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급변 (1)
자신이 가진 마경의 정보를 활용하면 빠른 레벨업이 가능하단 나인포의 이야기에 나는 만족스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인포를 포함한 마족 NPC 21명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를 영입함에 있어서 가장 기대되었던 게 바로 정보였으니까.
지금까지의 나는 항상 선두에 서서 모든 걸 개척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거 아닐까?
“좋아, 그럼 네가 성장을 위한 플랜을 짜 봐.”
“네, 맡겨 주십시오!”
“혹시라도 딴생각하면 알지?”
“어휴, 그런 게 불가능하단 것쯤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나는 나인포의 안내로 찾은 마경 내 두 번째 안전 구역을 둘러보았다.
마경에 들어서면 필연적으로 눈에 띄는 산맥 지대가 있다.
그럼 사람들은 자연스레 산맥 지대를 목표로 잡고 이동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마경의 진면목은 지상이 아닌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마경 곳곳에 자리한 개미굴처럼 복잡하고도 방대한 지하 필드들.
다양한 보물과 특별한 몬스터들이 그 지하 필드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둘러보고 있는 마경 내 두 번째 안전 구역 역시,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러니, 안전 구역 찾는 게 힘들지.’
나인포가 아니었으면 이곳을 발견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성장 플랜을 계획하는 나인포를 슬쩍 바라보곤 이내 추가 조건을 붙였다.
“다소 위험한 건 상관없을 것 같아. 극한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성장 플랜을 짜 봐.”
“그렇다면 아주 좋은 곳들이 있죠.”
이미 경쟁 상대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지만, 나는 쉬지 않고 달릴 생각이다.
마계를 비롯해 세상엔 알지 못하는 위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 * *
서백호가 마경에서 미친 듯이 사냥을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는 동안.
사냥꾼 협회는 실질적 관리자인 강이솔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 갔다.
“대한민국 내 사냥꾼 협회 가입자 수가 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해외 지부는 일본의 가입자가 35만 명이며, 러시아가 10만 명, 몽골이 약 5만 명으로. 한국을 더해 총 100만이 넘는 가입자를 달성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중국 동북부 지역의 소수민족 연합이 우리 사냥꾼 협회에 가입이 가능한지 문의해 왔습니다. 해당 단체는 조선족들이 주류로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가입 인원이 3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우리 사냥꾼 협회에 동맹을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사냥꾼 협회의 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이제는 거의 하나의 국가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확장을 거듭하는 건 아니었다.
“소수 민족 연합이 우리 협회에 가입하기 위해선 내부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전하세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뜻을 같이할 수 없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동맹은 정부의 일이지 우리가 처리할 일이 아닙니다. 사냥꾼 협회는 대한민국에 속한 일개 단체일 뿐이니까요.”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지금이 과도기인 만큼 최대한 신중하고 면밀하게 상황을 살피며 확장을 이어 가고 있었다.
“협회 도시 제3구역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제4~8구역은 주중으로 설계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사냥꾼 협회는 가입 인원만 늘리는 게 아니라 자체 인프라 구축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올림픽 공원에 만들어진 협회 도시 제1구역(44만 평)에 이어, 바로 옆 지역에 건설을 시작한 제2구역(36만 평)이 완공되었으며, 현재는 여의도에 50만 평 규모를 가진 제3구역이 공사 중에 있다.
1구역과 2구역이 협회 회원과 그 가족들을 위한 거주 구역이라면 제3구역은 요새에 가까운 형태로 지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여의도 지하에 마경의 입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
제3구역은 혹시 모를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협회의 첫 군사 거점이자, 신규 사냥꾼 육성을 위한 교육 기관이 자리할 예정이다.
또한 세종시에 만들어질 제4구역과 함께 일본 오사카에 제5구역, 도쿄에 제6구역,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제7구역, 몽골 울란바토르에 제8구역이 동시에 지어질 예정이다.
“한 번에 여러 도시를 건설하면 자금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협회의 규모가 커진 데다가 소속 사냥꾼들의 레벨도 높아져서 운용 자금이 크게 늘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경우 자체 운용 자금만으로도 건설비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죠. 다만 몽골은 본부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좋네요. 다만 일본과 러시아도 자체 운용 자금으로만 해결하라고 하진 말고, 본부에서 조금이나마 지원해 주세요. 그쪽보단 우리가 더 여유 있을 거 아닙니까?”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협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 가지 큰 문제점도 함께 발생했으니…….
