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26화 (126/273)

126화 이벤트 상점의 중요성 (1)

“사냥꾼 협회는 더 많은 점수를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지?”

“네, 그렇습니다. 사냥꾼 협회의 해외 지부가 있는 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 전역을 공략한다는 계획 같습니다.”

“오사카라……. 하긴 그들 입장에서 내버려 둘 순 없겠지.”

“뿐만 아니라, 남부 패밀리도 이벤트 지역 이동 기능을 활용해 후쿠오카를 공략한다고 합니다.”

“사냥꾼 협회는 오사카, 남부 패밀리는 후쿠오카인가?”

대한민국 청와대.

사냥꾼 협회의 활약에 힘입어 무사히 웨이브를 막아 낸 대한민국 정부는 현재 한 가지 사안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바로 자신들 역시 더 많은 점수를 벌기 위해 적응군을 일본으로 파견 보낼지에 대한 고민이다.

“남부 패밀리조차 원정을 가는데, 적응군도 충분히 보낼 만하지?”

“네,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청와대 웨이브야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방어 라인을 꾸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일본 원정은 다를 것이다? 굳이 타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을 맬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일본의 이벤트에 참여한다면 공략을 우선시하여, 조기 종결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편이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을 테고요.”

민간 단체 중에서는 사냥꾼 협회 다음으로 남부 패밀리가 2등 세력이라 할 수 있지만, 민관 모두 합치면 사냥꾼 협회의 뒤를 잇는 건 남부 패밀리가 아닌, 적응군이다.

더구나 적응군에는 윤시아 정도는 아니어도 김현수나 최도겸 급 사냥꾼인 주영우 중령이 버티고 있어서 규모뿐만 아니라 고급 전력 역시 남부 패밀리보다 위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본에 병력을 파견하면 사냥꾼 협회에서 불만을 표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본 협회장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속 좁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으음……. 뭐, 좋아. 그럼 우리도 일본에 병력을 보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적응군을 후쿠오카로 파견 보내겠습니다.”

때문에 대통령은 결정을 내렸다.

최대한 점수를 많이 벌기 위해서…….

“남부 패밀리와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겠지만, 어쩔 수 없지.”

김응수 대통령은 사냥꾼 협회의 눈치는 봐도 남부 패밀리의 눈치까지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으니.

“대, 대통령님! 아무래도 후쿠오카 이벤트가 조기 종결된 모양입니다!”

“뭐!?”

“서울 웨이포인트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이벤트 지역이 중국 선양으로 나옵니다.”

“어떻게? 설마 남부 패밀리가 벌써?”

이들이 회의에 시간을 들인 사이 남부 패밀리가 현지 단체의 도움을 받아 후쿠오카 이벤트 웨이브를 조기 종결시켜 버린 것이다.

평양의 이벤트가 완료되면서 서울에서도 가장 가까운 이벤트 지역이 후쿠오카였다.

하지만 후쿠오카가 클리어되자, 일본으로 가는 길이 막히고 엉뚱하게 중국 쪽 길이 열려 버리고 말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인가?”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의 지시에 국정원 요원들은 빠르게 자신들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지역의 웨이포인트를 체크했다.

정부에서도 이미 사냥꾼 협회와 협력하여 대한민국 영토 곳곳에 웨이포인트를 찍어 놓은 상태였기에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도권 쪽에선 중국 선양으로 이동되고, 제주도를 포함한 남부 지역에선 중국 상해로 이동됩니다.”

“쯧!”

대통령은 혀를 차야 했다.

남부 패밀리가 쓸데없이 필요 이상으로 활약하는 바람에 그들의 일정에 차질이 생겨 버리고 말았다.

적응군은 사냥꾼 협회, 남부 패밀리와 달리 정부의 정식 군부대다.

정부가 무너진 일본과 달리 중국에 군대를 투입한다면 침략 행위라며 분명 난리를 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자신들만 해도 중화 청년단의 한반도 진출을 크게 꺼렸으니 말이다.

