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중립 도시 (3)
[룡룡이 (드레이크) / 레벨: 103]
아득한 레벨의 펫.
그런데 문제는 무시무시한 펫이 드레이크 한 마리로 끝이 아니란 거다.
[와일번 (와이번) / 레벨: 77]
[와이번 (와이번) / 레벨: 77]
와이번 펫 두 마리도 연이어 등장했다.
누가 봐도 말장난으로 지은 것 같은 펫의 이름을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들 외에 중립 도시에 침입한 사람이 또 있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 어떡하지?”
“일단 숨어 있자.”
추가 침입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펫들의 수준만 봐도 매우 위험한 사람들이란 것만큼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때문에 철원의 오기석 팀은 숨을 죽인 채 으슥한 곳에 숨어 있어야 했다.
“갔나?”
그렇게 한참을 숨어 있던 중.
계속 하늘을 날던 드레이크와 와이번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이들은 조금씩 경계를 풀었고, 상황을 살피기 위해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헙…….”
그러다 오기석은 분수대 광장 쪽에서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다급히 일행들을 뒤로 물렸다.
-휙!
‘드, 들켰어?’
그런데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려 있는지, 분수대 광장에서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남자가 똑바로 오기석을 향해 고개를 돌려 왔다.
오기석은 너무 놀라 귀신이라도 본 표정을 지었고.
“튀, 튀어.”
결국 일행들에게 도주를 지시했다.
-쿠쿠쿵!
하지만 그들의 도주로에 갑자기 거대한 금속 벽이 솟구쳤다.
그 금속 벽이 이벤트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팔찌의 기능임(아이기스의 조각)을 알 리 없는 이들은 더욱 기겁했고.
곧바로 세 개의 금속 벽이 추가로 치솟으며 사각형의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금속 벽의 크기는 가로 20미터, 세로 10미터, 두께 5미터.
이들의 능력으론 결코 뚫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 도주를 위해서는 높이 10미터의 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유일한 탈출로인 위쪽은 분수대 광장에 있던 세 남녀가 지키고 있었다.
-꿀꺽.
무엇하나 예상치 못한 상황.
오기석과 그의 팀원들은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듯 확인할 수 없는 상대의 정보와 언제 날아왔는지, 금속 벽 위로 얼굴을 들이미는 드레이크, 와이번들을 보게 되자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턱.
동시에 일행 중 리더 보이는 남성이 벽 위에서 내려왔다.
그의 손에는 원통형의 작은 기둥이 들려 있었는데, 그 원통에서 빛이 솟구치자 광선검이 만들어졌다.
‘이, 이런 시X 제다이야?’
한눈에 봐도 저건 급이 다른 무기다.
오기석은 살기 위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어?”
가까이에서 상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오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한 이름을 내뱉었다.
“서백호?”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얼굴과 이름.
원래 서울에 살던 오기석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철원으로 이사를 와야 했던 원인 제공자가 눈앞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 * *
누군가가 등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쳐 버린 지금의 세상에선 몬스터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가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그래서 상대의 의도에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일단 붙잡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서백호?”
그런데 어째서인지 상대의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오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어딘지 모를 익숙함을 느껴야 했다.
“날 알아?”
“어? 어어, 알지. 나, 나도 삼중고 출신이니까.”
그리고 그가 동창임을 알게 된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래? 뭐 좋아. 혹시라도 내 뒤를 치려던 거 아니지?”
“아, 아니야. 드레이크 레벨 보고 쫄아서 숨어 있다가 잠잠해져서 상황을 살피려고 했던 거뿐이야.”
극상급의 스킬 진실의 눈이 그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알려 주었다.
상대에게 악의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로 무기를 거뒀고, 이내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기스 조각(팔찌)의 내장 스킬인 금속 벽을 역소환했다.
이어서 나는 익숙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미안한데, 나는 네가 기억이 잘 안 나거든. 이름이 뭐야?”
내 물음에 그는 움찔 크게 놀랐다.
그의 반응을 보니, 좋게 엮인 과거는 아닌 것 같았다.
“오기석.”
“오기석?”
그리고 이름을 듣게 된 나는 어렵지 않게 오기석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아…….”
