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확산과 굴복 (3)
나는 바짝 엎드린 붉은 머리의 여성을 내려 보며 흥미를 표했다.
[엘더 이터 헬레나 / 레벨: 130]
그녀는 엘더이긴 해도 일단은 몬스터.
하지만 자신의 열세를 파악하자마자 무기를 내려놓고 목숨을 구걸해 왔다.
“헤, 헬레나! 뭐 하는 거야! 저놈을 처치하라니까!?”
그리고 내가 헝가리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인 샨도르의 태도를 보아하니.
엘더 몬스터인 그녀가 인간인 샨도르를 부린다기보다, 오히려 그녀가 부려지는 입장으로 보였다.
‘네임드 이상의 특수 몬스터는 길들이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헬레나가 샨도르의 말을 무시하고 얌전히 있는 거 보면 시스템적으로 엮인 주종 관계는 아닌 모양이다.
‘하긴, 레벨 90도 안 되는 놈이 레벨 130의 엘더를 어떻게 테이밍하겠어.’
샨도르의 레벨의 85.
헬레나보다 레벨이 무려 45나 낮다.
그래서 나는 헬레나의 앞에 듀랜달을 ‘쿵!’ 꽂으며 물었다.
“옆에 있는 놈하곤 무슨 관계야?”
[거래로 엮인 관계입니다. 보통 제가 저자의 요구를 들어주고 대가를 받는 식이죠.]
“대가라면?”
[위스키 같은 술을 받습니다. 제가 술을 워낙 좋아해서…….]
그리고 질문에 이어진 헬레나의 대답에 나는 더욱 재밌다는 반응을 보여야 했다.
술이야 그녀가 인간과 몬스터를 부려 먹으면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거래로 원하는 물건만 받는다는 게, 더욱 특이하게 느껴졌다.
“내가 널 살려 주면 뭐가 좋을까?”
몬스터는 자신의 물건을 사냥꾼이나 다른 몬스터에게 양도하는 게 불가능하다.
죽어서 드롭해야만 몬스터의 물건을 얻을 수 있다.
즉, 직접적으로 그녀에게 뭔가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복종을 맹세하겠습니다.]
“음…….”
레벨 130의 엘더를 부릴 수 있다면 당연히 좋다.
엘더는 많은 몬스터를 부하를 거느릴 수 있는 만큼, 잘하면 공짜 노동력을 대규모로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녀를 테이밍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다는 거다.
시스템적으로 엮을 수가 없으니, 헬레나의 행동에 강제성을 부여하지 못한다.
‘헬레나를 죽이면 적지 않은 경험치와 다양한 아이템을 먹을 수 있긴 하겠지만. 그게 특별할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차라리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부릴 수 있는 엘더의 능력이 훨씬 귀중해.’
나는 고민했다.
평범한 엘더 몬스터가 목숨을 구걸했다면 고민 없이 목을 쳤겠지만…….
[무, 무엇을 고민하시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귀인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지는 인간과도 동등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부디 믿어 주십시오.]
그녀는 이 점이 특별했다.
다른 몬스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
그래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헤, 헬레나! 대체 왜!?”
나는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샨도르를 향해 말했다.
“좀 닥쳐 봐. 생각 정리 중이니까.”
그리고 내 등 뒤에 둥둥 떠다니던 바리사다가 제3의 손에 의해 고속으로 휘둘러졌다.
바리사다는 1초도 걸리지 않아 원상 복귀했지만.
-푸확!
“어?”
샨도르가 갸우뚱 바닥에 고꾸라지며 이내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악! 내 다리!”
바리사다가 그의 방어구를 투과하며 양다리를 베어 버린 것이다.
어차피 놈은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흠칫.
하지만 이 행동으로 인해 헬레나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어리석은 선택을 해 봤자, 명만 단축한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 제가 취해야 하는 행동은 새로운 주인님께 바짝 엎드리는 것뿐이지요.]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녀를 ‘테이밍’ 방식으로 엮을 순 없어도, 배신을 막을 방법은 있다.
그래서 헬레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널 거두지. 대신 앞으로 너는 계속 나를 따라다녀야 할 거야. 만약 떨어져서 별도의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경우엔 이것의 감시를 받게 될 테고.”
