이번 타고 하늘섬 내부도 살펴보신 거죠?”
최도겸 또한 와이번 펫을 보유한 오너였으니까.
지난번 북한에서 로드급 엘더 레이드 당시, 상위 10위 이내 들었던 사냥꾼들에게 비행 몬스터 완장이 모두 지급되었다.
사냥꾼 협회에 비행 몬스터 펫 여럿이 한 번에 풀리면서 대외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내게 득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 조금이지만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섬이 스폰 구역이 존재하는 사냥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알고 계시나요?”
“여깄습니다.”
최도겸은 세 장의 사진을 추가로 보여 주었다.
그리고 사진 옆에는 최도겸이 탐색 스킬로 살핀 몬스터의 정보가 짧게 쓰여 있었다.
[바실리스크 / 레벨: 100]
[코카트리스 / 레벨: 100]
[다크엘프 궁수 / 레벨: 110]
“일단 보이는 몬스터만 최대한 줌을 당겨 찍은 겁니다. 워낙 몬스터들이 강력해서 생각 없이 접근했다간 바로 골로 갈 거 같아서요.”
“하하, 잘하셨습니다.”
몬스터의 레벨을 생각하면 확실히 그럴 만하다.
바실리스크에 코카트리스에 다크엘프?
바실리스크는 광역 보스 몬스터로 제주도에 나타났던 녀석을 상대해 봤다.
하지만 코카트리스와 다크엘프는 처음이다.
‘엘프는 NPC지만, 다크엘프는 몬스터 취급인가?’
시에나가 괜찮을지 조금 걱정이지만…….
왠지 그녀라면 이렇게 반응할 것 같다.
‘어허, 다크엘프와 우린 태생부터 달라, 외형이 비슷하다고 같은 취급 말라고.’
괜히 실소를 흘린 나는 바실리스크가 찍혀 있는 사진을 확대했다.
아마 바실리스크가 드래곤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몬스터 중 가장 덩치가 클 것이다.
그런 초대형 몬스터가 찍혀 있는데도, 하늘섬의 끝과 끝이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이는 섬이 외부에서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내부가 더 큰 이상 지형이라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크엘프 궁수가 찍혀 있다는 건, 전사나 마법사 등 여러 다크엘프 시리즈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지.’
추측이 맞는다면 그곳은 확실히 내가 찾고 있던 부류의 사냥터다.
“고맙습니다. 도겸 씨와 동료분들 덕분에 원하던 곳을 찾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이미 협회장님께 과분한 지원을 받았는데요.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일전에 일본 원정에서 우린 수많은 인간 사냥꾼을 토벌하고 대량의 장비를 챙겨 왔다.
그중 내게 배정된 장비의 수가 워낙 많아서, 나와 윌리아, 시에나에게 필요한 건 빼놓고, 나머지를 좁은 섬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가의도 청년단과 최도겸 파티, 콩나물 님 파티에게 선물했다.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지만, 그 세 파티는 내 제자와 같은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도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이건 정보료입니다. 활동에 보태 쓰세요.”
“네? 이, 이건 너무 많습니다!”
나는 상벌이 확실한 사람.
과거에 준 것과 별개로 이번 일에 대한 정보료는 따로 지급했다.
최도겸 파티는 내가 건넨 코인에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으나, 내 입장에서는 그리 큰 비용이 아니다.
때문에 나는 거절을 거절하며 최도겸에게 끝끝내 코인을 쥐여 주었다.
“이러려고 정보를 알려드린 게 아닌데…….”
“압니다. 그러니까 더 기분 좋게 드리는 거예요.”
“이거,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네요. 윤시아 파티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요.”
최근 성장세가 가파른 윤시아 파티는 나를 제외한 최상위권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무래도 최도겸도 그런 윤시아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적절한 경쟁의식은 나쁠 게 없으니, 나는 힘내라고 응원해 주었다.
-키에에엑!
그리고 때마침 뒤쪽에서 와이번 두 마리의 포효가 들려왔다.
분명 한다혜의 처분을 마치고 오는 윌리아와 시에나일 것이다.
와이번은 10명이 한 번에 탑승할 수 있는 비행 펫임에도, 두 사람이 절대 한 와이번에 같이 타는 일은 없었다.
