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생존 기념 이벤트 (3)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 발생 코어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웨이브 발생 코어는 웨이포인트와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웨이포인트가 푸른빛을 뿌리는 거대 수정이라면 웨이브 발생 코어는 검은 기운을 내뿜는 자색 수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둘 다 지면 50cm 위로 둥둥 떠 있는 건 같지만, 웨이포인트가 눈에 띄는 장소에 자리한 것과 달리 웨이브 발생 코어는 교묘하게 건물 사이에 가려져 있거나, 아예 눈에 띄지 않게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웨이브 발생 코어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몬스터가 떼 지어 나타나는 곳 주변을 탐색하면 되니까.
코어는 제법 강한 네임드 몬스터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우리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덕분에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는 발생 1시간여 만에 종결시킬 수 있었다.
[웨이브를 매우 빠르게 조기 종결하여, 제공되는 보상이 더욱 커집니다.]
웨이브를 조기 종결시키면 보상이 더 커진다고 했으니, 나는 이어질 메시지를 기분 좋게 기다렸다.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웨이브 방어 기여도에 따른 점수를 정산합니다.]
[정산 완료, 축하드립니다. 200점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보상을 보고는 미간을 좁혀야 했다.
지난번에는 레이드급 이벤트 몬스터를 토벌할 때마다 최대 100점 한도로 활약도에 따른 점수를 주었다.
‘그래서 이벤트 몬스터 5마리를 토벌하고 총 500점을 획득했었지.’
그런데 한 달이 더 지난 시점에서 지난번과 비교도 안 되는 스케일의 이벤트를 벌여 놓고 고작 주는 점수가 200점이다?
물론, 한반도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웨이브에 참여하면 최대 800점을 획득할 수 있는 일이니, 지난번보다는 많겠지만.
이럴 거였으면 웨이브를 조기 종결하면 보상이 더 커진다고 말을 왜 한 걸까 싶었다.
‘우린 점수 획득량 최대한도에 걸린 거고, 대신 다른 사람들의 점수 획득량이 크게 증가한 걸까?’
대충 보니 지난번 한도가 100점이었다면 이번엔 200점인 것 같았다.
1,000점의 활약을 해도 받을 수 있는 점수가 최대 200점이란 거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혀를 차며 본대로 돌아가려는데…….
“이번엔 점수를 따로 주나 보네요?”
“네?”
지난번 이벤트 레이드에선 동료 NPC에게는 별도의 점수를 주지 않았다.
“저 200점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나도 떴어!”
그런데, 이번에는 동료 NPC들에게 점수가 따로 부여됐다.
단 한 번의 웨이브를 막은 것으로 우리 파티는 무려 600점이란 점수를 획득했다는 뜻이다.
‘적은 게 아니었네?’
벌써 지난번에 벌었던 이벤트 점수보다 더 많은 점수를 벌었다.
이런 식으로 한반도 내의 웨이브 모두 클리어하면…….
‘2,400점?’
무려 지난번보다 5배에 가까운 점수를 손에 넣게 된다는 뜻.
덕분에 나는 언제 불만을 표했냐는 듯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드레이크를 타고 빠르게 올림픽공원 본진으로 돌아왔다.
-와아아아!
우리의 복귀에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이 우리에게 환호성을 내지르며 반겨 주었다.
“이야, 협회장님 덕분에 웨이브 조기 종결하고도 가산점이 붙어서 25점이나 획득했어요.”
그건 지난달의 이벤트에도 참여했던 김현수의 말이었다.
사람 많은 데서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그는 유쾌한 표정으로 엄지를 추켜세웠다.
지난달에 그가 획득한 점수가 다 합쳐서 20점도 안 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역시 습득량이 꽤나 많아졌다.
“점수 상점에서 1점에 살 수 있던 그거, 또 팔겠죠?”
한 번에 20점이 넘는 점수를 획득한 그는 점수 상점에서 팔던 아이템 중, 출장 뷔페 호출권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다양한 산해진미와 술이 나오는 출장 뷔페 호출권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있으면 좋겠네요. 그럼 모든 게 끝나고 기분 좋게 파티를 만끽할 테니.”
“하하, 그걸 기대하고 싸우는 거죠.”
피식 실소를 흘린 나는 한데 모이기 시작한 사냥꾼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있는 이곳과 달리 한반도에 발생한 웨이브는 모두 생존 구역을 향하고 있습니다! 고로 지금부터 부대를 셋으로 나눠 각 지역을 지원하도록 합니다!”
“네!”