내 머리 위에 은신하고 있던 업그레이드 감시형 오토마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업그레이드 감시형 오토마타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내게 알림 메시지를 보내오는 기능이 있으니, 떨어져 있어도 헬레나가 배신을 한다면 빠른 조치가 가능했다.
“이제부턴 계속 감시를 받으며 살게 될 텐데, 괜찮겠어?”
내 물음에 그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그게 죽는 것보다야 100배 낫죠!]
“오케이, 좋아. 너는 오늘부터 비테이밍 꼬봉 1호다.”
죽다 살아나서인지, 헬레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을 위로 들었다.
그리고 관등 성명을 대듯 말했다.
[비테이밍 꼬봉 1호 헬레나입니다!]
나는 그런 헬레나에게 일어나라며 손을 뻗었다.
“이터라는 종족의 몬스터는 처음 보는데, 네 특징과 전투 스타일, 길들일 수 있는 몬스터 숫자를 알려 주겠어?”
그에 헬레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저는 이터라는 종족의 엘더 몬스터가 아니라, ‘엘더 이터’라는 특수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수종?”
[네, 보통의 엘더 몬스터는 같은 엘더 몬스터를 처치하고 힘을 흡수해야 성장할 수 있는 반면, 저는 같은 엘더는 물론, 일반 몬스터와 인간, NPC에게서도 힘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먹이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란 거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헬레나는 엘더 중에서도 성장 포텐셜이 매우 높은 특수종이었다.
“이거 위험한 놈이네.”
[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히 인간이나 NPC처럼 역공을 당할 수 있는 상대를 건드려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란 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내가 슬쩍 웃으며 떠보자,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충분히 납득되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녀에게 스펙 설명을 계속하게 했다.
[저의 주 무기는 데스사이드이며, 블링크, 백스텝 등 다양한 회피기를 보유한 근접 전투 타입입니다. 가장 강력한 스킬은 ‘사신 빙의’로 효과는 1분간 모든 공격의 위력이 2배 상승하고, 공격 범위는 5배가 커집니다. 다만 사신 빙의는 10분의 재사용 대기 시간 있어서 마구 남발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제가 길들일 수 있는 몬스터의 수는 최소 10마리에서 최대 1만 마리입니다. 레벨 10 이하의 저렙 몬스터라면 1만 마리도 길들일 수 있지만, 레벨 100의 몬스터는 50마리, 저와 비슷한 레벨 121~130 사이의 몬스터는 10마리까지밖에 길들일 수 없습니다.]
확실히 엘더 몬스터라 그런가?
스펙이 일반적인 펫과 급이 다르다.
아마 단독 전투력만으로도 레벨 130의 헬레나가 레벨 140이 넘는 검둥이나 다켈프, 룡룡이보다 훨씬 강하지 않을까 싶다.
‘전투에 써먹어 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노동력으로 이용해야지. 헬레나가 부하 몬스터들을 길들이면 산 하나쯤 밀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내가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자 눈치 빠른 헬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확인하듯 되물었다.
“인간을 흡수하는 것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나는 헬레나에거 첫 번째 명령을 내렸다.
“그럼 저거 먹어 봐.”
[…….]
헬레나의 시선이 나의 손을 따라 이동하고, 그 손이 가리킨 곳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열심히 바닥을 기어가고 있던 샨도르가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헬레나는 데스사이드를 집어 들었다.
“헤, 헬레나. 왜 그래? 우리 친했잖아.”
그리고 헬레나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자, 샨도르는 다급히 그녀를 말리려 했다.
[미안하지만, 너와 친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뭐?”
[좋은 술을 구해 오는 네 안목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엔 좋아할 만한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거든.]
애석하지만 헬레나의 답은 냉정했고,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샨도르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일을 수습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저지르질 말았어야지.”
샨도르 딴엔 헬레나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을 벌였겠지만.
헬레나가 돌아서니,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타인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한 자의 말로라 할 수 있겠다.
“제, 제가 잘못…….”
“처리해.”
[네!]
이어서 샨도르의 머리가 허공을 날고.
나는 신기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콰직!
헬레나의 그림자가 샨도르의 시체를 삼켜 버린 것이다.
-퉷! 퉷!
그리고 그림자는 샨도르가 품고 있던 아이템들을 하나씩 토해 내곤 그대로 축소되어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다.
