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확산과 굴복 (2)
이번에 있던 이벤트 대전에서 헝가리인 중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은 부다페스트의 지배자라고도 불리는 샨도르이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사냥꾼인 그는 제멋대로인 성격 덕에 악명이 자자한데, 그럼에도 압도적인 무위를 갖고 있어 부하들은 충성스럽기 그지 없었다.
덕분에 헝가리의 많은 사람이 좋든 싫든 샨도르의 활약을 의심하지 않았고, 예상대로 그는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그렇게 7라운드(8,192강)를 돌파하고 8라운드(2,048강)에 진출한 샨도르는 대전 도중 처음으로 한국인을 마주했다.
바로 가의도팀 리더 김민희를.
‘하, 레벨 시스템 덕분에 저런 작은 여자애도 올라오는군.’
처음 작은 체구를 가진 그녀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샨도르는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경기 시작과 동시에 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말았는데…….
김민희가 같은 경기장에 있던 거구의 흑인과 다혈질로 보이는 러시아인 남성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샨도르가 대응할 틈도 없이 페이크를 섞은 찌르기 공격이 이어져 미간이 꿰뚫리고 말았다.
부다페스트의 지배자란 칭호에 어울리지 않는 참혹한 패배였다.
이는 샨도르의 자존심에 크나큰 스크래치를 만들었다.
“대장 너무 신경 쓰지 마. 그 여자 보니까 16강까지 오른 강자더라고.”
부하들의 위로에도 샨도르는 웃을 수가 없었다.
김민희가 16강까지 오르긴 했지만, 그녀에게 아무것도 못 해 보고 패한 이상, 대진운이 나빴다는 말로도 합리화를 할 수 없었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는 건가?’
‘결국 헝가리에서 왕인 척 구는 샨도르도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인물이었구만.’
때문에 샨도르는 자신을 위로하는 부하들의 모습에서 이런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다.
평소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경기 결과를 보고 또 얼마나 비웃었을지…….
상상만으로도 분노가 솟구쳤다.
“이런 XX!”
샨도르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누구 하나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부하들은 몸을 사렸고, 시민들은 알아서 샨도르를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때.
독기 충만한 샨도르에게 한 가지 보고가 전해졌다.
“한국의 탐색팀이 부다페스트 안전 구역에 들어섰어. 웨이포인트를 찍고자 하는 걸 일단 막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
“뭐? 한국?”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한국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에 언제 터질지 모를 활화산과 같던 샨도르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가고.
부하들에게 명령해 조치를 취해도 될 일에 본인이 직접 나섰다.
“반갑습니다. 저흰 대한민국 사냥꾼 협회의 탐색팀입니다. 저흰 현재 유럽의 탐색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교류를 위해 귀국의 웨이포인트를 등록했으면 합니다.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검은 눈에 검은 머리를 한 여성이 탐색팀 대표로 나서는 것을 본 샨도르는 실소를 흘렸다.
정중한 듯 보이지만, 자신감이 가득한 말투.
상대의 행동에서 소속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요청을 거절할 거란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처럼.
그 태도가 더욱 아니꼽게 느껴진 샨도르는…….
“무, 무슨!?”
-빠악!
그대로 그녀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안면에 박치기를 박아 넣었다.
한 방, 두 방, 세 방, 네 방.
“뭐야, 한국인이라고 전부 잘난 것도 아니잖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냥꾼 협회 탐색팀의 리더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상대의 앞니에 이마를 찢겨 피가 흐르는 샨도르는 얼굴에 광기가 가득했다.
“뭣들 하냐. 이 새끼들아. 침략자들 처치하지 않고.”
그런 샨도르의 모습에 부하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빼 들었다.
* * *
“헉!”
“어!?”
이번 이벤트 대전으로 인해 내 얼굴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낯선 동유럽의 땅을 밟았음에도, 수많은 현지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전부 도착했죠?”
“네, 그렇습니다.”
개중엔 호기심을 보이며 눈을 빛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우리의 분위기가 흉흉하단 것을 눈치채고, 아이들의 돌발 행동을 막았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헝가리 국경이 멀지 않은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란 도시다.
나는 그곳에서 간단하게 인원을 확인하고는 보유하고 있는 비행 펫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와이번 8마리와 미스릴 와이번 2마리, 플레임 드레이크 1마리가 지면에 착지하고, 웅성대는 주변의 소리와 시선을 무시한 채, 사냥꾼 협회의 정예들이 신속히 비행 펫에 탑승했다.
-펄럭! 파앗!
그리고 비행 펫들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곳곳에서 루마니아를 비롯해 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는 주변국 소속 정보원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무시하며 출발을 지시했고, 곧 11마리의 비행 펫들이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갈랐다.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부다페스트까지의 거리는 약 230킬로미터.
비행 펫들의 속도를 감안하면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 * *
루마니아팀의 리더 콘스탄틴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영토에 모습을 드러냈단 사실을 보고받곤 헛바람을 삼켰다.
“이렇게 빨리 움직였다고?”
“그, 그래. 이벤트 대전 우승자를 포함해 상위 라운드에 진출했던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찾아왔어. 참가 인원은 150명 남짓이지만, 아마 그들이라면 충분히 부다페스트를 정리할 수 있겠지.”
