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70화 (170/273)

170화 유명세 (5)

“와아!”

시에나의 닦달 때문에 나는 장비 진화권을 쓸 틈도 없이 윤시아와 장비 교환을 위해 서울에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백호, 백호 이거 봐! 아스트라의 강화판이다!”

내가 장비 진화권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했던 시에나의 명궁 아스트라의 강화판이라고 할 수 있는 옵션을 가진 활을 윤시아에게서 건네받을 수 있었다.

[신궁 비자야 / 등급: 유일]

-시위를 당기면 빛의 화살이 만들어져 별도의 화살이 필요하지 않다.

-비자야를 통한 모든 공격엔 관통 효과가 더해진다.

-궁술 스킬 공격력 50% 증가.

-순발력+6, 마력+6

-자체 스킬: 거신의 심판

[거신의 심판 / 극상급 스킬 / 액티브]

-매우 강력한 빛의 화살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다.

-소모 마력: 10

손잡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가 빛으로 이뤄져 있어서 시에나가 바라던 대로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했고.

자체 스킬인 ‘거신의 심판’은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지는 천벌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검이냐 빛의 화살이냐의 차이일 뿐, 위력은 엇비슷해 보였다.

“이, 이게?”

“창의 이름은 롱고미안트. 아서왕이 사용하던 창과 같은 이름이네요.”

“오!”

그리고 시에나가 뽑기에서 뽑은 창을 윤시아에게 건네주니, 그녀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서 강력한 무기가 전부는 아니지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유일 등급의 무기는 윤시아의 전투력을 더욱 끌어올려 줄 것이다.

“오, 옵션이 엄청난데요?”

도려낸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직선상의 모든 것을 꿰뚫는 자체 스킬과 반발력이란 특수 옵션이 더해진 롱고미안트는 윤시아의 전투 방식과도 궁합이 좋아 보였다.

더불어 롱고미안트는 바리사다의 창 버전을 연상케 하는 우윳빛 창날과 새하얀 창대를 갖고 있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롱고미안트의 화려한 외형 때문인지, 옵션 때문인지 윤시아는 완전히 매료된 표정이었다.

“그 클로에란 미국인 여자가 협회장님과 한시적이나마 대등한 전투를 치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력해서 반드시 그 여자를 따라잡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김현수와 라이벌 관계였지만, 이젠 윤시아가 김현수를 뛰어넘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목표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생긴 건 좋은 일.

더구나 ‘클로에 주’라면 앞으로 자주 마주치게 될 테니, 윤시아의 성장 촉진제로서 더할 나위 없는 포지션이었다.

“윤시아 씨라면 분명 클로에 주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파이팅하세요.”

“넵! 감사합니다!”

그렇게 윤시아를 응원하는 것으로 장비 교환을 마친 나는 다시 월광도로 돌아왔다.

“나 잠깐 솔플 좀 다녀올게!”

시에나는 월광도에 도착하자마자 신이 나서 새로 얻은 신궁 비자야를 들고 월광도 북부로 날아갔다.

월광도에서 지금의 그녀를 위협할 만한 몬스터는 드래곤뿐인데, 마침 드래곤 님께선 다른 둥지로 떠나 있을 주기인지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으음……. 역시 안 되겠네요. 윌리아 님, 죄송한데 시에나 님 좀 따라가 주시겠어요? 아무래도 혼자 어디 보내는 게 걱정돼서.”

“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따라갈게요.”

하지만 상대는 시에나.

왠지 혼자 두면 사고 칠 것 같은 느낌이라 윌리아를 감시자로 붙였다.

시에나에 이어 윌리아까지 시야에서 사라지고, 곧 주변엔 침묵이 감돌았다.

“드디어 내 차롄가?”

오래 기다렸다.

잠시 샛길로 새고 말았지만, 이젠 내 보상을 쓸 차례가 왔다.

나는 서울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계속 ‘장비 진화권’을 어디에 사용할지 고민했다.

일단 후보는 셋으로 좁힌 상태다.

