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다크엘프 마을 (1)
우리 시에나도 그렇지만, 눈앞의 에밀도 참 특이하다.
작은 체구를 가진 성년 엘프들은 모두 괴짜인 걸까?
다짜고짜 다크엘프 마을에 불을 지르고 와 달라고 하는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어야 했다.
‘아니, 그나저나 다크엘프 마을이 있다고?’
감시형 오토마타로 하늘섬 세일론을 살폈을 때, 마을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곳은 이곳 엘프 마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밀이 말했다.
“다크엘프 마을이 대놓고 드러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챈 에밀.
그에 나는 그녀의 요구를 재확인했다.
“그래서 다크엘프 마을에 불을 질러 달라고요?”
“그래.”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아직 동료가 아닌 NPC의 부탁이니 이는 곧 퀘스트라는 의미일 터.
당연히 퀘스트라면 아무리 괴상한 내용이라도 수행하는 것이 이득이니, 나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용병 사무소 소장님의 부탁이니, 중요한 거겠죠.”
“좋아, 잘 생각했어.”
내가 임무를 받아들이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엘프는 하나 / 퀘스트 등급: 최상]
-내용: 하늘섬 세일론의 엘프 에밀은 다크엘프를 몹시 혐오한다.
그녀는 다크엘프를 괴롭히는 취미를 갖고 있으며, 심심할 때마다 부하들을 이용해 다크엘프 마을에 불을 지르고 있다.
에밀의 만족을 위해 다크엘프 마을에 불을 질러 주자.
다크엘프의 비명 소리는 그녀를 기쁘게 만들 것이다.
‘오, 쉣!’
그리고 그 내용을 읽은 나는 에밀이 사탄으로, 시에나는 천사로 보였다.
외형적 특징이 비슷한 NPC라고 해서 성격까지 비슷한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에밀을 속으로 미친X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보상: 에밀 호감도 +10%, 다크엘프 테이밍 목걸이
보상을 본 순간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그도 그럴 게 다크엘프 테이밍 목걸이라니, 잘만 쓰면 파티 전력 상승에 큰 보탬이 될 테니 말이다.
펫과 NPC 동료는 큰 차이가 있다.
펫은 자체적으로 성장하지만, NPC 동료는 내가 경험치를 분배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왠지 NPC보다 펫이 좋아 보이는데,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로 NPC보다 펫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둬야 하는 사실이 있으니.
펫은 몬스터에 기반을 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존재란 거고.
NPC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이 파티를 맺은 동료이다.
그 증거로 NPC는 어차피 내 경험치를 나눠 줘야 하는 만큼, 제한 없이 몇 명이고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펫은 성장시킬 수 있는 숫자가 정해져 있다.
때문에 아무리 많은 펫을 길들이더라도, 성장시키는 펫은 결국 한정될 수밖에 없다.
펫을 길들이면 상태창 하단에 펫 목록이 뜨는데, 그중 성장시킬 펫을 3마리까지 선택하고 해제할 수 있다.
‘개인이 한 번에 성장시킬 수 있는 펫은 최대 3마리. 하지만 동료 NPC에게도 펫을 2마리씩 붙여 줄 수 있어. 즉, 우리 파티는 동시에 7마리의 펫을 키울 수 있지.’
내가 성장시키고 있는 펫이 멍멍이, 뚱이, 룡룡이까지 3마리를 모두 채우고 있으니, 다크엘프를 들인다면 윌리아나 시에나에게 붙여 줘야 한다.
‘엘프인 시에나에게 다크엘프 펫을 붙여 주면 재밌긴 할 것 같네.’
하지만 그러면 펫이 스트레스에 삐뚤어질지도 모르니, 윌리아에게 붙여 줘야겠다.
아무튼, 다크엘프의 전투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펫으로 삼는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이다.
덕분에 에밀이 준 퀘스트에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아주 큰불을 지르고 오겠습니다!”
“아주 좋아! 그 마음가짐이야!”
내 대답에 에밀은 크게 만족했다.
