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공동 사냥 구역 (3)
제임스의 동료인 뉴욕팀 멤버들은 화려한 서백호 일행의 비주얼에 크게 당황했다.
세상이 게임 같아지면서 화려한 디자인의 장비는 그만큼 강하다는 공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서백호 일행의 등장보다도 그런 그들을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들 거라 생각한 제임스의 얌전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보아 왔던 제임스는 강한 상대에게도 물러서는 일 없이 전진하던 인물이었던 만큼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펫들만 레벨이 높은 게 아니야. 서땡땡 본인을 포함한 파티원들 레벨도 140이니까 조심해.]
-흠칫.
그리고 파티원들에게 일시에 텔레파시를 전달하는 제임스의 ‘지시’ 스킬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일행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펫들은 레벨이 20 이상 차이가 나도 길들이는 것이 가능하다.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뉴욕팀 멤버들은 서백호 파티가 능력껏 레벨이 높은 펫을 보유한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펫들의 레벨과 본인들의 레벨이 비슷하다?
‘우린 미국에서도 비교 대상이 없는 제일의 사냥팀. 그런데, 그런 우리보다 레벨이 30 이상 높다고? 그게 말이 돼?’
끽해 봐야 서백호 파티와의 레벨 차이가 십몇 정도 날 거라 짐작한 뉴욕팀이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희들 뒤에 레벨 143의 이블 엘프 암살자란 테이밍 몬스터가 은신해 있으니 조심하고.]
간파 스킬을 이용해 연달아 무서운 정보를 전달해 오는 제임스의 목소리를 들은 뉴욕팀 멤버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이 상태에서 싸우게 된다면 무조건 사망자가 나온다.’
아니, 솔직하게 전멸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비로소 제임스가 왜 저러나 싶었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다른 뉴욕팀 멤버들도 갑자기 인자해짐을 느끼며, 친절한 미소를 띠었다.
물론, 친절한 미소와 달리 등 뒤론 식은땀이 흘렀지만 말이다.
“저, 저흰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에 서백호는 안도했다.
애초에 의도하지 않은 눈먼 공격이었고, 장거리에서 날려졌다 해도 이들이 자신의 공격을 막았다는 데에 흥미를 느낀 서백호는 웃는 낯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너무도 유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해서 자연히 자신들의 출신을 알아봤을 거라 생각했기에 뉴욕팀은 그 물음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 모양과 들려오는 말소리가 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곤, 상대가 통역 아이템 또는 스킬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제임스가 대표로 그 물음에 답을 했다.
“미국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 파티의 리더 제임스라고 합니다.”
“오, 미국 뉴욕! 반갑습니다. 전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백호입니다.”
최초 업적 메시지가 떴던 만큼 자신들이 그에 대해 파악하고 있음을 서백호도 알고 있겠지만, 굳이 이를 입에 담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는 그저 타 대륙 사람의 등장을 반기는 것 같았다.
상대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서인지, 뉴욕팀 멤버들은 그제야 안도감을 느꼈다.
덕분에 좁아졌던 시야가 비로소 넓어지고, 서백호 파티의 면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흐아암.”
자신들에겐 관심이 없는지 허공에 누워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엘프 소녀와.
-생긋.
머리 위로 천사의 고리를 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둥둥.
그리고 어떻게 한 건지 등 뒤로 검 한 자루와 깃발을 허공에 띄운 채 끌고 다니는 서백호는 디자인 좋은 유명 브랜드의 가벼운 의류를 걸치고 있었다.
전장에서 방어구가 아닌, 명품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의아해할 테지만, 뉴욕팀 멤버들은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빛을 엮어 만든 시리즈의 방어구를 세트로 갖고 있군.’
빛을 엮어 만든 시리즈의 방어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가 없는 개념 장비다.
해당 장비 위로는 어떤 옷을 입든 상관이 없고, 아예 알몸으로 다녀도 문제없이 사용자를 보호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희귀 등급의 방어구 중에서도 끝판왕급이라 할 수 있는 그 장비를 세트로 보유하기란, 정부로부터 철저한 지원을 받고 있는 그들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안 그래도 다른 대륙의 상황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잘 되었군요.”
