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유명세 (2)
아들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감히 상상치도 못했다.
서백호의 아버지인 서인호 소장은 아들의 경기를 보는 동안 절로 벌어진 입을 애써 닫아야 했다.
이번에 그의 아들이 싸운 상대는 뛰어난 무용으로 순식간에 승리를 거머쥐어 온 강자 중에서도 강자였다.
때문에 서인호 소장은 아들이 비로소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났다며 긴장감을 표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냥 끔살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상대한 이들 중 가장 처절하게 당했으니, 제법 길었던 대전 시간과 비례하여 상대가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뛰어나다 못해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서백호의 모습이 잠시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내 가족으로서 저만한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 왔을지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 앞에선 평범하게 웃어 보이던 아들인데,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럴 수가!”
“지금까지도 압도적인 전투 능력을 보여 줬지만, 이건…….”
이런 서인호 소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와대 회의실에 모여 함께 경기를 시청 중이던 이들이 경악성을 토했다.
다들 높은 계급을 가진 만큼, 직접적으로 위험한 현장을 뛰어다닐 일이 없었다.
때문에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서백호의 무위에 질린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마 저게 전력은 아니겠죠?”
눈치 빠른 김응수 대통령의 물음.
그 물음은 서백호 소장에게 향했으나, 그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서인호 소장은 입을 꾹 닫았고, 이 행동이 제 아들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 멋대로 판단한 대통령은 헛기침과 함께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가 알기로 서백호 협회장의 결전 스킬은 한순간에 능력치를 크게 키우는 것과 분신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두 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애초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게 당연하죠. 이 영상은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굳이 모든 전력을 노출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마 그의 실제 전투력은 평소 함께 사냥을 다니는 저 두 여자 빼곤 알지 못할 겁니다”
비서실장의 이야기에 김응수 대통령을 포함한 회의실의 전원이 경기가 끝난 서백호의 채널에서 윌리아와 시에나가 활약 중인 채널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여럿이 모인 김에 한 번에 주요 채널 여러 개를 띄워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윌리아와 시에나도 손쉽게 상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무리 8강전에 오른 강자들이라 해도 그들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고, 예상했던 대로 싱겁게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8강에 오른 대한민국 소속 인원 4명 중 3명이 4강에 진출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4강 이상은 한국인만의 축제가 될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아, 윤시아 총괄은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네, 상대의 수준이 대단합니다.”
아쉽게도 윤시아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전투는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상대에게 조금씩 밀리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윤시아 총괄이 상대 중인 미국인 여성. 어제 서백호 협회장이 말한 그 사람 아닙니까? 미국이 동맹을 제안해 오면서 전면에 내세웠다는 인물 말입니다.”
“아, LA의 대표 사냥꾼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말이죠? 듣고 보니 맞는 것 같네요. 채널 상단에 ‘미국 *** 주’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까. 이거 성이 주 씨라는 뜻이잖아요?”
윤시아의 상대는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사냥꾼이자 재미교포인 ‘클로에 주’였다.
클로에 주는 자신보다 레벨이 10 정도 낮은 상대인 윤시아의 분투에 몹시 놀라며 당황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았고, 미세하게나마 우위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10분을 가득 채운 치열한 사투 끝에 ‘클로에 주’는 14라운드 마지막 진출자가 되었다.
그리하며 만들어진 4강 진출자의 소속은 한국이 3, 미국이 1.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한국 외 유일한 4강 진출자마저 한국계 미국인이란 사실이었다.
“이거 참…….”
서백호의 아버지를 비롯한 청와대 회의실의 멤버들은 이 상황을 보며 하나같이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어쩌면 지금의 결과에 가장 크게 놀라고 있는 건 미국일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의 말대로, 이 상황에 대해 미국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한국이 뛰어나단 것은 알고 있었으나,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결과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
동맹이 강하면 좋은 거 아니냐는 건, 너무 1차원적인 사고방식이다.
한쪽이 지나치게 강하면 동맹 속에서도 위아래가 정해져 버리니 말이다.
