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마경의 입구 (1)
“마경의 입구.”
길종혁으로부터 필드의 지명을 들은 김 군은 웃던 얼굴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괜찮은 거냐며 걱정을 담아 물었다.
“뭔가……. 잘못 들어가면 엿될 것 같은 이름인데요?”
김 군의 반응에 길종혁은 빵 터져서 웃음을 흘렸다.
“그렇긴 하지. 그래서 우리도 처음 탐색할 땐 손에 귀환 스크롤을 들고 언제든 찢을 수 있는 상태로 움직였었으니까.”
귀환 스크롤이란 아이템명에 김 군은 ‘아’ 소리를 내며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여분의 목숨이라고도 불리는 그 아이템은 사냥꾼에게 없어서 안 되는 필수 아이템.
김 군 역시 귀환 스크롤을 갖고 있었으며, 최근 유행하는 방식으로 손수건과 함께 둘둘 말아 팔찌처럼 착용하고 있다.
손수건을 찢거나 칼로 베어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끔 말이다.
“우리가 그곳 전체를 탐색한 건 아니지만, 제법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만큼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거야. 일단 오늘은 파밍에 목적을 두고 필요 이상 들어가진 않을 생각이거든. 그런데도 문제가 생긴다면, 귀환 스크롤을 찢으면 그만이잖아?”
“하긴…….”
김 군은 길종혁의 이야기에 쉽게 설득되었다.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는 건 심리적으로 큰 안정을 주는 데다가 더욱 과감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사실 마경의 입구라는 게 필드의 생김새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어떤 생김새를 갖고 있는데요?”
“숲 형태의 필드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 외길이 길게 이어져 있거든. 그래서 꼭 지옥의 입구로 이어지는 길 같달까? 어제 하루 종일 탐색했음에도 끝을 확인하지 못했어.”
이야기만 들어선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필드.
숲인데, 따로 샛길 없이 외길만 있다는 걸까?
김 군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길종혁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의아하지?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야.”
그렇게 길종혁 파티와 김 군이 소속된 최공찬 파티는 예정대로 ‘마경의 입구’라는 숨겨진 필드에 진입했다.
[숨겨진 필드 마경의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국회의사당 지하엔 본청과 국회도서관, 의원회관을 잇는 긴 지하 통로가 있다.
마경의 입구는 본청 건물 쪽 지하 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벽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손을 짚으며 걷지 않으면 발견할 수가 없다.
홀로그램처럼 완전히 위장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의 풍경이 180도 바뀐다.
사방이 시커멓게 칠해진 지하 공간 속에 높이가 30미터는 될 법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와아…….”
마경의 입구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천장엔 일정 간격을 두고 빛을 발하는 발광석이 전구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밝은 것도 아니었는데, 미묘한 밝기 덕에 괜히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야말로 언데드 몬스터가 등장할 법한 분위기였다.
“어, 엄청난데요?”
“그렇지?”
김 군은 물론, 최공찬을 포함한 파티원 모두가 감탄사를 흘렸다.
이는 장소의 분위기 때문이라기보단, 너무도 광활한 넓이에 압도되어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였다.
숲속 외길 필드라 해서, 숲을 따라 난 작은 길을 생각했지만…….
-휘이이잉!
높다란 나무를 끼고 16차선 차도가 들어서도 될 비포장 길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져 있었다.
김 군과 최공찬은 숲 쪽으로 다가갔다.
둘은 그제야, 앞서 말한 길종혁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수풀이 너무도 빽빽하게 우거진 숲.
숲속은 일일이 나무와 풀을 베며 나아가지 않는 이상 탐색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늘에서 봐도 마찬가지야. 마치 옆으로 눈 돌리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것처럼 생긴 곳이지.”
김 군과 최공찬은 마른침을 삼키며 끝이 보이지 않는 정면을 응시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뭔지는 몰라도 뭔가 대단한 게 숨겨져 있을 것 같다.
“그럼 필드 공략법에 관해 설명할게.”
“네!”
“필드 초입에선 듀라한과 듀라한 기수만 등장해. 그리고 약 1km 정도 나아가면 그때부턴 올더 듀라한과 올더 듀라한 기수가 등장하지. 우리의 타깃이 올더 듀라한인 만큼 일단 노멀 듀라한 필드는 최대한 빨리 지나칠 생각이야. ”
올더 듀라한의 레벨은 60, 올더 듀라한 기수의 레벨은 65였다.
