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확산과 굴복 (1)
한국에 소속된 어느 단체의 탐색팀이 웨이포인트를 찍고 갔다?
어제까지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무시했을 이야기지만.
이벤트 대전을 보고 난 다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뒤늦게 해당 사실을 알게 된 루마니아의 사냥꾼들은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미친!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하는 거야!?”
“보고는 진즉에 했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지!”
“허, 이런…….”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루마니아의 사냥꾼들은 급히 윗선에 이 사실을 재보고했다.
“한국에서 루마니아까지의 거리가 무려 7,700킬로미터에 달해. 물론, 그건 직선상의 거리라서 실제 이동 거리는 훨씬 길 테고.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 닿았다고? 그게 말이 돼?”
“어제 한국의 탐색팀과 대화한 우리 길드원이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말하길 지난달 생존 기념 이벤트 때, 인근 이벤트 장소로 자동 이동시켜 주는 웨이포인트 기능을 이용해서 카자흐스탄까지 웨이포인트를 찍어 놨었대.”
“뭐?”
한국에 비하면 카자흐스탄은 루마니아와 꽤나 가깝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루마니아 사냥팀의 리더 ‘콘스탄틴’이 황당함을 표했다.
이유는 지난달의 이벤트가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 몬스터 웨이브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말이 돼? 그럼 이동할 때마다 몬스터 웨이브를 계속 클리어했단 의미잖아.”
“어, 그렇다고 하더라고. 한국 내에 발생한 웨이브를 조기 종결시킨 것을 포함해서 6개국 14개 지역의 웨이브를 클리어했다고 했어.”
“미친.”
“그땐 단순히 허풍이라 생각해서 웃어넘겼는데, 오늘 대전을 보고 나니…….”
“진짜인 것 같다?”
“너도 봤잖아. 능력치 보정이 들어갔음에도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준 한국인들을.”
콘스탄틴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탐색팀이 웨이포인트를 찍었다면, 그들이 웨이포인트 점퍼를 이용해 언제든 그 괴물 같은 한국인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단 의미와 같았다.
한국인들이 평화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오히려 든든한 아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 낯선 타인을 믿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루마니아팀의 리더인 콘스탄틴은 침착하게 대응 방안을 고민했고, 이내 결정을 내렸다.
“정부와 인근 국가 사냥팀에 해당 사실을 알려.”
그는 이 사태를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유럽 전체의 문제로 키우기로 했다.
“뭐?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와 터키에서도 같은 보고가 있었다고?”
그리고 콘스탄틴은 북쪽 우크라이나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국가에 닿았을 거라 생각한 한국인들이 남쪽으로도 탐색을 진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남과 북 할 것 없이 루마니아와 연락이 통하는 모든 곳에서 한국인 탐색팀이 목격되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한국인 탐색팀의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의 행동에 콘스탄틴은 의협을 느껴야 했다.
“이대로라면 유럽 전역에 한국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겠군.”
“어떡하지?”
“…….”
문제는 이 상황에 대해 마땅한 해결법이 없다는 거였다.
당장 한국인들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을 무턱대고 제한시킨다면 오히려 원치 않던 트러블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덕분에 콘스탄틴의 시름이 깊어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부다페스트(헝가리)에서 한국인 탐색팀이 공격받았대!”
“뭐?”
한국인 탐색팀이 인근 국가에서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놈들이 언젠가 사고 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멍청한 짓을 저지를 줄이야.”
보통 사냥팀의 리더는 무력 수준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반드시 이성적인 사람이 위에 선다는 보장이 없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사냥팀의 리더가 바로 그런 경우로, 아주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잘되었어. 이걸로 한국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우린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후 관계를 어찌할지 고민해 보면 되겠지.”
의도치 않게 막돼먹은 헝가리팀의 성향이 이들 루마니아에겐 도움이 되었다.
만약 한국이 항의나 대화를 시도해 온다면 충분히 테이블 위에서 관계를 정립할 수 있단 뜻이 되지만, 만약 공격부터 가해 온다면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 * *
이벤트 대전이 끝나고 3일이 지났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함께 미국 워싱턴에 방문한 상태다.
이유는 김응수 대통령이 미국 측에서 전해 온 동맹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맹엔 선행 조건이 있었다.
내가 동맹의 조인식이 진행되는 장소로 워싱턴DC의 백악관을 지목했으니까.
덕분에 미국에선 치열한 회의가 진행되었고, 결국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이틀이 더 걸리고 말았다.
그들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는 간다.
자신들의 신변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를 미국의 심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어디 쉽겠는가.