‘과거의 한국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심지어 동맹을 맺게 되면 교류를 위해 상대에게 문을 열어 줘야 할 텐데, 서백호와 그의 파티는 존재 자체가 대단히 큰 위협이었다.
자연히 미국에서 동맹을 제안해 왔음에도 그쪽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미국에서 똥줄 좀 타겠네요.”
하지만 누구도 이 상황을 우스워하지 못했다.
이유는…….
“미국도 알게 되겠지요. 그냥 순리에 따르는 게 낫다는 걸요.”
“뭐, 우린 진작에 서백호 협회장에게 먹혔으니까요.”
이들로선 이미 경험해 본 과거였기 때문이다.
* * *
-짝짝짝!
“와! 대단합니다!”
8강전을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오자 나를 반겨 준 것은 우레와 같은 박수 세례와 환호였다.
진행되는 경기가 워낙 적다 보니, 이쯤 되면 내 싸움을 못 본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네, 뭐. 고맙습니다.”
물론, 개중엔 질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이도 있었지만, 그래 봤자 뭘 어쩌겠는가.
날고 긴다는 이들도 나가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먼저 탈락했지만, 나를 중심으로 모여서 자판기를 털던 협회 멤버들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고.
머지않아 윌리아와 시에나도 승리를 거두며 함께 휴식을 취했다.
‘자판기는 이 정도 털었으면 됐겠지.’
자판기에 1,500만 코인 정도 사용한 것 같다.
자판기 상품이 개당 500코인이니, 3만 개 정도를 구입한 게 된다.
여기서 몇 개는 고생해 준 멤버들 주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인벤토리에 챙겼다.
과자와 음료, 라면이나 통조림 같은 식품들이 인벤토리에 가득 차 있는 걸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솔직히 이것만으로 이번 이벤트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익!”
잠시 후, 8강전의 모든 경기 일정이 끝이 났다.
10분간의 혈투 끝에 판정패를 당한 윤시아가 땅을 차며 분을 삼켰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아까웠네요.”
“후우, 죄송합니다. 협회의 주요 간부로서 이겼어야 하는데.”
“하하, 아닙니다. 충분히 잘 싸워 주셨어요. 클로에 주를 비롯한 미국의 강자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한 만큼, 우리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거든요. 아마 시간이 더 흐르고 그녀와 재대결을 하게 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내 위로에 윤시아는 심호흡과 함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며 민망해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
그건 결코 빈말이 아니다.
윤시아 본인이 지닌 재능도 재능이지만,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될성싶은 싹에 투자를 진행할 생각이니까.
당장 이번 이벤트가 끝나면 내가 쟁여 놓고 있던 아이템들을 풀려 한다.
지난번에 이무기를 토벌하고 나서 얻은 아이템과 스킬 등 우리 파티만으론 소화하지 못한 게 제법 많았으니 말이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래서 윤시아가 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전 세계 베스트 8이라면 만족할 법도 한데, 더 위를 바라보는 향상심을 가지지 않았는가.
이제 남은 경기는 4강전과 결승전.
클로에 주가 제법 강한 건 알지만, 우리 파티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솔직히 이벤트는 이것으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미국인 여자도 잘 싸우긴 했지만…….”
“맞아. 다음 대전은 결과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지. 저 세 사람 중 2명이 결승전을 치르지 않겠어?”
그리고 그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4라운드.
준결승전이 시작되었다.
* * *
준결승전이 진행되는 대전 장소는 시가지였다.
그것도 폐허가 된 현대식 도심.
아스팔트가 여기저기 깨지고 뒤집힌 8차선 도로의 중심에 선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빌딩 숲을 등지고 등장한 여성을 보며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설마 이런 형태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클로에 씨.”
내 대전 상대는 한국계 미국인 클로에 주였다.
윌리아나 시에나만큼이나 되도록 맞붙고 싶지 않았던 인물.
