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마경과 마계 (2)
지난 이벤트 대전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우리 파티는 더욱 강력해졌다.
현재 우리 파티의 레벨은 146.
보유하고 있는 유일 등급의 장비는 무려 8개다.
윌리아가 2개(스타라이트 스태프, 치유의 헤일로), 시에나가 2개(신궁 비자야, 살성의 장갑), 내가 4개(성검 칼립소, 듀랜달, 바리사다, 이능의 날개)를 갖고 있으며.
“오늘도 잘 부탁한다?”
“네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 잘 듣는 엘더 몬스터 헬레나가 검둥이 다켈프 등의 펫들과 보조를 맞춰 우리를 지원해 준다.
헬레나는 참으로 가성비가 좋은 녀석이다.
엘더 이터의 특성 덕분에 사냥을 끝내고 경험치와 보상을 털어먹은 몬스터의 사체도 그림자를 이용해 포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굳이 경험치를 나눠 주지 않아도 몬스터의 사체만 있으면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단 뜻이다.
그 증거로.
[엘더 이터 헬레나 / 레벨: 132]
요 며칠 사이 헬레나도 레벨이 오른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레벨을 더 올릴 수도 있었는데, 헬레나가 아직 나를 어려워해서 위와 같은 성장 방식을 뒤늦게 알려 주었다.
그래서 우리 파티가 레벨을 3이나 올릴 동안 헬레나의 레벨은 고작 2밖에 오르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몬스터를 사냥하더라도 ‘포식’이란 특성 덕분에 헬레나의 성장 효율이 우리보다 좋기 때문이다.
헬레나가 너무 강해지면 괜히 건방 떨 수도 있으니, 성장 속도가 우릴 추월하지 않게 조절하면서 키우면 꾸준히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말 잘 듣는 헬레나를 칭찬하듯 어깨를 두들겼다.
-퉁. 퉁.
하지만 직접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두들긴 건 아니다.
여자 친구가 뻔히 옆에서 보고 있는데, 다른 여성을 터치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내 주변엔 거대한 금속 손이 날고 있는데, 그 손이 대신 의사를 표현해 준 것이다.
참고로 그건 ‘이능의 날개’ 장비가 가진 특수 기능 중 하나인 마력 소모 없는 염력 스킬로 조종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금속 손은 드워프 NPC인 토레프가 만든 것으로 특별한 기능은 없다.
오로지 염력 스킬의 훈련용으로 만든 것이어서 전투 중엔 사용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따봉이나 뻑X를 날리는 등 의사 표현 용도로 쓰였다.
“히드라가 5마리나 있네.”
“좋습니다. 바로 가죠.”
때문에 나는 전투 시작 전 거대 금속 손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옵션 좋은 희귀 등급의 대검 10자루를 꺼냈다.
그러자 염력 스킬에 의해 대검 10자루가 뭉쳐져 손의 형상을 이뤘다.
염력 스킬은 이미지가 중요한데, 제3의 손의 영향인지, 나는 손을 연상시키는 게 가장 편했다.
그래서 훈련을 손 모형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파앗!
그렇게 전투 준비가 끝나자, 내 신호에 맞춰 시에나가 저격 스킬로 히드라 한 마리를 끌어당겼다.
-키에에에에에엑!
머리 하나하나의 크기가 집채만 한 거대 히드라가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왔는데, 놈은 시에나의 화살을 맞았음에도 금세 부상을 회복한 상태였다.
히드라는 일반 몬스터지만, 여느 일반 몬스터와 다르다.
일단 체급 자체가 웬만한 대형 건물보다 큰데, 고속 회복 능력까지 갖고 있다.
최근 일반 몬스터임에도 단일 파티로 사냥하기 힘든 특성이나 피지컬을 가진 놈들을 엘리트 몬스터라 부르고 있는데, 히드라가 바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콰아앙! 콰아앙!
히드라의 레벨은 160이지만, 실제 전투력은 그 이상이라 봐야 한다.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워야 정상이지만…….
“그럼 다음 히드라도 끌어들일게.”
“네!”
시에나는 한 마리의 사냥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곧장 다음 히드라를 끌어들였다.
