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유명세 (1)
무당파라는 무협 속 단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도가 계열이라는 단체적 특성이 아닌 그들의 무공 ‘태극권’이다.
음과 양의 조화, 아무리 강한 공격도 상쇄하거나 반사하고, 적을 빠르게 무력화시키는 매우 강력한 무공.
이러한 묘리는 맨손 격투뿐만 아니라 검을 비롯한 무기술에서도 적용되며, 태극검이나 태극혜검은 무협지 좀 읽어 봤다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검술이다.
-고고고고고고!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무당파의 장문인이라 밝힌 그가 천벌 스킬을 마주하면 어찌 반응할지 궁금했다.
무당파답게 태극의 묘리를 살려 공격을 튕겨 낼까?
아니면 극강의 공격에 맞서기보다 흘려 내는 능력을 보여 줄까?
하늘을 뚫고 하강하는 거대한 검은 넓은 공격 범위도 범위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미사일 수준이라 몸을 날려 피하는 게 쉽지 않다.
‘오?’
나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무당파 장문인 ‘진후에이’의 움직임을 살폈는데, 놀랍게도 그는 천벌 스킬이 사용되자마자 공격을 감지해 내며 빠르게 반응했다.
이는 그의 기감이 매우 뛰어나단 의미이니, 나는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기감은 스킬이 아니지만, 스킬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능력.
사람마다 개인차가 커서 제대로 써먹으려면 훈련이 필요한 게 일반적이다.
‘내가 검술 스승 아이템의 공격 경로 예측을 쓰지 않게 된 게, 기감이 둔해져서이기도 했지.’
아무튼.
나는 진후에이가 수염을 흩날리며 그 뛰어난 기감을 활용해 천벌 스킬을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봤다.
그런데…….
“블링크!”
그는 너무도 현실적인 방법으로.
또 무협인답지 않은 방법으로 내 공격을 신속하게 피했다.
-콰아아아앙!
천벌 스킬을 감지함과 동시에 블링크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지만,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무당파 장문인이라고 너무 기대를 했던 걸까?
그리고 천벌 스킬이 지면을 강타하는 순간.
등 뒤에서 나타나 검을 찔러 오는 진후에이의 공격을 막아 내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태극의 묘리 같은 걸로 공격을 막아 낼 줄 알았더니…….”
“미친놈! 그 무식한 공격을 어떻게 막아!”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중년인 진후에이는 검강 스킬이 깃든 검으로 8자를 그리며 찔러 왔다.
마치 힘을 뺀 듯한 검격이 신묘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8자를 그리던 그의 검을 짧게 쳐 내면서 즉시 몸을 밀어 넣었고, 갑자기 거리를 좁히는 내 행동에 그는 미간을 좁히며 장을 뻗어 왔다.
‘대응 방식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사람들과 전혀 다르긴 하네.’
검강이나 검기 스킬은 이름에 ‘검’이 붙어 있긴 하지만, 그건 편의상의 분류일 뿐, 창이나 도끼, 심지어 맨손으로도 펼칠 수 있다.
그의 장법엔 강기가 깃들어 있어서 공격력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나는 유일 등급의 무기인 듀랜달의 내구성을 믿고 검의 손잡이로 장을 쳐 냄과 동시에 목을 찔렀다.
“큭!”
묘기나 다름없는 연계 공격.
덕분에 진후에이의 표정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이어서 그는 도약 스킬을 사용해 춤을 추듯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고, 몸이 팽이처럼 회전을 하면서도 칼날을 뻗어 오는 매우 뛰어난 공격 능력을 보여 주었다.
-티티팅!
물론, 그의 회전 공격은 가볍게 막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제, 제법이구나. 근본 없는 검법으로 대 무당의 태극검을 상대하다니.”
이번에도 등장해 주는 근본론.
하지만 나는 근본 어쩌구 하는 말보다 그가 태극검을 펼쳤단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태극검이라기엔 죄다 스킬로 떡칠한 공격이던데.”
“…….”
“무당파의 묘리가 조화인 만큼, 스킬 사용마저 일종의 조화란 건가?”
