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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36화 (136/273)

136화 대비는 완벽 (2)

돌발 상황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내 자업자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에밀의 안위보다, 용병사무소 직원 ‘제인’이 내뱉은 어느 말이 신경 쓰였다.

“다크엘프에 도둑이나 암살자 같은 직업군도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말에 큰 흥미를 느껴야 했다.

이유는 사냥꾼 사이에서 보기 힘든 타입의 직업군이고 다크엘프라면, 지난번에 보상으로 얻은 테이밍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크엘프 테이밍 목걸이 / 등급: 희귀]

-레벨 130 이하의 다크엘프를 테이밍 할 수 있다.

-네임드 및 보스와 같은 특수 몬스터는 테이밍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다크엘프 도둑과 암살자의 레벨이 130을 초과하냐는 건데…….

다크엘프 궁수가 레벨 110, 전사와 마법사가 레벨 120이니, 충분히 130 이내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궁금한 건 놈들이 어디 숨어 있느냐는 것.

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장 상사가 납치를 당해 매우 곤란해진 용병사무소 직원 제인에 의해 말이다.

“저희 소장님을 구해 주실 분은 백호 님뿐입니다. 제발 저희 소장님을 구해 주세요.”

누가 봐도 퀘스트 신호.

어쩌면 이번 에밀의 납치가 지난번 다크엘프 마을을 공격했던 것에 대한 연계 퀘스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긴 하지. 마치 내가 올 시간에 맞춰 납치한 것처럼.’

그러니 나는 제인의 부탁을 바로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에밀 님을 저희가 찾아보도록 하죠.”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에밀 구조 / 퀘스트 등급: 최상]

-내용: 하늘섬 세일론의 용병사무소 소장인 에밀이 다크엘프들에게 납치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구조하여 세일론 엘프 마을의 질서를 바로잡자.

-보상: 에밀의 친밀도 10%, 아공간 반지.

그리고 쓸데없이 에밀의 친밀도와 아공간 반지라는 보상이 걸린 것을 본 나는 의문을 표했다.

‘인벤토리가 있는데, 굳이 아공간 반지가 있을 이유가 있나?’

쓸모없는 물건이라면 굳이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 생각보다 귀중한 물건이 분명했다.

그러니 괜히 보상에 의문을 표하지 않고, 제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내 물음에 제인은 우물쭈물 자신 없다는 태도로 말했다.

“아마도 계단 협곡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협곡 어딘가에 다크엘프들의 숨겨진 거점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음…….”

계단 협곡의 ‘어딘가’라니.

이건 즉, 자세한 위치는 우리보고 찾으란 거다.

탐색 과정이 포함된 퀘스트라는 의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흰 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네, 부탁드립니다!”

뭐 범위가 넓긴 해도, 장소가 한정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우리 파티의 탐색 능력은 꽤나 출중한 편이니 말이다.

* * *

“이상하다?”

“왜 그러세요?”

대재앙이 발생하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대부분의 군인들에게 석궁과 창 등이 지급되고 있다.

이는 현대 무기로 몬스터를 사냥할 경우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고, 개인 화기 소모품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 화기 사용을 완전히 막은 건 아니다.

석궁과 창 등으로 대항하기 힘든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는 여전히 총을 빼 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비록 화기가 스킬에 약한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다행히 군인들이 상대하는 대부분의 필드 몬스터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고, 이런 적들에게 화기는 여전히 위협적인 무기였다.

“오늘따라 불발탄이 너무 많은 느낌인데?”

“확실히 그렇네요. 공정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으음…….”

그래서 정부와 군 당국은 석궁과 창의 보급 외에도 탄환과 수류탄 등 개인 화기 소모품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청와대 생존 구역 내에 자체적인 총탄과 수류탄 생산 시설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안 되겠어, 라인 잠시 멈춰 봐.”

그런 생산 시설의 품질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어느 장교가 제작된 탄환 일부를 무작위로 골라 중간중간 직접 발포하며 이상 여부를 확인했는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유독 불발탄이 많아 의아함을 표해야 했다.

결국, 그는 공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 라인을 멈춰 세웠고, 이내 대대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그리고 확인된 결과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불발탄이 절반 이상이라고?”

