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22화 (122/273)

122화 생존 기념 이벤트 (2)

“제, 제2의 윤시아야? 무슨 일반인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잘 싸워?”

김현수의 반응을 보아하니, 가의도 청년단의 육지 데뷔는 성공적이라 봐도 될 것 같다.

확실히 김현수의 감상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윤시아도 그렇고, 가의도 이장의 딸 김민희도 그렇고, 둘 다 싸움과 거리가 먼 일반인이었다.

만약 세상이 이렇게 변하지 않았다면, 그녀들은 영영 전투에 재능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둘 다 당찬 여장부들이니, 같이 붙여 놔도 친하게 지내지 않을까 싶다.

“이 네 명은 지금까지 필드 사냥만 한 사람들이야. 이제부터는 성장의 탑에도 오를 테니, 현수 형 방심하다간 그냥 추월당할걸?”

“헐…….”

김현수와 가의도 청년단 사이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다.

레벨도 고작 1 차이고.

최근 창술 선생 아이템을 얻은 윤시아가 레벨 70을 넘어서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상황인데, 방심하다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의도 청년단에게도 먹히고 말 것이다.

“나한테 왜 그래?”

“분발하란 거지.”

우리 둘이 과거부터 연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현수가 툭하면 고등학생 시절 나와 검도 대회에서 마주쳤던 일을 자랑하듯 떠들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사석에서 우리 둘이 서로 반말하는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정도 실력자들을 일반 대원으로 받을 수는 없고. 직급은 어떻게 할까요?”

강이솔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냥꾼 협회는 기본적으로 실력 우선주의라 가의도 청년단 멤버 수준을 생각하면 한 지역 지부장급의 지위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할 구역도 없는데 지부장 지위를 줄 수는 없고, 결국 새로운 지위를 만들어야 한다.

“본부 소속 전투단 하나 만들죠.”

“협회장님의 제자들이니, 아예 직속 친위대를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건 됐어요. 같이 다닐 일도 많지 않을 테고, 왠지 그건 독재자 느낌이 나서……. 차라리 본부 직속으로 둬서 이들이 필요할 일이 있으면 이솔 씨가 적절한 곳에 투입해 굴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굴리라뇨?”

굴리라는 말에 김민희가 반응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 시선을 피하며 생각했다.

‘언제고 사냥꾼 협회의 직급 제도를 손보긴 해야 할 것 같네.’

군대처럼 빡빡하지는 않더라도, 계급장과도 같은 등급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실력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계속 이렇게 신규 부대를 만들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뚱이야.”

-크르르.

내가 부르자 뚱이가 당연하다는 듯 김민희 파티에 합류했다.

입만 열지 않으면 포스가 넘치는 뚱이였기 때문에 잠실 사냥꾼 협회 본부에 모인 간부들이 움찔거렸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주변을 살폈다.

윤시아, 최도겸, 박성만(제주)을 비롯해 주력 멤버 몇몇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기에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이벤트 메시지 보셨죠?”

그에 사람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렸다.

“네!”

“당혹스럽게도 생존 기념 이벤트의 진행 방식이 지난달과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심플해요.”

지난달의 생존 이벤트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이번 달 생존 기념 이벤트는 완전히 다르다.

[생존 2개월 기념 이벤트 실시]

-1시간 24분 35초 후, 지정된 장소를 향해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이벤트가 진행되는 가까운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몬스터 웨이브를 막거나, 필드에 숨겨진 웨이브 발생 코어를 찾아내 모두 파괴할 경우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이벤트 종료 후, 정산된 점수를 일괄 지급하며, 이벤트 종료 후 6시간 동안 이벤트 상점이 개방됩니다.

-코어를 파괴하여 웨이브를 빠르게 종결시킬수록 보상이 큽니다.

아무래도 지난 이벤트가 너무 고렙 중심이었다고 시스템이 판단한 건지, 이번에는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벤트라며 웨이브 일으키는 꼬라지 보소.

정말 최악 아닌가.