“동료들이 오는 것 같네요. 우린 바로 하늘섬에 올라가 보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이어서 최도겸과 내가 동시에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하늘 높은 곳에서 시커멓고 덩치가 큰 내 드레이크와 날렵하고 유려한 외형에 은빛 비늘을 가진 최도겸의 와이번이 날아와 착지했다.
* * *
“잘 해결했지!”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가 돌아오자 하늘섬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난 후, 한다혜에 관해 물었더니, 시에나가 그리 말했다.
“일단 말로 잘 타이르고 코인 쥐여 준 다음, 원래 있던 곳이 서울숲 생존 구역이라길래. 윤시아한테 거기까지 잘 모셔다 주라고 했어.”
“그렇군요.”
대충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진다.
마무리를 윤시아에게 맡긴 부분이 꽤나 영악하지 않은가.
윤시아가 워낙 충성심이 강한 인물이라, 아마 끝까지 경고를 했을 것 같다.
‘차라리 이게 나아.’
정말 한다혜가 내게 붙어먹을 생각이었다면, 단호하게 쳐 낼 필요가 있으니까.
역시 그녀들에게 맡기기를 잘한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대비한 전담팀을 따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전담팀이요?”
윌리아의 말에 나는 고민했다.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다.
최근 사냥꾼 협회 관계자들에게 한 발 걸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들었다.
정에 기대 오는 사람을 개인이 직접 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차라리 협회 차원에서 나서는 게 깔끔할 것 같다.
더불어 협회에서 날리는 경고는 무게감부터 다르니, 이를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그리고 레벨이 높지는 않더라도 일반인을 상대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널려 있으니, 그들을 고용하면 될 것이다.
“이솔 씨에게 전담팀 신설을 지시해야겠네요.”
내가 아이디어 고맙다며 칭찬을 하자, 윌리아는 언제나처럼 단아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그리고 우린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비행 능력이 없다면 결코 닿을 수 없는 공간.
사냥터가 있는 하늘섬으로.
“출발하죠.”
내 신호에 맞춰, 드레이크 한 마리와 와이번 두 마리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와일번 (와이번) / 레벨: 68]
[와이번 (와이번) / 레벨: 68]
[룡룡이 (드레이크) / 레벨: 96]
처참한 작명 센스에 3마리의 아룡이 불쌍해 보인다는 김현수(수원)의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미적 기준과 가치관이 다른 법 아니겠는가.
내가 이름을 지어준 펫들 중에 단명한 펫이 없으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휘이이익!
단독 비행 스킬과 차원이 다른 스피드로 하늘을 꿰뚫듯 솟구치는 세 마리의 펫으로 인해 하늘섬과의 거리가 쭉쭉 좁혀졌다.
-팟!
이윽고 눈에 들어온 하늘섬은 거대한 산과 너른 들판, 호수를 끼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커 보이네.”
시에나의 말대로 하늘섬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컸다.
이상 지형으로 거대해진 월광도와 비견될 정도로 말이다.
이어서 우린 비행 펫에서 벗어나 단독 비행을 시작했고, 곧 몬스터들이 없는 안전한 지역에 착륙했다.
[하늘섬 세일론에 방문했습니다.]
[희귀 등급 장비 뽑기권을 획득했습니다.]
최초 업적까지는 아니어도, 하늘섬을 발견하여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업적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장비 뽑기권을 사용하자, 제법 괜찮은 옵션을 가진 단검이 나왔다.
막 쓰기 좋아 보여서 그대로 인벤토리에 처박았다.
‘많이 컸네. 희귀 등급의 단검을 막 쓰기 좋다고 평가하고.’
탐색에 앞서 나는 안전 텐트를 펼쳤다.
거점이 되는 베이스캠프로 쓰기 위함이다.
이번에 지하 미궁 3단계를 공략하던 과정에서 안전 텐트를 2개 더 획득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텐트가 무려 4개다.
여기저기 치고 다녀도 된다는 뜻이다.
‘어차피 이 하늘섬에서 내 안전 텐트를 건드릴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거점도 마련했겠다,
우리는 안전 텐트를 중심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레벨 100~110의 일반 몬스터쯤이야 우리의 상대는 아니지만, 최도겸이 전해 준 정보는 전체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래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심산으로 조심조심 이동했고.
-크롸라라라!
안전 텐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바실리스크 스폰 구역을 발견했다.
[바실리스크를 토벌하여 경험치 180,000을 획득했습니다.]
[바실리스크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3,52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바실리스크 가죽 5장을 획득했습니다.