무려 생산 제품 중 절반 이상이 불발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황당한 건 생산 과정에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 어제 생산된 제품 가져와 봐.”

“네!”

당황한 그는 혹시나 싶어서 똑같이 어제 제작된 탄환도 점검을 해 봤다.

“뭐, 뭐야? 여기에도 불발탄들이 뭐 이리…….”

“네? 어제까지만 해도 크게 이상 없었잖아요.”

그 결과는 오늘 제작된 탄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포 실험에 사용한 장비가 문제인가 싶어서, 이것저것 바꿔 보고 계속 실험을 해 봤지만 상황은 같았다.

심지어 대재앙 발생 이전에 제작된 탄환에서도 불발탄이 속출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설마, 시스템이 화기 사용을 규제하는 거 아니겠죠?”

“뭐?”

어느 부하의 추론에 품질 관리자는 말을 잃어야 했다.

결국, 이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얌전히 상부에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뭐, 불발탄 속출? 시스템이 화기 사용을 규제하는 것 같다고?”

해당 정보를 전해 받은 상부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하지만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 준장의 반응은 묘하게 달랐다.

“네, 군에서 확인 결과 위와 같은 현상이 화기 전반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인호 준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인 아들로부터 당혹스러운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뭐? 인간끼리의 전쟁? 그런 게 발생하면 결국 군사력 강한 나라가 유리한 거 아냐? 화기는 아직 멀쩡히 살아 있고, 그 중엔 핵무기도 있잖아.’

그런데 마치 자신의 의견을 시스템이 듣기라도 한 듯, 화기가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경쟁에 공정함을 더하려는 것처럼.

덕분에 시나리오 조각과 관련하여 인간끼리 영토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던 아들의 이야기가 더욱 강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이대로 모든 화기가 기능을 잃는다면, 군대의 힘은 더욱 약해지고, 사냥꾼 협회는 더욱 득세하겠지.’

뿐만 아니다.

그의 아들이 중국과 같은 기존 강대국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도 막강한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억지력이 사라진다면?

‘아무도 우리 아들 못 막을 것 같은데?’

점점 자신의 아들과 같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깽판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덕분에 모두가 심각한 와중에 서백호 준장만 홀로 황당함을 담아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물론, 아직은 이른 추측일 수도 있다.

화기가 이대로 먹통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왜일까?

서백호 준장은 재래식 병기가 사장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개인 화기를 대신할 연발 석궁의 보급 속도를 높여야겠어.”

* * *

계단 협곡은 말 그대로 계단처럼 층이진 협곡을 뜻한다.

위치는 지난번에 방문해 초토화를 시켰던 다크엘프 마을과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에 위치했다.

계단 협곡의 주요 서식 몬스터는 레벨 130의 아라크네.

거미의 동체 위로 여성의 상반신이 붙어 있는 기괴한 몬스터다.

아라크네는 바실리스크나 코카트리스와 같은 대형종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상대하기 귀찮았는데, 이유는 녀석이 뿜어 대는 접착 성분이 충만한 거미줄 때문이었다.

더불어 거미의 앞다리는 낫과 같이 날카롭고, 인간의 상체에선 산성 용액을 내 뿜는다.

그로 인해 레벨이 높음에도 아라크네 구역에선 사냥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때문에 처음에만 몇 번 싸워보고, 이후부턴 아라크네를 피해 다니면서 다크엘프들의 본거지를 찾았다.

“응?”

그러다가 천리안 스킬을 가진 시에나가 감시형 오토마타를 활용해 주변을 살피던 중 다크엘프 하나를 발견했다.

이후 우린 그 다크엘프의 뒤를 밟았고.

협곡 내의 바위 사이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 동굴을 발견했다.

[다크엘프 도둑 / 레벨: 130]

[다크엘프 도둑 / 레벨: 130]

그리고 길목에 다크엘프 도둑 둘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밀이 잡혀 있는 곳을 발견해서 그렇다기보다, 다크엘프 도둑의 레벨이 테이밍 아이템으로 길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크 엘프 암살자의 레벨이 이보다 높다면 그냥 도둑을 길들이는 거고, 같다면 암살자와 도둑 중에 잘 고민해서 하나를 테이밍하면 될 것 같다.

‘겸사겸사 에밀도 구하고.’

