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일단 맞자 (1)
NPC가 퀘스트를 던졌다고 덥석 받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는 여차하면 퀘스트를 거절한다는 마인드로 마족 NPC 나인포에게 대놓고 물었다.
“어떤 부탁입니까?”
NPC도 인간과 다름없는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들도 기계적으로만 행동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한다.
내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일까?
나인포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르고스를 포함해 비슷한 레벨의 몬스터 3종을 토벌하여 놈들이 드롭하는 소재 아이템을 모아 주시는 겁니다.”
겉모습만 봐선 너무도 어리숙해 보여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지만, 나는 그 겉모습에 속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보통 보상은 퀘스트를 수락해야 공개되는 게 일반적인데, 아쉬울 것 없는 나는 수락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보상부터 물었다.
“보상은요?”
“제가 가진 물건 중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예정입니다.”
어물쩍 넘어가려 해도 소용없다.
확실히 마음이 동하는 보상이 걸려 있지 않으면, 퀘스트를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니 말이다.
“보상으로 저 자신을 당신에게 드리겠…….”
-퍽!
나는 시답지 않은 말을 하는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곤 그대로 등을 돌렸다.
저건 얽힐 가치가 없는 존재라 판단한 것이다.
“자, 잠시만요. 충실한 부하가 되겠다는 건데…….”
“동료를 말하는 겁니까?”
NPC 동료 시스템은 사람을 파티원으로 맞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성장을 위해 경험치를 분배해 줘야 한다.
결국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면 3명이 먹던 경험치를 4명분으로 나눠야 한다는 건데,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
뭐, 드워프 NPC 토레프처럼 이것저것 제작을 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특수한 동료도 있긴 하지만, 눈앞의 마족은 토레프 같은 NPC로 보이진 않았다.
“아닙니다. 부하는 동료와 다릅니다. 말 그대로 아랫사람이니까요. 동등하게 대우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 경험치를 분배해 줄 필요도 없으시고요.”
그런 시스템이 있다고?
처음 들었다.
그제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때와 달리 흥미를 표해야 했다.
나는 윌리아에게 물었다.
일단 그의 말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었다.
“네, NPC 중 그런 계약이 가능한 특수 종족이 있습니다. 혼자 사냥을 돌게 해서 알아서 성장하게 하고 아이템 파밍을 해 오게끔 만드는 것도 가능해요. 토레프와 같은 기술은 없어도 이런저런 잡일을 시켜도 되고요.”
꽤나 효율적인 시스템 아닌가.
더구나 별도의 호감도 작업도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윌리아의 애매한 표정을 보니, 그게 다가 아닌 모양이다.
“다만 문제가 동료처럼 강한 공동체 의식으로 엮인 관계가 아닌 만큼, 부하의 의지에 따라 상관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떠나는 게 가능합니다.”
왜 호감도 작업 없이 바로 부릴 수 있나 했더니, 계약 관계라서 그런 거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인포를 바라보았다.
이런 반쪽짜리 시스템이 보상이란 게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알아보십쇼.”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인포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역시 NPC 취급을 받더라도 마족은 마족이란 걸까?
처음 거짓말을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마, 마경의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으신지요! 제가 이곳 구석구석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다급해진 나인포는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 했다.
녀석은 이쪽이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다.
“혹시 마계와 이어지는 길도 알고 계십니까?”
“그럼요. 안 그래도 제가 마계 출신인걸요.”
“그래요? 그런데 왜 여깄어요?”
내 물음에 나인포는 머뭇거렸지만, 아쉬운 건 자기라 생각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추방당해서 그렇습니다.”
“추방?”
마계라고 해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거대 필드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장소가 아닌 모양이다.
특정 인물을 추방한다는 건 그쪽에도 규율이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집단이 존재함을 뜻하니까.
내가 다시금 관심을 보이자, 그는 새로운 정보를 줄줄이 토해 냈다.
