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일단 맞자 (3)
클로에는 한국인을 특별 취급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코웃음을 쳤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릴 때부터 온갖 차별을 받아왔는데, 인제 와서 자신의 출신에 대해 경외심 같은 걸 표해 봤자 웃기기만 할 뿐이었다.
“뭘 봐.”
그녀의 냉소적인 반응에 사람들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클로에 주’는 친위대라고도 불리는 LA팀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LA팀 밖의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혹은 세력을 철저히 부숴 버리는 성격으로 유명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LA팀의 리더로서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압도적인 전투 센스다.
만약 제임스에게 유일 등급의 장비 이지스가 없었다면 클로에가 더 뛰어난 전투력을 갖고 있을 거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런 그녀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 다들 시선을 피하는 거였다.
“그래서 어쩌자고?”
클로에가 제임스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그에 제임스는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서땡땡의 본명은 서백호, 한국의 대규모 사냥꾼 단체를 이끄는 리더이며 전력을 다하면 얼마나 강할지 감히 파악조차 되지 않습니다.”
“대충이나마 예측해 본다면 어느 정도일 거라 생각합니까?”
“아마 저 같은 놈이 떼로 덤벼도 소용없겠죠. 그의 레벨은 140이지만, 실질 무력은 표기된 레벨 이상일 겁니다. 그러니 그리 빠른 성장을 이어 간 것이겠죠.”
제임스의 단호한 평가에 대회의장의 모두가 침음을 흘렸다.
“서백호와 맞서게 될 경우 우린 큰 타격을 입을 겁니다. 만약 그가 미국의 중추로 침입하게 된다면…….”
“백악관이 날아갈 수도 있단 건가?”
적절히 끼어든 대통령의 물음에 제임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직 대재앙이 시작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괴물이 벌써부터 등장하다니.
모두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그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이 기회에 확실하게 한국과 손을 잡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한국을 적대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고, 아무런 조치 없이 무시하기엔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다.
결국 선택지는 제임스의 말대로 손을 잡아 같은 편이 되는 것뿐이었다.
“난 솔직히 제임스의 말이 그다지 안 믿겨. 너무 허무맹랑하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좌중의 분위기는 제임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미국엔 똑똑한 사람이 많지만, 멍청한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가 돌듯,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위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한국과 미국을 동맹으로 엮으려는 이유가 바로 저런 사람들이 있어서다.
만약 저런 사람들이 사고를 일으키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그전에 우호적으로 관계를 구축해 두려는 거였다.
그래서 제임스가 뭐라 말하려 했는데.
“지랄하네. 제임스 방패질 한 방에 나가떨어질 새끼들이 뭐라고 목에 힘을 주고 있어.”
웬일로 클로에가 제임스를 지원했다.
서백호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지만, 클로에는 바로 곁에 있는 위협.
때문에 부정적인 발언을 했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닫았다.
“입만 나불대는 너희들보다 제임스가 압도적으로 강해. 그런 제임스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인물이 등장했다는데 군말이 많아?”
제임스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마치 클로에에게 뭐 잘못 먹었냐는 듯.
“에이씨, 작은 계집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하지만 거침없는 클로에의 반응에 반발하는 이가 아예 없진 않았다.
참고 있다가 폭발하듯 언성을 높이는 백인 남성의 외침에 주변 사람들은 헛바람을 삼키고.
반대로 클로에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서걱.
남성은 더 이상 떠들지 못했다.
그의 목젖이 길게 베였기 때문이다.
어찌나 깔끔하게 베였는지,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상급 포션 하나면 치료될 부상인지라 죽을 일은 없었지만, 클로에의 공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그는 창백하게 얼굴이 변하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즘 내가 너무 얌전히 굴었나? 또 나한테 불만 있는 놈들 손들어 봐.”
대통령을 앞에 두고도 망설임 없는 실력 행사.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퍽X! 아무것도 안 보였어!’
결국 대통령이 입장상 클로에에게 한마디 했다.
“클로에 팀장, 지나치군.”
