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공동 사냥 구역 (2)
‘광활하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숲 지대.
나는 저 멀리 자리한 거대한 산맥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웨이포인트가 안 보여.”
“그러게. 안전 구역의 ‘안’ 자도 안 보이네.”
마경에 온 우린 비행 펫을 이용해 여의도와 연결된 문 주변을 빠르게 날면서 탐색을 진행했다.
하지만 웨이포인트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결국 나와 윌리아는 감시형 오토마타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띄우고, 시에나는 고도를 높여 천리안 스킬로 지상을 살폈다.
“아무래도 더 멀리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린 혹시라도 여의도와 연결된 문의 위치를 잊을까 소극적으로 탐색한 게 없잖아 있다.
하지만 최대 비행 속도가 마하 1에 달하는 룡룡이들의 등을 타고 비행한 만큼 조사 면적은 절대 좁지 않았다.
한국 내의 일반적인 장소였다면 안전 구역 서너 곳은 충분히 발견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말이다.
“설마 웨이포인트가 없는 건 아니겠지?”
때문에 이런 걱정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엔 더 멀리 나가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린 장거리 탐색을 위해 여의도로 나가는 문 주변에 눈에 잘 띄는 특징적인 무언가를 설치하기로 했다.
“매직블록으로 탑을 높이 쌓아서 이정표를 만들기로 하죠.”
게임 속이었다면 좌표를 기억하거나, 미니맵에 마크라도 찍어 놓을 텐데, 현실에선 직접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바깥엔 기존의 표지판들이 남아 있는 만큼, 굳이 지도를 작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광활한 지역에선 지도 작성이 필수인 것 같다.
나침반과 필기도구, 종이는 있다.
인벤토리가 500칸에 가까운 데다가, 아공간 반지까지 있어서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라면 없는 게 없었다.
“그래도 문 근처에 탑을 쌓으면 너무 눈에 띄니까, 문에서 서남쪽으로 10km 떨어진 지점에 이정표를 설치하죠.”
“굳이 그렇게 먼 곳에 설치할 필요 있어? 문 앞에 탑을 설치하는 게 더 직관적이잖아.”
“만에 하나를 위해서요. 다른 나라가 마경에 입장한다면, 되도록 한국과 연결된 문의 위치는 숨기는 게 나을 테니까요.”
“우리 말고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혹시 모르죠.”
“뭐, 좋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알았어.”
물론, 이는 쓸데없는 조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연결된 문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다행히 나침반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네요.”
우린 여의도 문을 중심으로 지도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귀찮지만, 이런 점이 앞서 나아가는 선구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여기가 문에서 10km 지점입니다.”
그리고 1차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윌리아에게 부탁해 대폭발 스킬로 터를 다졌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앙!
폭발의 상위 스킬인 대폭발의 위력은 대단했다.
겨우 5번 사용하는 것만으로 숲의 나무들을 쓸어 버리고 넓은 광장을 만들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매직 콘크리트’란 것을 꺼냈다.
그건 안전 구역 상점에 건축 자재 코너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인데, 현재로선 나만 구입할 수 있다.
이유는 지난달 생존 이벤트가 끝나고 포인트 상점에서 이것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안전 구역 상점 업그레이드 / 100점]
-안전 구역 상점에서 더욱 다양하고 좋은 상품을 판매한다.
덕분에 나는 안전 구역 상점에서 더 좋고 특이한 것들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매직 콘크리트가 그중 하나다.
앞에 ‘매직’이란 단어가 붙은 것처럼, 원하는 형태를 지정하여 콘크리트를 즉시 굳힐 수 있어 편리하다.
[형태를 선택해 주세요.]
나는 윌리아가 만든 광장터에 약 1천 평 규모의 넓은 원형 바닥을 만들기로 했다.
[디자인을 선택해 주세요.]
매직 콘크리트는 형태뿐만 아니라 다른 소재의 느낌을 낼 수도 있는데, 나는 현무암 타일의 느낌이 나게끔 디자인을 선택했고.
[총 92개의 매직 콘트리트가 소모됩니다.]