“반갑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테일러 윌슨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응수 대통령과 나를 맞이한 미국 대통령의 표정은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묘하게 연기를 보는 것 같달까?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응수입니다. 새 세상의 평화를 위해 어려운 선택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백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미국 대통령이 느끼고 있을 감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김응수 대통령이 미사여구로 인사를 포장했음에도, 나는 심플하게 답했다.
덕분일까?
동맹 조인식이 진행되는 백악관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것으로 미국과 대한민국은 형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동맹은 아무 문제 없이 체결되었다.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달라도 양측이 바라는 건 같다.
그건 바로 안전이다.
한국은 이 미친 세상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강국.
미국은 전통적인 강국.
이 둘의 시너지는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겠네요.”
나는 조인식이 끝이 나자 뉴욕팀의 리더 제임스와 LA팀의 리더 클로에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클로에는 무척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반겼지만, 제임스는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대전이 끝나고 계속 이러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신보다 아래라 여겼던 제가 협회장님을 상대로 잘 싸워서 불편한 모양입니다.”
“그, 그게 아니라…….”
그동안 클로에를 두고 왜 제임스가 미국 내 일인자로 불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클로에가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나는 그를 위로했다.
“제임스 님도 강한걸요.”
“서백호 님에 비하면 벌레 수준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뭔가 많은 것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그에겐 씨알도 박히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곤 다시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클로에 님, 혹시 한국에서 활동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네?”
그에 김응수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던 테일러 대통령과 쭈구리가 된 미국 제일 사냥꾼 제임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8강전에서 겨뤘던 윤시아 씨 아시죠? 그분의 파티와 클로에 님의 파티가 협력하면 금방 레벨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사냥터가 있습니까?”
나는 다크엘프 반복 사냥 퀘스트가 있는 하늘섬 세일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터도 사냥터지만, 윤시아 씨가 유일 등급 장비를 손에 넣으면서 더욱 강해졌거든요. 두 분이 비슷한 성향을 가졌으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속내는 따로 있다.
일단 그녀를 한국에서 활동을 시키고 점차 사냥꾼 협회의 멤버인 것처럼 써먹을 생각이다.
클로에가 가진 잠재력을 확인하는 스킬은 사냥꾼 협회의 강화를 위해 필요했으니 말이다.
“저, 저는요?”
그런데 제임스는 이런 내 제안에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 거냐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임스가 따라온다면 막을 이유는 없다.
“윤시아 팀과 클로에 팀, 제임스 팀이 함께 싸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괜찮으시겠어요?”
내 물음에 그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테일러 대통령이 도끼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클로에와 제임스는 포지션이 다르다.
클로에는 정부로부터 코인 지원을 받긴 해도, 민간 사냥팀의 색이 강하고, 제임스는 정부 직할 사냥팀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임스가 가진 유일 등급의 방패는 정부에서 대여해 준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결국, 제임스는 자신이 클로에와 입장이 다름을 이해하고 물러났다.
반면 클로에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녀의 대답에 미국 대통령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파였지만, 아쉽게도 클로에의 행동을 막을 만한 패가 없었다.
클로에의 유일 등급 장비는 본인이 스스로 구한 거고, 지원받은 코인이야 얼마든지 토해 낼 여력이 되니까.
“동맹을 맺자마자 우리 미국의 주력인 LA팀을 한국으로 빼가는 건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불만을 토할 수는 있으니, 대통령이 다급히 다가와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그의 우려가 뭔지 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클로에 님의 성장은 미국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설마 그녀가 미국을 배신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일명 ‘가불기’라 불리는 기술에 테일러 대통령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클로에 또한 대통령에게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내니, 결국 그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로써 클로에를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그때.
“협회장님!”
다급한 표정의 강이솔이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순간 한국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유럽 탐색팀 중 하나가 헝가리 현지 사냥팀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강이솔의 보고에 나는 얼굴을 굳히고, 얼떨결에 곁에서 이야기를 들은 미국 대통령과 제임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국은 벌써 헝가리까지 진출을 했단 말입니까?”
“운이 좋았습니다.”
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좀 전의 대화로 미국 내에선 한국의 능력을 더욱 높게 평가할 터이다.
“죄송하지만,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네, 이해합니다.”
그렇게 자리를 벗어난 나는 한발 빨리 한국으로 복귀했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사냥꾼 협회의 탐색팀이 부다페스트에 진입하던 중 현지 단체의 공격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2명이 죽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세상이 바뀌면서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떤 위급한 상황이어도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방법은 없다.
과연 이에 대해 어찌 대응해야 할까?
“협회 정예들을 모으세요. 부다페스트로 갑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성적인 대화?’
필요 없다.
죽음에 대한 값을 죽음으로 받아 낼 뿐이다.
“아무래도 본보기를 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