“우선 지난번 평양 원정을 가서 웨이포인트를 찍고 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올림픽공원에 발생한 웨이브를 뒤도 보지 않고 클리어한 건 가산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이거다.
‘다른 생존 구역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건 말이 좋아 이벤트지 그냥 웨이브 아닌가.
더구나 올림픽공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구가 밀집된 생존 구역을 노리는 웨이브.
이벤트 웨이브가 발생하기 2시간 전에 사전 공지를 해 줬지만, 고작 2시간 이내에 모든 주민을 대비시키기란 불가능했다.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거라곤 방어 라인을 만드는 일뿐이었다.
방어 라인이 뚫리면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니, 이쪽 싸움이 끝났다고 방치한 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럼 저는 이들을 이끌고 평양으로 지원 가겠습니다.”
“저흰 부산으로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린 빠르게 병력을 셋으로 나눴다.
나는 청와대를 지원할 병력을 이끌기로 하고, 김현수가 평양, 강이솔이 부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다만 많은 사람이 웨이포인트를 찍어 놓은 평양과 달리, 부산은 웨이포인트를 찍어 놓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평양의 웨이포인트는 찍었지만, 부산은 못 찍었다? 뭔가 웃기네.’
그래서 부산은 웨이포인트 점퍼를 이용해 인원을 옮겨야 했다.
지난 10일 동안 웨이포인트 점퍼 2개가 추가로 협회에 확보가 된 상태인지라, 이동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웨이브 공략 순서는 청와대, 부산, 평양입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되었고.
“같이 가요! 선생님!”
[꾸익!]
당연히 가의도 청년단과 뚱이는 내 뒤를 따라 청와대로 향했다.
* * *
“엄마 무서워.”
“으, 응……. 너무 걱정하지 마.”
청와대부터 경복궁, 광화문까지 형성된 생존 구역은 용산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생존 구역이다.
상주 인원은 그동안 꾸준히 늘어나 100만에 육박하고, 수방사와 청와대 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평소 치안도 좋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발생한 이벤트 웨이브로 인해 해당 생존 구역은 현재 패닉에 빠졌다.
-콰아아앙!
-키에에엑!
사방에서 새까맣게 몰려드는 몬스터 떼.
사냥꾼들과 군인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모든 지역을 완벽히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일부 놓친 몬스터가 생존 구역 깊숙이 들어오기도 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모두 살기 위해 생존 구역 안에 위치한 안전 구역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안전 구역에 입장하면 이용료를 내야 하지만 하루 30분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안전 구역 안에는 몬스터가 접근을 못 하니, 들락날락하며 제 몸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안전구역 주변에 100만에 달하는 생존자가 몰려들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작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안전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이어졌다.
“으아아악! 검치호다!”
“늑대인간도 있어!”
“비켜! 비키라고!”
결과, 청와대 생존 구역은 사냥꾼과 군인들의 활약에도 인명 피해가 꾸준히 발생했다.
“너, 너 젊잖아! 네가 좀 나서봐!”
“아저씨! 젊으나 늙으나 기본 능력치는 같잖아요! 밀지 마요!”
극한 상황이 되니, 사람들의 이기심이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혹독한 겨울을 힘겹게 버티며 온기를 나누던 이웃을 방패로 쓰고, 아이건 노인이건 몬스터에게 밥을 주듯 밀치는 사람도 있었다.
“에잉, 거지새끼들. 그러게 미리미리 코인 좀 벌어 놨어야지.”
“다, 당신들도 사냥꾼이잖아! 안전 구역 안에 죽치고 앉아서 뭐 하는 거야!?”
“우린 저렙 몬스터만 잡아서 레벨이 낮거든. 그리고 사냥꾼이라고 해서 꼭 당신들을 위해 싸워야 해? 그러다가 죽으면 아저씨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잖아.”
심지어 평소 슬라임이나 고블린 등 저렙의 몬스터를 사냥한 덕에 여유 코인을 가진 사람들은 안전 구역 안에 죽치고 앉아 고통에 젖은 바깥 풍경을 영화 보듯 구경하기도 했다.
그들은 사냥꾼 협회의 멤버나 적응군처럼 싸울 자신이 없으니, 안전 구역 사용료를 내면서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이런 혼란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 발생 코어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어?”
“무슨?”
“웨이브가 끝난 지역이 있다고?”
청와대 생존 구역 사람들의 눈앞에 이런 문구가 떠오르고, 머지않아 청와대 안전 구역에 위치한 웨이포인트가 연이어 빛을 내뿜으며 사람들을 소환했다.
“난리구만?”