“회의하다가 시간 날려서 계획을 그르치다니. 뭐, 이런 바보 같은 경우가…….”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는 이런 바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현장 지휘자의 권한을 높여 선조치 후보고를 하게 하거나, 회의를 간략히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한숨이 하늘에 닿았을까?

“어!? 대통령님! 수도권에서의 이동 지역이 바뀌었습니다.”

“뭐?”

“아무래도, 중국 측에서 선양에 발생한 웨이브를 클리어한 것 같습니다.”

“그래?”

선양에 몬스터 웨이브를 이겨 낼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새롭게 뚫린 이벤트 지역이 어딘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입니다.”

러시아의 국토 면적은 중국의 두 배.

반면 인구수는 중국의 10분의 1이다.

현재 러시아 정부가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각자도생 상태.

중국에 비해 부담이 적었다.

“그곳으로 적응군을 투입시키세.”

“네! 알겠습니다!”

덕분에 대통령은 빠르게 결정했다.

그리하여 사냥꾼 협회, 남부 패밀리에 이어 정부의 적응군까지 해외 원정에 나서게 되었다.

* * *

남부 패밀리의 예상 밖의 활약으로 인해 일본을 조기 졸업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온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 사냥꾼 협회? 일본 간 거 아니었습니까?”

바로 대한민국 국군 소속 사냥꾼인 적응군이 러시아 현지인 팀과 협력하여 웨이브 이벤트에 대항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하긴, 정부 입장에서는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점수를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겠지.’

새로운 신비의 땅에 발을 딛게 되어 은근히 기대가 많았는데, 가장 먼저 반겨 주는 사람이 같은 한국인이라니.

아무래도 이번 이벤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우리 사냥꾼 협회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존재는 현지인들이 아닌, 같은 대한민국 소속의 사냥팀인 것 같다.

설마 적응군을 러시아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왕 경로가 겹친 거 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인데, 괜찮겠습니까?”

내 물음에 적응군 원정 부대의 책임자 주영우 중령이 답했다.

“하하, 물론이죠.”

지금 이곳에서 가까운 이벤트 장소로 이동해 봤자, 다시 여기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된다.

아직 이곳의 이벤트가 종료된 게 아니니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이번 이벤트에 참여한 순간부터 이후 우리의 이동 경로는 적응군과 겹칠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이, 이봐 친구! 뭐 하는가!”

우리의 등장에 전투 중 잠시 물러난 주영우 중령과 그와 함께 대기 중인 파티의 모습에 현지 사냥팀으로 보이는 이들이 당황했다.

아무래도 현지에는 주영우 중령과 같은 강자가 없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웨이브 코어 3개를 파괴했습니다. 앞으로 2개가 남았군요.”

그래서인지 주영우 중령은 지금의 상황을 짧게 알려 주고는 현지인들을 돕기 위해 다시 몸을 날렸다.

그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협회 멤버들에게 전투를 지시했고, 곧 사냥꾼 협회의 엄청난 화력에 주변 일대가 청소되자 적응군은 예상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러시아 현지인들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그렇게 적응군이 블라디보스토크 이벤트 지역을 잘 양념한 덕분에.

[프리모르스키 블라디보스토크 포크롭스키 공원의 웨이브가 조기 종결됩니다.]

우리는 손쉽게 이벤트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120점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다행인 건 너무 쉽게 웨이브를 막아서 점수를 얼마 못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는 거다.

200점에는 못 미치지만, 나와 윌리아, 시에나 모두 120점을 획득했다.

아무래도 나머지 2개의 웨이포인트 코어를 제거한 게 잘 평가받은 모양이다.

“당신들은 대체?”

그렇게 웨이브의 공격 대상이었던 공원으로 돌아오니, 적응군의 지휘관 주영우 중령과 함께 성깔 있어 보이는 우람한 체구의 백인 남성이 다가왔다.

백인 남성은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크게 놀란 모습을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부시장님이시랍니다. 이 지역에서 제일 큰 사냥팀의 리더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요?”

“반갑습니다. 드미트리 예닌이라고 합니다.”

