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58화 (158/273)

158화 일단 맞자 (2)

미국을 대표하는 첫 번째 사냥꾼팀은 신의 방패 이지스의 주인인 제임스가 이끄는 뉴욕팀이다.

그리고 그런 뉴욕팀의 뒤를 잇는 라이벌이 서부의 로스앤젤레스(LA)팀이었다.

제임스가 마경에서 서백호 일행을 조우하고 3일이 지난 상황에서 제임스의 파티는 평균 레벨 110을 달성한 상태이며, LA팀 메인 파티의 평균 레벨은 105였다.

LA팀 역시 뉴욕팀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코인을 긁어모아 떠돌이 상인에게서 유일 등급의 장비를 사서 건넨 뉴욕팀에 비할 수준의 지원은 아니었다.

때문에 뉴욕팀이 정부 직할 사냥팀의 색이 강했다면, LA팀 또한 친정부 성향인 건 비슷해도 민간 사냥팀이란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 LA팀을 이끄는 인물을 처음 보면 모두가 놀라곤 했는데, LA팀의 리더가 작은 체구를 가진 동양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제, 제발 도와주세요!”

비단과도 같은 흑발을 포니테일 형태로 묶어 올린 예쁘장한 여성.

LA팀의 리더이자 재미 교포 3세(한국계) ‘클로에 주’는 정부의 부름에 백악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앞으로 작은 아기를 안은 흑인 여성이 다급히 달려와 막는 바람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흑인 여성과 클로에는 일면식 하나 없는 사이.

하지만 이런 일은 제법 흔했다.

고레벨의 사냥꾼에게 구걸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콩고물이 떨어지기도 하니까.

“헤이, 공주님. 그 여자 우리가 치울게.”

난입한 여성의 모습에 클로에의 동료인 거구의 흑인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 남성을 포함해 클로에의 주변엔 하나같이 험악하게 생긴 남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로에는 여성이 안은 아이를 바라보더니, 동료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혹시 아이가 아픈 거야?”

담담한 클로에의 물음.

그에 흑인 여성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틀 동안 아이에게 아무것도 먹이질 못했습니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은 없고?”

“네, 한 달 전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려 모두 죽었어요.”

클로에는 흑인 여성을 자세히 살폈다.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삐쩍 마른 모습.

고개를 끄덕인 클로에가 동료인 거구의 흑인을 불렀다.

“다니엘.”

“하아, 알았어.”

따로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어떤 부탁을 할지 알아들은 흑인 남성은 여자와 아이에게 상급 치료 스킬을 사용해 주었다.

밝은 빛이 전신을 감싸자 허기가 가시며 몸의 상태가 좋아짐을 느낀 흑인 여성은 아이를 살폈다.

아이도 이틀 동안 제대로 먹질 못해 기운이 없었고, 열까지 났었으나, 깔끔하게 상태가 호전되었다.

“자. 받아.”

그리고 클로에는 그녀의 앞에 1,000이란 숫자가 쓰인 코인 하나를 던져 주곤 가던 길을 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선뜻 도움을 주는 클로에의 모습에 반쯤 도박하는 심정으로 앞을 막아섰던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전했다.

“1천 코인?”

“1천 코인을 그냥 줬어.”

하지만 클로에의 행동은 경솔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군말 없이 코인을 던져 주는 그녀를 본 백악관 주변 생존자가 하나둘이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여기저기 쥐 죽은 듯 있던 생존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클로에는 마치 걸어 다니는 ATM기로 보였다.

그녀의 주위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거한들은 무섭지만,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성은 만만해 보이기도 했고.

“제발 도움을!”

“배, 배가 고파요!”

그에 몇몇 사람들이 앞선 흑인 여성처럼 클로에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클로에의 반응은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당신들, 사지 멀쩡해 보이는데? 한시도 품에서 뗄 수 없는 갓난아기도 없는 것 같고.”