1. 검술 스승 오티스

2. 춤추는 검

3. 제3의 손

원래는 칼날의 길이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거마도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유일 등급의 검은 이미 세 자루나 되는 만큼 제외를 시켰다.

그리고 거마도도 제외됐는데 춤추는 검을 제외하지 않은 이유는 해당 무기가 일반 무기와 달리 손에 쥐고 싸우는 용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의지에 따라 하늘을 나는 춤추는 검은 원거리의 적을 견제하거나 직접 공격하는 메인 옵션 중 하나였다.

‘세 장비 모두 탈 희귀 등급 장비인데.’

나는 결국 소거법으로 진화 장비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검술 스승은 제외하자. 유일하게 지금 내가 쓰지 않고 있는 장비잖아? 그리고 윌리아에게서 회피 능력을 빼앗을 수는 없지.’

이제 남은 건 두 개.

춤추는 검과 제3의 손이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춤추는 검은 마력 소모 없이 먼 거리까지 날릴 수 있지만, 제3의 손은 내 신체의 일부와 비슷한 판정을 받기 때문에 검을 쥐고 휘두르는 공격 범위가 그리 길지 않다.

다만 춤추는 검과 달리, 제3의 손은 바리사다와 같은 극강의 장비를 쥐고 싸울 수 있다.

‘장단점이 뚜렷하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나는 어렵게 결정했다.

[제3의 손에 장비 진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제3의 손을 진화시키기로.

이유는 간단했다.

춤추는 검은 견제 용도로 많이 쓰고, 제3의 손을 이용한 공격은 주력기이기 때문이다.

장비의 중요성이 제3의 손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괜히 진화시켰다가 엉뚱한 게 되어 버리면 어쩌지?’

진화 전 잠시 걱정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유일 등급인데, 더 나빠지겠냐는 상식적인 판단과 함께 진화권을 사용했다.

[희귀 등급 제3의 손이, 유일 등급 이능의 날개로 진화합니다.]

“응? 웬 날개?”

그리고 이어진 메시지에 나는 크게 당황하며 다급히 설명창을 열었다.

[이능의 날개 / 등급: 유일]

-착용 부위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특수 장비로 다양한 기능이 내장된 보조팩이다.

-이능의 날개를 펼쳐 최대 시속 마하 1로 마력 소모 없는 비행이 가능하다.

-반경 10미터 이내에선 마력 소모 없이 염력을 사용할 수 있다.

-팔의 길이 5미터의 보이지 않는 제3의 손이 내장되어 있으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무기를 휘둘러 적을 공격하고, 스킬 역시 사용할 수 있다.

-제3의 손은 실제 손과 같은 판정을 받으며, 반지와 팔찌 등의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설명은 본 나는 크게 안도했다.

이능의 날개란 장비에는 ‘비행’, ‘염력’ 등의 옵션과 함께 제3의 손이 기능의 하나로써 내장되어 있었다.

심지어 기존 제3의 손은 길이 2미터라 공격 범위가 좁았는데, 이능의 날개에 담긴 제3의 손은 길이가 5미터로 2.5배 늘어나 더욱 변칙적인 공격이 가능해졌다.

‘휴, 다행이다.’

전투 스타일을 바꾸지 않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이능의 날개를 착용하기 위해 그걸 집어 들었다.

‘이거 어떻게 착용하는 거지?’

그런데 이능의 날개는 생김새가 특이해서 어찌 착용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생긴 게 V자 형태로 부메랑을 연상시켰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리저리 이능의 날개를 살피던 나는 아이템 설명 하단에 착용 버튼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제3의 손도 이랬지, 참.”

나는 바로 착용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제3의 손이 등 뒤로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등 뒤에 V자 형태의 금속 물체가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어째 등 뒤쪽에 떠다니는 게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휙! 휙!

“좋은데?”

나는 새로워진 제3의 손으로 바리사다를 쥐고 휘둘렀다.

이전보다 사정거리가 확실하게 길어져서인지, 이젠 완전한 어검술처럼 보였다.