그들은 올림픽공원 웨이브를 정리하고 청와대에 지원을 온 서백호와 사냥꾼 협회의 또 다른 주축 멤버들이었다.
서백호는 안전 구역 안에서 바깥 사람들을 약 올리는 듯한 저렙 사냥꾼들에게 한소리 했다.
“뭐야, 이 새끼들은.”
그에 저렙 사냥꾼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시선을 피하며 도망쳤다.
새로운 시대는 힘의 시대.
힘이 곧 법이다.
한눈에 서백호의 강함을 알아본 그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몬스터 막고 계세요. 우린 웨이브 발생 코어부터 찾아 파괴하고 오겠습니다.”
“네!”
협회장의 지시에 가의도 청년단을 비롯한 사냥꾼 협회의 주요 인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서백호는 그대로 자신의 펫인 드레이크를 타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뒤를 윌리아와 시에나 역시 와이번을 타고 쫓으니, 안전 구역 주변에 모인 시민들은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감히 싸울 생각을 못 하고 레벨 올리기마저 포기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에게조차, 강력한 비행 몬스터를 타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다른 사냥꾼들과 전혀 달라 보였다.
“어어? 이제 몬스터 안 들어와.”
“진짜네.”
사냥꾼 협회 지원군의 합류로 더 이상 몬스터들이 방어 라인을 뚫고 들어와 시민을 공격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서울 종로 청와대의 웨이브 발생 코어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서울 종로 청와대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앞서 보았던 것과 같은 메시지가 다시금 떠오르니,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던 청와대 생존 구역 시민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 산 건가?”
“살았다! 살았어!”
그들은 생존의 기쁨을 만끽했다.
* * *
한국 사냥꾼 협회의 유일한 해외 지부가 자리한 일본 오사카.
난데없이 발생한 이벤트 웨이브에 다나카는 당혹스러워하기도 했지만, 빠르게 놀란 감정을 추스르며 방어에 전념했다.
사냥꾼 협회가 원정을 와 주어 인간 사냥꾼들을 제거해 준 뒤, 다나카가 리더로 있는 사카이팀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몰려온 사람들이 많아 잘하면 무리 없이 막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섬광! 이쪽에서 하나 놓쳤다!”
몬스터들이 광범위하게 몰려들고 있어 고레벨들을 이곳저곳에 분포시켜 지휘를 맡겼다.
하지만 총지휘관 다나카의 부대는 방어에 그치지 않고 치고 나가려다 보니, 운 좋게 공격을 피해 빠져나간 코볼트가 있었다.
몬스터치고 영리한 코볼트인데 직업도 붙은 놈이라 가만뒀다간 꾀를 부릴 게 분명했다.
-케케케!
그에 우측 날개 부대를 이끄는 서브 리더는, 다나카가 부른 이명처럼 빠른 몸놀림과 찌르기로 조잡한 쇠뇌를 장전하던 코볼트를 해치웠다.
“창피하니까 그렇게 부르지 좀 말라고.”
“나이스 잡!”
“다나카, 근데 우리 지원을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웨이브 코어를 깨지 않으면, 이게 24시간이나 이어지는 거잖아?”
“지원? 설마 서땡땡 협회장님께? 큰일 날 소리를!”
아직 다나카는 서백호가 한국에서는 이름을 밝혔다는 것을 몰랐다.
국가가 달라 시나리오 조각 통신도 불가하니, 여러모로 소식이 느릴 수밖에 없는 일본이었다.
더구나 지원 요청을 하잔 의견에 다나카가 눈을 부라리는 이유는, 이벤트라는 것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협회에서 원정에 왔을 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고, 그때 양국 모두 첫 달 생존 기념 이벤트를 겪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쪽도 바쁠 상황에 염치없게 이곳부터 도와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리더도 같은 생각이라 지원 요청을 말한 것이었다.
“한국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빨리 웨이브를 종료시킬 테니까!”
그녀의 외침에, 다나카는 한 손에 하나씩 든 검에 묻은 몬스터 피를 털어 내고 한 바퀴 빙글 돌리며 검집에 꽂았다.
그러더니 모두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외쳤다.
“한국에 지원을 부탁하러 다녀올게!”
“정말인가요? 대장?!”
“오, 살았다!”
“다나카! 다나카! 다나카!”
부리더의 제안이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사카이팀 멤버들은 다나카만 연호했다.
부리더가 낮게 깐 눈으로 쳐다봐도 다나카는 잠깐 뒤를 맡기겠다며 어깨만 두들기고는 한국으로 건너가는 게이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