우린 일단 동굴 안을 지키고 있는 다크엘프 도둑 둘을 처치했다.

그 과정에서 다크엘프 도둑의 전투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놈들은 독 관련 스킬이 주류인지, 독 안개를 뿌리고, 독 발린 단검을 휘둘러 오고, 또 독침을 사용했다.

녀석들의 독은 지속적으로 피해를 줬다.

한 번 맞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시간이 좀 지나면 눈, 코, 입에서 피가 흐르다가 호흡이 불가능해진다.

이 독은 중첩이 가능하며, 독이 중첩될수록 효과가 강해진다.

다크엘프 도둑은 독 스킬 외에도 은신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단검술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다.

“아니, 이 도둑 새키가!”

그리고 다크엘프 도둑의 특징은 독만이 아니었다.

직업이 괜히 ‘도둑’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듯 수시로 물건을 훔쳐 갔기 때문.

심지어 인벤토리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 가기까지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다크엘프 도둑을 해치웠다가 녀석에게서 행운의 탈리스만을 습득하는 바람에 기겁해야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해프닝 속에 다크엘프 도둑을 해치우며 전진을 거듭했고.

[다크엘프 암살자 / 레벨: 130]

우린 머지않아 다크엘프 암살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녀석들의 레벨도 130.

테이밍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채채채챙!

다크엘프 암살자는 도둑과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직접 전투보다 보조 수단이 많은 도둑과 달리, 녀석은 의외로 전사 타입이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은신 스킬은 도둑의 수준을 가볍게 상회했고, 단검술과 비검술 실력이 대단해서 한 번에 둘 이상의 암살자를 상대할 때면 위험한 상황이 한 번쯤은 꼭 벌어졌다.

암살자는 독을 쓰지 않고, 묘기와 같은 유연한 몸놀림과 오로지 살상 기술만으로 덤벼 왔다.

“독도 나쁘진 않은데, 암살자가 나은 것 같아요.”

“동의. 독 스킬도 좋지만 결국은 꼼수 같은 느낌이야. 도둑 스킬도 쓸 일이 많지 않으니, 순수 전투력이 뛰어난 게 낫겠지.”

“맞아요. 은신 능력이 대단한 만큼, 누군가를 미행할 때도 좋을 테고요.”

다크엘프 도둑과 암살자를 놓고 비교하던 우린, 결국 암살자를 테이밍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크엘프 암살자를 테이밍했습니다.]

이 동굴의 정보도 얻고 에밀의 위치도 얻을 겸 미루지 않고, 바로 다크엘프 암살자를 길들였다.

“분명 등장한 다크 엘프 암살자는 남성 둘, 여성 하나가 튀어나왔었는데, 콕 집어서 여성형 다크엘프를 길들였네?”

눈을 가늘게 뜨며 음흉하게 웃는 시에나.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당연한 걸 왜 묻냐며 답했다.

“괜히 종족명에 ‘엘프’가 붙은 게 아니라는 듯 다크엘프도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쁘잖아요. 제가 다크엘프 남성과 다니면, 더 오징어가 될 겁니다.”

그리고 이 다크엘프의 주인은 윌리아가 될 터인데, 그녀의 곁에 잘생긴 남성을 붙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왕을 모시는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곧은 눈으로 올려 보는 다크엘프 암살자를 보며 윌리아에게 말했다.

“앞으로 윌리아 님을 따라다닐 녀석이니, 이름도 윌리아 님이 지어 주세요.”

내 말에 윌리아는 알겠다며 고민했다.

하지만 이름은 오래지 않아 정해졌다.

“넌 이제 다켈프다.”

“네!”

그리하여 다크엘프 암살자 펫의 이름이 다켈프로 정해졌다.

근데 왜 다켈프지?

‘다크엘프, 닼엘프, 다켈프?’

나는 윌리아를 보며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제법 센스 있는 말장난이 아닌가?

하지만 내 감탄사와 달리 시에나는 윌리아에게 핀잔을 주었다.

“어째 작명 센스 없는 건 둘이 똑같냐?”

“와일번, 와이번 이름을 지은 시에나 님에게 듣고 싶진 않은데요?”

“흠흠.”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시에나는 ‘다크엘프 다 크다’ 같은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거야 원, 누가 누굴 나무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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