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생존 기념 이벤트 (5)
일본에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 이벤트에 참여하기 앞서서 한가지 확실히 해 둘 게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붕괴한 상태이며, 사냥꾼 협회와 같은 거대 중심 세력도 없다.
그로 인해 정상적인 사냥꾼과 비정상적인 인간 사냥꾼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다나카 팀 이외의 현지 사냥꾼들과 접촉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몬스터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인간끼리 협력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안이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했다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사냥꾼 협회 일본 지부 소속이 아닌 현지 사냥꾼을 마주할 땐 인간 사냥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되도록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지 사냥꾼은 멀리하는 걸 추천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사냥꾼 협회 멤버끼리만 팀을 이루고, 현지 민간인을 구조할 시에는 그들을 감시 관리하는 인력이 별도로 필요했다.
‘그나마 오사카 주변 인간 사냥꾼들은 한바탕 청소를 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문제라면 오사카 웨이브를 클리어하고 난 다음이다.
우린 오사카를 끝으로 멈출 게 아니라 일본 전역의 웨이브를 클리어할 생각이니, 타 지역에서는 인간 사냥꾼들과 마찰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미리미리 경고해 둘 필요가 있었다.
겸사겸사 다나카가 일러둔 회색 미라도 조심하라 말하고.
“그럼 갑시다.”
출정 명령과도 같은 짧은 대사와 함께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옆으로 동료들이 호위하듯 따라왔다.
윌리아와 시에나, 멍멍이와 뚱이, 가의도 청년단, 윤시아 팀, 김현수 팀, 최도겸 팀, 박성만 팀, 강이솔 팀, 콩나물 팀, 조유나 팀 등등…….
너무도 든든한 사냥꾼 협회의 주축 멤버들이었다.
“일단 오사카 생존 구역의 안전 확보를 우선으로 합시다. 웨이브 공략은 그다음이고요.”
“네!”
오사카는 우리 사냥꾼 협회의 일본 지부가 관리 중인 도시.
고로 그 지역 시민들도 남이라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웨이브 공략에 앞서 방어 라인을 견고히 하기로 했다.
“지원군이다!”
“다나카가 한국에서 대군을 끌고 돌아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린 오사카 생존 구역을 방어 중인 사냥꾼 협회 일본 지부 멤버들을 볼 수 있었다.
다들 크게 지친 모습.
치료할 여유조차 없는지 피를 전신에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등장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호했고, 이들을 돕기 위해 사냥꾼 협회 본진은 빠르게 전장에 합류하여 바통을 이어받듯 아슬아슬하게 한계까지 몰려 있던 방어 라인을 밀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락!
-키에엑!
-컥!
뚱이를 중심으로 한 가의도 청년단과 윤시아 파티는 그야말로 믹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시무시하게 몬스터를 갈아 버렸다.
그리고 그런 라이벌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김현수와 최도겸, 박성만 팀도 무섭게 활약했으며, 그 외 상위 팀들의 기세도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활약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나와 윌리아, 시에나, 멍멍이 파티일 수밖에 없었다.
‘웨이브가 이런 느낌이었군? 장난 아닌데?’
이전까지 우리 파티는 웨이브 코어 파괴를 위해서만 움직였기에, 이런 상황은 처음 마주했다.
사방이 몬스터들로 꽉 막힌 느낌.
폐쇄 공포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신을 차리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럼 숨구멍을 뚫어 줘야지.’
나는 검강이 깃든 춤추는 검을 날렸다.
완전히 컨트롤이 익숙해진 춤추는 검은 내 지시에 따라 최고 속도로 허공을 날면서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그사이 빼 든 성검에 마력을 쏟아부으니, 마치 우주 전함 애니메이션의 주포처럼 직선상의 모든 게 증발해 버렸다.
몬스터도, 반파돼 무너져 가던 건물도, 버려진 차량도.
거기에 윌리아의 대폭발 스킬과 시에나의 레이저 샷, 멍멍이의 섀도우 스트라이크가 작렬하니, 금세 한쪽 면의 몬스터가 삭제돼 웨이브에서 빈 공간이 생겼다.
참고로 다나카가 경고했던 회색 미라도 맥없이 날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에게는 역시 잡몹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오기 전까지 웨이브를 막고 있던 사카이팀 사냥꾼들이 경악했다.
“다나카에게 듣긴 했지만, 협회장님과 일행분들 진짜로…….”
“도무지 같은 인간으론 안 보이여.”
“저 파티만으로 전국의 웨이브란 웨이브는 다 깰 수 있는 거 아니야?”