“…….”
누구랄 것 없이 우린 어색한 침묵을 이어 가야 했다.
예상대로 그리 좋게 엮인 인연은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기석은 같은 반은 아니지만, 같은 학년이었고.
내게 맞은 후 전학을 가 버린 인물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내가 악당 같네…….’
일단 우리 둘 사이에 있던 일은 전체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학창 시절 많이 싸우고 다니긴 했어도 결코 누군가를 괴롭힐 목적으로 주먹을 휘두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싸우던 상대들은 거의 학교 일진들이었고, 대부분 먼저 싸움을 걸어와 상대해 줬을 뿐이다.
‘하지만 오기석 때는 서로 오해가 있었지.’
참고로 오기석은 일진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 한두 명씩은 있지 않은가.
일진은 아닌데, 잘나가고 싸움도 잘하는 친구들.
오기석은 바로 그런 포지션이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반 친구를 때리거나, 삥을 뜯으면 상대가 일진이어도 참지 않고 달려드는 인물이란 것이다.
그래서 일진들은 뒤에서 일을 꾸며 오기석이 나에게 달려들게 상황을 만들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의 나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를 제압해 버렸다.
단 한방에 기절시키는 것으로.
‘그 후, 일진들이 뒤에서 일을 꾸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대청소를 벌였지만…….’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음에도 너무 쉽게 져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일진들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는지, 오기석은 얼마 안 지나 전학을 가 버리고 말았다.
“그때는 미…….”
내 목소리에서 미안함이 느껴져서일까?
오기석은 급하게 손을 들어 이어질 나의 말을 제지했다.
“사과하지 마. 쪽팔리니까 제발 과거의 일은 잊어 줘라.”
“그래?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짧게 헛기침을 한 나는 오기석과 그의 일행을 살폈다.
[오기석 / 레벨: 52]
[김중기 / 레벨: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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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선우 / 레벨: 50]
전원이 레벨 50은 넘긴 10인 파티.
꽤나 준수한 능력을 보유한 팀이었다.
“네가 1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지?”
“그걸 어떻게?”
“중립 도시 발견자이기도 하고?”
“어.”
아무래도 그는 다른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에게 중립 도시 관련 메시지가 전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확실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이곳의 최초 발견자가 너라는 걸 알지만, 만약 이곳에서 나와 내 일행의 이익이 될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양보할 생각 없어.”
오기석이 동창이긴 하지만, 나는 그보다 협회의 이익이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한 건데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어떤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아주 날로 먹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말고.”
“하하, 그럼 고맙고.”
이후로 우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내가 일방적으로 묻고 그가 답하는 식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
이 중립 도시가 자리한 곳이 한반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철원이며, 이 중립 도시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눈 덮인 산골짜기라는 것을.
그가 어쩌다가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냐면, 철원 곳곳에 이곳을 가리키는 석판이 마련돼 있었고, 이를 쫓아오다 보니 자연스레 중립 도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한반도 중심에 위치해 있네.’
만약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 오는 데 웨이포인트 이용 비용이 0원이라면, 여긴 교통 요충지 확정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교통 요충지는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으니까.
애석하게도 오기석은 이 부분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결국 중립 도시의 탐색을 계속 이어 갈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힐끔힐끔 윌리아와 시에나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오기석 일행을 적당히 무시하며 강이솔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협회장님!”
그런데 때마침 강이솔이 자신의 호위들과 함께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협회장?”
대재앙 발생 초기부터 쭉 철원에 있던 이들은 바깥소식에 어두웠다.
그래서 사냥꾼 협회라는 것도 모르고, 대통령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레벨 60이 넘는 강이솔과 그의 호위들을 보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응?”
낯선 인물의 등장에 의아해하긴 강이솔도 마찬가지였으나, 내가 가만히 있어서인지, 이내 오기석 일행에게서 경계심을 거뒀다.
“이쪽으로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특이한 시설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요?”
특이한 시설을 발견했다는 강이솔의 이야기에 나는 흥미를 보이며 걸음을 옮겼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오기석과 그의 일행들도 잠자코 내 뒤를 따랐다.
“이건?”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관청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 건축물 여럿이 자리한 구역에 도착했다.