“아무래도 자체적인 ‘치안 관리 및 중범죄 수사 부서’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아, 사람이 많아진 만큼 어쩔 수 없군요.”
바로 레벨을 권력 삼아 타인에게 갑질 및 범죄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인을 상대로 한 갑질과 범죄는 사냥꾼 협회라는 단체가 오히려 방패가 되어 정부에선 터치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협회 본부가 나서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치안 관련 부서를 만들기로 한 이상 제대로 만들도록 하죠.”
강이솔은 먼저 경찰처럼 순찰과 수사, 체포를 담당하는 ‘치안부’를 만들기로 했다.
더불어 치안부의 상급 조직으로 검사와 판사를 합친 형태의 ‘심판부’를 만들어 문제를 일으킨 사냥꾼들을 처벌하고, 이런 심판부의 처벌이 합당한지를 감시하기 위한 ‘감사부’를 본부에 두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협회 내 주요 간부들에게 감사부를 조사할 권리를 부여해 이중 감사 체계를 만들도록 합시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인원 구성은 치안부의 경우, 저레벨의 사냥꾼이나 일반인 중 경찰과 군인 출신을 고용하기로 했으며.
심판부는 변호사나 검사, 판사 출신의 민간인을 뽑고.
마지막 감사부는 성장이 멈춘 30레벨 이상의 사냥꾼들을 고용해 쓰기로 했다.
‘두려움 혹은 정신적 피로 때문에 최전선에서 이탈한 사냥꾼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제공하는 것도 협회의 일이겠지.’
꾸준히 성장을 한다는 건 계속해서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하며 도전을 이어 간다는 뜻과 같다.
이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
사냥꾼 협회가 아무리 잘나가는 곳이라 해도 정체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역할을 줄 수 있다는 건 매우 좋은 일이었다.
“그럼 다음 사안으로 넘어갈까요?”
이후로도 강이솔은 ‘업무 회의’에 참여한 행정계 인원들과 다양한 안건을 처리했다.
그렇게 얼마나 회의를 이어 갔을까?
강이솔이 문뜩 궁금한 걸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3자 교류회 잠잠하던데, 게네 뭐 한답니까?”
한국의 남부 패밀리와 일본 서부 연합, 대만팀이 힘을 합쳐 만든 ‘3자 교류회’.
최근 그 3자 교류회 소속 멤버들이 한국의 중립 도시(철원)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떠올린 강이솔이 부하들에게 물었다.
그에 해외 지부 관리자가 들은 게 있는지 답을 했다.
“최근 대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그래요?”
대만은 사냥꾼 협회에서 아직 진출하지 않은 곳이다.
이는 남부 패밀리를 향한 나름의 배려이기도 하며, 한편으론 굳이 목을 맬 만큼 중요 거점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장소에 3자 교류회가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뭔가 크게 득이 되는 게 있지 않은 이상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3자 교류회 전체는 아니어도 남부 패밀리에겐 보령에 있는 성장의 탑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 건가? 더구나 시나리오 조각 수집에 열을 올리던 남부 패밀리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니…….’
그들이 무슨 짓을 하건 사냥꾼 협회의 위협이 되는 일은 없겠지만, 절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때문에 강이솔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이번에 업그레이드한 감시형 오토마타 있잖아요? 그걸로 대만을 좀 살펴봐 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대만의 상황을 살피라는 지시를 내리고 이틀 뒤.
강이솔은 관련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대만에서 시나리오 조각을 모으고 있다?”
“네, 체계적으로 구획을 나눠 샅샅이 뒤지고 있더군요.”
대만은 영토 면적이 한반도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나라.
더구나 섬도 많지 않으니, 확실히 시나리오 조각을 모으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북한과 합쳐 한반도 전체에 시나리오 조각이 퍼져 있는데, 대만은 단독인 건가요? 다른 나라와 합쳐진 거 없이?”
한국은 북한을 합친 한반도에 20개의 조각이, 일본은 열도 전체에 30개의 조각이, 중국은 인구도 많고 땅덩어리도 커서인지 20~30개의 조각이 있는 12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극동처럼 조각 수가 많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해 뒀다.