무력 과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평범하게 빠른 사냥법을 택한 건데, 여기저기서 감탄을 해 대니 괜히 낯간지러워진다.
‘이쯤 했으면 됐겠지.’
이후로도 계속 검을 휘두르다 보니, 어느 정도 아군 상황에 여유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우린 웨이브 끝내러 가겠습니다.”
내 말에 윤시아와 강이솔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고 답을 하고, 나는 그대로 드레이크을 불렀다.
그러자 우리와 함께 웨이포인트를 타고 일본에 건너온 비행 펫들이 크게 포효를 내지르며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우린 펫에 올라탔고, 이내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본격적으로 일본의 웨이브를 공략했다.
* * *
매너가 좋아 경상도 킹스맨이라 불리던 남부 패밀리의 리더 김시우.
하지만 최근 사냥꾼 협회를 상대로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는 노력으로 쌓은 그들의 능력이 경쟁자에게 미치지 못하는 데에서 온 허탈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건 기회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외국으로 향하는 길이 뚫렸다.
이벤트 기간 중에는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가까운 웨이브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부산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이벤트 지역으로 이동’을 선택하자 평양이 아닌 일본으로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는 평양보다 후쿠오카가 부산에 가까우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이런 식으로 해외로 이동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만큼, 이 순간 김시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한반도는 이미 사냥꾼 협회가 장악하고 있어. 그럼 우린 그들이 장악하지 못한 이 땅에서 반전을 노리는 거야.’
딱히 사냥꾼 협회와 싸울 생각은 없다.
그저 경쟁자로서 그들과 나란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라는 지역은 기회의 땅으로 느껴졌다.
‘듣기로는 일본의 경우 정부가 무너졌다고 했어. 더구나 일본에서 가장 큰 세력은 도쿄를 장악 중인 인간 사냥꾼들이라지? 그런데 그마저 우리 남부팸에 비하면 그리 크다고 할 수 없고.’
정부도 없겠다.
큰 세력도 없겠다.
그냥 빨리 먹는 사람이 임자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오래 이어져서 필드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냥터와 던전이 잔뜩 있을 터.
“후쿠오카에 거점을 만든다.”
“좋아.”
“찬성!”
결국, 김시우의 남부 패밀리도 일본 이벤트에 한발을 걸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김시우를 당혹게 했다.
“쳐!”
“뭐, 뭐야 이 새끼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웨이브가 발생하면 그걸 막으려 드는 게 정상인데, 남부 패밀리가 자리한 후쿠오카의 사냥팀들은 웨이브를 막는 인간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인간 사냥꾼!’
대한민국도 정부와 국군, 사냥꾼 협회, 남부 패밀리 같은 거대 세력이 정비되면서 인간 사냥꾼은 자연스레 음지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때문에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고 기괴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남부 패밀리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와 더불어 인간 사냥꾼 토벌도 함께해야 했다.
“리더! 이대로는 안 돼! 일단 웨이포인트는 찍었으니, 물러났다가 이벤트 끝나면 다시 오자!”
이들이 웨이브를 공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금이라도 많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간 사냥꾼들이 끼어들면서 온전히 웨이브만 신경 쓸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후퇴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하는 수 없이 김시우는 병력을 다시 부산으로 물리려 했는데…….
“친구들을 도와라!”
때마침 또 다른 제3세력이 등장하며 인간 사냥꾼들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지원군!?’
일본어를 쓰는 걸 봐서는 현지인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후쿠오카에서 인간 사냥꾼들과 대척점에 있는 일반 사냥꾼들이 아닐까 싶었다.
덕분에 후쿠오카를 찾은 남부 패밀리의 주력은 다시 힘을 내었고, 끝내 인간 사냥꾼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생존자들은 모두 무사히 숨어 있으니, 우린 웨이브 발생 코어나 찾아서 파괴하죠!”
남부 패밀리를 도운 신규 일본팀의 리더의 제안.
그에 일본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김시우는 알겠다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후쿠오카 주오구 마이즈루공원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웨이브를 조기 종결하여, 제공되는 보상이 더욱 커집니다.]
김시우는 처음으로 웨이브를 조기 종결하는 데 성공했다.
[축하드립니다. 52점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비교되지 않는 대량의 점수를 획득한 그는 감격하며 자신들을 도운 일본팀을 향해 다가갔다.
“오, 반갑습니다. 당신들처럼 강한 팀이 후쿠오카에 또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네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흰 부산에서 왔습니다.”
