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52화 (152/273)

152화 공동 사냥 구역 (1)

“다, 당신들 뭐야?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야?”

워낙 상황이 혼란스러워서인지, 인파에 섞여 잠자코 내 뒤를 따라오던 중년인이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져 왔다.

내가 구조한 인원은 대략 300여 명.

이 중 200명 정도가 대재앙 발생 초기 영문도 모르고 마경의 입구에 붙잡힌 사람들이었다.

그들로선 당혹스러운 게 당연하다.

3달 동안 갇혀 있던 걸 탈출시켜 줬다고 알려 줘도 실감이 나지 않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으니까.

“마술 같은 거야? 어떻게 검과 깃발이 허공에 떠 있지?”

“저기 천사와 귀가 긴 외국인 어린애는 또 뭐고?”

“하, 하늘을 나는 용들과 날개 달린 검은 늑대도…….”

그리고 대개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져 오는 건 가슴팍에 금배지를 달고 있는 양반들이다.

TV나 인터넷에서 몇 번 정도 보았던 것 같은 인물들.

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길종혁에게 그들의 관리를 맡겼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국회의원이란 작자들과 얽히는 걸 정말 싫어했다.

길종혁은 협회의 간부답게 최대한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뭐!? 말도 안 돼!”

“인간이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어떻게 살아!?”

하지만 길종혁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이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단 반응을 보였다.

개중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되레 성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지금 장난칠 때야? 내가 누군지 알고! 당신들 이거 잘못하면 국회의원 납치 문제로 번질 수도 있어! 그거 감당할 수 있겠어!?”

“책임자 누구야! 당신이 책임자야!?”

당연하지만 성을 내며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드는 사람은 적절히 조치를 취했다.

-빠악! 빡!

충격 요법이란 아주 적절한 조치를.

참고로 충격 요법은 정신 공격이 아닌 물리 공격을 동반했으며, 이건 시에나가 아주 잘하는 일이었다.

“컥!”

“끄악!”

작은 소녀가 가볍게 휘두른 손에 뺨을 맞은 국회의원들이 허공에 붕 떠서 10미터씩 날아갔다.

덕분에 사람들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감히 누가 국회의원을 이리 대하겠는가.

“지, 지금 국회의원을 친 거야?”

“국회의원인지 국개의원인지, 난 모르겠고. 정신없는 사람들 동요시킬 거면 차라리 무리를 떠나 단독 활동을 해.”

하지만 나는 가능했다.

지금의 내 위치가 국회의원의 눈치 볼 짬이 아니니까.

그러니 시에나는 거리낌 없이 언성을 높이거나, 버릇처럼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인물이 등장하면 가감 없이 뺨을 날렸다.

그렇게 머지않아 시끄럽게 굴던 국회의원들이 조용해지고.

나는 충고를 덧붙였다.

“다짜고짜 언성부터 높이고 보는 버릇은 없애는 게 좋을 겁니다. 새로운 세상에선 단명하기 딱 좋으니까요.”

아마 한참 어린 우리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굉장히 불쾌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내세울 거라곤 이젠 아무 도움 되지 않는 금배지뿐이었다.

때문에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내 모습에도 두고 보자며 씩씩댈 뿐, 아무도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나는 길종혁에게 다시 그들을 맡겼다.

그에 길종혁은 친절함을 버리고 한껏 무뚝뚝해진 태도로 말을 이었다.

“주변의 기이한 풍경을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우릴 구조해 주신 분들의 복장과 무장도 보시고, 또 그분들을 따르는 짐승의 모습도 보세요. 생각이 있다면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더는 그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예를 차리지 않았다.

저들은 상대가 친절하게 굴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거라 생각할 테니까.

덕분에 우린 3백여 명의 인솔을 쉽게 할 수 있었고.

-키아아악!

“괴, 괴물이다!”

목 잘린 기사 듀라한의 등장에 충격을 받은 이들에게 현실을 알려 주듯, 최대한 잔인하게 몬스터를 처리했다.

“우웁!”

“우엑!”

언데드 특유의 시커멓게 썩은 피와 살점, 내장이 튀자 기세등등했던 국회의원들이 헛구역질을 했다.

“이제 밖이네요.”

그렇게 우린 20여 분을 이동해 출구에 다다랐다.

분명 더 긴 시간이 이동에 소요했었는데, 벤시를 죽여서인지, 출구를 찾아 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환희에 빠진 구조자들.

“어?”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채 3초를 넘기지 않고 굳어졌다.

