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잡초 제거 (1)
신 상하이방의 방주 류이창은 그래도 리더답게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단체에선 간부들의 수준을 보면 전체적인 일반 대원들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회의실에 자리한 파티 하나하나가 신 상하이방 방주의 파티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파티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전에 습득했던 사냥꾼 협회의 정보가 거짓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뜻.
가입 인원은 자신들의 절반 정도이지만, 레벨 30 이상 주요 사냥꾼의 수는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정보 말이다.
“사냥꾼 협회 간부분들의 면면을 보니, 너무 믿음직스럽습니다. 대한민국에 승천을 준비하는 용이 잠자고 있었군요.”
그래서 류이창은 웃는 낯으로 그들의 얼굴에 금칠을 했지만, 사냥꾼 협회의 누구도 우쭐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
사람을 뻘쭘하게 만드는 그들의 반응에 류이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곧 그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범을 지켜보며 큰 늑대가 저 잘났다고 으스댈 순 없는 법이니 말이다.
“협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겸손하게 만드는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잊고 있던 사냥꾼 협회 협회장인 서땡땡 파티가 등장한 것이다.
그들 파티는 겉으로 보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머리 위로 천사의 고리가 둥둥 떠 있는,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흑발 흑안의 여인.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금발 포니테일과 청안을 가진 엘프 소녀.
외모는 평범해 보여도 딱 봐도 운동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활동하기 좋아 보이는 세미 정장 위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화려한 깃발과 등급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투명한 검신, 새하얀 손잡이, 가드를 가진 화려한 장검 한 자루가 허공에 둥둥 떠서 남성의 뒤를 쫓아다녔다.
‘급이 다르다.’
한눈에 그걸 느낄 수 있는 수준의 비주얼을 가진 서땡땡 파티였다.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외향적으로 멋들어진 비주얼과 다르게 정보가 가려져 있는 그들을 보며 류이창은 당황했다.
이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숨기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멍멍이(섀도우 울프) / 레벨: 131]
[룡룡이(플레임 드레이크) / 레벨: 130]
[와일번(미스릴 와이번) / 레벨: 125]
[와이번(미스릴 와이번) / 레벨: 125]
그들이 왜 정보를 숨기는지, 따라 들어온 펫들의 레벨을 본 순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새까만 강아지가 비둘기 크기의 도마뱀 세 마리와 추격전을 벌이듯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귀여운 외형들과 어울리지 않는 펫들의 레벨은 류이창 일행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서땡땡 파티는 자신들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존재들.
그런 이들의 정보는 보호해야 마땅했다.
그나마 펫 덕분에 그들의 수준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순 있었다.
‘레벨이 20 이상 높은 몬스터는 펫으로 길들일 수 없어. 그러니 이들의 레벨은 111보다 낮을 수 없단 뜻이다.’
최소 레벨 111.
이게 말이 되는 수치란 말인가?
덕분에 류이창을 포함한 신 상하이방 멤버들은 놀람을 넘어 경악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사냥꾼 협회 간부들이 협회장의 등장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할 때, 신 상하이방 멤버들도 그들과 같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진짜 저런 애들이랑 동맹을 맺겠다고? 수준 미달 아니야?”
그리고 그런 신 상하이방 멤버들을 스윽 둘러보며, NPC 동료가 분명한 엘프가 허공에 누워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한국어로 말했지만, 표정과 행동을 보면 굳이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말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숫자의 힘을 무시할 순 없죠. 저들의 가입 인원은 우리의 두 배니까요. 더불어 상위 멤버를 제외한 중위 멤버의 수준은 우리 협회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리고 서땡땡의 말에 엘프가 수긍하며 물러난 것을 본 류이창이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다가와선 악수를 청했다.
마치 괴물 소굴에 떨어진 듯 한껏 경직된 동료들과 다르게, 그는 리더답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 상하이방의 방주 류이창이라고 합니다.”
“서백호입니다.”
류이창 입장에선 상대가 이름을 숨기는 것 아닐까 했는데,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 서백호는 너무도 태연하게 이름을 밝혔다.
“항상 협회장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처음 업적 보상을 띄우셨던 때부터 팬입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류이창은 한껏 자신을 낮췄다.
서백호를 만난 순간 그는 자신이 꼭 잡아야 하는 동아줄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와 대적하는 건 미친 짓이야.’
무조건 같은 편에 서야 한다.
이 순간 류이창은 자존심이고 뭐고, 계약이 불공평하더라도 반드시 사냥꾼 협회와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 * *
신 상하이방이란 단체와의 동맹.
내가 여기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잠재적 적대 세력인 현 중국 정부와 중화 청년단을 일소하여, 한반도의 안정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현대 무기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지금이 기회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에 중국에서 남북한 합동정보부가 몬스터 사체를 보존하는 기술을 훔쳐 냈다.
사실은 기술이랄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모두 알게 될 발견의 일환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과 북한이 몬스터의 사체를 보존하는 능력을 손에 넣었단 걸 알게 되면서 우리가 자신들의 지식을 빼돌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물론, 그 추측은 정확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명확한 증거를 획득하지 못했음에도 로열티를 내라는 요구를 해 오고 있다는 거다.
그것도 상당한 금액에 협박을 덧붙여서…….
‘뭐랬지? 전쟁이 벌어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계약금으로 5억 코인, 매달 1억 코인을 지불하랬나?’
여전히 자신들을 대국이라 생각하는 그들은 강하게 밀면 우리가 마지못해 협상 카드를 꺼내 올 거라 예상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더 이상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우리가 응해 줘야 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래서 이 녀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신 상하이방에서 접근을 해 왔다.