“레벨은 변화가 없네?”
[네, 샨도르와 레벨 차이가 심해서…….]
나는 고개를 조아리며 충성스러운 부하의 모습을 흉내 내는 헬레나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경고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배신하면 알지?”
[아, 알겠습니다.]
헬레나를 이끌고 국회의사당 밖으로 나오자, 언제든 다른 팀을 도울 수 있게끔 하늘을 배회하던 윌리아와 시에나가 다가왔다.
“그 여잔 또 뭐야? 벌써 바람피우는 거야?”
“엘더 몬스터잖아요. 복종하겠다며 빌길래, 한번 데려가 보려고요.”
“아, 그래? 갑자기 글래머러스한 백인 누님을 끌고 오길래, 난 벌써 윌리아에게 질렸나 했지.”
시에나가 장난기 가득한 말을 내뱉는 바람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윌리아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하, 하하. 얘 몬스터인데요?”
“몬스터여도 외모가 인간이니 가능……. 컥!”
하지만 윌리아는 시에나에게 분노의 철권을 날릴 뿐, 내게 별다른 눈치를 안 줬다.
덕분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룡룡이에게 포효를 내지르라 지시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건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
머지않아 지정된 장소를 청소한 동료들이 복귀할 것이다.
이것으로 부다페스트에서의 볼일은 끝이 났다.
* * *
“한국인들은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전투에 돌입했으며, 헝가리의 사냥꾼들은 전투다운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분쇄되었습니다.”
“리더인 샨도르도 단 몇 분 만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샨도르의 연인으로 알려졌던 붉은 머리의 여인이 한국인들에 의해 끌려갔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루마니아의 대표 사냥꾼 콘스탄틴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상황이 종료되다니.
압도적인 무위를 앞세운 단호한 한국의 심판은 마치 자신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다.
허튼짓은 생각지도 말라는 것처럼.
“사망자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이는 헝가리 사냥꾼들이 겁을 먹고 도망쳤기에 벌어진 상황입니다.”
“그 겁 없는 놈들이 도망을 치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콘스탄틴은 한숨을 내쉬고는 부하의 보고 중 이상했던 한 부분을 짚었다.
“그런데 샨도르의 연인을 끌고 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추가 조사가 필요한 정보인데요…….”
“뭐가?”
“그 여자가 엘더 몬스터였답니다. 그것도 레벨 130의.”
한국인들이 혹여라도 힘없는 여인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건가 싶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 콘스탄틴은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만약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동안 샨도르 일행의 해결사 역할을 해 주던 게 그 엘더 몬스터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샨도르의 해결사.
그 존재는 콘스탄틴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결사가 몬스터였다고?
그것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엘더 몬스터?
레벨 130의 엘더 몬스터를 상대할 경우, 나라 전체가 나서면 어찌어찌 토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콘스탄틴은 그런 몬스터가 바로 옆 나라에 있었단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혹시 샨도르가 그동안 벌인 미친 짓들이.”
“어쩌면 엘더 몬스터의 지시일지도 모릅니다. 엘더 몬스터가 힘으로 인간을 부리는 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졸지에 몬스터의 조종을 받은 꼭두각시가 된 샨도르였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한국인들이 데려갔다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테이밍을 한 게 아닐는지요. 몬스터가 순순히 인간을 쫓아다닐 리가 없으니까요.”
한국인들의 존재가 더욱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엘더 몬스터를 길들였단 이야기도 처음 듣지만, 무려 레벨 130의 엘더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소름이다.
결국 콘스탄틴은 결론을 내렸다.
“한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교류하기로 한다.”
“네, 알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동맹도 맺으면 좋겠지만…….”
“아마 동등한 위치에서의 동맹은 힘들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쪽이 약자인 만큼 굽히고 들어가야지.”
그건 항복 선언과 같았다.
싸우지는 않았음에도 되레 겁을 먹고 알아서 낮은 위치를 취했으니까.
이런 반응은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헝가리 사태를 주시하던 주변 국가 모두가 같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동유럽의 상황이 서유럽에 전해지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한국은 유럽 전체에 크나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바,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저희 체코는 한국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이런 한국의 악명 덕분인지, 감히 탐색팀에 위해를 끼치는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많은 이들이 억지 미소를 띠며 한국인들의 방문을 환영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