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24화 (124/273)

124화 생존 기념 이벤트 (4)

청와대 인근 웨이브 발생 코어를 모두 제거하고 돌아오자, 나를 반겨 주는 건 한껏 흥분한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와아아아아!

-살았다아아!

이렇게 서울 시민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는 건 처음인 거 같다.

아무래도 도망칠 여유조차 주지 않고 이벤트라는 명목으로 웨이브가 발생해서 그런 것 같다.

엘더 크림슨 로드 때처럼 서울 시민의 안전을 지켜 낸 게 처음이 아니었지만, 역시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싸운 것과 직접 경험한 위기를 해결해 준 건 체감 차이가 큰 모양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협회장님.”

“윤시아 총괄님이야말로 고생 많았습니다.”

청와대 안전 구역에 도착하니, 웨이브 발생 전에 이곳으로 파견된 윤시아 팀과 지원 병력으로 나와 함께 합류한 사냥꾼 협회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 평양과 부산으로 지원 병력을 다시 한번 더 분산시키려 했는데…….

“대통령님?”

김응수 대통령이 청와대 인사들과 국군의 고위 장성들과 함께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안전 구역 안팎으로 아직도 시민들의 환호성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방문을 뒤늦게 알아챘다.

“고맙네, 또다시 자네의 도움을 받았군.”

그리고 악수를 건네 오는 대통령.

나는 그런 그의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수많은 시민의 환호가 내게 향해지고 있는 상태.

아마 여기서 내가 대통령의 악수를 거부하거나 하면 그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은 말이 통하는 상대.

때문에 나는 웃는 낯으로 김응수 대통령의 손을 붙잡으며 겸손을 유지했다.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을 운 좋게 갖고 있을 뿐인걸요. 제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시민을 지킨 건 군인들 아닙니까.”

사실 윤시아 팀의 활약이 컸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 군인들의 노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내 반응에 대통령은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부하들은 눈에 띄게 안도했다.

이어서 대통령은 윤시아에게도 고생했다며 위로를 건네고는 말했다.

“우리도 적응군을 평양과 부산으로 보낼 생각이네, 남은 웨이브도 함께 힘 합쳐서 이겨 내세.”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움직였다.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1분 전후의 시간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남은 두 지역에 추가로 지원 보낸 병력들이 있으니,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가죠. 부산으로.”

“네!”

* * *

남부 패밀리, 일명 남부팸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 중인 유사 사냥꾼 협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쪽 지방 전체가 남부 패밀리의 영역이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최근 사냥꾼 협회 지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무섭게 세력을 불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름값 있는 강자들은 대부분 남부 패밀리에 소속되어 있으니 사냥꾼 협회는 신흥 세력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괜히 트러블이 발생했다가 사냥꾼 협회 소속의 강자들이 몰려올지도 모르니까.

남쪽 지방은 자신들의 영역.

이들은 외부인의 개입을 원치 않았다.

‘젠장!’

하지만 부산에 이벤트 웨이브가 발생하면서 결국 사냥꾼 협회의 주요 인사들이 하나둘 투입되기 시작했다.

“충분히 남부 패밀리의 힘만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굳이 도움은 필요 없어요.”

“우리의 도움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도 생각하셔야죠. 웨이브 중 구멍이 발생하면 당장 죽어나는 건 시민입니다.”

처음에는 예의 바른 태도와 배려로 서백호에게 경상도 킹스맨이라 불렸던, 김시우.

하지만 그는 제주도 레이드 이후, 부쩍 초조함을 느끼면서 다소 거친 모습을 종종 드러내고는 했다.

그러나 김시우는 바보가 아니기에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마냥 사냥꾼 협회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냥꾼 협회의 주축 멤버들과 함께 웨이브를 방어하니, 싫어도 다시금 수준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부 패밀리 최고의 사냥꾼인 김시우의 레벨은 60.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치였지만…….

김시우와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부산을 지원 온 제주도 박성만의 레벨이 65였다.