더구나 한국인들은 비룡을 이동용으로 사용했는데, 와이번 이상의 비행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안장’ 아이템은 레벨 125의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토벌하고 처음 먹었을 만큼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아직 루마니아팀에선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때문에 한국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며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시시각각 부다페스트를 향해 날아가는 한국인들을 주시하고 있을 때.
“대, 대장.”
“왜 그래?”
“한국의 사냥꾼 협회라는 단체에서 사람이 찾아왔어.”
“뭐?”
“부다페스트에 있는 단체의 정보를 원한다고.”
“…….”
사태를 지켜보고 이후 방향을 정하려던 루마니아에 한국의 사냥꾼 협회는 협력을 요청해 왔다.
감히 거절했다간 뒷일을 장담할 수 없는 요청을.
* * *
보복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린 헝가리의 사정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래서 나는 루마니아를 비롯해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주변 4개국에 헝가리 사냥팀의 정보를 요청했다.
다소 태도가 강압적이었던 만큼 4개국 중 절반 정도는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우리의 요청을 거절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벤트 대전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덕분에 우린 부다페스트에 도착하기 직전, 상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건 샨도르라는 인물로 헝가리와 주변 국가에서 평가가 그리 좋지 못한 인물이었다.
‘하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면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일 리가 없지.’
아무튼 이로 인해 내가 일행들에게 내릴 지시는 명확해졌다.
“샨도르 잡아 오세요.”
“네!”
짧지만 강한 어조로 내뱉은 말에 동료들이 각자 팀을 이뤄 지정된 장소로 흩어졌다.
샨도르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곳은 총 네 곳.
국회의사당, 부다성, 성 이슈트반 대성당,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였다.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네 곳을 한 번에 털고자 각 장소에 네 팀씩 총 16팀을 배치시켰다.
내가 이동할 곳은 국회의사당.
샨도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어?”
“저 사람은?”
나는 듀랜달을 쥐고 국회의사당 정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나를 알아본 샨도르 팀의 사냥꾼들이 당황했다.
“덤비면 죽는다.”
기세등등한 내 모습에 그들은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덤벼들었다.
샨도르 팀의 기반이 되는 세력이 갱단이란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래서인지 꽤나 호전적인 것 같았다.
-콰아아아앙!
“컥!”
“쿨럭.”
물론, 그로 인한 대가는 죽음이었지만.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져 내리는 천벌 스킬에 달려들던 사냥꾼들이 그대로 압사하며 핏물이 되었다.
그렇게 본보기를 보인 나는 서늘하게 물었다.
“샨도르 어딨어?”
그리고 운이 좋았을까?
덜덜 떠는 몇몇이 내가 향하던 국회의사당 건물을 가리켰다.
“빙고인가?”
* * *
샨도르는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멍청하진 않다.
그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으니, 한국의 탐색팀을 공격하는 일을 벌였다는 뜻이다.
“헬레나! 나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샨도르는 국회의사당 건물 내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꾸며진 방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곳엔 아름다운 붉은 머리의 여인이 노징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라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뭔데?]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
인간이 아닌, 몬스터로 자아가 강한 엘더 몬스터였다.
[엘더 이터 헬레나 / 레벨:130]
헬레나는 특이하게 인간을 사냥하지 않고 공존을 선택했다.
막무가내인 샨도르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면서.
그녀가 샨도르를 택한 이유는 단 하나, 한때 그가 목숨을 구걸하며 건넨 귀한 위스키 맛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위스키에 대한 샨도르의 안목은 버릴 수가 없어서 조금씩 힘을 보태 주다 보니, 이젠 대놓고 이렇게 도움을 요구했다.
“지금 부다페스트를 습격하고 있는 외국인 사냥꾼들이 있어. 그런데 이놈들의 수준이 상당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네가 나서야 할 것 같아.”
그에 헬레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향을 음미하던 위스키를 내려놓았다.
[일주일 이내에 내가 맛본 적 없는 위스키나 코냑 10종을 가져와야 할 거야.]
“무, 물론이지.”
샨도르의 요구에 헬레나가 조건을 걸고.
이걸 또 샨도르가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거래가 성립되었다.
‘됐어. 이 괴물을 누가 이기겠어. 아무리 그 한국인이라고 해도 헬라나를 어쩌진 못할 거야.’
샨도르는 벌써 상황이 해결된 것처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샨도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을 한 헬레나는 테이블에서 헤어밴드를 집어 들어 느긋하게 뒷머리를 묶어 올렸고, 이내 아공간에 손을 넣어 거대한 낫인 데스사이드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샨도르를 따라 방을 나서는데…….
-콰아아앙!
느닷없이 벽면이 터져 나가며, 그들의 앞으로 검 한 자루를 쥔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내를 본 순간.
-찌릿.
헬레나는 전신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느껴 보는 감각.
그건 본능이 경고하는 위험 신호였다.
“호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건가?”
상대의 대사에 헬레나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샨드로를 바라보았다.
그에 샨드로는 호기롭게 외쳤다.
“헬레나 저놈이 대장이야! 저놈부터 쓰러뜨려!”
웃음기 가득한 샨드로의 외침.
헬레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행동에 샨드로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느닷없이 헬레나가 바닥에 데스사이드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졌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이어서 헬레나가 침입자를 향해 납작 엎드리며 목숨을 구걸하자, 샨드로는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