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21화 (121/273)

121화 생존 기념 이벤트 (1)

서백호가 ‘가의도 청년단’이라 이름 붙인 4인 파티.

그들은 대재앙 발생 초기부터 서백호에게 틈나는 대로 단련을 받아 왔으며, 서백호의 펫인 오크 뚱이와 팀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보를 알 리가 없는 사냥꾼 협회의 간부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눈앞의 4인 파티를 의문스럽게 바라봐야 했다.

‘가만……. 생존 이벤트면 지난달에 협회장님이 주력 사냥팀을 이끌고 연속으로 레이드를 돌던 그거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이 그들 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 이벤트.’

그런데 그걸 알고 있다?

더구나 협회 관계자도 아닌 사람들이?

왠지 이들을 가볍게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모두가 어떻게든 한 발 걸치려 하는 사냥꾼 협회의 간부임에도 최대한 친절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

“혹시라도 도와드릴 게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말씀하세요.”

그런 그의 태도에 오히려 김민희와 김한성은 작게 감탄했다.

상대가 사냥꾼 협회에서 제법 위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거드름을 피우기는커녕 영업맨처럼 친절한 모습을 잃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이 아무리 대부분의 시간을 섬에서 보내더라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잘 알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선 힘 있는 사람이 곧 법이고 정의라는 것을.

그런데 요즘에도 이런 인물이 있다니,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로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은 저희도 오늘 협회에 가입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잠실 현장 남쪽 3번 출구에서 기다리면 사람이 나온다고만 들어서…….”

“그렇습니까?”

역시 범상치 않아 보인다 했더니, 누군가의 스카우트를 받은 것 같았다.

[생존 점수 순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리고 마침 생존 2개월을 기념하는 보상이 주어졌다.

그에 협회 간부는 출구 안쪽에 앉을 수 있는 벤치들이 놓여 있으니, 거기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다.

그곳에서 편하게 기다리면서 생존 보상을 확인해 보라고.

“그럼 거기로 갈까?”

“그래.”

결국, 김민희와 김한성이 포함된 가의도 청년단은 3번 출구 안쪽으로 이동했다.

“굉장히 친절하시네요.”

“하하, 여러분께는 제가 협회의 첫인상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잘 보여야지요.”

입에 발린 말이지만, 이런 행동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김민희는 그가 마음에 들어 통성명을 했다.

“저는 이 파티의 리더 김민희라고 합니다.”

동료들에 비해 어린 데다가 체구도 작은 여성이 건장한 남성들을 밀어내고 파티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은, 그만큼 특출난 능력을 갖고 있단 의미.

그녀의 자기소개에 협회의 간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댔다.

“전 서울 제3전투단의 5번 조장 길종혁입니다. 최근엔 잠실 경비 책임자로 상주하는 일이 많죠.”

윤시아가 이끄는 제1전투단.

박행기가 이끄는 제2전투단.

권미영이 이끄는 제3전투단.

이들은 과거 서울 1팀, 2팀, 3팀으로 불리던 단체였고, 지금은 그대로 전투단이 되었다.

즉, 길종혁은 서울 주력 사냥팀의 조장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역시 협회의 간부셨군요.”

군대로 치면 대위급의 위치.

길종혁은 부끄럽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앉을 자리를 안내해 주며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중에 저희 선생님 오면 길종혁 님이 너무 친절하게 잘 대해 줬다고 말씀드릴게요.”

김민희가 말하는 선생님이 누군지 모르기에 길종혁은 그저 반사적으로 웃었다.

이어서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생존 보상을 확인했다.

아니,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소란이 발생했다.

“자, 잠시!”

협회의 운영 책임자 강이솔이 완공 직전의 협회 건물 안쪽에서 허겁지겁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강이솔을 바라보아야 했는데, 이어진 그의 외침에 일대 소란이 발생했다.

“혹시 협회장님 제자분들 계십니까!? 협회장님 제자분들!”

서백호 협회장의 제자?

사냥꾼 협회는 능력 있는 사냥꾼들에게 제자를 들이는 것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협회장의 제자에 대해서는 모두가 처음 듣는지라,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외적으로는 최도겸 팀과 콩나물 팀이 서백호 협회장의 직속 라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은 제자라기보다 친위 부대의 느낌이 강했으니 말이다.

“아! 저희입니다! 저희요!”

자신이 안내하던 4인 파티가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본 길종혁은 크게 당황했다.

곧 강이솔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강이솔은 몇 번인가 얼굴을 마주한 적 있는 길종혁을 힐끔 바라보았는데, 혹여나 그가 협회장의 제자들에게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나 싶어 보인 행동이었다.

“이분이 너무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밖에 서서 기다리니, 안쪽에 앉을 자리가 많다며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나을 거라고 직접 안내도 해 주셨고요.”

“하하, 그렇군요.”

그에 길종혁을 훑어보던 강이솔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깃들었다.