그가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사냥꾼 협회 최상위권 멤버들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사냥꾼 협회가 성장의 탑이라는 시설을 독점하고 있다고 들었어. 그게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레벨업을 할 수 있다고. 우리한테도 그런 시설이 있다면…….’

그럼에도 합리화할 요소가 있었다.

바로 성장의 탑이라는 요소가.

자신들도 그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면 사냥꾼 협회 못지않은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김시우는 생각했으며, 그의 동료, 남부 패밀리의 주요 간부들도 비슷한 사고를 갖고 있었다.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서울 종로 청와대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하지만 그들도 실력 차이를 성장의 탑 때문이라 감히 합리화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 서백호였다.

“……. 사냥꾼 협회 협회장이 한 건가? 우린 웨이브를 막는 게 고작이었는데?”

불가사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그의 무력은 보는 이를 당혹게 할 정도다.

“서울의 웨이브를 모두 막았으니, 다음은 이곳에 오는 건가?”

김시우는 입술을 깨물며 검은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처치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와아아아아! 협회장님이다!

-지원군이 왔다!”

사냥꾼 협회 측 인물들이 배치된 방향에서 들리는 환호 소리와 함께.

-크롸롸롸!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레벨 100에 근접한 펫 드레이크와 와이번이 날아올랐다.

김시우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부산의 웨이브는 곧 끝날 거라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의 무력은 진짜였으니까.

그리고 그의 추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서백호가 움직이고 1시간 정도가 지나.

[부산 해운대 구청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앞선 서울의 경우와 같이 부산의 웨이브 발생 코어가 모조리 파괴되면서 사태가 해결되었다.

김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나와 그의 차이가 뭘까?’

김시우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져야 했다

* * *

부산까지 해결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에 발생한 웨이브는 대략 3시간여 만에 모두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3번의 공략 동안 계속 200점씩 획득했고, 그건 윌리아와 시에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얻은 점수는 무려 1,800점.

이미 지난달에 획득했던 점수의 3배를 넘긴 상황이다.

‘보상이 확실해서인지, 재밌네.’

물론, 나만 재밌지, 웨이브에 휩쓸린 시민들은 하나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과 달리 사냥꾼 협회 멤버들도 표정이 꽤나 밝았는데…….

이유는 이거다.

[웨이브를 조기 종결하여, 제공되는 보상이 더욱 커집니다.]

덕분에 사냥꾼 협회 멤버들은 활약 시간이 적었음에도 제법 많은 점수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코어를 파괴하고 다니는 우리 파티의 활약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결국에는 웨이브를 막아 낸 사람들의 공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시스템은 다행히 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자, 이제 남은 건 평양뿐이네요.”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웨이브.

이제 평양만 클리어하면 한반도의 생존 기념 이벤트는 종결된다.

“마지막 웨이브 이벤트인데, 조기 종결이 아니라 웨이브에서 끝까지 버텨 보는 걸로 해 보는 게 어떨까요? 이 멤버가 몰려가면 굳이 빠르게 종결시키지 않아도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도시를 지키면서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제주팀의 리더 박성만의 제안이었다.

“그런데 웨이브를 끝까지 버티는 게 조기 종결보다 보상이 좋을까요?”

“으음……. 그건 확실치 않죠.”

상식적으로는 오래 고생하면 보상이 클 것 같지만, 이번 이벤트는 조기 종결에 추가 보상을 걸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생한다고 해서 더욱 많은 보상을 준다는 보장이 없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왠지 조기 종결로 한반도에 배정된 4개의 이벤트를 모두 정리하면 또 다른 추가 보상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확실치 않아서 입을 닫고 있었지만, 가려운 데를 긁어 주듯 내가 하고 있던 추측을 그대로 내뱉는 윌리아였다.

대재앙 발생 초기부터 함께해서인지, 역시 생각이 잘 맞는다.

“아,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굳이 한반도에 배정된 이벤트를 4개라고 공지하고 시작한 걸 보면.”

모두가 더 많은 보상을 원한다.

그건 향상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거다.

그래서 이벤트를 이대로 끝내 버리기에 아쉽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도 그럴 게 이벤트 상점에서 점수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좀 좋던가?