그녀는 내가 운영하던 빼코TV의 귀중한 구독자님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타인의 잠재력을 볼 수 있는 매우 귀한 극상급 스킬을 보유해 사냥꾼협회로 영입하고 싶은 귀한 인재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내 앞에선 부끄럼을 잘 탄다.
하지만 이게 그녀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이미 수차례 클로에의 전투를 지켜보았기에 실제로는 그녀가 굉장히 저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승리를 양보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도 입장이란 게 있으니, 이번엔 힘들 것 같군요.”
아니, 입장이고 뭐고 그녀에게 승리를 양보하면 윌리아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에 클로에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어휴, 바라지도 않습니다. 백호 님처럼 뛰어난 분과 맞붙는 건 제게도 영광이니까요.”
참, 말을 예쁘게 한다.
이런 그녀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싸울 땐 입이 거칠어지는 건지.
윤시아는 내 부하란 사실을 알아서인지 말을 자제하는 게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싸울 땐 ‘죽어’, ‘뒈져’란 대사를 인사처럼 내뱉었다.
때문에 꽤나 재밌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클로에는 내 수준에 맞춰져 증가한 능력치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몸을 풀었다.
그녀의 모습은 꽤나 진지했다.
“저어…….”
잠시 후 능력치 적응이 어느 정도 끝났는지, 클로에가 내게 다가와 정중하게 말을 건네 왔다.
“리스크 없이 죽을힘을 다해 싸울 수 있는 기회는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이나 거친 행동이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지금까지 나를 만난 협회 동료들은 대부분 싸우지 않는 선택을 했지만, 그녀처럼 덤벼 와도 기쁜 마음으로 검을 받아 줬을 거다.
클로에의 이야기에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3]
[2]
[1]
그리고 곧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나를 마주하고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클로에.
하지만 카운트다운이 1을 향해 다가가자,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싸늘해진 얼굴의 클로에에게 화답하듯, 나도 그녀를 경시하지 않고 듀랜달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대전 시작]
이어서 대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저돌적 돌진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예상지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파앗!
-고고고!
핏빛의 기운이 클로에를 덮치고, 이내 주변의 공기가 요란하게 떨어 대는 것 아니겠는가.
‘폭주?’
그건 다름 아닌 폭주 스킬이었다.
모든 능력치를 50% 뻥튀기시켜 주는 극상급에 준하는 막강한 스킬.
하지만 폭주 스킬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용 시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특수 효과였다.
설마 클로에가 폭주 스킬을 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는 크게 놀라야 했다.
그런데 클로에의 비장의 수는 폭주로 끝이 아니었다.
“?”
무장이 8강전 때와 달라졌다 싶었는데,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검은 기운이 넘실대는 한 손 반 장검.
‘설마, 유일 등급의 무기인가?’
하지만 검이 풍기는 기운이 불길하기 그지없고, 그 검을 뽑아 든 순간 클로에의 눈에서 핏빛 안광이 강해지는 것을 본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 검은 마치 마검을 연상시켰다.
‘성검이 있으니 마검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니, 저 검엔 어떤 리스크가 존재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닌 무기들처럼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윤시아와의 전투에서 그리 고전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지금의 클로에는 8강전에서 윤시아를 상대로 고전했던 때완 완전히 다른 존재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갑니다.”
클로에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콰앙!
그녀가 서 있던 지면의 아스팔트가 터져 나갔다.
이어서 클로에의 몸이 주욱 늘어나는 것처럼 튕겨 나와 순식간에 코앞에 당도했다.
-쉐에엑!
절로 헛바람을 삼키게 만드는 속도.
하지만 내 눈은 클로에를 좇았고, 그녀의 검 역시 문제없이 받아 냈다.
-콰아아앙!
한 번의 충돌.
물론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일격이었다.
-핏.
어느새 클로에는 내가 서 있던 장소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곳에서 5걸음 정도 밀려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끈한 액체.
“대단하네요.”
클로에는 방어구를 뚫고 내 뺨에 생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내 감탄사에도 클로에는 묵묵부답.
그녀는 나를 밀어내고 상처를 줬음에도 어째서인지 당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