솔직히 히드라의 상대가 어려운 건 일반적인 사냥꾼들의 이야기지, 우리 파티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콰콰콰콰콰!
-쿠웅!
히드라가 화염 브레스를 내뱉었지만, 손 모양을 하고 있던 대검 10자루가 활짝 펼쳐지며 브레스를 막아 냈다.
염력 스킬이 깃든 대검들은 나의 보조 공격 수단이기도 하면서, 훌륭한 방어 수단이다.
“절망의 빛.”
“거신의 심판!”
“천벌.”
염력이 히드라의 브레스를 막아 내는 동안, 우린 바로 카운터를 날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3개의 스킬이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윌리아가 사용한 ‘절망의 빛’은 붉은색과 백색의 빛이 연거푸 지면을 강타하는 융단 폭격 스킬이고.
시에나가 사용한 ‘거신의 심판’은 내 천벌 스킬과 비슷하게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화살 하나가 소환되어 떨어지는 스킬이었다.
-쿠우웅!
아무리 히드라가 강력한 엘리트급 몬스터라 하더라도 유일 등급 무기의 내장 스킬 3개를 연달아 맞고도 무사할 순 없었다.
그렇게 우린 히드라 한 마리를 순삭하고는 시에나가 끌어들인 두 번째 히드라를 공격했다.
-키에에엑!
첫 번째 히드라는 4두룡이었는데, 두 번째 히드라는 5두룡이다.
레벨은 같아도 두 번째 녀석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는데…….
-촤아악!
쓸데없이 화려한 푸른 빛의 이능의 날개를 펼친 내가 고속으로 허공에 날아오르자 히드라의 머리 다섯 개가 일제히 바닥에 떨어졌다.
-쿠우웅! 쿠웅!
제3의 손이 쥐고 있는 바리사다의 투과 스킬에 맥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내가 날아오르는 순간 두 번째 히드라가 죽을 것임을 예상한 일행은 바로 3번째 히드라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번엔 헬레나가 다켈프를 포함한 펫들과 히드라의 시선을 끌고, 윌리아와 시에나가 원거리 공격으로 히드라의 머리들을 터뜨렸다.
토벌 속도는 바라사다를 빼 든 나보다 아주 조금 느린 수준.
‘그만큼 방무댐(방어를 무시하는 대미지)이 사기란 뜻이지.’
그리하여 힘들이지 않고 히드라 다섯 마리를 해치운 우린 스폰 구역에 자리를 잡고, 다음 히드라가 나오길 기다렸다.
“여, 역시 여러분 정말 강하시네요.”
그사이 사체들이 사라지기 전에 포식을 완료한 헬레나가 레벨 1이 오른 상태로 다가와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아무래도 펫들처럼 시스템적으로 엮인 관계가 아니라 그런지, 생존을 위해 중간중간 열심히 아부를 떠는 헬레나였다.
“그럼, 너도 언젠가 언니처럼 강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런 헬레나는 시에나의 좋은 장난감이다.
윌리아는 헬레나를 다켈프와 다름없이 대하지만, 시에나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쳤다.
스스럼없이 엉겨 붙고, 심심할 때마다 부하 부리듯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게 했다.
“저러다 언제고 칼 맞지.”
그런 시에나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윌리아.
나도 윌리아의 감상에 동의했다.
너무 강해져서일까?
우리 파티는 히드라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스폰 구역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위기감 없이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이렇게 방심한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키에에에엑!
“백호!”
“네!”
몬스터가 등장한 순간 누구보다 기민하게 반응하는 게 우리 파티다.
이는 방심이라기보단 고였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린 히드라가 등장하는 즉시 토벌에 토벌을 거듭하며 퀘스트 완료를 향해 나아갔다.
* * *
“아, 아이고! 오셨습니까?”
나는 마계에서 추방당한 마족이자, 내게 퀘스트를 부여한 나인포 일행이 머물고 있는 마경의 한 동굴을 방문했다.
그러자 일전에 내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는 나인포와 그 일행은 발 빠른 이등병처럼 튀어나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나인포(마족) / 레벨: 200(-80)]
-호감도: 0%(두려움)
-대상의 레벨이 낮춰진 상태입니다.