정치인이 직접 사냥꾼들을 이끌고 싸운다?

한국에서는 감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는 드미트리 예닌이란 인물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서백호입니다.”

최근 중요해 보이는 인물을 만나면 이름을 밝히기도 한다.

이미 내 이름은 알려질 만큼 알려진 상황이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아마 정부에서도 알고 있지 않을까?

주영우 중령만 봐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게임을 굉장히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영향인 걸까요?”

“네?”

“강한 사람들이 많아 놀랐단 뜻입니다.”

게임 실력이 이런 서바이벌에서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게임보다는 운동을 즐기는 스타일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죠.”

블라디보스토크의 부시장 드미트리는 나와 주영우 중령의 손을 붙잡으며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순수하게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러시아답달까?

“한국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제한 없이 입장 가능하도록 조치할 테니, 자주 들러 주십시오. 방문하실 때마다 제가 화끈하게 대접하겠습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엉겨 붙는 그의 모습에 우리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다음 지역은 어디입니까?”

나는 강이솔에게 물었다.

다음 웨이포인트로 이동할 수 있는 다음 지역이 어디냐는 물음.

“몽골 울란바토르입니다.”

“몽골이요?”

의외다.

여기선 베이징이나 상하이 쪽이 더 가까울 텐데.

그쪽은 중국이 이미 클리어했다는 뜻 아닌가.

뭐,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괜히 중국에 들르고 싶은 마음 없었으니까.

* * *

이후로 우리 사냥꾼 협회 원정팀은 적응군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들이 먼저 블라디보스토크를 공략하고 있었고, 중간에 끼어든 게 우리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니, 상황은 썩 나쁘지 않았다.

개개인이 얻는 점수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더욱 많은 사람이 점수를 벌 수 있게 되어 획득 총량이 훨씬 많아진 것이다.

더불어 인원에 여유가 생긴 만큼, 뚱이와 가의도 청년단, 윤시아 파티, 김현수 파티, 최도겸 파티를 빼서 웨이브 코어 파괴팀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이벤트 클리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비록 우리 파티가 4개의 코어를 찾아 파괴하는 동안 그들은 1개의 코어를 파괴할 뿐이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우린 몽골 울란바토르에 이어 다시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와 노보시비르스크,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와 카라간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까지 6개 지역의 이벤트를 참가하고 클리어했다.

정리하자면 한국 4곳, 일본 3곳, 러시아 3곳, 카자흐스탄 2곳, 몽골 1곳, 키르기스스탄 1곳까지 총 14개 지역 이벤트에 참여한 셈이다.

[모든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길게 느껴졌던 여정이 끝났다.

우리 파티가 얻은 점수는 7,533점.

지난번 이벤트보다 15배 증가한 점수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협회 내에서 개인 기록으로 100점 이상의 점수를 기록한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어어? 가시는 겁니까? 그러시지 마시고, 이곳에서 연회를 즐기다 가심이…….”

마지막 행선지인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의 사람들이 우리를 붙잡았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동안 어려움을 겪지 않는 지역이 없었고,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대체로 낙후된 지역을 많이 돌아서 다들 우리를 못 잡아 안달이었다.

“하하, 저희가 인원이 많다 보니 연회를 열어 주시는 것도 부담이실 것 같고, 슬슬 복귀도 해야 하니.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 꼭 들러 주세요.”

얼떨결에 이벤트를 따라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게 된 우리는 얼른 웨이포인트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번에 타국을 돌아다니게 되면서 느낀 게 있으니, 한국만큼 상황이 좋은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존 첫 달 이벤트 때보다 점수가 대량으로 풀리게 되었으니, 아마 한국의 상황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자……. 그럼.”

“두구두구두구!”

이제 남은 일은 대량으로 획득한 점수를 소비하는 것.

나는 시에나가 긴장감 있게 입으로 내는 북소리를 들으며, 이벤트 상점을 열었다.

“오, 이건?”

그리고 나를 반겨 준 것은 지난달보다 풍성해진 이벤트 상점의 판매 품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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