* * *
감시형 오타마타의 단점은 사람과 시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운용 인원이 필요하다는 거다.
일종의 원거리 망원경 같은 느낌이라 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운용 범위가 반경 50km에 달할 만큼 매우 넓고, 자체 은신 기능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요인을 감시하거나 거점을 감시하는 데 유용했다.
서백호는 총 4대의 감시형 오토마타를 구매해 2대는 사냥꾼 협회 본부에 위탁하고, 1대는 활발히 한반도 탐색 활동을 하는 최도겸에게 주었으며, 1대는 자신이 직접 운용했다.
“부장님! 베이징 이화원에 많은 수의 몬스터가 포획되어 이동 중인 게 확인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오토마타 두 대 모두 이화원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요원들을 이화원에 투입시켜.”
“네!”
그중 사냥꾼 협회에서 운용 중인 2대의 오토마타는 대한민국 국정원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협력하여 중국 이곳저곳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이들이 찾고 있는 건 중국이 보유하고 있다는 몬스터의 가공 처리 기술.
쉽게 말해 몬스터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게 하는 기술로 몬스터로부터 고기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그 기술이 실존하고, 가로챌 수만 있다면, 식량난은 단숨에 해결될 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정부가 힘을 합치고 사냥꾼 협회가 도움을 주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조사를 했음에도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으나, 감시형 오토마타가 투입되고 단 하루 만에 이상 징조를 발견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부장님, 이화원에서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 혹시 몬스터 고기 운반자들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벤토리 안에선 물건이 상하지 않고, 대량 보관이 가능하니, 사람을 운반차 대용으로 쓰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그에 합동 조사부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들은 결정했다.
“강도로 위장해서 한 사람만 처리해 봐.”
“아, 알겠습니다.”
만약 이화원이 몬스터 고기를 생산하는 곳이 맞고, 지금 움직이는 수상한 사람들이 운반책이 맞는다면, 죽여서 인벤토리를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합동 조사부 부장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비록 상대가 무고하다고는 하나, 그의 결정에는 한국인들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올 동안 합동 조사부는 침묵에 물들었고.
“부, 부장님!”
잠시 후, 통신 반지를 끼고 있는 조사부의 과장급 인원이 다급히 부장을 찾았다.
“어찌 되었지?”
“빙고입니다! 인벤토리에서 다양한 몬스터의 고기가 나왔답니다!”
“좋았어!”
그리고 그들은 끝내 이화원에 몬스터 가공 처리 기술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부터는 머리를 맞대고 내부에 침입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만약 서백호가 움직인다면 더욱 확실하고 빠르게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테지만…….
모든 일을 그에게 다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냥꾼의 본분이 꾸준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올리는 것이라면, 정보 수집 활동은 정보 요원의 본분이다.
이미 감시형 오토마타의 지원을 받은 상태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이들도 전문가인 만큼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지을 자신이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화원 내부와 외부 지도 모두 긁어와.”
“네!”
* * *
‘다크엘프 마을은 산 중턱에 위치한 협곡 알지? 거기에 폭포 하나가 있는데, 그 폭포 뒤쪽에 동굴이 있어. 그 동굴을 따라가면 나올 거야.’
우리 파티는 에밀이 알려 준 협곡으로 향했다.
거짓말로도 웅장하다고 말하기 힘든 규모의 작은 협곡이지만, 그 풍경이 매우 빼어나서 일전에 우리 파티가 안전 텐트 펴고 앉아 식사한 적 있는 곳이었다.
이 주변에서는 다크엘프가 나온 적이 없어 녀석들의 소굴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 진짜 폭포 뒤에 공간 있다! 그럴싸한데?”
그리고 우린 폭포수 뒤 동굴에 들어섰다.
[숨겨진 필드 다크엘프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혹시라도 다크엘프 마을이 던전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머지않아 표정을 굳혀야 했다.