“죄송합니다. 각하.”
클로에는 대통령에게만큼은 함부로 굴지 못하고, 바로 사과를 건넸다.
어쨌든 그녀 덕분에 듣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제임스는 주위를 둘러보곤 재차 말을 이었다.
“제 말을 신뢰하건 신뢰하지 않건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들과 적대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신뢰 여부를 떠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말.
그건 지극히 타당했다.
제임스의 주장에 동의한 건지 클로에에게 겁을 먹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더는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었고.
대통령이 나서며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대충 상황은 정리된 듯하군, 우리 정부도 제임스 팀장의 의견에 동의하는바, 한국과 동맹을 추진하네. 이건 과거의 동맹 체제와 결을 달리하며, 양국이 공인한 사냥꾼 단체의 상호 협력을 기본으로 할 것이니.”
그리고 대통령은 제임스와 클로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임스는 둘째치고 대통령이 자신을 보며 웃자 클로에는 찜찜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고.
“동맹에 대한 전권 대사로 제임스 팀장과 클로에 팀장을 임명하는 바이네.”
“네!?”
이어진 대통령의 발언에 클로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LA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부모 모두 한국계 2세이고, 자네는 어려서부터 한국어 교육을 받았다 들었네만?”
“그, 그렇긴 해도…….”
“그럼 자네만큼 적임자도 없지. 대신 성질 좀 죽이게나.”
생각을 바꿀 여지가 없어 보이는 대통령의 모습에 클로에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해야 했다.
* * *
마경의 어느 동굴에서 마주한 마족들의 본래 레벨은 170~200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마계에서 쫓겨난 죄인 신세로 레벨이 무려 80이나 깎였고, 현재는 레벨 90~120 수준이 되었다.
“끄아아악!”
“꾸엑!”
즉, 내가 휘두른 검에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단 뜻이다.
나는 듀랜달을 검면으로 휘둘러 몽둥이로 사용했고, 내게 퀘스트를 주었던 ‘나인포’와 놈의 수하들은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번호.”
“하나!”
“둘!”
“셋!”
그렇게 일방적인 폭행은 30분간 이어졌고, 놈들의 의지를 완전히 꺾은 나는 군대식 체벌을 주었다.
“스물하나 번호 끝!”
놈들의 숫자는 나인포를 포함해 스물하나.
나는 이것들을 어찌 처리할지 고민했다.
몬스터면 그냥 죽이고 말 텐데, 일단 이 마족들은 모두 NPC로 분류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NPC를 죽여도 되나?’
중국 내전에 참여했던 나는 누군가의 동료가 된 NPC를 죽여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동료와 달리, 생 NPC를 죽여도 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죽여. 이런 놈들을 살려 줄 필요 없지.”
그런데 이어진 시에나의 말.
“죽여도 상관없는 거예요?”
“뒤통수치려고 한 놈들이잖아. 안 될 거 없지.”
덕분에 나는 이들을 죽여도 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몽둥이로 휘두르던 듀랜달을 검면이 아닌, 검날이 전면으로 향하게 고쳐 쥐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절대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나인포를 포함한 놈의 수하들이 일제히 내 앞에 바짝 엎드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그조차 개수작이라 여기며 유언이나 물으려 했는데.
[퀘스트 ‘나인포의 부탁’의 보상 수준이 상향됩니다.]
“응?”
갑자기 뜬 메시지에 검을 거뒀다.
[나인포의 부탁 / 퀘스트 등급: 최상]
-내용: 나인포가 원하는 소재 아이템 3종을 구해다 주자.
-보상: 나인포를 포함한 휘하 세력을 부하로 영입, 1년간 강제 복종(계약 파기 불가)
그 내용이 꽤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레벨이 복구된다면, 고레벨의 부하들이 대량 생산되는 것 아니겠는가.
“죽이지 말고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제 복종이면 죽음조차 명할 수 있을 만큼 강도 높은 겁니다. 놈들의 저주를 풀면 전투에도 도움이 될 테니, 여러모로 쓸모 있지 않을까요?”