사냥꾼 협회의 지부가 있는 몽골의 경우 땅덩어리는 커도 인구가 적어서인지 단 10개의 시나리오 조각이 퍼져 있을 뿐이니까.
“어쩌면 대만도 몽골처럼 수집해야 하는 조각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강이솔은 미간을 좁혔다.
현재 한반도에 등장한 시나리오 조각의 수는 16개.
그중 12개가 사냥꾼 협회의 수중에 있으며, 남부 패밀리가 2개, 한국과 북한 정부가 각 1개씩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남은 조각은 겨우 4개지만, 그 나머지를 찾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측이 맞다면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먼저 끝날 수도 있겠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조각 수집을 방해해야 하나? 아니면 그들에게 벌어질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까?’
강이솔은 고민했다.
하지만.
[축하드립니다. 아시아 제2권역에 속한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최초로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된 대만의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되며, 대만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런 강이솔의 고민은 쓸데없는 게 되어 버렸다.
설마 했던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업적 메시지와 함께 떠 오른 알람.
보상 소식에 한반도의 시나리오 조각을 보유한 강이솔의 속이 쓰렸지만, 이어진 메시지에 그는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된 국가가 등장하여, 전 세계의 시나리오가 조기 진행됩니다.]
[단, 대만을 제외한 국가들의 시나리오 조각 수집 상황이 평균 30%를 밑도는바, 60일의 유예 기간이 부여됩니다.]
[시나리오는 현 시간을 기준으로 60일 후에 진행이 되오니, 유예 기간 이내에 최대한 많은 조각을 수집할 것을 권장합니다.]
“허…….”
“이건?”
한국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시나리오 조각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못 한 나라로선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식.
설마 시나리오 조각의 수집 완료가 다른 국가에까지 영향을 주리라곤 생각지 못한 강이솔은 당황해야 했다.
[현 시간부로 중립 도시의 위치가 각국 웨이포인트에 자동 등록되며,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는 중립 도시 전쟁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현 시간부로 필드에 고등 몬스터의 등장 확률이 증가합니다.]
그뿐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고등 몬스터의 등장 확률이 증가하니.
“우, 우리가 먼저 시나리오 조각 수집을 끝내지 않아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가?”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타국 입장에서 대만은 전범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저지른 게 되어 버렸다.
* * *
남부 패밀리의 리더이자 3자 교류회의 회장이기도 한 김시우가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만 측 리더인 리즈웨이가 시나리오 조각을 2개나 획득했단 이야기를 듣고부터였다.
리즈웨이를 통해 대만엔 10개의 시나리오 조각이 존재하며, 현재까지 5개를 획득해 남은 조각 역시 5개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절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국인이란 이유로 굳이 한반도 시나리오 조각 획득에 열을 올릴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동맹인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을 획득하는 편이 안전한 거 아닐까?’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시나리오 조각의 보유자는 한 영토의 주인이 되어, 다른 영토의 주인들과 땅따먹기 전쟁을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김시우는 자신이 영주가 된다 해도 서백호가 있는 사냥꾼 협회와 다투기엔 역부족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만 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사냥꾼 협회 일본 지부에 밀리고 있는 일본 서부 연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시우와 일본 서부 연합의 장인 히토미가 대만의 리즈웨이를 설득했고, 결국 3자 교류회 차원에서 전격 수색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대만은 섬도 많지 않고, 탐색 영역이 그리 크지 않아. 마음먹고 수색을 시작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3자 교류회 멤버들이 계획적으로 대만의 구역을 나눠 탐색을 진행하자 의외로 조각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만 측이 총 6개를, 한국과 일본이 2개씩의 시나리오 조각을 모으면서 수집이 약 한 달 만에 완료되었다.
“한국의 사냥꾼 협회조차 아직 해내지 못한 일을 우리가 힘을 합쳐 해냈습니다!”
“쾌거로군요!”
그리고 떠오른 메시지.
[축하드립니다. 동남아시아 권역에 속한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최초로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된 대만의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되며, 대만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김시우와 3자 교류회 멤버들은 자신들이 해냈단 생각에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죽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된 국가가 등장하여, 전 세계의 시나리오가 일시에 조기 진행됩니다.]
곧이어 폭탄 발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60일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자신들로 인해 전 세계의 시나리오가 조기 진행되고, 필드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사실에 경악을 넘어 황당함을 표해야 했다.
“이거…….”
“우리 완전…….”
“엿된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