-바실리스크의 이빨을 획득했습니다.
바실리스크 한 마리를 잡으니, 어제 한다혜에게 준 것보다 많은 코인이 한 번에 벌렸다.
레벨 100에 상체를 일으켜 세운 덩치가 아파트 1개 동에 버금가는 녀석인지라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일반 몬스터라고 해도, 거대한 레벨 100의 몬스터를 우리는 너무도 간단히 처치했다.
새삼 스스로가 인간의 범주를 완전히 넘어섰다는 게 느껴졌다.
[바실리스크를 토벌하여 경험치 180,000을 획득했습니다.]
.
.
해당 스폰 지역에서는 한 번에 바실리스크 4마리가 소환된다.
우린 그런 바실리스크를 시에나의 화살로 한 마리씩 유인해 해치웠다.
안정적인 토벌에 안정적인 보상.
‘나쁘지 않아.’
무엇보다 바실리스크가 드롭하는 소재는 공방에서 장비를 제작할 때 특수 등급을 뽑을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아이템이니, 잘 챙겨 놔서 사냥꾼 협회에 매각하면 그 값도 무시 못 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탐색을 이어 갔다.
-꾸에에에엑!
그다음 발견한 곳은 코카트리스 스폰 지역이다.
코카트리스는 파충류와 닭을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바실리스크와 같은 레벨 100의 몬스터지만, 석화 스킬이 있어 상대하기는 더욱 까다로운 녀석이다.
하지만 석화 스킬은 거리 100미터 이내에 접근한 적에게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원거리 공격으로만 사냥하면 석화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중심을 잡아 주는 탱커 없이 날렵한 코카트리스와 항상 100미터 이상을 유지하며 싸우는 건 쉽지 않은 일.
더구나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에게만 사냥을 맡기고 구경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팟!
“어딜!”
-파팟!
“누구 맘대로!”
그래서 나는 근거리에서도 녀석의 석화에 걸리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 녀석을 상대했다.
그 방법은 녀석의 시야에 들지 않는 것이다.
계속 뒤통수만 보고 싸우면 된다.
그러나 말과 달리 쉽지 않은 방법인데, 녀석의 외형이 괜히 닭처럼 생긴 게 아니라는 듯, 대가리의 회전 반경은 거의 360도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검술 스승의 공격 경로 예측 기능 덕분에 그 어려운 근접 전투를 해냈고.
[코카트리스를 토벌하여 경험치 200,000을 획득했습니다.]
[코카트리스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1,000,000를 획득했습니다.]
[코카트리스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4,25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코카트리스 가죽 5장을 획득했습니다.
-코카트리스의 깃털 5개를 획득했습니다.
[코카트리스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0,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석화 저항 스킬북을 획득했습니다.
바실리스크와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 않는 속도로 코카트리스를 사냥해 냈다.
더구나 최초 토벌 보상으로 석화 저항 스킬북을 얻게 되면서, 이후의 사냥은 더욱 손쉬워졌다.
“바실리스크보단 코카트리스 사냥의 효율이 좋네요.”
그건 윌리아의 평가였다.
아무래도 내가 새로 익힌 석화 저항 스킬의 역할이 컸다.
코카트리스 사냥터면 성장의 탑 10층에서 죽치고 있는 것보다 효율 좋은 사냥이 가능할 터.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더 들어가 보죠.”
“좋아요.”
“오케이.”
현재 우리의 레벨은 106이다.
나는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사냥하고자 신규 사냥터를 물색하고 다닌 게 아니었다.
아직 최도겸이 발견한 그게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계속해서 탐색을 이어 갔고.
“찾았다.”
하늘섬 세일론에 자리한 제법 험준한 산속에서 타깃을 발견했다.
[다크엘프 궁수 / 레벨: 110]
[다크엘프 전사 / 레벨: 120]
[다크엘프 마법사 / 레벨: 120]
최도겸이 건넨 정보에서 가장 흥미를 끌던 몬스터.
다크엘프였다.
그 순간.
“엘프는 하나!”
라고 외치며 시에나가 오랜만에 냅다 저격을 발사했다.
다크엘프 역시 엘프 종족이라고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엘프는 일반 엘프 하나뿐이란 뜻이었다.
-팟!
강력하게 날아드는 스킬이 깃든 화살에 다크엘프 궁수가 들고 있던 활을 떨어뜨리면서.
이쪽이 유리하게 전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