폐허가 된 여의도의 풍경이 앞서 우리가 말한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여, 여기가 여의도?”

“이럴 수가? 그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고?”

분명 충격이 클 테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 입장에선 하룻밤 사이 세상이 망한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하지만 내 감상은 그걸로 끝이다.

필요 이상으로 그들의 감정에 이입할 생각이 없었다.

이 세상엔 그들보다 더욱 불쌍한 사람이 넘치도록 많았으니 말이다.

“곧 강이솔 씨의 부대가 적응군과 함께 올 겁니다. 길종혁 씨와 최공찬 씨 파티도 그들과 함께 복귀해서 쉬세요.”

죽을 뻔했던 만큼, 당장 싸울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땐 차라리 휴식을 취하는 게 낫다.

“잘못된 판단으로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린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하고, 또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제자인 김 군과 그의 제자인 최공찬을 포함해, 동료들이 위험에 빠져 죽을 뻔했다.

그러니 리더인 길종혁이 책임감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탐색은 사냥꾼의 주요 활동 중 하나이고, 이게 위험한 건 당연하니까.

솔직히 저런 위험한 필드가 서울 한복판에 숨겨져 있을 거라 누가 감히 생각하겠는가.

정신을 장악해서 도망도 치지 못하게 만드는 필드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히 신중하게 활동하도록 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때문에 말로만 타이를 뿐, 그를 직접 벌하지 않았다.

길종혁은 벌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잠자코 넘어갈 인물이 아니다.

분명 스스로를 매질할 테지.

그걸 알기에 이 이상 간섭하지 않았다.

‘아니, 단순하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걸지도.’

목표로 했던 김 군과 그의 일행을 구했다.

인명 구조가 끝났으니, 이젠 마경을 찾던 내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히 내 시선은 마경의 입구 필드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강이솔이 도착하는 것만 보고 다시 국회의사당 지하로 향할 예정이다.

“아, 저기 오네요.”

그래서 잠시 대기를 탔는데.

오래지 않아 강이솔이 자신의 팀원들과 적응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군인이다!”

“사, 살았어.”

이미 내가 다 살려 놨건만, 국회의원을 포함해 구조된 인원 상당수가 군복을 입은 군인의 등장을 크게 반겼다.

“그럼 우린 이만 갈게요.”

“아, 알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쨌든 그들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으니, 그대로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이보게 나 국회의원 성현욱이네! 부디 나 좀 살려 주게! 저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공격했어!”

“마, 맞아! 혹여라도 저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야 하네!”

국회의원 몇 명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사인을 보내다가 이내 비운의 주인공으로 빙의해 헬프 미를 외치며 달려 나갔다.

그들 모두 언성을 높이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려 해서 시에나에게 뺨 한 대씩 맞았던 인물들이었다.

난데없이 국회의원들이 대거 등장하니 적응군의 지휘관은 당황했다.

“아니, 뭐 하는 건가! 우리 말이 들리지 않는 거야!?”

“에잉! 육군 참모총장이 김응수였나!? 대체 부하들 관리를 어찌하는 건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와 권력 구도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더니 저 난리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특권을 누리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인간.

내 눈엔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보였다.

그 꼬라지가 어찌나 우습고 어처구니가 없는지 나는 실소를 흘리며 팔짱을 끼고 이어질 상황을 지켜봤다.

“어? 헉!”

하지만 적응군의 지휘관은 국회의원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게 나임을 알아채곤 기겁했다.

“이, 이 미친놈들이? 비켜!”

그리고 지휘관은 곧 국회의원들을 아무렇지 않게 밀치며 달려와 내게 경례를 올렸다.

“추, 충성.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딱히 그들의 상관이라 할 순 없는 위치지만, 존중하기 위함인지 나를 보면 경례를 올리는 군인들이 상당히 많다.

믿었던 군 지휘관의 행동에 국회의원들이 당황하고.

나는 턱짓으로 그런 그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저대로 두면 사고 칠 것 같지 않습니까?”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휘관은 바로 내게 그들의 처우를 어찌할지 물어 왔다.

“저들이 경험한 상황이 워낙 특수하니, 다짜고짜 목을 치는 건 가혹한 거 같고…….”

그에 나는 다시금 시에나를 바라보았다.

“오케이! 맡겨 줘!”

그리고 그녀가 손가락 관절을 뚜둑 하고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기자,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부대! 뒤로 돌아!”

그에 적응군은 국회의원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이런 거 아닐까?