때문에 우리는 평양행을 앞둔 상태에서 계속 고민해야 했다.

“혹시 저희도 평양에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응?”

그렇게 부산에 있던 사냥꾼 협회 멤버들과 함께 이동을 하려는데.

남부 패밀리라는 단체의 리더인 경상도 킹스맨이 그리 요청해 왔다.

일단 우리 사냥꾼 협회는 북한의 출입이 가능하고 사전에 허가를 받아 추가 병력을 파견할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남부 패밀리는 허가를 받지 않았다.

평양 방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내가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청와대를 통해 확인해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이건 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군요.”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의 얼굴에 아쉽다는 기색이 서린다.

만약 경상도 킹스맨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허가를 받더라도, 그들이 평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종료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쉬움을 표하는 것이다.

“그럼 저흰 이만.”

“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뒤로하고 우린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이벤트 공지에서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가까운 이벤트 지역으로 갈 수 있다고 했지?”

시에나가 뜬금없는 것을 물어 왔다.

처음 이벤트 공지가 떴을 때 있던 내용.

이번 이벤트 지역은 서울과 부산, 평양뿐이니, 그 외 지역 사람들의 수월한 참여를 위해 해당 기능을 부여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시에나가 생뚱맞으면서도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부산은 평양보다 일본이 가깝잖아? 그럼, 여기서 가까운 이벤트 지역으로 향하면 북한이 아니라 일본으로 갈 수도 있겠네?”

“어?”

“어?”

그리고 그런 시에나의 이야기에 나와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경상도 킹스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혹시 한반도 외에 다른 나라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도 있는 걸까?

그게 가능하면 점수를 예정보다 더 벌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눈을 빛냈고, 경상도 킹스맨 역시 굳이 평양에 가지 않더라도 추가 점수를 획득할 가능성을 얻게 되어서인지 급히 부하들에게 달려갔다.

* * *

[일본 후쿠오카 주오구 마이즈루공원 이벤트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이벤트가 조기 종결된 구역은 아직 없습니다.]

시험 삼아 부산에서 가까운 웨이포인트를 타고 가까운 이벤트 지역으로 향했더니, 평양이 아니라 후쿠오카로 이동되었다.

설마 했던 시에나의 추측이 맞단 의미이며, 더불어 일본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에 난입이 된다는 의미였다.

“일단 평양으로 가죠.”

그래도 한반도가 우선이니, 나는 후쿠오카에서 바로 웨이포인트를 타고 평양으로 향해야 했지만, 말아 올라간 입꼬리는 쉬이 내려오지 않았다.

이번 이벤트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만들긴 했지만, 여전히 강자에게 유리한 시스템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협회 차원에서 최대한 많은 점수를 모은다.’

때문에 나는 평양이 한반도 마지막 이벤트 지역이라고 힘을 빼지 않고, 더욱 열을 올려 지체도 없이 빠르게 클리어를 했다.

[한반도 내의 모든 이벤트가 조기 종결했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18시간 32분 후 개방 예정인 이벤트 상점에서 히든 아이템 구매가 가능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이는 후의 재미로 남겨 두기로 하고, 우리는 바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설마 서울에 다나카 씨가 와 계실 줄은 몰랐네요.”

“이야, 제가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벌써 이벤트를 끝내 버리다니.”

그리고 일본으로 이동하는 우리의 곁에는 사냥꾼 협회 일본 지부의 지부장인 다나카가 함께였다.

그러자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경고를 하듯이 조심해야 할 몬스터를 알려 주었다.

“도와주시기로 하신 점에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리지만, 명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뭔데요?”

“한국에도 웨이브 몬스터로 이놈들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에선 이 몬스터들이 등장합니다. ‘회색 미라’라고……. 굉장히 강합니다.”

난 다나카의 경고를 듣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즉에 다양한 미라들을 상대해봤는데, X밥들이라서 왜 경고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혹시 보스나 네임드인가요?”

“아닙니다. 하지만 레벨이 60대에 육박해요. 그런 놈들이 중간중간 섞여 있어서 야바이합니다.”

역시 내가 상대해 본 미라들과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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