에밀 그 미친 엘프가 얼마나 불을 지른 건지, 50동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이 들어선 지하 공동은 물과 친화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임에도 곳곳에 야광주와 횃불이 놓여 있어서 제법 밝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하 마을이 자리한 공동 곳곳에 작은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천장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일정 간격을 두고 지어진 건물 사이사이에는 복잡하게 얽힌 냇물이 흐르고 있어 작은 다리 수십 개가 건물을 잇고 있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습도.
여기에 불을 질러도 과연 붙을까 싶을 정도였다.
“으음…….”
심지어 건물들도 목재기는 한데, 물기를 한껏 머금어 불에 쉽게 붙을 것 같은 느낌이 아니다.
“과연 어느 정도의 방화를 저질러야, 에밀의 마음에 들까요? 다크엘프들 죽기 직전까지 패서 모아다가 화형이라도 시켜야 하나?”
아니, 역시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그래도 인간형인데 화형은 좀…….
물론, 방화범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윌리아와 시에나의 흠칫한 표정을 보니, 그녀들도 내 생각이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나가서 휘발유라도 챙겨오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휘발유가 있다면 쉽겠네요.”
그렇게 일단 물러서려 했는데…….
“어, 저거 봐 봐.”
“네?”
“저기 구석 울타리 쳐진 쪽에.”
시에나의 부름에 시선을 옮기니, 마을 한구석에 시커먼 액체가 모여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역청(타르) 같은데?”
자연 친화적으로 생긴 마을답지 않게 냄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왠지 횃불을 위해 만든 역청 저장소 같은데, 덕분에 우린 휘발유를 구하러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저기 아주 불이 잘 붙는 인화성 물질이 있지 않은가.
더구나 한번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도 않는…….
그래서 나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시에나는 가슴을 펴며 말했다.
“역시 엘프가 준 퀘스트가 그렇게 막무가내일 리 없지.”
방화 자체가 막무가내 아닌가?
* * *
재앙.
아마 다크엘프 마을에 자리한 녀석들에게 지금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마을 곳곳에 메테오 마법이 떨어지듯, 불붙은 역청 덩어리가 날아들고.
이내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면…….
-철퍼덕.
진흙더미처럼 넓게 퍼지며 화재 범위 역시 크게 번졌다.
그런 식으로 마을 곳곳에 불붙은 역청이 퍼지니, 나름 아름다웠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지옥이 지상에 강림한 것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는 하늘섬이라 상공이지만. 아무튼.
그리고 그 안에서.
“하하하!”
불을 두른 겁화의 야태도를 휘두르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니, 다크엘프들은 NPC가 아닌 몬스터 판정임에도 질린 표정으로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갑자기 웬 미친놈 흉내야?”
시에나의 핀잔에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그냥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안해서요.”
“엥? 몬스터들인데? 미안하다고?”
계속 몬스터임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다크엘프는 인간형 몬스터이다.
그렇다 보니 녀석들의 터전을 불 지르는 게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다크엘프 / 레벨: 100]
[다크엘프 / 레벨: 100]
더구나 퀘스트를 받고 찾아온 이곳에는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상대한 다크엘프 전사나 궁수, 마법사 같은 직업을 가진 녀석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약한 일반 다크엘프뿐이라 더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아니, 아니야. 꺼림칙한 건 단순히 그들의 외형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머지않아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다크엘프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감정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여온 나다.
그런 내가 비슷한 외형을 가졌다고 해서 몬스터에게 마음이 동한다?
‘그럴 리가.’
이건 불안감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본능이 보내오는 위험 신호.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분명 이 퀘스트는 다크엘프 반복 퀘스트를 수차례 클리어해야 주는 건데, 난이도가 이렇게 낮다니요.”
내 말에 다크엘프들을 열심히 토벌하고 있던 윌리아와 시에나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 노오오옴!]
우린 금세 불안감의 정체와 마주하고 말았다.
[네임드 다크엘프 족장 아르무스 / 레벨: 150]
어쩐지 퀘스트가 너무 쉽다 했다.
레벨 150의 이무기를 잡기 전까지 이곳에서 성장 좀 할까 했더니, 마찬가지로 레벨 150짜리가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