내 물음에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에이 뭐야. 하도 근본을 찾길래. 스킬의 도움 없이도 단전에서 기를 뽑아 쓰는 건가 싶었는데, 결국 껍데기만 무당파의 무공인 거였네.”
그래도 뭐 이 정도로 검을 맞댄 상대를 처음 마주한 만큼, 완전히 허수라곤 볼 수 없다.
기대했던 정도가 아니어서 그렇지.
내 반응이 시큰둥해서일까?
그의 안색이 다시금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콰아앙!
“헙!”
하지만.
내가 듀랜달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공격을 이어 가자, 그는 급히 방어를 위해 검을 휘둘러야 했다.
-콰앙! 콰앙! 카캉!
검강이나 검기를 직접 펼칠 수는 없어도 검법은 확실히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일격 일격을 뻗으면서도 상대가 공격을 흘려 넘기지 못하게 주의하며 짧게 끊어치기를 했다.
만약 공격이 흘려진다면 바로 반격이 들어올 테니 말이다.
“크윽!”
그리고 이런 내 노력 덕인지, 흥분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그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져 갔다.
그와 검을 맞대고 10합이 지나 20합이 채워졌을 때.
-쿵!
검과 검 끝이 일직선으로 충돌하며 자칭 무당파의 장문인 진후에이가 맥없이 튕겨져 바닥을 뒹굴었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얼굴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단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수는 없다.”
나름 잘 싸우긴 했는데.
딱 그 정도다.
나는 그에게서 어떠한 위기의식을 느껴 본 적이 없으며, 상대하기 어렵단 생각 역시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이런 내 감상이 전해졌을까?
“네, 네놈은 대체 뭐지?”
마치 괴물을 마주한 듯 질린 표정을 한 진후에이가 물어 왔다.
뭐라고 답을 해 주는 게 좋을까?
“제가 운동을 제법 잘하거든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나름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이지만, 진후에이는 허탈하단 감정이 느껴질 만큼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 * *
진후에이가 처음 서백호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그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검의 기본이 잡혀 있고, 감각도 제법 뛰어나 보이지만, 그가 쉬운 승리를 거둘 수 있던 데에는 템빨과 스킬빨이란 요소가 강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백호의 대전이 항상 진후에이보다 빨리 끝나서 멋대로 한 판단이었다.
당연히 이런 생각은 서백호와 검을 맞댄 순간 사라져 버렸다.
‘이거 괴물 같은 놈이군.’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하나를 경험하면 열을 깨우치는 존재들.
흔히 천재라 부르는 족속들 말이다.
아무래도 서백호가 바로 그런 존재 같다고 판단한 진후에이는 이번 대전이 쉽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진 않을 거라 자신했다.
오랜 세월 검을 배우며 쌓아온 경험의 차이는 단시간에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크윽!”
그러나 진후에이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서백호는 한 합, 한 합 경합이 길어질수록 더욱 강해졌으며, 자신을 향한 대응 능력도 점차 완벽해져 갔다.
‘지, 진짜 괴물…….’
앞서 서백호를 ‘괴물 같은 놈’이라며 장난스레 평가했다면, 이젠 존재 자체가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괴물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눈앞의 존재는 사람의 형태를 한 ‘절망’이다.
맞서는 상대의 마음을 꺾어 버리는 절망.
-으득.
‘웃기지 마라.’
마음 같아선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쉬고 싶다.
하지만 대 무당파의 장문인이란 위치가.
오랜 역사와 전통이란 단어가 그를 옭아매며 일으켜 세웠다.
‘이대로 질 순 없다.’
* * *
나는 패배를 인정할 법도 하지만, 쉽사리 꺼지지 않는 진후에이의 강렬한 눈빛을 보며 감탄했다.
비록 그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무림인들처럼 단전에 1갑자니, 2갑자니 하는 내공을 쌓지 못하고, 초월적인 위력의 무공도 펼치지 못했다.
비슷한 레벨, 비슷한 아이템을 지닌 상대 중엔 최강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그가 속한 무당파란 단체를 삼킬 수만 있다면 삼키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넨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 거겠지?”