현 중국의 실세들의 암살을 고민하던 나로선 놈들뿐만 아니라, 끄나풀인 중화 청년단의 제거까지 한 번에 해결할 신 상하이방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현지 단체를 등에 업으면 병력은 물론, 활동 명분까지 깡그리 해결되기 때문이다.
우린 침략자가 아니라, 상하이의 동맹이 되어 중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신 상하이방 분들은 이해심이 깊으시군요.”
더구나 기선 제압을 당한 신 상하이방 멤버들은 과하다 싶을 만큼 필사적으로 동맹에 매달렸다.
덕분에 동맹 조인 전 사전 회의에서 우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이 새로운 신중국의 정부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 한반도 주민들의 동북 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에서의 자유로운 활동과 안전을 보장해 주기로 했다.
위 내용 중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북한까지 끌어들인 ‘한반도 주민들’을 거론한 이유는 추후 남북한이 통일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이 협의가 이어지게끔 만든 것이다.
더불어 몬스터 사체 보존 기술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신 묻지 않으며, 양 세력 간 상행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현 베이징 정부와의 전쟁으로 우리 협회 내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절한 보상을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하죠. 애초에 이번 동맹이 베이징과의 전쟁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사냥꾼 협회의 리스크를 줄여 드려야죠.”
그냥 무슨 말을 내뱉든 오케이를 해서 거의 불공정 계약이라 할 수 있는 동맹 조인서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절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호구 잡았네?’
이쪽도 이쪽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건데, 혹시 모를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전부 저들에게 떠넘겼다.
그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교체 성공 시 보수까지 받아 내기로 하면서 서류 작성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만족했고, 류이창은 안도했다.
우리의 도움만 얻어 내면 계획은 무조건 성공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완성된 동맹 조인서를 쭈욱 훑어본 신 상하이방 멤버들은 잠시 미간을 좁혔으나, 특별히 내용이 바뀌는 일 없이 그대로 동맹식이 진행되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빠르게 대업을 진행하도록 하죠.”
“저희야 좋죠.”
그리고 우린 바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 * *
강이솔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내일 결행을 하다니요. 너무 급한 건 아닐까요?”
“시간을 끌어 봤자 적에게 대비할 시간을 줄 뿐이니까요.”
사냥꾼 협회의 대규모 원정.
하지만 이번 원정의 목표는 몬스터가 아닌 같은 인간이다.
때문에 원정은 참전 희망자들만 데려가기로 했다.
‘아마 대부분 참가하겠지.’
협회 멤버들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가능성이 크다.
중렙과 고렙 사냥꾼 중에 같은 인간과 싸워 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고, 애초에 우린 정기적으로 일본에서 ‘인간 사냥꾼’이라 불리는 빌런들을 토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인 시나리오가 인간끼리의 전쟁이라면 이만큼 좋은 예행 연습도 없지.’
이런저런 판단 끝에 신 상하이방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이 되면, 우리의 피해도 크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승리를 위해 동료들을 갈아 넣는 짓은 생각조차 안 하기 때문이다.
“우리 협회는 병력을 나누는 일 없이 한데 뭉쳐 움직일 겁니다. 당연히 최전방엔 저희가 자리할 테고요.”
그리고 사전 작업으로 양념 좀 쳐 놓으면, 전투는 조금 더 쉬울 것이다.
“양념이요?”
“사람끼리의 싸움에선 기세가 중요하잖아요?”
“네, 그렇죠.”
“우선 기선 제압을 하고 시작하는 거죠. 당연히 그 역할도 우리의 몫이고요.”
대규모 전투 경험은 추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험을 위해 아군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는 노릇.
내가 원하는 건 압도적인 승리다.
때문에 이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서늘하게 웃어 보이는 내 모습에 강이솔과 주요 간부들은 무섭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베이징 자금성.
현 중국의 주석인 장민은 본래 집무실이 위치한 중난하이가 몬스터 소굴로 변하자, 어쩔 수 없이 자금성으로 집무실을 옮겨야 했다.
황제의 고궁을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쓴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중난하이와 달리 주변에 몬스터도 적고 높은 성벽에 해자까지 갖고 있어서 자금성만큼 안성맞춤인 집무실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금성 내부엔 안전 구역과 웨이포인트가 설치되어 있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타 지역으로 도주하기에도 아주 좋았다.
“요즘 신 상하이방 녀석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그렇습니다. 정보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냥꾼 협회라는 단체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하…… 설마 외국을 끌어들여서 우리를 칠 생각인가?”
“그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듭니다.”
장민은 부하의 보고에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누군가?
대 중화인민 공화국의 주석이다.
비록 대재앙으로 인해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일개 지방인 상하이가 소국인 한국 따위와 힘을 합친다고 해서 도모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장민은 신 상하이방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며 비웃음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장민 본인과 달리 그의 부하들은 웃을 수 없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사냥꾼 협회를 우습게 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냥꾼 협회의 리더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물일 겁니다.”
“그래?”
그래서 경고를 줬지만, 장민 주석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흘려들을 뿐이었다.
그에 부하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진언을 이어 갔다.
“중화 청년단의 주요 전력을 자금성으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굳이?”
“적들이 암살을 위한 특공대를 꾸릴 수도 있습니다. 현대 무기가 모두 먹통이 된 지금의 상황에서 주석님을 지킬 가장 강한 전력은 중화 청년단입니다.”
부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장민 주석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부하의 청을 받아들였고, 4개로 찢어진 중화 청년단 중 텐진 세력인 류웨이와 측근을 자금성으로 불렀다.
“주석님을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류웨이는 마치 주군을 대하듯 고개를 조아렸고, 장민 주석은 이런 류웨이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런 분위기에 초를 치는 이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