“하하,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백호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비위를 거스르는 순간 대재앙이 닥치는 것이니, 열심히 맞장구를 치는 수밖에.
그리고 그들 역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상황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특히 인구 대국 중국은 두고두고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 중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이전 정권과 그들을 따르던 사냥꾼 세력이 숙청되었거든요. 지금은 온화한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뉴욕팀은 자연스레 중국에 관해 물었고, 그에 돌아온 대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중국에 온화한 정권?
어쩜 이렇게 안 어울리는 단어 조합이 있단 말인가.
“하하, 외세의 도움을 받아 들어선 정권이라 내부 단속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강제로 온화해진 상황이죠. 더구나 정권 교체를 위한 전쟁에서 상대 진영에 속한 고레벨의 사냥꾼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국가적으로 전력 누수가 커진 상황이고요.”
게다가 이어진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지나치게 중국 상황에 빠삭하다.
거기에 중국의 신정권이 외세의 도움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미스터 서도 중국의 전쟁에 참여하신 건?”
그에 서백호는 의문스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의 추측이 맞음을 의미했다.
‘하긴, 레벨 140의 파티가 암살에 나서기라도 하면 누가 막겠어!’
새삼 눈앞의 존재들이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로도 두 팀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차에 제임스는 말실수를 하고 말았는데…….
“언젠가 미스터 서를 뉴욕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 말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백호가 덥석 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 그거 좋네요. 안 될 것 있습니까? 한번 초대해 주시죠.”
“아, 하하하.”
적극적인 그 반응에 제임스는 흠칫 놀랐다.
비로소 상대가 바라던 게 무엇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침 제게 웨이포인트 점퍼란 아이템이 있거든요.”
웨이포인트 점퍼에 대해선 뉴욕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점퍼를 이용해 그를 미국에 데려가는 순간, 국가의 안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무기가 봉쇄된 상황에서 이자가 백악관을 덮치면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해.’
그래서 제임스는 아무 말 못 하고 바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그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흠? 안 됩니까?”
대놓고 물어 오는 통에 제임스는 어찌 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이내 정면 돌파를 택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생각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군요. 솔직히 미스터 서의 존재는 굉장히 위협적입니다. 아직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하니, 초대는 조금 더 교류를 나눈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서백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뉴욕팀 멤버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해야 했다.
“맞는 말입니다. 저라도 제임스 님과 같은 입장이라면 비슷한 반응을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상대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다.
그런데…….
“그럼 미국으로의 초대 대신 다른 걸 청해도 되겠습니까?”
“네?”
“미국팀의 수준이 궁금해서요. 짧게 대련 한번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제임스 일행을 쉽게 놔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더불어 제임스는 서백호의 대련 신청에 억눌러 둔 승부욕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치켜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동료들은 그의 표정을 보곤 말리려 했다.
그러나 제임스는 단호했다.
[두 번이나 부탁을 거절하라고? 그럼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
제임스가 단체 텔레파시 스킬인 ‘지시’로 파티원 전체에 의사를 전달했다.
그의 말대로 연거푸 서백호의 말을 거절했다가는 화를 입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대련 정도로 끝내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서백호와 붙게 될 제임스의 안위였다.
“걱정 마세요. 목숨을 빼앗지는 않을 겁니다.”
서백호가 허튼 말을 할 인물로 보이지 않았기에 뉴욕팀 멤버들은 작게나마 안심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제임스가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실례지만 제임스 님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십니까?”
서백호의 물음에 허풍을 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내 솔직하게 답을 했다.
“몇몇 라이벌이 있긴 하지만, 가장 앞서 나가는 강함을 지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서백호가 옆에 있던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그에 따라 윌리아는 대폭발 스킬을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폭발 스킬은 그들도 갖고 있었지만, 극상급 스킬인 대폭발은 없었다.
때문에 처음 마주한 광범위 스킬의 위용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서백호는 대폭발로 만들어진 공터로 이동했다.
두 사람이 대련하기 충분한 넓이를 가진 공터.
제임스는 잠자코 서백호의 뒤를 따랐다.
-팟.
이어서 서백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내밀자, 그의 손에 새까만 검신에 금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검이 들렸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가진 검이지만…….
