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급변 (2)
나인포의 성장 플랜은 매우 효율적이었다.
녀석의 계획엔 전투 난이도 대비 높은 경험치를 주는 몬스터를 지정하는 것뿐 아니라, 상성과 우리의 전투 능력까지 포함시키는 치밀함을 보여 주었다.
상대하는 몬스터는 대부분이 마 속성이었으며, 이는 우리 파티가 빛 속성에 치우쳐 있단 판단에 내린 결정이었다.
‘워낙 파괴적이라 종종 잊곤 하는데, 윌리아는 프리스트란 말이지.’
프리스트인 윌리아는 기본적 성향이 빛 속성이라 할 수 있는 데다가, 치유의 헤일로 덕에 회복 스킬의 효과가 100% 상승하고 심지어 마력 소모도 없다.
‘즉, 치유 스킬에 대미지를 입는 마 속성 몬스터에겐 극 카운터란 소리.’
더불어 나는 마 속성 공격의 피해량을 낮춰 주는 빛을 엮어 만든 방어구 세트로 전신을 감싼 데다가 성검 칼립소를 지니고 있으며, 빛의 화살을 만드는 시에나의 신궁 비자야 역시 마 속성에 큰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속성을 몰라서 이걸 활용하지 못한 게 아니야.’
우리 파티는 항상 새로운 사냥터를 개척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원하는 종류의 몬스터만 상대할 순 없었다.
때문에 속성을 활용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마경의 지리를 꿰고, 어디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나인포에겐 그게 가능했다.
덕분에 우린 기존에 사냥하던 몬스터보다 더욱 높은 레벨의 마 속성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빠른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전에 우리 파티는 이틀에 레벨 하나 혹은 3일에 레벨 하나를 올려 왔다.
그런데 나인포가 제안한 첫 사냥터에서 활동한 결과 우린 하루 만에 2번의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일반 사냥으로 하루 만에 2업을 하다니,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여러분의 실력을 제가 과소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백호 님의 전투 수행 능력은 상상 이상이군요. 초기 플랜을 두 단계 정도 건너뛰어도 되겠어요.”
그러나 나인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파티의 실정에 맞춰 플랜을 수정했다.
그로 인해 사냥하던 몬스터가 레벨 170의 ‘광귀’에서 180의 ‘나이트메어’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당연하지만 레벨 170의 몬스터와 레벨 180의 몬스터는 수준이 다르다.
자연히 사냥 속도는 느려지고 위험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연출되기도 했으나, 우린 꾸역꾸역 사냥을 이어 갔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날 역시 2번의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무려 이틀 연속 2번의 레벨업.
덕분에 우리 파티의 레벨은 150을 돌파했다.
심지어 3일째부턴 나이트메어에 익숙해지면서 사냥 속도가 점차 빨라졌고.
시에나는 빠른 성장이 즐거운지 종종 광기를 내비쳤다.
“이젠 내 세상이다!”
우린 3일째에도, 4일째에도 계속해서 2번의 레벨업을 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연속 레벨업은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이런 연속 레벨업이 계속 가능한 건 아니었다.
레벨이 오를수록 경험치 요구량 역시 증가했는데, 이게 우리 파티의 성장 속도보다 빨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하루에 1번씩 꾸준히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성장 속도였다.
레벨 100 이상 사냥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우리처럼 매일 꾸준하게 레벨을 올리는 사냥꾼은 없었다.
그렇게 나인포의 플랜에 맞춰 사냥을 이어 가길 10일째.
우리는 레벨 160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제 플랜은 레벨 180까지입니다. 레벨 180까지는 지금처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부턴 제가 가진 정보만으로 마경 내에서의 빠른 성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냥할 몬스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느리긴 해도 꾸준하게 사냥을 이어 가면 성장이 가능한 사냥터는 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폭발적인 성장은 불가능하겠지만요.”
“마계로 넘어간다면?”
“그럼 새로운 선택지들이 생기게 됩니다. 다만 마계는 말도 못 하게 위험하다는 게 문제죠.”
“결론은 그때 가서 위험을 감수하고 마계에 도전을 하던가, 안정적으로 마경에서 사냥을 이어 가던가 선택을 해야 한단 소리군.”
“네, 맞습니다.”
나는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뜩 무언가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마경 중심부에 마계의 군대조차 뚫기 힘든 강력한 몬스터들이 있다며?”
“그것들은 레벨 100대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닙니다. 드래곤에 준하는 괴물들이거든요.”
“그래? 엄청 위험한 곳이네.”
뭐, 레벨 180이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 이후는 천천히 생각해 봐도 될 것 같다.
머지않아 하루 1렙업의 페이스도 깨질 테니, 아마 레벨 180을 달성하는 건 지금으로부터 한 달 이상이 지난 뒤가 아닐까 싶다.
“켁! 이, 이 미친X! 차에 뭘 타 놓은 거야!?”
“위, 위스키 넣었는데요? 그, 그러게 왜 남의 차를 뺏어 먹어요!”
“찐 알코올 중독자네? 어떻게 차에까지 술을 타 먹냐?”
“이것도 나름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인데.”
마경이란 살벌한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너른 꽃밭.