“네, 뭐…….”
전력?
나는 항상 레벨이 10~20 이상 높은 몬스터를 상대한다.
때문에 위 체급의 특수 몬스터(네임드, 보스 등)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전력을 다해 싸운 적이 없다.
그러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당해도 좋네. 자네의 전력을 보여 주겠나?”
그리고 마치 진후에이가 이를 악물며 그리 말했다.
내 입장에선 굳이 들어줄 필요가 없는 요청이지만.
무당파에 흥미가 생긴 나이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안 될 것 없죠.”
“고맙네.”
나는 진지한 진후에이를 보며 듀랜달을 역소환했다.
-팟!
이어서 듀란달을 대신해 성검 칼립소가 소환되어 손에 쥐였다.
-후우웅!
성검 칼립소의 생김새는 작은 원기둥 형태.
그 기둥에 마력을 담으니, 이내 빛이 솟구치며 광선검이 만들어졌다.
“허허.”
이런 무기는 처음 보았다는 듯이 진후에이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사람들은 허공에 둥둥 떠서 내 뒤를 쫓아다니는 바리사다를 보며 수납 방식이 특이한 무기쯤으로 여기기 마련이지만.
-후웅! 훙!
바리사다는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제3의 손’이 쥐고 있는 거였다.
[제3의 손 / 등급: 희귀]
-착용 부위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특수 장비.
-착용 시 보이지 않는 투명한 3번째 손이 등에 생겨난다.
-제3의 손은 2미터의 길이를 갖고 있으며, 일반적인 맨손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무기를 휘두르며 스킬을 사용할 수 있고, 반지나 팔찌를 추가로 착용시킬 수도 있다.
-전투 중 제3의 손이 공격을 당해 절단될 경우 상급 이상의 회복 스킬을 통해 재생시킬 수 있다.
제3의 손을 이용해 바리사다를 이리저리 휘두르니, 진후에이의 눈이 빠질 듯 커졌다.
“이, 이기어검?”
이기어검이라 부를 수 있는 무기는 따로 있다.
춤추는 검이라고 내 의지에 따라 허공을 나는 단검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 가겠습니다.”
“좋아, 오게.”
하지만 춤추는 검은 꺼내 들지 않았다.
굳이 전 세계에 내 모든 전력을 광고할 필요는 없으니까.
분신 스킬, 폭주 스킬, 승리의 깃발 등, 여러 추가 강화 수단이 존재하지만.
성검 칼립소와 바리사다를 뽑아 든 것만으로도 진후에이에겐 오버 스펙이다.
나는 빠르게 끝낸다는 생각으로 진후에이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고.
-파팟!
이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먼저 일격은 성검을 활용한 가벼운 내려치기.
-콰아앙!
“크윽!”
그러나 성검 위로 솟구친 빛의 검 자체가 스킬인지라 내려치기를 막아 낸 진후에이의 무릎이 절로 꿇리고, 그 충격으로 작은 크레이터가 발생했다.
-훙!
그리고 진후에이가 충격을 수습할 틈도 없이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바리사다가 내려쳐졌다.
-팟!
“끄악!”
진후에이는 힘겹게 검을 들어 바리사다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투과 스킬로 인해 바리사다의 칼날이 그의 검을 통과하며 신체를 갈랐다.
‘대단하네, 그걸 피하다니.’
진후에이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으나, 검을 쥐고 있던 그의 팔은 이미 바리사다에 의해 사라진 상황.
나는 그의 분투에 보답하듯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성검에 마력을 쏟아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파앗!
“이런 젠장…….”
그러자 공간 전체를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거대한 광선빔이 진후에이를 그대로 삼켜 버렸다.
[13라운드(8강) 통과]
[1,500점을 획득했습니다.]
-끼기기기기긱!
성검의 일격으로 인해 대기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찢어지는 소음이 울려 퍼지고, 지면은 지진이라도 난 듯 강하게 흔들렸다.
승리 메시지가 떠오른 후, 진후에이가 있던 장소를 살피니, 그곳엔 천 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너무 심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