현재 길종혁 파티의 평균 레벨이 70이고, 최공찬 파티의 평균 레벨이 61이었기에 충분히 공략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타깃인 몬스터들이 모두 듀라한에 기반을 둔 몬스터인 만큼, 전투 패턴은 비슷해. 그러니 상대하긴 어렵지 않을 거야. 다만 올더 듀라한의 특징이 네임드 몬스터가 아님에도 검기를 사용하니까 탱커와 근접 딜러는 특히 조심해야 돼.”
“네!”
그렇게 올더 듀라한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던 길종혁이 한 가지 당부를 했다.
“그리고 내부에서 보물 상자를 발견하더라도 절대 먼저 열지 마.”
“미믹이 있나요?”
“그게 아니라 함정 상자가 있거든. 함정 상자가 발동되면 필드 내의 다른 장소로 보내져. 뭐, 그래 봤자 이것과 같은 풍경의 장소지만, 문제는 상자를 연 사람이 홀로 떨어진다는 거야. 일행이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런 낯선 장소에서 홀로 떨어진다는 건 무서운 일.
그래서 길종혁은 상자를 열지 않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고, 그럼에도 만에 하나 상자를 여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처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래도 만약 혼자 다른 장소에 보내지면 그냥 복귀 스크롤을 사용하도록 해. 알겠지?”
길종혁의 당부에 최공찬 파티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하에 있는 마경의 입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계속 같은 풍경만 보니, 시간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네요.”
“맞아, 그게 이 필드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 그리고 마구 싸우다 보면 어디가 우리가 지나온 길이고, 어디가 나아갈 길인지 헷갈려. 그래서 지나온 길을 표시하면서 가야 해.”
기이한 필드의 형상에 김 군과 최공찬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올더 듀라한을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1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중급 마핵 1개를 획득했습니다.
-중후한 플레이트 아머 상의를 획득했습니다.
“오, 특수 등급의 금속 갑옷 상의 떴어요!”
“진짜? 난 특수 등급 방패 나왔어!”
올더 듀라한은 일반 듀라한 못지않은 꿀파밍 몬스터였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특수 등급의 장비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덕분에 머지않아 불안감은 멀어지고, 사냥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길종혁 파티도 동 레벨의 다른 팀보다 잘 싸우는 편인데, 김 군이 속한 최공찬 파티는 사냥꾼 협회의 기대주들만 모아 놓은 파티다.
그렇다 보니 적응력도 빨라 이들은 매우 손쉽게 사냥을 이어 갔다.
“난이도는 높지 않은데, 보상이 후하니, 사냥하는 보람이 있네요.”
“후후, 그렇지?”
길종혁은 즐거워하는 제자 최공찬과 김 군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 후로도 이들은 거침없이 마경의 입구를 누볐다.
* * *
“마계요? 음…….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이 없군요.”
“마계? 악마들이 사는 그곳 말인가? 그런 곳에 관심 갖지 말게나, 너무 위험해.”
나는 혹시나 싶어서, 시나리오 진행률이 50%를 달성하면서 중립 도시에 등장한 NPC들에게 마계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다.
대부분의 NPC들은 나와 친하지 않아서인지 손을 내저었다.
“마계는 이곳과 법칙이 다른 광활한 세계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딱 한 명.
[부동산 중개업자 한스 / 호감도: 5%]
부동산 중개업자란 NPC가 쓰고 있는 안경을 까딱이며, 그럴싸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혹시, 그 마계란 곳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마계는 마경이란 곳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마경이란 곳이 마계의 초입이라 불릴 만큼 매우 위험하다고 하죠.”
덕분에 나는 마계를 가기 위해선 마경이란 곳부터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애석한 점이.
“이 이상의 정보는 알려 드릴 수가 없군요.”
내게 주어진 정보가 딱 거기까지란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자 한스의 호감도를 높이면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시에나와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호감도 작업은 쉬운 게 아니다.
아마도 한스의 경우 몇 주 이상 시간을 진득하게 투자해야 할 터.
나는 고맙다며 감사함을 표하고는 얌전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헙…….”
“야야, 저기 봐.”
“어? 저분은?”
