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56화 (156/273)

156화 마경 (2)

마경 내의 웨이포인트를 찾아 등록하는 것에 성공한 나는, 잠깐 밖(서울)에 나갔다가 다시 여의도를 통해 벤시가 있던 길을 지나 입구로 돌아왔다.

웨이포인트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여의도와 연결된 마경 입구를 다시 찾아온 이유는 ‘문’ 그 자체에 볼일이 있어서였다.

나는 광활한 마경의 필드를 등지고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숲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문은 지나치게 눈에 잘 띄었다.

“그럼 이제 눈에 띄는 이걸 숨겨야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문을 통과하면 바로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에 다다를 수 있는 만큼, 보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급하게 행동할 필요 없겠지만, 미국팀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빠르게 조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스템적으로 아예 외부인이 접근을 못 하게 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인벤토리를 뒤졌고, 한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그건 바로 이것.

[안전 구역 생성 토템 / 이벤트 상점 아이템]

-1천 평 규모의 나만을 위한 안전 구역을 생성한다. 안전 구역의 이용 비용이 없으며, 주인의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

이벤트 상점에서 100점을 소모해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입장 인원에 제한을 걸 수 있는 안전 구역을 만들 수 있다.

즉, 이걸 사용하면 시스템적으로 외부인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단 뜻이다.

그런데 이 아이템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안전 구역 생성 토템의 설명이 위의 것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던전을 비롯한 특수 지형에는 설치할 수 없다.

이 한 줄의 추가 내용 때문에 토템이 설치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토템 설치를 시도했다.

[특수 지형에선 토템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장 확실하게 문을 지킬 방법이 실패로 끝났다.

미간을 좁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설치형 웨이포인트 / 등급: 희귀]

-원하는 장소에 웨이포인트를 설치할 수 있다.

-웨이포인트가 설치되면, 근처에 직경 100m의 편의 시설 없는 안전 구역이 생성된다.

-안전 구역의 사용료는 일반 안전 구역과 같다.

-비밀번호를 설정하여, 아무나 해당 웨이포인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최초 설치 후, 해체하여 2회 설치 장소를 옮길 수 있다.

설치형 웨이포인트는 장소 제약이 없다.

단, 설치형 웨이포인트로 형성되는 안전 구역은 100평으로 규모가 작고.

허락받지 않은 사람의 웨이포인트 사용만 제한시킬 수 있을 뿐, 안전 구역의 입장까진 막지 못한다.

그럼 설치형 웨이포인트를 왜 꺼내 들었냐 하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설치형 웨이포인트로 안전 구역으로 만들면, 그 위로 토템을 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설치형 웨이포인트’와 ‘안전 구역 생성 토템’을 중복 사용하는 꼼수를 떠올린 것이다.

누가 안전 구역 위로 또 안전 구역을 설치할 생각을 하겠는가.

배때기가 불러야 가능한 사고방식이다.

‘토템의 설치 장소 제약도 안전 구역 내에서라면 없어지겠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성공 확률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안전 구역의 중복 설치가 가능하단 것은 월광도에서 확인했으니까.’

나는 월광도의 기존 안전 구역 옆에 새롭게 토템을 이용한 안전 구역을 설치해 저택과 주변 시설을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두 안전 구역 사이엔 경계가 겹쳐진 곳이 있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복 설치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거다.

‘그럼 바로 설치!’

[웨이포인트가 설치되었습니다.]

나는 우선 설치형 웨이포인트를 사용했다.

그리고 곧바로 앞서 설치에 실패했던 안전 구역 생성 토템을 다시 집어 들었다.

토템은 1천 평의 안전 구역을 생성하는데, 100평 단위로 형태를 지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원형부터 직사각형 등 형태까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설치형 웨이포인트로 만들어진 안전 구역에 토템의 영역을 겹겹이 겹쳐 설정했다.

[안전 구역 생성 토템을 설치하시겠습니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토템을 수락했다.

그런데.

[특수 지형에선 토템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끄아악!”

앞선 빌드업을 모조리 무시해 버리는 싸가지 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덕분에 애꿎은 설치형 웨이포인트의 사용 횟수만 낭비하고 말았다.

잔머리를 굴린 계획이 실패하자 나는 머리를 움켜쥐며 짜증과 아까움을 표현했다.

그런 내게 시에나가 다가와 엄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역시 심플 이즈 베스트, 노가다가 최고여.”

뭐, 이런 노답 상황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래서 최후의 최후의 방법까지 생각해 놨다.

나는 쓰게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빛나는 황금의 삽을 꺼내 들었다.

* * *

“이 정도면 되겠지.”

마경의 문을 숨기기 위해 내가 생각한 최후의 방법은 눈에 띄는 문을 아예 흙으로 덮어 버리는 거였다.

그리고 흙더미에 수풀을 심어서 지옥문을 완전히 숨겼다.

나는 그럭저럭 주변과 잘 동화되는 언덕을 보며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마경의 문은 마치 왕릉처럼 변해 있었다.

다행인 점은 마경의 지면이 평평하기만 한 건 아니라 수풀을 심어도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촤악! 촤악!

나는 마경 상점에서 판매하는 비료까지 뿌려 둠으로써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마경을 탐색해야 하는데 삽질이나 하고 있으니 원…….”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알까?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설치형 웨이포인트는 거둘 거야?”

“나중에 쓸 데 있으면 다시 뜯어 가도록 하고 그전까진 그냥 두죠.”

참고로 여의도와 연결된 마경의 문은 그냥 흙으로 덮기만 한 게 끝이 아니라,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뒀다.