강이솔은 그런 길종혁의 어깨를 두들긴 후 엄지를 추켜세웠고, 얼떨결에 협회 최고위 간부에게 칭찬을 받은 길종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자자, 본부로 가시죠. 아직 완공 전이라 어수선하지만, 내부에 갖춰질 건 전부 갖춰져 있습니다.”

“네? 저희 뚱이 기다려야 하는데?”

“뚱이요?”

별명인가 싶은 ‘뚱이’라는 지칭에 누군가의 처참한 작명 센스가 떠오른 강이솔이 답했다.

“혹시 협회장님의 펫을 말씀하시는 거면, 조금 뒤에 함께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바로 움직이기 힘드신가 봅니다.”

동료 NPC는 홀로 웨이포인트를 타는 등의 단독 활동이 가능하지만 펫은 철저하게 주인이 함께 있어야만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

때문에 뚱이를 이곳으로 옮기려면 서백호의 도움이 필수였다.

자신들과 달리 강이솔은 실시간으로 서백호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가의도 청년단은 잠자코 뒤따랐다.

“길종혁 씨가 좀 도와주세요.”

“네, 저요?”

“이분들이 시골에서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투 부분은 유능해도, 아직 협회와 생존 구역 같은 시스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대요.”

시골에도 생존자는 있기 마련이고, 그들이라고 해서 강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더구나 협회장의 도움을 받았다면 더더욱.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더니…….

“안 그래도 적응을 도와줄 가이드를 배정할 생각이었는데. 길종혁 씨가 하면 되겠네요.”

“네?”

“오!”

그에 길종혁이 뜨악한 표정을 짓고, 가의도 청년단의 멤버들은 어차피 아는 사람이라고는 스승 서백호밖에 없는데, 그 서백호가 가이드를 할 수는 없으니, 이왕이면 첫인상이 좋은 길종혁이 담당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 찬성입니다!”

가의도 청년단의 리더 김민희가 강력하게 찬성 의견을 내니,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직 협회 내의 직급은 없지만, 협회장의 제자라는 것만으로 발언력이 상당했다.

“너무 당황할 거 없습니다. 솔직히 길종혁 씨에게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강이솔의 말에 길종혁은 잠자코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공사 현장의 경비 책임자로 있는 것보다야 훨씬 미래지향적인 제안이었다.

잘만하면 협회장과의 연결 고리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결국, 길종혁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알겠습니다.”

“굿굿!”

그렇게 길종혁이 제안을 받아들이니, 모두가 만족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 * *

[서백호 님의 생존 점수는 281,150점으로 상위 0.000001%인 1등급에 속하며, 전체 순위는…….]

[1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무사히 두 달을 생존했음을 알리는 메시지.

그리고 나는 지난달에 이어 이번에도 생존 점수 1위를 달성했다.

그로 인해 주어지는 보상은 이러했다.

[생존 점수 순위 1위의 보상이 지급됩니다.]

[1등급 휘장]

-상위 23명(일억분의 일)의 1등급 징표

[최상급 스킬 선택권 1장을 획득했습니다.]

-1위 보상

[설치형 웨이포인트 1개를 획득했습니다.]

-1~100위 보상

[281,15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점수 보상

[1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전체 보상

휘장은 지난달에도 받았는데, 이번에 새로 받으니 지난 건 자동으로 사라졌다.

아무 옵션이 없는 휘장은 일종의 계급장과 같아서 순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자랑하기 위해 착용하고 다니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서 한 달 내내 인벤토리에 처박아 놨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에서 생존 구역 내에선 휘장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계획이 나왔다고 들었다.

보급을 위해서라도 일반인과 사냥꾼의 구분을 확실히 하고, 휘장을 일종의 신분증처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제안은 적용될 확률이 높아 보여 앞으로는 휘장 착용이 일반적인 게 될지도 모른다.

‘이걸로 설치형 웨이포인트가 두 개네.’

그리고 또 다른 보상인 설치형 웨이포인트.

지난번에도 보상으로 떴던 아이템인데, 아직까지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유는 굳이 사용할 곳이 없어서.

[설치형 웨이포인트 / 등급: 희귀]

-원하는 장소에 웨이포인트를 설치할 수 있다.

-웨이포인트가 설치되면, 근처에 직경 100m의 편의 시설 없는 안전 구역이 생성된다.

-안전 구역의 사용료는 일반 안전 구역과 같다.

-비밀번호를 설정하여, 아무나 해당 웨이포인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최초 설치 후, 해체하여 2회 설치 장소를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설치된 곳을 알고 있는데, 강이솔이 지난달에 깜짝 100위 안에 들어서 그 웨이포인트를 얻었었고, 성장의 탑 바로 앞에 설치해서 협회 사냥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편하긴 하지. 특히 이용률이 높은 사냥터 앞에 설치하기 좋아.’