그리고 내가 부동산을 나서자, 많은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단 며칠 사이 완전히 활성화가 되어 버린 중립 도시.
그 안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우리 사냥꾼 협회 소속 멤버들이지만, 이 외에도 남부 패밀리와 국방부 소속 적응군과 정부 산하 사냥꾼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뭐,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망토를 두르고 투명한 검신을 가진 새하얀 검 한 자루와 깃발이 허공에 둥둥 떠서 나를 쫓아오고 있으니까.
거기에 머리 위로 천사의 고리를 달고 있는 엄청난 미인과 공중을 유영하는 엘프 소녀가 나를 따라다니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엔 다양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역시 쩔어.”
“멋있네.”
존경과 감탄, 자랑스러움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부터.
“어떻게 저렇게 혼자 치고 나갈 수 있는 거지?”
“뭔가, 비밀이 있는 거 아냐?”
부러움과 놀라움, 의심 같은 반응에.
“젠장, 완전히 자기 세상이군.”
“중국에서 수만 명을 죽였다지? 저 사람은 학살자야.”
짜증과 질투, 분노까지.
굉장히 다양한 반응이 존재했다.
당연하지만 사냥꾼 협회 소속이 많은 만큼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고, 그 외의 반응은 얼마 되지 않았다.
“헙!”
“…….”
그리고 날 욕하던 사람마저, 힐끔 쳐다보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도망쳤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나는 태연할 뿐이다.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는 이유가.
나를 욕하다가 걸리면 내 부하라 할 수 있는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 새끼 잡아!”
“감히 협회장님을 욕해!?”
“도망쳐!”
그런 그들의 태도는 다소 광신도스럽긴 하지만, 재밌어 보이니 굳이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사냥꾼 협회 직할 상점]
[사냥꾼 협회 직할 경매장]
[정부 공인 식당 청기와]
[무기 상점]
[잡화 상점]
중립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광장을 거니니, 광장 양옆으로 널리 뻗어 있는 각종 상점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는 NPC들이 운영하는 상점도 있고, 우리 사냥꾼 협회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상점도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단체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들도 생겨날 거라 생각한다.
중립 도시의 상인 NPC들은 모든 몬스터 드롭템을 매입하기 때문에 사냥꾼이라면 중립 도시의 이용이 필수가 됐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이곳을 거쳐 가면 웨이포인트 이동 비용을 세이브할 수 있기 때문에 교통의 요충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 오래 걸리지 않아 완전히 도시가 활성화되겠지.’
겨우 며칠 만에 이런 풍경이 만들어졌는데, 몇 주의 시간이 더 흐르면 어찌 되겠는가.
나는 흥미롭게 중립 도시를 살피며 웨이포인트로 향했다.
“오늘도 결국 하늘섬 세일론으로 향하는 거야?”
“어쩔 수 없죠.”
계속 같은 곳에서만 사냥을 하니 시에나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별수 없다.
아직까지 가장 효율 좋은 사냥터는 하늘섬 세일론이고, 가장 효율 좋은 사냥감은 다크엘프였으니 말이다.
잠시 후, 웨이포인트 앞에 도착한 우린 세일론으로 이동했다.
[2번 조각 보유자 (강이솔)]
-협회장님!
아니, 이동하려 했으나, 꽤나 다급해 보이는 강이솔의 메시지가 예고 없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나는 이동을 잠시 보류하고 메시지창을 열었는데, 곧 강이솔에게서 당혹스러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2번 조각 보유자 (강이솔)]
-기, 김 군이 포함된 최공찬 파티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김 군은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자, 나의 제자 포지션에 있는 인물.
당연히 내 표정은 와락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11번 조각 보유자 (나)]
-그들 모두 귀환 스크롤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2번 조각 보유자 (강이솔)]
-네,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귀환 스크롤을 보유한 사람들이 행방불명이라니,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곧 강이솔이 깜짝 놀랄 정보를 덧붙였다.
[2번 조각 보유자 (강이솔)]
-그래도 다행인 건 그들의 인솔자인 길종혁 씨가 활동 구역을 기록하고 간 게 확인되었습니다. 여의도 지하에 숨겨진 필드 ‘마경의 입구’란 곳인데…….
‘마경’이란 단어의 등장에 나는 즉시 튀어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