마지막으로 매직 콘크리트의 소모량을 체크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바닥이 만들어졌다.
“설마 지형이 복구되진 않겠죠?”
“던전도 아니고, 특수 몬스터(네임드, 보스 등) 등장 구역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윌리아의 추측은 대체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만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직 블록’으로 탑을 쌓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매직 블록은 하나의 크기가 2m*1m*1m에 달하는 업그레이드 상점의 신제품.
심지어 크기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서, 신체 능력치가 높은 나는 빠르게 탑을 쌓을 수 있었다.
폭 6m*6m의 탑이 1미터씩 쭉쭉 올라간다.
매직 블록은 굳으면서 자동으로 수평도 맞춰져 대충대충 빠르게 쌓았다.
파티 전체와 펫들이 하늘을 날면서 블록을 쌓으니, 금세 높이 50미터의 탑이 완성되었다.
게다가 매직 블록은 굳으면 이음새가 없어지고, 철근을 넣은 콘크리트 이상으로 견고해진다.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위태로워 보여도, 일부러 파괴하지 않는 이상 자연적으로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멀리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겠네요.”
“훌륭한 이정표네요.”
그렇게 이정표가 설치되었겠다.
우린 본격적으로 장거리 탐색을 이어 가기로 했다.
이제부턴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쭈욱 이동할 것이다.
목적지를 남쪽으로 잡은 이유는 그곳에 험준해 보이는 산맥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눈에 띄는 장소부터 탐색을 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휘이이이익!
우린 최고 속도로 남하를 하며 꾸준히 주변을 살폈다.
그럼에도 웨이포인트는 쉬이 발견되지 않았고, 나는 이곳에 웨이포인트가 없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웨이포인트가 없으면 내가 설치하면 그만이지.’
내겐 2개의 설치형 웨이포인트가 있으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 * *
-콰쾅!
“큭! 역시 마경이란 건가?”
마경과 연결된 미국 애틀란타의 문은 거대한 산맥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 산맥 때문일까?
제임스가 이끄는 뉴욕팀 멤버들은 이곳에 들어선 직후부터 다양한 몬스터와 싸워야 했다.
가장 약한 몬스터조차 레벨이 100에 달하고, 레벨 110, 120의 몬스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들은 레벨 130의 네임드 몬스터조차 해치운 파티.
당혹스럽긴 해도 겨우 이 정도에 당할 만큼 약하지 않았다.
“후우, 힘들다.”
“그래도 보상이 엄청 짭짤해. 성장의 탑을 졸업한 이후, 드디어 제대로 된 사냥터를 발견했어.”
“그건 그렇지. 이제 겨우 서땡땡의 꽁무니가 보이는 느낌이니까.”
제임스의 뉴욕팀은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미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젝트팀으로 얼마 전에 성장의 탑을 졸업한 평균 레벨 107의 파티였다.
제임스는 전위에서 적의 전진을 막는 방어에 특화된 타입.
그런 그에게 미 정부가 얼마 전 떠돌이 상인에게 구매한 유일 등급의 방패 이지스를 건넸고, 덕분에 그의 전투 스타일은 완성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활동하다 보면 서땡땡을 만날 수도 있는 거겠지?”
“마경 입장과 동시에 뜬 메시지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좋아!”
그런 제임스가 가장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서**이란 인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할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
위성 통신이 끊기기 전 미 정부에서 한국 정부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서**은 국가의 지원으로 성장한 게 아닌, 온전히 개인의 능력으로 성장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뉴욕팀 멤버들은 더욱 그가 대단하다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다른 멤버들과 사고 자체가 달랐는데, 자신이 더욱 강해지기 위해선 서**을 잡는 게 필수라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무작정 달려들 생각하지 마. 그는 우리 정부에서 정한 주요 협력 대상이지, 적대 대상이 아니니까.”
“봐서!”
동료들은 서**을 향한 제임스의 집착을 보며 고개를 내저어야 했다.
누군가를 목표로 하는 건 좋지만, 피아 구분을 확실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뉴욕팀은 숲속을 누비며 탐색과 전투를 이어 갔다.