‘제3의 손은 사정거리 빼면 달라진 게 없으니 이쯤하고.’

유일 등급의 특수 장비 이능의 날개엔 두 가지 기능이 더 있다.

나는 다른 기능들도 살폈다.

우선은 시에나의 날개 신발에도 달려 있는 마력 소모 없는 비행 기능.

-파앗!

“우왓!”

비행 기능을 활성화한 나는 움찔 놀라야 했다.

이유는 등 뒤에 자리한 V자 형태의 금속 장치에서 푸른빛의 날개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화려하네.”

왠지 시에나가 좋아할 것 같은 비주얼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팟!

나는 바로 비행을 시작했다.

그러자 빛의 날개가 제트 엔진의 불꽃처럼 확산하며 나를 빠르게 허공에 띄웠다.

시에나의 날개 신발도 희귀 등급 장비치곤 굉장히 좋지만, 이건 속도감부터가 다르다.

마치 룡룡이(드레이크 펫)를 타고 전속력으로 비행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반응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시에나처럼 아예 하늘을 날며 생활할 만큼 정밀한 비행이 힘들었다.

적응하면 어찌어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검사인지라 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는 걸 선호하니 비행은 보조 수단으로만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뭐, 이 정도 반응 속도면 지상에서의 전투 중에도 급히 방향을 선회하거나 회피할 때 쓸 수 있겠네.’

만족스러운 기능임은 분명했다.

‘다음은 염력인가?’

그리고 나는 이능의 날개가 가진 마지막 기능인 염력을 살피기로 했다.

염력은 최상급 스킬이다.

하지만 애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스킬이기도 한데, 즉각적인 공격 능력을 지닌 스킬에 비해 사용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분명 염력은 사물에만 사용할 수 있었지?’

염력은 주변의 물건을 허공에 들거나, 던져서 공격 또는 방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이 이 기능이 생물엔 적용되지 않고, 사물에만 쓸 수 있단 거다.

물론, 잘 쓰는 사람들은 적의 발밑의 지면을 뒤집거나, 미리 무기를 바닥에 깔아 두어 습격 용도로 활용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어쨌든 동급의 다른 스킬들에 비해 효율이 월등히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아무리 그런 염력이라도 마력 소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뒷산으로 이동해서 염력을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이능의 날개가 가진 기능 중 가장 사기는 제3의 손이 아닌, 염력이란 것을.

* * *

사냥꾼 협회에선 지난달부터 육로를 이용해 다른 국가의 웨이포인트를 찍으러 다니는 탐색팀을 운영하고 있다.

탐색팀이 새로운 국가의 웨이포인트를 찍어 오면 협회 지도부는 웨이포인트 점퍼를 이용해 해당 지역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었다.

“한국 무섭더라.”

“진짜 깜짝 놀랐지. 분명 대재앙은 동시에 일어났고, 같은 날 레벨업을 시작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차이가 심하게 날 수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우린 다행이지, 한국하곤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맞아, 그런 괴물들이 인근에 있으면 눈치가 좀 보이겠어? 하하.”

“아! 맞다!”

“왜 그래?”

동유럽군에 속한 루마니아는 대재앙 이후 위기를 잘 넘기면서 주변에선 제법 목소리를 내는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루마니아 내에선 3개월 생존 이벤트로 진행된 대전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처음 보는 수준의 막강한 전투력을 보인 한국인들의 존재는 그들에게도 화제일 수밖에 없었으며, 많은 이들이 동경심을 품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의 감상이 냉각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어, 어제 아시아에서 왔다는 탐색팀 이야기했었잖아.”

“응? 아아, 아시아인 몇 명이 와서 웨이포인트 찍고 갔다는 거?”

“그, 그래!”

“그게 왜?”

“그 사람들 이제 보니 한국인이었어! 한국 어느 단체의 탐색팀이라고!”

“뭐?”

사냥꾼 협회의 탐색팀은 어느덧 동유럽까지 닿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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