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이무기 사냥 (2)
이무기가 자리한 곳은 수중 동굴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지하 공동.
때문에 이전엔 드레이크와 와이번 등 거대 비행 펫의 진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와일번(미스릴 와이번) / 레벨: 122]
[와일번(미스릴 와이번) / 레벨: 122]
[룡룡이(플레임 드레이크) / 레벨: 129]
셋 모두 성장의 탑에서 교환권으로 구매 가능한 펫 아이템으로 진화를 하면서 멍멍이처럼 신체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와일번, 와이번은 진화를 통해 푸른빛이 감도는 오묘한 은색의 비늘을 가진 미스릴 와이번이 되었고.
룡룡이는 새까만 비늘을 가진 노멀 드레이크에서 검붉은색의 플레임 드레이크가 되었다.
룡룡이 종족명에 붙은 ‘플레임’이란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 녀석은 마음먹기에 따라 전신에서 불꽃을 피어오르게 할 수 있다.
‘날 태우고 전신에서 불길을 내뿜었을 땐 기겁했었지.’
다행히 그 불길은 아군에겐 피해를 입히지 않기 때문에 등에 탔다가 예고 없이 화형당하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튼 그리하여 세 마리의 비행 펫은 진화를 거쳐 육중한 덩치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멍멍이처럼 파티의 전투를 보조하고 있다.
[다켈프(이블 엘프) / 레벨: 137]
그리고 펫 중에 빠뜨릴 수 없는 또 다른 중요 전력이 있으니.
바로 윌리아의 펫, 다켈프다.
그녀는 이블 엘프라는 마계의 엘프종으로 진화하여, 흡혈귀와 비슷한 특성이 생겼다.
태양이 떠오른 곳에선 능력치가 너프되고, 밤이나 지하 같은 곳에선 능력치가 향상된다.
더불어 은신과 기습 등의 암살 능력이 더욱 강화되고, 혈독술이란 스킬까지 생겨 완전한 암살 특화형이 되어 버렸다.
‘마계란 장소명이 꾸준히 보인단 말이야. 설정 상에나 있는 허구의 장소인 건가? 아님, 실제로 갈 수 있는 장소?’
다켈프는 외형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회색의 피부가 하얘지고, 은발은 흑발로, 흑안과 푸르딩딩했던 입술은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개졌다.
체구는 180이 가볍게 넘는 초장신에서 165 정도로 평범해지면서 외모 버프를 크게 받았다.
뭐랄까.
기존의 다켈프가 그래도 몬스터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면, 이젠 꽤나 인간스러워진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협회 내에 다켈프 팬들이 많지.’
다켈프는 윌리아와 시에나에게선 볼 수 없는 묘한 퇴폐미가 있어서, 몬스터로 분류되는 존재임에도 많은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화려해진 외모만큼이나 전투력이 크게 높아진 다켈프였기에 펫이 아니라, 우리 팀의 네 번째 파티원인 느낌이다.
역시 다크엘프 암살자를 테이밍하길 잘한 것 같다.
-찰박. 찰박.
잠시 후, 이런 펫들과 함께 이무기 둥지와 연결된 바닷속 수중 동굴에 들어선 나는 숨을 죽인 채, 일행들과 사인을 주고받았다.
그러자 은신 스킬이 있는 나와 시에나, 다켈프가 몸을 숨기고, 윌리아는 나머지 펫들과 함께 수중 동굴의 메인 통로가 아닌 샛길로 빠졌다.
샛길은 한 번에 대량으로 땅을 팔 수 있는 빛나는 황금의 삽을 이용해 내가 직접 파서 만든 거다.
‘이무기에게 도전한 게 이번으로 5번째.’
당연히 승리를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내게 유리한 지형지물 형성은 그 수단 중 하나였다.
-크르르르.
은신이 가능한 인원만 메인 통로로 이동하고 그 외 인원이 샛길로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맨 처음 우리가 입장했을 때 잠만 처자던 이무기가 이제는 한껏 경계심 어린 모습으로 둥지 입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채 접근한다면, 통로를 가득 메우는 이무기의 브레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은신 기능이 없는 멤버들은 모두 샛길로 빼놓은 것이다.
‘이무기의 둥지와 둥지 근처는 지형을 임의로 개조할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 원상 복구가 되는 기능이 있지.’
그래서 윌리아와 펫들이 이용 중인 샛길은 지형이 원상 복구가 되지 않는 구간까지만 파 놓았고, 이후엔 메인 통로인 이 길과 연결된다.
나를 포함한 은신팀이 이무기의 머리를 돌려 둬야, 윌리아는 펫들과 샛길에서 빠져나와 합류할 것이다.
‘만약 녀석이 멀리서도 은신을 감지할 수 있었다면, 접근조차 못 하겠지.’
물론, 아예 은신을 못 알아챈다는 건 아니다.
이무기의 높은 레벨이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감각이 매우 예민하여 은신을 유지해도 20~30미터 이내의 근거리에선 쉽게 이상을 알아채고, 조그마한 발소리에도 바로 반응한다.