“등 뒤에 떠 있는 검은 쓰지 않으십니까?”
그의 등 뒤를 따르는 검이 주력 무기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챈 제임스가 물었다.
그러나 서백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이 검은 대인을 상대로는 지나치게 강한 무기입니다. 아마 단번에 승패가 나뉘게 되어, 대련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죠.”
너무 강한 무기여서 너를 상대로는 뽑을 필요가 없다.
제임스의 귀에 서백호의 말은 그렇게 들렸다.
그에 이를 악문 제임스가 유일 등급의 방패를 앞세우며, 스파크가 번뜩이는 희귀 등급의 한손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그 검을 뽑는 일이 생기게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승부욕 가득한 대사.
서백호는 기대하겠단 얼굴로 새까만 검을 제임스에게 겨누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오십시오.”
제임스는 거절하지 않겠다는 듯 방패를 앞세운 채 달리기 시작했다.
돌격 스킬이 더해진 그의 돌진은 황소처럼 저돌적이고 위협적이었다.
‘쉴드 차지로 밀어붙인다.’
그는 자신의 방어가 절대 뚫리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때문에 몸통 박치기에 가까운 쉴드 차지로 상대를 흔들고, 뇌전계 근접 스킬로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퉁!
하지만 서백호의 검은 제임스의 방패를 너무도 쉽게 밀어냈다.
아니, 정확하겐 방패를 쥔 제임스를 밀어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마치 성문을 두들기는 공성 추처럼 검이 방패의 정중앙을 힘껏 때리자, 거구를 가진 제임스임에도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면서 양발이 붕 떠올랐기 때문이다.
달려든 건 자신인데, 튕겨 나가는 것도 자신이다?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냥꾼이다.
‘크윽! 쉽게 당하지 않는다!’
제임스는 허공에 디딤판을 만들어 자세를 바로잡으며,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슬쩍 본 서백호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으니 말이다.
‘쉴드 배쉬!’
그러나 스킬의 빛을 머금은 그의 방패에선 ‘쿵’ 소리 대신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촤륵!
서백호가 휘둘러진 방패마저 흘리는 묘기를 보여 준 것이다.
“음…….”
그리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서백호의 검이 제임스의 목 앞에 멈춰 있었다.
“어?”
“이, 이럴 수가. 제임스가.”
공격다운 공격 한번 못 하고 단 3합 만에 패한 대련.
제임스는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서백호를 바라보았고, 이내 그의 얼굴에 걸린 아쉬움을 보게 되었다.
아무리 레벨 차이가 크다지만, 제임스는 알고 있다.
자신과 서백호 사이엔 레벨 이상으로 큰 격차가 존재함을.
그 증거로.
‘한 번도 스킬을 안 썼어.’
서백호는 대련에서 단 한 차례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그동안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
제임스는 피가 배어 나올 만큼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 다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번엔 진짜 전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재대련을 요청했다.
서백호는 그런 제임스에 대해 나름의 결정을 내린 상태로 보였다.
때문에 재대결을 내키지 않아 했지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척.
“좋습니다.”
첫 대련에서 사용한 검 대신, 뽑는 순간 단번에 승패가 정해진다는 새하얀 검을 꺼내 쥐었다.
보는 이를 몽롱하게 만드는 투명한 검신의 무기.
“신의 방패!”
-콰릉! 콰아아앙!
하지만 상대의 무기에 취해 있을 순 없다.
때문에 제임스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한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유일 등급 방패 이지스의 내장 스킬로, 극강의 방어력을 전신에 부여하는 스킬이다.
생각 없이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면 강력한 반발력으로 오히려 공격자의 팔이 무기와 함께 부러지고 만다.
그런데.
“갑니다.”
서백호가 섬전과도 같이 검을 휘두르자, 신의 방패 스킬을 사용한 상태에서 느껴질 리 없는 서늘한 바람이 뺨을 간질이고.
‘툭’하고, 그의 앞머리가 뭉텅이로 썰려 허공에 흩날렸다.
“힉!”
그리고 서백호는 나름 재미는 있었다는 인사와 함께 떠났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며, 미국 초대 기대하겠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