그래서 나는 이곳 하늘섬 세일론에 설치할까 하다가,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더 좋은 곳에 쓰일 수도 있으니까.

‘최상급 스킬 선택권.’

그리고 1등 보상으로 지급된 최상급 스킬 선택권.

나는 이것을 보며 고민했다.

전투력을 올려 줄 공격 스킬을 선택할지, 아니면 서포터 계열 스킬을 선택할지.

솔직히 우리의 공격력은 그리 낮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포터 계열의 스킬이 더욱 눈에 띄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여기요.”

[완전 회복 / 최상급 스킬북 / 액티브]

-대상이 살아 있는 상태라면 어떤 부상이라도 회복한다.

-독과 모든 질병을 회복한다.

-마력 소모: 10

마력 소모량이 커서 마구 남발할 수는 없지만, 즉사 또는 머리가 부서지지 않는 이상 죽음을 극복시켜 주는 수준의 회복 스킬이다.

그래서 나는 그걸 윌리아에게 건넸고, 그녀는 기쁘게 스킬북을 받아 들었다.

최상급 스킬북의 단계에서 이 정도면 극상급 스킬의 회복은 어느 수준일지 궁금하다.

‘혹시 나중에 부활 스킬이 등장하는 건 아니겠지?’

직감이지만 왠지 부활은 스킬로 주지 않을 것 같다.

일회용 아이템으로 등장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생존 보상을 정리한 나는 방금까지 다크엘프의 시체에 꽂혀 있던 거마도를 뽑아 들어 수습했다.

몬스터가 죽으면 발생하는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장소.

나는 그 중심에 서서 퀘스트를 살폈고.

[다크엘프 100마리 사냥]

-목표 달성, 용병 사무소에서 보상을 받으세요.

마침 퀘스트 목표를 달성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이 퀘스트의 보상을 받으면 우리의 레벨은 111이 될 것이다.

무려 3일 동안 레벨을 5나 올리게 된 것이다.

아직 이무기 공략을 위해 목표로 잡은 130에 비하면 한참 낮지만, 레벨이 100을 넘어서고 하루에 레벨 1도 올리기 힘들던 시기를 생각하면 희망적인 상황이다.

물론, 여기서도 서서히 레벨업 속도가 느려지는 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레벨 120까진 무리 없이 하루 한 번 이상의 레벨업은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 내려갈 거지?”

“그래야죠. 생존 기념 이벤트란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레벨업도 오늘, 내일까진 휴업이다.

바로 생존 기념 이벤트를 위해서.

생존 기념 이벤트에서 얻은 점수로 귀환 스크롤이나 안전 구역 생성기, 강화 성공 확률 증가 아이템 등을 구할 수 있으니,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한 달에 한 번 맞이하는 중대한 이벤트인 것이다.

“엘프 마을 용병 사무실에서 보상받고, 가의도에 방문해 뚱이 데리고 잠실로 넘어가죠.”

사냥꾼 협회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이번 이벤트를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대한 많은 점수를 획득해 놔야 다음 한 달 동안의 생존이 쉬워질 테니까.

* * *

멍멍이가 성장의 탑 8층 교환권으로 구매한 ‘펫 진화’와 10층 교환권으로 구매한 ‘펫 각성’으로 지금의 섀도우 울프가 된 것처럼.

나는 뚱이도 같은 방법으로 강화했다.

“헉! 보, 보스 몬스터 아냐?”

“협회장님 따라다니는 거 보면 펫 같은데?”

“무슨 펫 포스가.”

그리하여 변화된 뚱이는 지나가는 사냥꾼들 모두가 몸을 움츠릴 만큼 무시무시한 보스 몬스터의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뚱이(마계 오르크) / 레벨: 85]

전신에 검은 오러가 일렁이고, 핏빛 안광을 번뜩이는 신장 3.5미터의 몬스터.

마계 오르크라는 심상치 않은 종족명처럼 전신에 근육을 두른 무시무시한 이 야만전사가 바로 뚱이다.

[주인님, 뚱이 배고파요.]

“어, 이 건빵이라도 먹고 있어.”

[사랑해요~.]

하지만 무시무시한 외형과 달리 말투는 귀염귀염하다.

펫이라 그런 걸까?

“앗! 선생님!”

그렇게 뚱이와 함께 가의도 청년단이 기다리고 있을 잠실 현장에 도착했더니.

“응? 뭐 합니까?”

수원의 김현수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김민희를 일으켜 주고 있었다.

[김현수 / 레벨: 66]

[김민희 / 레벨: 65]

“김현수 님이랑 대련해 봤는데 졌어요. 역시 검도 국대 출신이시라 그런지 엄청 강하시네요.”

김현수의 당혹감 어린 모습을 보니, 쉽게 이긴 건 아닌 것 같았다.

사냥꾼 협회의 공식 전투력 측정기 김현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제, 제2의 윤시아야? 무슨 일반인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잘 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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