클로에의 일그러진 표정 속에 짙은 혐오감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걸하던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호 구역을 나가서 몬스터와 싸우면 코인을 벌 수 있잖아? 왜 그걸 안 해?”

클로에의 물음에 앞을 막아선 이들의 말문이 막혔다.

동시에 클로에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누구나 노력하면 강해질 수 있는 세상이야. 나같이 작은 여자도 몬스터와 싸우는데, 어째서 당신들은 안전한 장소에 숨어서 살면서 구걸이나 하냐는 거야.”

이어서 클로에의 눈빛에 광포한 기운이 서린다.

침착하고 진중해 보이던 그녀의 모습이 180도 바뀌었다.

‘도. 망. 쳐.’

그리고 클로에의 뒤에 서 있던 거구의 흑인 다니엘이 그렇게 입 모양을 벙긋거렸다.

“구걸하는 게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편해 보여? 그럼 그 생각을 고쳐 줘야겠네. 구걸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걸.”

광기라 표현해도 좋은 미소가 클로에의 얼굴에 깃들며, 이어진 것은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빠악! 퍽! 퍽!

“끄아아악!”

“무, 무슨!?”

동료들이 클로에를 호위하듯 둘러싼 이유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리더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녀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LA에선 감히 그녀에게 구걸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클로에는 이유 없는 약자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끄으으.”

“사, 사람 살려…….”

클로에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다.

주먹질 한 방에 코가 주저앉고.

발길질에 정강이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거침없는 폭행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낀 이들이 그녀의 동료들에게 구해 달라며 도움을 청했으나, 그들은 묵묵히 폭행을 지켜볼 뿐이었다.

덕분에 누군가는 까무러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실금하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흉흉한 분위기가 주변을 잠식해갈 때.

“그만해!”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을 구해 주었다.

커다란 방패를 짊어진 백인 남성이 블링크로 나타나 클로에의 손을 낚아챈 것이다.

“이게 누구야? 미국의 엉덩이 캡틴 제임스 아닌가?”

그는 바로 미국 대표 사냥꾼이자, 뉴욕팀의 리더인 제임스였다.

클로에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우리 제임스 군은 아직도 착한 척하고 다니나 봐?”

“그러는 너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네.”

제임스가 클로에를 묶어 놓는 동안, 제임스의 동료들은 떡이 된 피해자들을 치료해 준 후 돌려보냈다.

클로에는 혀를 차며 제임스에게 말했다.

“팔 놓지? 안 그럼 내 동료들이 금방이라도 공격할 거 같은데.”

제임스는 슬쩍 주변을 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LA팀 멤버들이 금방이라도 무기를 뽑아 들것처럼 위협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건 결코 위협이 아니었다.

클로에가 명령하면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공격을 가할 것이다.

“여전하군, LA의 공주님과 친위대는.”

“어쩌라고.”

결국 제임스는 클로에의 팔을 놓아주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너 한국계였지?”

그리고 제임스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지만, 클로에는 코웃음을 치며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클로에의 뒷모습을 보며 제임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 * *

미서부 대표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의 사냥팀과 미동부 대표 도시인 뉴욕의 사냥팀은 활동 구역이 워낙 멀리 떨어진 만큼 서로 왕래가 많지 않지만, 한 달에 딱 두 번.

정부가 주도하는 대회의에선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에와 제임스가 또 다퉜다며?”

“정확히는 클로에의 폭주를 제임스가 막은 거지.”

“제임스는 위선자야. 나는 클로에의 행동이 통쾌해서 좋아.”

“그래도 시민 폭행은 심했지.”

뉴욕팀과 LA팀은 라이벌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사냥팀이다.

두 파티의 평균 레벨은 각각 110, 105이지만, 이 두 팀을 제외하고 평균 레벨이 100을 넘는 단체는 없다.