“어?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가까운 이벤트 지역으로 이동하니, 여기로 오게 되더라고요.”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죠. 이벤트 기간 동안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가까운 이벤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요.”
“맞습니다.”
“하긴, 후쿠오카에서도 오사카나 도쿄보다 부산이 훨씬 가깝죠.”
그리고 김시우는 자신의 소개를 했다.
대한민국에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남부 패밀리의 리더라고.
“팀 구마모토의 니시다 마사키입니다. 팀 이름 그대로 구마모토시에서 활동하고 있죠.”
알고 보니, 그의 팀 역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웨이포인트를 타고 이동하니 후쿠오카로 오게 되었는데, 인간 사냥꾼들의 공격을 받아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팀이 자신들처럼 인간 사냥꾼들에게 공격을 받자 지원에 나선 거라고 한다.
얼떨결에 협업을 하게 되었지만, 두 팀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구마모토팀은 몇 안 되는 정상적인 팀이었고, 비록 국적이 다르긴 하나 남부 패밀리라는 거대 세력과 우호를 다져서 나쁠 게 없었으니 말이다.
“후쿠오카에 거점을 만들 생각이라고요? 저희야 찬성이죠. 남부 패밀리 같은 거대 세력이 후쿠오카를 지켜 준다면 인간 사냥꾼 녀석들도 활개 치지 못할 테니까요.”
“하하, 그렇습니까?”
대한민국에서 계속 2인자, 그것도 1인자에게 크게 밀리는 2인자였던 남부 패밀리로서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의 이벤트도 공략하고 싶은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오! 그럴까요?”
그렇게 두 팀은 힘을 합쳐 일본의 이벤트를 해결하려 했는데.
[오사카 지요자키 교세라 돔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그러고 보니, 오사카에도 한국의 단체가 들어와 있다고 하던데, 거기도 한국의 도움을 받은 모양입니다.”
오사카의 이벤트가 종결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이어진 니시다의 이야기에 김시우는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사냥꾼 협회라는 단체던데, 아시는 곳입니까?”
사냥꾼 협회가 이미 일본에 진출해 있었다고?
금시초문이었다.
‘사냥꾼 협회가 후쿠오카를 가만히 두길래 외국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오사카를 먼저 돕기 위해서였나?’
그에 평온하던 김시우의 마음속에 파문이 일며, 다급해졌다.
“여기에서 가까운 이벤트 지역이 어디죠?”
“오사카가 클리어되었으니, 도쿄……가 아니라. 거리상 오키나와가 되겠네요.”
“그럼 빠르게 이동하죠. 만만치 않은 라이벌이 생겼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 *
웃기게도 일본에 발생한 이벤트는 한국 사냥팀들의 주도하에 정리가 되어 갔다.
사냥꾼 협회 단독으로 오사카에 이어 도쿄, 삿포로를 클리어하고.
남부 패밀리가 뜻하지 않게 현지 사냥팀과 협력하는 친화적인 방식으로 후쿠오카에 이어 오키나와까지 클리어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남부 패밀리가 활약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사냥꾼 협회가 도쿄에 자리한 대규모 인간 사냥꾼들과 전쟁에 가까운 전투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젠장, 젠장! 어디서 그런 괴물 같은 새끼들이!”
도쿄를 장악하고 있는 인간 사냥꾼 세력은 신일본연합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신일본연합은 이름만 그럴싸한 야쿠자 중심의 세력이었다.
사냥꾼 협회의 등장에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그들은 신속히 분쇄되고 말았다.
만약 사냥꾼 협회의 목표가 이벤트 점수 모으기가 아니라 인간 사냥꾼의 박멸이었다면 신일본연합은 완전히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다.
“젠장, 일단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자. 녀석들이 다시 도쿄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빌어먹을!”
그렇게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 인간 사냥꾼 단체가 사냥꾼 협회의 활동과 겹치는 바람에 힘을 잃고 음지에 숨어 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일본의 군소 세력은 물론, 간신히 작은 규모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자위대의 사냥 단체는 말을 잃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았다.
대재앙과 함께 모든 게 뒤바뀐 새로운 세상에서는 한국이 더욱 강자란 사실을…….
하지만 사냥꾼 협회는 자신들이 일본에 일으킨 파장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바로 다음 이벤트 구역을 찾아 움직였고.
일본 삿포로에 이어 방문한 지역은, 처음 발을 들이밀게 된 나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였다.
현재 서백호 파티가 벌어들인 점수는 총 4,200점.
아직 점수 획득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