그리고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한반도 웨이브 공격 예정 장소]

1.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2. 서울 종로 청와대

3. 부산 해운대 해운대구청

4. 평양 새마을거리 부흥역

한반도 웨이브 공격 대상 네 곳 중 1번이 사냥꾼 협회에서 건설 중인 도시라는 거다.

참고로 올림픽공원은 정부의 지원 없이 사냥꾼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방어하기로 했는데, 이는 우리의 전력만으로 충분할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오히려 우린 청와대에 윤시아, 해운대에 박성만(제주), 평양에 최도겸 팀을 파견하는 여유를 보였다.

세 팀 모두 김현수와 함께 사냥꾼 협회의 주력 팀이라 할 수 있으니 어딜 가든 제 역할을 해 줄 거라 생각한다.

“우리의 작전은 간단합니다. 일단 막으세요. 그럼 저와 리아 씨, 시에나 님이 웨이브 발생 코어를 찾아 파괴하겠습니다.”

“그렇게 올림픽공원의 정리가 끝나면 부대를 나눠 다른 지역을 지원 가고. 제 파티는 계속 단독으로 움직여 청와대, 해운대, 평양 순으로 코어를 파괴해 나가겠습니다.”

너무도 심플한 작전.

복잡한 브리핑은 필요 없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꼭 필요한 게 있다면, 웨이브로부터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지형의 조성일까?

“이솔 씨 혹시 위험한 상황 발생하면 바로 메시지 보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강이솔에게 당부를 하고는 뚱이와 가의도 청년단을 지상에 남겨 둔 채, 비행 펫인 드레이크를 불러 등에 올라탔다.

-펄럭!

곧이어 내 드레이크의 뒤를 따라 윌리아와 시에나의 와이번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주변을 탐색했다.

아직 웨이브 발생 전이지만, 혹시라도 이변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바람이 유독 센 느낌이네.’

하지만 눈에 띄는 이변은 없었다.

그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음침한 분위기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린 올림픽공원의 하늘을 날며 주변을 배회했고.

[이벤트 시작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이벤트 시작까지 30분 남았습니다.]

[이벤트 시작까지 5분 남았습니다.]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이어지던 메시지의 내용이 바뀌면서.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경고,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웨이브는 24시간 후 종료됩니다.

죽음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스멀. 스멀.

그리고 나는 멀리서부터 새까만 물결이 몰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 * *

“흡!”

-촤촤촥!

윤시아는 매섭게 창을 놀리며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를 학살했다.

몬스터 대부분이 고블린이나 오크, 다이어 울프 같은 초급 몬스터였지만, 중간중간 긴장감을 더해 주듯 듀라한이나 검치호 같은 중급 이상의 몬스터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윤시아는 일당백의 기세로 무섭게 몬스터들을 쓸어버렸고, 그런 그녀를 보며 청와대 방어 라인을 지키는 적응군의 지휘관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서땡땡이 아니잖아?”

“어, 윤시아야.”

“윤시아? 아, 그 서울을 대표하는 사냥꾼이라는?”

“맞아. 협회에 가입하고 압도적인 서땡땡의 존재감에 가려진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

“윤시아가 저 정도였다고?”

“듣기론 레벨이 70이 넘었대.”

“사냥꾼 협회에 윤시아와 비슷한 멤버들이 또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아, 협회 사천왕(윤시아, 김현수, 최도겸, 박성만) 말이지? 장난이라 생각했는데, 괜히 그런 별명이 붙은 게 아닌 것 같아.”

“미친 저런 인물이 제일 강한 게 아니라니.”

적응군은 레벨업을 하는 군대 소속 사냥꾼이다.

때문에 윤시아의 막강함과 사냥꾼 협회의 견고함이 더욱 크게 체감되었다.

사실 사천왕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불리는 사냥꾼 협회 멤버 중 윤시아가 다른 이들보다 눈에 띄게 앞서는 상황이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윤시아 같은 인원이 더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청와대에 있는 정부 인사들과 군 지휘부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사냥꾼 협회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그나마 잘되지 않았습니까? 현재 정부와 협회의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래서야 우리가 나라를 대표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 이 정도인데, 몇 개월이 더 지나고 또 몇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으음…….”