3위 단체인 워싱턴팀의 평균 레벨이 93임을 생각하면 제임스와 클로에 팀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두 단체는 사냥꾼들 사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백악관 앞에서 벌어진 클로에의 시민 폭행 건과 제임스와의 충돌을 많은 이들이 지켜보았던 만큼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끌벅적하던 대회의실의 분위기가 대통령의 등장과 동시에 가라앉았다.

모두가 대통령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도 제임스와 클로에의 충돌을 알 테지만, 굳이 끼어들어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오늘은 본 회의에 앞서 뉴욕팀에서 새로 발견한 필드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먼저 알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대통령의 설명.

그에 당사자인 뉴욕팀을 제외하고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뉴욕팀의 리더 제임스가 앞으로 나섰다.

“3일 전 우리 파티는 마경이란 필드에 들어섰습니다.”

마경에 대해선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서**이란 인물이 최초 방문으로 업적 메시지를 띄운 곳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흥미롭단 얼굴로 제임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경엔 레벨 100 이상의 몬스터들이 수두룩합니다. 저희가 3일간 탐색하는 동안 레벨 150대의 몬스터까지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탐색 범위는 마경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더욱 깊은 곳엔 어떤 몬스터와 어떠한 위협이 있을지 알 수 없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장의 탑을 벗어나고도 꾸준히 성장을 이어 갈 수 있는 훌륭한 사냥터가 될 것이란 점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흥미를 넘어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특히 새로운 사냥터에 대한 열망이 큰 클로에의 관심이 컸다.

하지만 계속된 제임스의 이야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마경은 각국에 숨겨진 문을 통해 입장할 수 있는 통합 필드이기 때문이죠. 즉, 하나의 필드에서 여러 나라가 같이 활동을 하게 되는 만큼 영역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단 의미입니다.”

“으음…….”

얼마든지 다른 나라와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장소.

그런데 클로에는 제임스의 경고에도 크게 상관없지 않냐는 태도로 물었다.

“미국이 경계할 세력이 있을까?”

오만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이 다른 세력에게 밀린다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건 클로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미국만큼 안정적으로 힘을 키워 가는 나라가 없었으니 말이다.

“있어. 그러니까, 본 회의에 앞서 다급하게 내가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단호한 제임스의 반응.

클로에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잠자코 제임스의 말을 기다렸다.

제임스는 스윽 좌중을 살피며 위협이 되는 세력을 밝혔다.

“아마 모두 머릿속에 중국이나 러시아 등 기존 라이벌들을 생각하고 계시겠죠.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곳은 바로 한국입니다.”

뜬금없는 한국의 등장.

덕분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서**을 떠올렸다.

그는 제임스보다 앞서 마경에 진입한 최초 업적을 달성했다.

혹시 서**이 한국의 사냥팀들을 마경 안에 배치하고 있는 걸까?

“우린 얼마 전 한국의 서땡땡과 조우하고 그와 1:1로 검을 맞댄 일이 있었습니다.”

서땡땡과 검을 맞댔단 말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는 제임스의 이야기에 모두 충격을 넘어 공포를 느껴야 했다.

“제, 제임스를 스킬조차 쓰지 않고 가볍게 3합 만에 제압했다고?”

“스킬을 사용한 제2차전에선 칼질 한 번에 패하고?”

제임스가 어떤 인물이던가?

비교 상대가 없는 극강의 탱커다.

신의 방패 이지스를 지닌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수백 명이 합동 공격을 해도 막아 낼 수 있는 존재.

그런 그를 힘들이지 않고 제압했다는 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당시 마주한 서땡땡 파티의 평균 레벨은 140이었습니다.”

“헙…….”

이제야 제임스가 본회의에 앞서 나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괴물을 어찌 취급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그런 괴물이 속한 한국의 수준이 쉬이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연이라 해야 할지…….

“한국인은 뭔가 특별한 걸까?”

미국 내에서 제임스의 라이벌인 사냥팀의 리더도 한국계였다.

모두의 시선이 클로에에게 향해지고.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그녀의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