“보상이 저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나도 굳이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윌리아의 주장에 앞서 처단을 제안했던 시에나도 동의했다.
그리고 나 역시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은지라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더 뱉을 거 없어?”
나는 지금의 놈들이라면 더 빼먹을 게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흉흉한 예기를 발하는 듀랜달의 칼날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으며 더 큰 보상을 요구했고.
“제, 제가 힘을 회복하면 부릴 수 있는 소환형 악마가 있습니다. 그걸 양도하겠습니다.”
[퀘스트 ‘나인포의 부탁’의 보상 수준이 상향됩니다.]
“그 외엔?”
“네? 그, 그 이상은……. 빈털터리로 쫓겨나서 가진 게 없습니다.”
“그래?”
소환형 악마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엎드려 있던 나인포를 손수 일으켜 주었다.
“착하게 살면 이런 일이 없었잖아.”
“죄, 죄송합니다.”
완전히 피떡이 돼서 사과하는 나인포를 보며,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치료 스킬 부탁드려요.”
“네? 네.”
내 지시에 윌리아는 마족들에게 치료 스킬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끄에에엑!”
“으악!”
“죄, 죄송합니다!”
나인포와 부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맞다.”
이놈들 마족이었지.
얼떨결에 마지막까지 고문을 하고 말았다.
덕분에 놈들은 완전히 나를 악마 보듯 바라보았다.
* * *
이번 퀘스트는 여러 특수한 상황이 겹치고 겹쳐 발생한 것이기에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마계에서 추방당한 귀족 등급의 마족과 그 휘하 부하들을 부린다라…….’
때문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퀘스트를 진행했다.
보상이 후한 퀘스트를 진행하는 건 기대감 때문인지 꽤나 재밌었다.
퀘스트 내용은 3종의 몬스터로부터 소재 아이템을 수집하는 일.
그중 1개를 클리어해서 이제 2종의 몬스터, 그리폰과 히드라로부터 소재를 수집하면 된다.
“응?”
그런데 나는 그리폰과 히드라가 산다는 산맥으로 향하던 중, 예상치 못한 인물들과 조우하고 말았다.
“제하.”
제임스 하이란 뜻으로, 그들은 바로 미국팀의 멤버들이었다.
이 주변엔 제법 고레벨의 몬스터가 나와서 그를 마주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이었다.
“백호 님! 안 그래도 백호 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사냥터가 겹친 건가 싶어 활동 구역의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반응을 보니 이곳에 온 게 사냥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결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목적을 물었다.
“실은 백악관에서 미국과 한국의 동맹을 맺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와서 그 사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동맹이요?”
한국과 미국은 이미 동맹 관계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그 동맹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니 새롭게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로선 이 상황이 공교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한국과 미국은 왕래가 끊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임스의 입김이 작용한 겁니까?”
내 물음에 제임스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서백호 님과 만나게 되면서 한국에 절대 대항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백악관을 설득했습니다.”
전모를 알게 된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에 제임스는 불안해했지만, 나는 딱히 그들을 모질 게 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내 목적은 생존.
타국의 전복이 아니었으니까.
어쩌다 보니 중국과 일본은 살짝 건들고 말았지만,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까지 건들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 다른 미국의 실력자인가 보군요?”
[클로에 주 / 레벨: 106]
제임스 팀 외에도 레벨 100이 넘는 실력자들의 세력이 더 존재하는 것을 보면 미국의 저력도 무시할 순 없었다.
“아, 그녀는 저희 뉴욕팀의 라이벌인 LA팀의 리더입니다. 재미 교포 3세로 한국어를 잘해서 동맹 건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죠.”
“그래요?”
한국계 여성이 LA 지역을 대표한다는 게 꽤나 신기한 일.
나는 같은 민족이라는 것에 호의를 느끼며 클로에 주라는 여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통역 아이템을 통한 것이 아닌, 직접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 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을 배배 꼬는 건지.
꽤나 쑥스러움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