다켈프는 완벽하게 어둠에 동화되어 아무 기척과 소리 없이 움직이지만, 나와 시에나는 그 정도의 움직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은신을 유지한 채 비행 스킬로 동굴 내부를 날아 이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이무기의 둥지에서 뿜어지는 하얀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블링크.’
그리고 둥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와 시에나는 즉시 블링크를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덕분에 이무기의 둥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역시나 감각이 예민한 이무기는 우리의 접근을 알아채고 즉시 육중한 꼬리를 휘둘러 왔다.
꼬리엔 붉은 기운이 담겨 있어서 평범한 물리 공격이 아니었다.
‘1번 장착. 일섬.’
나는 즉시 웨폰 체인저를 이용해 듀랜달을 소환해 손에 쥐며, 이젠 사용하지 않는 무기에서 추출해 익힌 스킬 일섬을 사용했다.
그러자 내가 전력으로 휘두를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뻗어진 듀랜달이 이무기의 꼬리를 쳐 냈다.
-콰아아앙!
‘큭!’
마치 폭탄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한 폭음과 함께 전신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용케 이무기의 꼬리 공격을 흘리는 데 성공했다.
은신 스킬은 공격에 피격되거나, 공격을 시도하면 자동으로 풀린다.
즉, 일섬을 사용한 순간 내 은신은 이미 풀렸다.
하지만 시에나와 다켈프는 여전히 모습을 숨긴 상태였다.
-스스스스.
[네임드 리빙아머 칼데아 / 레벨: 130]
그중 다켈프가 몸을 숨긴 이유는 바로 이것.
이무기의 가디언인 리빙아머가 등장하면 녀석을 드리블하기 위함이었다.
다켈프는 리빙아머의 등장과 동시에 은신 상태에서 추가 대미지가 붙는 어쌔시네이션과 백어택을 연속 사용했다.
너무도 깔끔한 일격.
리빙아머는 그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피격당했다.
정타를 허용한 만큼 생물형 몬스터였다면 일격에 골로 갔을 상황.
하지만 리빙아머에겐 치명타 공격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대로 스윽 고개를 돌려 다켈프를 향해 붉은 안광을 빛냈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잘한다.’
그러나 다켈프가 녀석을 드리블한 게 처음이 아니었기에, 익숙하게 이무기로부터 멀어지며 사전에 정한 둥지의 구석으로 향했다.
리빙아머 드리블만으로도 다켈프는 자신의 역할 중 9할을 해낸 것이다.
-쿠릉!
-콰쾅!
‘뇌력참!’
그리고 다켈프가 리빙아머를 떨어뜨려 놓는 동안 이무기는 내게 낙뢰와 폭발 스킬을 사용했다.
나는 낙뢰를 뇌력참으로 흘리고, 폭발 스킬은 능숙하게 춤추는 단검을 날려 꿰뚫어 버렸다.
폭발 스킬은 작은 구슬 형태로 날아들다가 정해진 지점이나 목표를 타격하면 폭발하는데, 스킬이 발동하기 전 구슬 단계에서 춤추는 단검을 날려 처리한 것이다.
이렇게 나와 다켈프가 열심히 활약하는 동안 여전히 은신을 유지 중인 시에나는 뭘 하냐면…….
-쿵쿵쿵쿵. 뚝딱뚝딱.
이무기의 둥지 안에서 건축을 시작한다.
공략의 편의성을 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 둥지 내부에 설치한 인공 시설물은 자동으로 리셋이 되지만, 리셋이 단 몇 분 만에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동안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설치 끝났어!’
‘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시에나의 작업이 머지않아 끝이 나고, 거의 동시에 윌리아가 펫들과 함께 전장에 합류했다.
지금까지는 준비 단계였고, 이제부터가 진짜 공략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출혈이요!’
‘오케이!’
텔레파시를 통한 내 지시에 시에나가 바로 이무기에게 화살을 날리며 출혈 스킬을 사용했다.
출혈 스킬은 작은 생채기로도 피를 흐르게 만들며, 최대 3스택까지 피해를 중첩시킬 수 있다.
스택이 쌓일 때마다 출혈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출혈을 잘 유지할 필요가 있다.
출혈량이 많다고 몬스터가 죽진 않지만, 움직임이 둔해지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출혈의 효과는 그걸로 끝이 아니다.
‘혈독술 들어갔어요!’
‘네, 다켈프에게 바쁘겠지만, 혈독술 잘 유지해 달라고 해 주세요.’
‘넵!’
피를 통해 중독을 시키는 다켈프의 혈독술 스킬이 시에나의 출혈 스킬과 시너지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출혈은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혈독술로 중독 현상이 지속되면 사고가 둔해진다.
즉, 전투 자체가 우리에게 굉장히 유리해질 수밖에 없단 뜻이다.
[비겁한 놈들!]
덕분에 이무기가 악에 받쳐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무기 토벌 시도 2회차 때였지, 출혈 스킬과 혈독술의 시너지에 고무되어 흥을 내다가 저 브레스에 전멸할 뻔한 게.’
강렬한 고열을 머금은 이무기의 브레스는 매우 강력하다.
“아이기스!”
“아이기스!”