곧 처절한 비명이 여의도에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뚜둑!

“아악!”

참고로 모든 국회의원에게 철퇴가 휘둘러진 건 아니다.

상황 파악이 빠른 일부 국회의원들은 얌전히 구조자들 틈에 끼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지 않은 어그로 능력 충만한 국회의원들은 시에나의 손에 강제 갱생이 되기 시작했다.

* * *

[숨겨진 필드 마경을 발견했습니다.]

[마경을 최초 발견한 위대한 업적은 명예의 전장에 기록이 됩니다.]

[최초 업적 보상으로 최상급 스킬 선택권을 획득했습니다.]

마경의 입구 필드에서 벤시를 잡자 등장했던 불붙은 거대 문.

나는 그 문을 통과하며 ‘마경의 입구’란 필드의 용도를 깨닫게 되었다.

‘자격 증명을 위한 곳인 모양이군. 이 정도 위기도 이겨 내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아무래도 그곳은 마경에 입장 가능한 사람들을 선별해 내기 위한 장소 같았다.

물론, 100% 확실하다곤 할 수 없지만, 굳이 ‘입구’란 필드가 나뉘어 있는 것을 보면 맞지 않을까?

[마경은 통합 필드로 세계 각지에 자리한 입구를 통해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떠오른 추가 메시지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말이지? 통합 필드?’

설마, 이곳에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는 걸까?

나는 고개를 들어 눈 앞에 펼쳐진 마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산맥이 좌우로 낀,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숲.

녹색 가득한 그 풍경은 마경이란 살벌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너무도 평온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하긴, 여의도 지하에 이런 방대한 땅이 있을 수가 없지.’

아무리 숨겨진 필드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면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이런 공간이 여의도 지하에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마경이란 곳은 완전히 별도의 장소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잠깐? 마경이 통합 필드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각국에 있는 통로를 통해 이곳에 올 수 있다면, 반대로 마경을 통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닐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마경은 단순 사냥터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대륙과 대륙을 잇는 땅이 된다.

물론, 이는 추측이다.

추측이지만…….

왠지 내 생각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새로운 땅! 새로운 모험의 시작!”

모험을 좋아하는 시에나는 드넓은 마경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치 영화 속 내레이션 같은 대사를 내뱉었는데, 그게 묘하게 기대감이 고조시켰다.

“일단 근처에 웨이포인트가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죠.”

우린 비행 펫의 등에 올라타며 여의도를 잇는 문을 중심으로 마경의 탐색을 시작했다.

* * *

[한국인 서** 님께서 마경을 발견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마경을 발견한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뭐!?”

미국 뉴욕에 활동 거점을 두고 있는 사냥팀의 리더 제임스는 오우거의 머리를 부수다 말고 경악했다.

“으악! 퍽X!”

이유는 간단하다.

그와 그의 파티가 오우거를 사냥 중인 장소가 애틀랜타에 위치한 마경의 입구였기 때문이다.

“또! 또 서땡땡이야!?”

제임스는 마경이란 새로운 필드의 정보를 우연히 얻은 후,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필드에 다다르기 직전인 상황인데, 위와 같은 메시지가 뜬 것이다.

물론, 그는 최초 업적 보상을 노리고 마경을 찾는 게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미국 제일 팀의 리더로서 무언가를 달성하기 직전에 서**에게 선수를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라 이젠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네임드 기간트 오우거 바라쿠스 / 레벨: 130]

마침 마경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가 등장하자,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제임스는 잘됐다며 한껏 성난 표정으로 대검을 높이 들고 달려갔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의 움직임은 민첩한 야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제, 제임스!”

“야이 멍청아! 진정해!”

하지만 상대는 레벨 130의 네임드 몬스터.

제임스는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처럼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크큭.”

그러나 제임스는 오뚝이처럼 벌떡 몸을 일으키며 다시금 기간트 오우거에게 달려들었고, 누가 몬스터인지 모를 개싸움을 벌였다.

그런 그의 무식한 모습에 파티원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들도 서**이란 인물이 거슬리긴 마찬가지지만, 제임스의 집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저 자식이 서땡땡을 마주하게 되면 어찌 될지 궁금하긴 하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황소같이 저돌적인 제임스의 전투에, 뉴욕팀 멤버들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기간트 오우거를 사냥해 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들 역시 마경에 진입했다.

마경을 발견했다는 최초 업적이 뜨고 불과 10분 만에 후발 팀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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