“마계엔 다양한 국가가 있습니다. 각 국가를 다스리는 마왕의 밑으로 귀족 계급의 영주들이 존재하죠. 이래 보여도 저는 과거 한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이자 귀족이었습니다.”
마왕과 귀족 계급의 영주.
특이할 것 없는 설정이지만, 시나리오 조각을 포함해 묘하게 영토 관련된 스토리가 많은 것 같은 느낌이다.
설마 나중에 가선 인간끼리 땅따먹기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마족 같은 것들도 끼는 걸까?
“하지만 되지도 않는 누명을 써서 반역자로 몰리는 바람에 모든 재산과 힘을 잃고 이렇게 추방을 당하고 말았죠.”
나인포의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로소 그의 정보가 이해가 되었다.
레벨이 어째서 ‘200(-80)’ 이렇게 표시가 되었는가 했더니, 추방을 당하면서 힘을 잃어 그랬던 모양이다.
나인포는 거기까지 말하고 대뜸 내 앞에 엎드렸다.
“절대 모험가님께 폐를 끼칠 만한 부탁이 아닙니다. 딱히 복수를 위한 부탁도 아니고요. 그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흠…….”
이번에도 거짓말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가 가진 정보가 너무도 매력적이었으니 말이다.
[어떡할까요?]
[저자를 통해 마경과 마계의 지리만 파악해도 손해는 아닐 것 같긴 합니다.]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윌리아와 시에나의 반응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고민을 하던 나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신이 가진 정보에 관심이 가네요.”
“오, 오오!”
내가 마지못해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나인포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나인포의 부탁 / 퀘스트 등급: 최상]
-내용: 나인포가 원하는 소재 아이템 3종을 구해다 주자.
1. 아르고스의 수정체 50개
2. 그리폰의 부리 50개
3. 히드라의 송곳니 50개
-보상: 나인포를 부하로 영입
“그리폰은 아르고스와 레벨이 같은 150이고, 히드라는 160입니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리폰과 히드라가 등장하는 구역이 어딥니까?”
내 물음에 그는 이웃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유일하게 눈이 덮이지 않은 산봉우리 보이십니까?”
“네.”
“저 산엔 불의 정령이 많아 주변에 비해 따뜻한 편입니다. 그리폰은 그 산 중턱에 서식하고 있고, 히드라는 산봉우리의 분지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나름 귀한 정보라 할 수 있다.
사냥터의 정보인 거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퀘스트 수락 후, 나인포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하고는 그대로 물러났다.
나인포는 마족답게 그다지 신뢰가 가는 타입의 NPC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첫 만남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해 놓고, 우연히 접근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가 마경과 마계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나는 진실의 눈 스킬이 있어서 거짓말에 속지 않으니까.’
정보를 가려 받을 능력이 되는 만큼, 나인포의 지식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르고스의 수정체는 지금 가진 수량으로도 충분하잖아?”
“네, 맞아요.”
퀘스트 아이템은 아르고스의 수정체와 그리폰의 부리, 히드라의 송곳니 세 개다.
하지만 그중 하나는 이미 클리어가 된 상태다.
우리가 3일 동안 아르고스 사냥터에서 죽치고 사냥만 한 만큼, 수정체의 보유량이 500개가 넘었으니 말이다.
“그럼 바로 그리폰이랑 히드라 잡으러 갈까?”
시에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굳이 뜸을 들일 필요는 없으니까.
“아, 하지만 그 전에.”
“그 전에?”
나는 나인포가 물러난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을 대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의문을 표하는 시에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이내 윌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주군.”
서백호 일행에게서 벗어나 어느 동굴 안에 들어선 나인포에게 한 무리의 마족들이 다가왔다.
[안드레 / 레벨: 190(-80)]
[타미라 / 레벨: 185(-80)]
그들은 나인포처럼 레벨이 다운된 마족들이었다.
씁쓸함이 가득 담긴 그들의 인사에 나인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무례한 놈들이었습니다. 감히 주군의 무릎을 꿇게 만들다니…….”