뉴욕팀 멤버 10명은 모두 지상 탑승형 펫을 데리고 있었기에 비전투 상황에서의 이동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응? 스탑!”
“왜 그래?”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문뜩 그린베레(미 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멤버가 동료들에게 정지 신호를 보낸 직후 고배율의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그에 몇몇 멤버들도 그를 따라 망원경을 꺼내 들었고.
“어? 저 불빛은…….”
멀리 떨어진 곳의 하늘에서 간헐적으로 불빛이 번쩍이는 게 보였다.
“스킬 이펙트 같은데?”
“진짜? 그 말은 즉?”
지금 이곳에서 자신들을 제외하고 스킬을 사용할 사람은 딱 한 팀뿐이었다.
“어어? 야, 저 새끼 잡아!”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제임스가 탑승한 와일드 검치호가 속도를 높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동료들이 급히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고고고고!
“피, 피해!”
눈먼 총알처럼 눈먼 스킬 하나가 그들 쪽으로 날아들었다.
기겁한 이들은 황급히 흩어졌다.
하지만.
“제임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함인지, 자신의 방어력을 믿는 건지, 제임스가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른빛의 광선을 향해 유일 등급의 방패 이지스를 자신만만하게 들이밀며 펫에서 뛰어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
“크흐으읍!”
그리고 곧 방패와 푸른 광선이 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제임스는 그 공격을 버텨 냈다.
하지만 방패를 밀고 들어오는 푸른 광선의 압력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제임스는 크게 당황해야 했다.
얼굴은 탈 듯이 붉어지고, 몸은 사정없이 뒤로 밀려났다.
“으앗!”
-구오오오! 콰아아아아앙!
제임스는 끝내 그 공격을 흘리는 데 성공했다.
그의 유도에 따라 푸른빛의 광선은 멀리 떨어진 곳의 지면을 때렸고.
곧 강렬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허억. 허억. 허억.”
상대가 희미하게 보일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든 공격을 막은 것뿐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거친 숨을 들이쉬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야 했다.
“무, 무슨 공격이었어?”
“몰라. 처음 보는 스킬이야.”
상대측에선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서**의 전투력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제임스와 뉴욕팀 멤버들의 표정을 굳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제임스, 꼭 가야겠냐?”
양궁 국가대표 출신의 여성 파티원이 그리 물었다.
서**을 향한 집착이 강한 제임스였으나, 그 물음에는 쉬이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만한 공격을 날리는 상대와 싸우게 되면 자신은 둘째 치고 동료들은 무사하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고민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뭐?”
하지만 서** 일행을 처음 발견했던 그린베레 출신의 멤버의 말과 함께 시선을 옮긴 이들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멀리서 들려오던 전투 소음이 그쳤다 싶었는데…….
-키에에에엑!
전신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드레이크와 은빛의 와이번 두 마리, 새까만 늑대 하나가 그들을 향해 고속으로 날아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검둥이(섀도우 울프) / 레벨: 140]
[룡룡이(플레임 드레이크) / 레벨: 139]
[와일번(미스릴 와이번) / 레벨: 136]
[와이번(미스릴 와이번) / 레벨: 136]
그 몬스터들은 모두 길들여진 펫이었으며…….
그런 펫들의 등에서 세 사람이 뛰어내렸다.
-착.
너무도 가벼운 착지.
제임스는 한눈에 내가 바로 ‘서**이다.’라고 소개하는 듯한 남성과 범상치 않은 모습의 여성들을 마주하곤 말을 잃어야 했다.
그토록 만나보고 싶던 라이벌.
하지만 그와의 첫 만남은 제임스가 바라던 방식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설마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입장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혹시 다치신 곳 없습니까?”
서**, 아니 서백호가 손을 내밀어 오자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극상급 스킬 ‘간파’가 상대가 감춘 정보를 표기합니다.]
제임스는 탐색의 상위 호환 스킬인 극상급의 ‘간파’를 갖고 있었고.
[서백호 / 레벨: 140]
상대의 레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