나는 그런 나인포를 보며 퀘스트 완료 사실을 보고했다.
“오오! 그렇습니까?”
그러자 마냥 우리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던 마족들의 눈빛에 광채가 깃들었다.
그리고 퀘스트 아이템을 나인포에게 건네자, 녀석은 이리 답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이 재료들을 이용해 해독약을 만들어야 해서요.”
해독약이라 하면 아마도 그들의 떨어진 레벨을 복구시키는 약일 터이다.
그에 나는 위협적으로 손을 들며 말했다.
“어디서 약을 팔아. 퀘스트 완료는 재료 3종 구해다 주는 거잖아.”
“아, 아아! 그랬습죠! 헤헤!”
내 으름장에 몸이 먼저 반응한 나인포는 움찔 떨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상향된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본래 퀘스트 보상은 나인포를 부하로 영입하는 거였다.
하지만 나인포가 몰래 뒤에서 작당하다가 걸린 전적이 있고, 그 결과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으면서 퀘스트 보상이 상향되었었다.
그리하여 얻게 된 퀘스트 보상이 이것이다.
[나인포를 포함한 휘하 세력을 부하로 영입합니다. 해당 부하들은 1년간 당신에게 강제 복종하며 일방적인 계약 파기가 불가능합니다.]
너무도 만족스러운 보상이 아닌가?
시스템으로 엮인 관계인 만큼, 배신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한결 인자해진 마음으로 나인포를 바라보았다.
“뭐, 도와줄까? 이왕 해독약을 만들 거면 약발이 확실한 게 좋잖아?”
이제 녀석들은 나의 부하.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레벨을 복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그에 나인포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충분합니다요. 이후부턴 연금술의 영역인지라 믿고 맡겨 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와 일행은 나인포의 부하들이 재빨리 내온 의자에 앉으며 놈들이 해독약을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꽤나 정밀한 작업이 필요한지, 녀석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계량하고 또 가열하며 내가 구해 온 재료들을 가공했다.
처음엔 놈들의 작업이 흥미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지루해졌다.
-바스락.
그래서 우린 인벤토리에서 티 테이블 세트를 꺼내 다과를 즐겼다.
“야, 그거 맛있냐?”
그리고 이런 다과 시간은 헬레나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이유는 얼마나 꿍쳐 둔 건지 모르는 위스키를 꺼내 홀짝거리기 때문이다.
와인 잔과 비슷하게 생긴 위스키 노징 글라스에 황금빛 액체를 흔들며 향을 음미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그럴싸하다.
덕분에 시에나가 관심을 보였다.
“한 잔 드릴까요?”
표정은 아까워하면서도 한 잔을 권유하는 게 그녀의 처세술이었다.
헬레나의 제안에 시에나는 흥미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에게? 겨우 요만큼?”
헬레나가 위스키를 노징 글라스의 반의반도 채우지 않자, 시에나가 도끼눈을 떴다.
“바, 방금 막 딴 거라 에어링이 되지 않아서요. 잔을 흔들면서 위스키를 최대한 공기에 노출시킨 후 드셔 보시면 진한 과일 향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하지만 나는 시에나가 보일 반응이 쉽게 예측되었다.
“켁! 끄악! 나 죽어!”
과일 향이건 뭐건 일단 위스키는 도수가 매우 높다.
특히 헬레나가 갖고 있는 위스키는 대부분 도수가 50도를 넘는 만큼, 술맛을 모르는 시에나가 먹기엔 무리인 게 당연했다.
“이, 이년이 날 독살하려고 했어!”
“아악! 아니에요!”
괜히 시에나에게 아끼는 위스키를 따라 줬다가 머리만 뜯긴 헬레나였다.
나도 그녀가 블렌디드니, 싱글몰트니 하면서 준 위스키를 마셔 본 적이 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아무튼 두 사람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업이 끝났는지, 한 손에 하나씩 작은 컵을 든 마족들이 다가왔다.
“그걸 마시면 레벨이 복구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나는 긴장한 듯한 나인포 일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독약을 먹으란 지시였다.
그에 나인포 일행이 단숨에 컵에 든 액체를 들이켜고.
-화아아아악!
동굴 내부에 강력한 마력의 태풍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