“힘을 찾으면 반드시 놈들을 주군 앞에 꿇리겠습니다.”
나인포는 분개하는 부하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무릎 한번 꿇는 게 무슨 굴욕이겠어? 지금의 삶이 더 굴욕적이지.”
그런 그의 반응에 부하들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차기 마왕이라고까지 불리던 분께서 어찌.”
“됐어.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마.”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부하들의 모습.
하지만 나인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가 나라에서 촉망받는 뛰어난 인재들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지금은 남루한 차림으로 사냥을 하며 근근이 먹고 살고 있지만, 절대 지금의 삶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인포 자신 역시 마찬가지고.
“나는 오히려 행운이라 생각해.”
“네?”
“빠져나오기 힘든 반역 누명 속에서도 추방으로 끝난 데다가, 재기의 가능성까지 손에 넣었잖아. 더구나 모험가를 이렇게 빨리 만날 거라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어? 덕분에 마계의 감시자가 투입되기도 전에 편하게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됐잖아.”
모든 일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던가?
야망을 품은 나인포의 이야기에 모두가 그건 그렇다며 수긍했다.
덕분에 부하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럼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 다시 복권의 기회를 노리는 겁니까?”
“오오!”
하지만 이어진 나인포의 대답은 그의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거였다.
“아니, 마계엔 다시 안 돌아갈 건데?”
“예?”
부하들은 바보 같은 표정으로 반문을 했고, 나인포는 생각해 보라며 그들을 설득했다.
“가 봤자 사방에서 두들겨 맞기밖에 더 해? 차라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게 낫지.”
“새로운 보금자리요?”
“마경이어도 되고, 아니면 모험가들의 세상이어도 되지. 우리가 본래의 힘만 찾으면 그 두 곳에선 얼마든지 왕 노릇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아…….”
나인포는 서백호에게 했던 이 말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절대 모험가님께 폐를 끼칠 만한 부탁이 아닙니다. 딱히 복수를 위한 부탁도 아니고요. 그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그는 현실적인 인물인지라 이미 복수를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울 서백호에게도 아량을 베풀어 그가 활동하지 않는 지역을 차지할 생각이고.
때문에 나인포의 입장에서 그 말은 거짓말이라 보긴 힘들었다.
“오오, 과연 영민하십니다.”
부하들 입장에선 마경은 둘째치고 자신들이 모험가라 부르고 있는 자들의 세상에서 활동할 생각을 한 번도 못 해 본 만큼, 감탄사를 흘렸다.
그들이 힘을 회복한다면 나인포는 레벨이 200이고, 부하들도 모두 170 이상이다.
이 정도면 모험가(사냥꾼)들의 세계에서 충분히 왕 노릇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들은 지금 레벨 제한이 걸린 상태란 건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인포가 서백호 일행을 찾아간 거였다.
그가 서백호 일행에게 구해 달라고 청한 아이템들이 레벨을 낮추는 저주를 풀기 위한 물건들이었다.
“놈들이 가져온 재료로 저주를 풀면 부하 계약은 바로 파기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부하들은 하나같이 나인포를 찬양했다.
하지만 나인포와 그의 부하들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저벅. 저벅.
그건 바로 그들이 손을 잡고자 한 인물은 모험가 중에서도 특출난 존재란 것을.
“응?”
나인포와 부하들은 동굴 입구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발걸음 소리에 의문을 표하며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곧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였나?”
“헉! 모, 모험가님?”
어째서인지 그곳에 서백호의 일행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을 위해 미행을 붙여 두길 잘했네.”
이어서 나인포의 뒤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이블 엘프 암살자이자 윌리아의 펫인 ‘다켈프’였다.
설마 은신을 사용한 암살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왔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나인포는 기겁해야 했다.
“오, 오해입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나인포는 변명을 하려 했지만…….
“너는 일단 좀 맞자.”
서백호는 즉각 허리춤에서 듀랜달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