더불어 그 내부 공간과 연결된 은밀한 지하 통로도 만들어 놨고.

“아무튼 이걸로 조치는 충분한 것 같죠?”

내 물음에 윌리아와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도 이게 최선이라 판단했다.

“그럼 이걸로 사전 작업은 모두 끝났네요.”

이젠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 가면 될 것이다.

마경에서 쓸 만한 사냥터를 발굴하고, 마경에서 넘어갈 수 있다는 마계에 대한 조사를 병행할 것이다.

우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설치형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마경 17구역’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발견한 마경 내의 안전 구역인 17구역은.

멀리서부터 이정표 역할이 되어 준 거대한 산맥을 끼고 있었다.

“저길 오르는 거죠?”

“네.”

윌리아가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하는 산맥을 가리키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치 알프스를 옮겨 놓은 듯한 웅장함을 자랑하는 거대 산맥의 봉우리엔 만년설처럼 눈이 덮여 있고.

초입과 중턱까진 완만한 경사를 자랑하는 초원이, 그 이후로는 신체 능력이 초인 수준에 다다른 고레벨의 사냥꾼이 아니라면 오르기 힘든 경사를 갖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여러 등산 장비를 착용해야 도달할 수 있는 장소에서 우린 쓸 만한 사냥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르고스 / 레벨: 150]

전신에 100개의 눈이 달려 있는 끔찍한 외형의 거인이 2~3마리씩 짧은 텀을 두고 리젠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비록 지형이 불편하긴 했지만, 우린 빠르게 적응하면서 기계적인 사냥 패턴을 만들었고, 계속 그곳에 죽치고 앉아 3일 내내 아르고스를 잡았다.

덕분에 우린 레벨을 2개 더 올려 142를 달성할 수 있었다.

2일에 1번꼴로 오르던 레벨이 제대로 된 사냥터를 구하자 3일에 2번꼴로 빨라졌다.

“오! 희귀 등급 근력 반지 또 나왔어.”

그리고 아르고스 사냥의 좋은 점이 또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귀하디귀한 능력치를 높여 주는 액세서리가 잘 나온다는 거였다.

종종 희귀 등급 밑의 특수 등급 액세서리도 뜨긴 했지만, 능력치를 올려 주는 액세서리는 특수 등급조차 매우 귀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전혀 아쉽지 않았다.

덕분에 3일 동안 아르고스만 사냥한 우린 수십 개의 능력치 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응?”

그렇게 정신없이 사냥을 이어 가다 보니, 어느새 생존 기념 이벤트를 하루 앞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거기! 숨어 있는 놈 나와!”

사건 사고는 예고 없이 발생하듯, 평온하게 레벨업을 이어 가던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가 숨어서 우리를 지켜 보고 있단 사실을 감지해 냈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춤추는 단검을 경고하듯 날리며 시선의 주인을 찾았다.

‘몬스터가 가만히 숨어서 관찰할 리가 없어.’

혹시 미국팀 말고 또 다른 국가의 사냥팀이 마경에 입장한 걸까?

낯선 이에게 경고를 하면서 자연히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헉! 도, 동네 주민입니다! 죽이지 마세요!”

“응?”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뜬금없이 동네 주민이라니?

마경에?

나는 수풀 사이에서 울려 퍼진 낯선 목소리에 의문을 표해야 했다.

그리고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윌리아와 시에나를 바라보았더니, 두 사람도 황당하단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지, 지금 나가겠습니다.”

곧 수풀이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웬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을 가진 중성적인 느낌의 소년.

이곳이 마경이 아니었다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호감을 보일 만한 미모를 갖고 있었다.

[나인포(마족) / 레벨: 200(-80)]

-호감도: 0%(관심)

-대상의 레벨이 낮춰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소년의 짧은 프로필을 본 나는 두 눈을 부릅떠야 했다.

태클 걸게 너무 많은 정보.

마족인데, NPC처럼 호감도가 존재하고.

레벨이 200이란 경악할 수치에 놀랐더니, ‘-80’이 뒤이어 눈에 띄었다.

나는 다급하게 윌리아에게 물었다.

[레벨이 200(-80)이면 120이란 뜻인가요?]

[네, 120이라 읽는 게 맞아요.]

단정적인 그녀의 대답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레벨 200의 괴물은 어찌할 방법이 없지만, 120이면 그냥 칼질 한 방에 처치할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입니까?”

호감도가 존재하니, 일단 상대를 NPC로 대하기로 했다.

나는 쥐고 있던 무기를 거두며 물었고, 그에 나인포는 안도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저는 저쪽 세 번째 산봉우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마을의 주민입니다. 우연히 천리안 스킬로 여러분이 아르고스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그 이유는.

-스멀스멀.

내 ‘진실의 눈’ 스킬이 나인포의 말이 거짓이라고 알려 줬기 때문이다.

그의 방문은 결코 우연이나 호기심에 의한 게 아니란 뜻이다.

‘마족이라 그런가, 초면에 거짓말하는 NPC는 처음 보네.’

너무도 꺼림칙해서 마음 같아선 당장 베어 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그렇습니까?”

내가 이성적으로 대응해서일까?

아니면 만만한 호구처럼 보였을까?

“여러분의 아름다운 솜씨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습니다. 그런 여러분께 한 가지 청이 있는데, 혹시 들어 주실 수 없을까요?”

맥락 없이 다짜고짜 부탁을 해 왔다.

보통의 NPC라면 퀘스트라며 좋아했겠지만…….

[나인포(마족) / 레벨: 200(-80)]

-호감도: 0%(관심)

보고 또 봐도 꺼림칙한 녀석이어서, 긍정적으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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