그 건물들에는 중립 도시 북부에서 보지 못한 현판들이 걸려 있었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물은 바로 이것이었다.
[명예의 전당]
“아.”
지금까지 최초 업적을 달성하면 이런 식의 메시지가 떴었다.
[한국인 서**님 께서 최초로 엘더 몬스터를 토벌했습니다.]
[이 위대한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한국인 서**님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한 명예의 전당이 뭔가 싶었는데, 그게 중립 도시에 있는 건물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혹시 이름만 같은 거 아닌가 싶어서 내부를 슬쩍 살폈더니.
[최초의 던전 클리어 업적]
-한국인 서**
[최초의 엘더 몬스터 토벌 업적]
-한국인 서**
.
.
.
이와 같은 문구가 쓰인 액자 수십 개가 벽에 걸려 있었다.
내가 생각한 그 명예의 전당이 맞았다.
그 액자 중에는 심심치 않게 내 업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보다 더욱 눈에 띄는 건 비어 있는 새하얀 액자가 문구가 쓰인 액자보다 월등히 많다는 거였다.
“아직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 이렇게 많다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나는 명예의 전당을 대충 살핀 후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유는 바로 다음 건물에 멍멍이와 김시우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뭔데 표정들이 굳어 계세요?”
나는 의문을 표하며 그들 뒤에 세워진 건물의 현판을 보았다.
[전쟁관]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건물.
나는 이것저것 묻기보다 바로 건물에 들어섰다.
앞선 명예의 전당처럼 전쟁관도 제지 없이 들어가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이건?”
전쟁관의 내부는 마치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보는 듯했다.
300개는 넘어 보이는 책상과 의자가 단장을 바라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그 단상에는 20개의 의자와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는 1~20번까지의 번호가 쓰여 있었다.
나는 단상으로 다가가 테이블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7], [11], [12]
내가 가진 시나리오 조각과 같은 번호의 자리가 밝게 빛났다.
“시나리오 조각을 3개나 갖고 계시는군요?”
“역시, 협회장님이십니다.”
그로 인해 얼떨결에 시나리오 조각 보유 현황을 들켰지만, 어차피 시나리오 조각은 실체가 없어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빼앗을 수가 없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이 모여 회의를 벌이는 장소일까요?”
“생긴 것만 봐선 그래 보입니다. 다만…….”
내 물음에 강이솔이 답을 했지만, 말끝을 흐렸다.
나는 강이솔의 반응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의 이름이 전쟁관이란 게 걸린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나리오 조각에 이런 기능이 있던 게 떠올랐다.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끼리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관계는 동맹, 우호, 중립, 적대 4단계가 있으니, 신중하게 설정하실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그건 4번째 조각 보유자가 등장하고, 시나리오를 20% 달성했다며 새롭게 생긴 기능이었다.
당연히 나와 강이솔, 인천의 김진욱은 모두 동맹 설정이 되어 있지만, 아직 김시우, 오기석과는 아무런 설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
‘동맹, 우호, 중립, 적대라는 4가지 관계와 전쟁관이란 건물의 이름.’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일 생각인 걸까?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미친 세상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때문에 나는 미간을 찌푸려야 했고, 이제서야 건물 밖에서 나를 맞이하던 이들의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던 건지 알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추측을 한 모양이다.
“협회장님, 그리고 이걸 보십시오.”
20개의 의자가 놓인 단상의 테이블은 금속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중심 부분은 어째서인지 유리로 되어 있었다.
이어서 인천의 김진욱이 나를 부르며 그 유리 부분을 터치하자.
-삑!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한반도 지도가 떠올랐다.
나는 그 한반도 지도를 자세히 살피다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지도 속 한반도가 20개 지역으로 나눠져 있네요?”
“그렇습니다.”
지도 속 한반도는 새빨간 선으로 지역이 나눠져 있었는데, 그게 우리가 아는 팔도와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서 표시된 지역의 숫자를 세어 보니, 이것도 20개네?
나는 혹시나 싶어서 지도에서 서울이 속한 지역에 손을 뻗었다.
그랬더니, 이런 메시지가 새롭게 떴다.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되지 않아, 아직 영토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