“그들에게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건 상부에게 있어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지적해 봤자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김응수 대통령은 웅성거리는 군부와 정부의 지휘부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조치는 무슨 조치? 아무런 짓도 하지 마시게.”

“네? 하지만, 대통령님.”

“생존이 우선 아니겠나. 그리고 그게 시대의 흐름이라면 따라야지.”

지난 북한 사태로 중화 청년단에게 단단히 무시를 당했던 김응수 대통령은 어딘가 해탈한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에 군부의 몇몇 인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대통령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장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이 이 자리에 쳐들어온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

“…….”

“우리가 뭘 어떻게 하기엔 그들은 이미 너무 커 버렸어. 지금 수를 쓰는 건 명을 재촉하는 것뿐이야. 사냥꾼 협회 여성 간부 한 명의 위용에 이 법석들인데, 아예 격의 차원이 다르다는 협회장과 그 일행들은 어떻게 마주하려고?”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게 바로 현실이다.

옛 대통령을 밀어내고 야심 차게 군부 정권을 일으킨 김응수 대통령이지만, 재앙의 시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정치적 이익 같은 것 따지지 말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게. 그게 우리의 역할이야.”

담담하게 내뱉은 대통령의 음성.

하지만 그와 별개로 청와대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상황을 계획하고 윤시아를 청와대 방면에 지원을 보낸 건 아니지만, 이벤트 웨이브를 통해 사냥꾼 협회의 위상과 체제는 더욱 굳건해지고 있었다.

* * *

최공찬은 일행이 사냥꾼 협회의 재산(매직 블록)을 훔치는 것을 말리다가, 가의도 청년단의 가이드가 된 길종혁의 눈에 띄어 제자로 영입되었다.

현재 그의 레벨은 25로, 사냥꾼 협회의 초급 사냥팀에 소속되어 이벤트 웨이브를 막기 위해 동원된 상태다.

시야 가득 새까맣게 몰려오는 몬스터 떼.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리는 모습이지만, 그는 간간이 들이닥치는 초급 몬스터를 상대할 뿐, 생각만큼 위험한 일은 겪지 않았다.

“끼야후!”

-파파파팟!

“뚱이야!”

-크어어어!

-콰아아아앙!

이게 모두 최공찬 앞을 지키고 있는 가의도 청년단 덕이었다.

김민희 파티와 뚱이 조합은 몰려드는 몬스터들에게는 지우개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의 전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길종혁의 제자가 되어 사냥꾼 협회에 가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레벨의 사냥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직접 마주하니 이야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하구만.”

“뭐, 저 펫?”

“어? 어어, 저 펫도 그렇고, 저 네 사람도 그렇고.”

최공찬의 감탄 섞인 혼잣말에 그와 같은 파티에 소속된 창수가 자랑하듯 떠들었다.

“저 파티가 협회장님이 키운 제자들이래. 그리고 저 펫은 협회장님 펫이고.”

“그, 그래?”

그들도 최공찬처럼 누군가의 제자였는데, 입장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머지않아 가의도 청년단 뒤에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협회장’이라는 사실에 모든 게 이해되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콰아아아아아앙!

-카릉! 콰아앙!

-지이이잉!

저 멀리서 발생한 대폭발과 하늘을 꿰뚫는 빛들이 협회장 파티의 전투로 인해 만들어지는 광경이었으니까.

무슨 창세 신화의 한 장면을 써 내려가고 있는 듯한 저 전투에 비하면 가의도 청년단은 오히려 인간적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가의도 청년단의 전투가 인간답다면, 최공찬과 동료들의 전투는 애들 놀이 수준이라 해야겠지만.

‘협회장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저건 차원이 다르다.

과연 같은 날에 대재앙을 맞이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왜, 절망감 들어?”

“…….”

압도적인 차이는 절망감을 만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렇게는 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과 함께.

하지만 최공찬은 달랐다.

“아니, 저렇게 되고 싶어.”

“하하! 나도 그래.”

그는 아득한 차이에 무릎을 꿇고 멈춰 서기보다, 그 차이를 가르침 삼아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백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목표가 되었다.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 발생 코어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최공찬은 순수하게 감탄사를 흘렸다.

“역시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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