우린 녀석의 브레스에 대항해 아이기스 조각(팔찌)의 내장 스킬인 금속 방어벽을 소환해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이무기의 브레스는 3겹으로 쌓은 아이기스의 방어벽을 너무도 간단히 꿰뚫어 버려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전과 결과가 달랐다.
이무기의 브레스가 아이기스 조각의 금속 벽체를 단번에 관통하지 못한 것이다.
금속 벽체들 사이사이에 내열 처리된 코인 상점제 보강재 벽을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나이스! 간격 예술 아니냐? 딱 맞잖아!’
그렇다.
보강벽은 시에나가 좀 전에 설치해 둔 시설물 중 하나였다.
우린 장기 전투를 염두에 둬야 하는 입장이기에, 얌전히 자리를 지켜서 이무기가 이리저리 브레스를 뿌려 내부 공간을 파괴하지 않게끔 했다.
곧이어 브레스가 끝이 나고.
‘지금!’
-콰쾅! 콰콰쾅!
리빙아머를 전담 마크하는 다켈프를 제외한 전원이 이무기를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이무기는 브레스 직후 약 2초간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그 2초 동안 극딜을 넣는 것이다.
2초란 시간은 매우 짧은 것 같지만,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신체 능력을 가진 우리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끄아악!]
나와 윌리아, 시에나, 멍멍이, 룡룡이, 와일번, 와이번.
이 일곱이 일제히 스킬을 쏟아 내자 이무기는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면서도 죽지 않으려, 거대한 동체를 이리저리 불규칙적으로 비틀었다.
[리커버리!]
그리고 2초가 지나자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무기가 회복 스킬로 전신에 난 상처를 단숨에 회복해 버렸다.
이무기의 가장 성가신 부분이 바로 저 회복이다.
열심히 입힌 대미지를 없던 것으로 돌려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우린 신경 쓰지 않고, 녀석에게 맞서 나갔다.
5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무기는 마력을 고갈시켜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회복도 마력을 이용한 스킬, 그러니 회복했다고 해서 앞선 공격들이 없던 게 되진 않아.’
지금까진 아무런 착오 없이 계획대로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인내력과의 싸움이다.
-콰쾅!
이무기는 패턴을 바꿨다.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선 자신의 가디언인 리빙아머와 함께 싸우는 편이 나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지진을 일으켜 다켈프의 드리블을 방해했지만…….
-탁! 타탓!
이미 3회차 도전 당시 같은 상황을 경험해 봤던 다켈프는 여유롭게 점프를 뛰며 방해를 이겨 냈다.
이게 모두 사전에 대응 훈련을 철저히 한 덕분이다.
“이번엔 반드시 죽여 줄 테니, 얌전히 보상이나 토해 내셔!”
나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판 대가로 춤추는 단검을 이용해 녀석의 눈 한쪽을 꿰뚫어 버렸다.
[크악!]
그리고 동시에 듀랜달을 강하게 움켜쥔 채 달려들었다.
유일 등급 무기의 검, 듀랜달.
이무기는 다른 동료들의 공격은 둘째치더라도, 내 공격만큼은 경시하지 못하며 최선을 다해 저지하려 했다.
‘일검양단.’
5번의 실패로 축적된 전투 데이터.
나는 그간의 경험이 승리로 이끌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이지만, 중국의 제일 도시는 모두가 상하이라 한다.
상하이는 오래전부터 정치적, 경제적으로 베이징의 라이벌이었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선진 도시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때문에 상하이 주민들은 자신들의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물론, 상하이방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비해 세력이 약해진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럼에도 상하이는 중국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도시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재앙이 발생하고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공산당의 지도부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북경을 중심으로 군 세력을 겹겹이 밀집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해보다 북경을 빠르게 지원할 수 있는 톈진이나 바오딩, 창저우 등을 공산당이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얼떨결에 상하이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베이징 정부를 몰아낼 때가 왔어. 현대 무기가 그 힘을 잃고, 당의 지원을 받던 중화 청년단이 지도부를 잃으며 4개로 쪼개진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새로운 중국의 중심이 되는 거지.”
하지만 상하이는 시민 중심 사냥꾼들의 활약으로 위기를 잘 이겨 냈고, 지금에 와선 이런 말을 할 정도가 되었다.
“괜찮을까?”
이들은 모두 태생부터 공산당인 사람들.
자유를 위해 정권을 몰아내겠다는 게 아니었다.
베이징보단 상하이가, 늙은 정치인들보단 젊은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여러모로 상황이 좋았다.
마치 하늘이 이들을 도와주듯이.
그럼에도 모두가 베이징 정부를 몰아내잔 말에 쉬이 동의하고 나서지 못했다.
중화 청년단의 존재가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력이 네 개로 쪼개졌다지만, 우리가 쳐들어가면 다시 힘을 합칠지도 모르잖아. 난 너무 위험한 생각 같아.”
“아니, 무조건 성공할 수 있어.”
“어떻게?”
신 상하이방 멤버들은 베이징 정부 타도를 외치는 리더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리더의 이야기에 멤버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남한의 사냥꾼 협회와 긍정적으로 동맹 이야기가 오가고 있거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