“다켈프 이것도 먹어 봐.”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곳 중심에 테이블을 깔고 앉아 다과를 즐기는 네 명의 미인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절로 든다.
물론, 그중 다켈프는 테이밍 된 몬스터고, 헬레나는 그냥 쌩 몬스터지만, 함께 다닌 시간이 늘어나서인지, 이젠 인간과 다름없는 느낌이 들었다.
[다켈프(이블 엘프) / 레벨: 160]
[엘더 이터 헬레나 / 레벨: 152]
펫들은 우리의 성장에 맞춰 레벨 역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헬레나는 ‘포식’이란 특성 덕에 우리 이상으로 레벨이 올라 차이가 많이 좁혀진 것을 볼 수 있다.
덕분에 헬레나의 전투력 또한 크게 높아지면서 파티 내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NPC 동료와 펫 사이의 존재 같은 느낌이랄까?’
이젠 헬레나도 빼놓을 수 없는 동료다.
더구나 툭하면 시에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데도 참고 넘기는 거 보면 몬스터인 그녀가 시에나보다 성격마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인포와 사냥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일행들은 다과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축하드립니다. 아시아 제2권역에 속한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어?”
예상치 못한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대만이 시나리오 조각 수집을 끝냈다고?”
현재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마경에서 보내고 있는지라 바깥 상황은 잘 모른다.
때문에 대만이 우리보다 앞서 시나리오 조각 수집을 끝냈다는 소식에 크게 놀라야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 조각 수집이 완료된 국가가 등장하여, 전 세계의 시나리오가 일시에 조기 진행됩니다.]
곧이어 떠오른 메시지에 나는 황당함을 표해야 했다.
“한 나라라도 조각을 모두 모으면 전 세계의 시나리오가 동시 진행되는 거였나?”
하긴, 시나리오 내용이 인간들 사이의 땅따먹기 전쟁이라면 기간의 차이가 있어선 안 되긴 할 것 같다.
이웃 나라가 일찍이 시나리오 조각을 모두 모은 후 나라를 통일할 때까지 우리나라는 아직 조각을 모으고 있는 상태라면 밸런스가 맞질 않으니까.
그런데 시나리오 조각을 모두 얻지 못한 나라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설마 빈 땅의 주인을 랜덤으로 뽑는 건 아닐 테고.”
그래도 뭐…….
한국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긴 하다.
시나리오 진행까지 60일의 유예 기간을 준다고 하니, 그 시간 동안 남은 조각을 찾아내면 되니까.
현재 16개의 조각을 찾았으니, 앞으로 4개만 더 찾으면 된다.
‘문제는 방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들이네.’
몽골 같은 경우 겨우 10개의 시나리오 조각이 나라에 퍼져 있지만, 수색해야 하는 영토 면적은 대만의 무려 40배에 달한다.
분명 그런 나라들은 60일 이내에 모든 시나리오 조각을 찾진 못할 텐데, 이런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감히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어쩌면 페널티가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다른 나라들 모두 난리 났겠네.”
대만으로 인해 그나마 익숙해져 가고 있던 시스템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더구나 새롭게 도입될 시스템이 인간끼리의 경쟁인 만큼, 필연적으로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게 열심히 조각을 수집하고 있던 사냥꾼 협회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뭐, 당장 달라지는 건 없으려나?”
하지만, 시나리오가 진행되건 말건 내가 해야 할 일은 같다.
그건 바로 강해지는 것.
때문에 나는 당혹스러운 메시지에도 필요 이상으로 동요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았다.
[2번 조각 보유자(강이솔)]
-협회장님! 아무래도 본부에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급변한 상황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 * *
나는 사냥꾼 협회 본부가 속한 제1지구(올림픽공원)로 향했다.
그러자 밖에 나와 있던 많은 간부들이 일제히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 안엔 얼마 전 내가 중국까지 날아가서 영입해 온 무당파의 장문인과 그의 제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강이솔과 함께 협회 본부에 들어서며 무당파의 장문인 진후에이에게 말을 걸었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신가요?”
“네, 협회장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협회 도시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럽기 그지없더군요.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바깥이 어떤 상황인지 잊을 정도입니다.”
현재 그와 그의 제자들은 협회 주요 인사들에게 검을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을 대우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본인들도 이쪽의 극한 대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는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곤, 머지않아 안내된 대회의장에 앉으며 이곳에 불린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발생한 거죠?”
그러자 강이솔은 내 앞에 지도를 펼쳐 주며 말했다.
“현재 전국 각지에 필드 보스 및 광역 보스, 엘더 몬스터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도에는 붉은 점이 찍혀 있었는데, 그 수가 심상치 않았다.
그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이게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을 수집 완료로 일어난 일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아까 전 시나리오 조각 관련 메시지가 떴을 때.
현 시간부로 필드 내 고등 몬스터의 등장 확률이 높아진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건 마치 ‘너희들 이제 엿됐어’라고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현재 협회원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긴 하지만, 레벨이 100이 넘는 몬스터도 몇 마리가 있어서 사태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아마 그게 내가 불려 온 이유일 것이다.
고레벨의 몬스터 토벌에 힘을 보태 달라고.
“어렵게 이야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협회장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니까요.”
내 대답에 강이솔은 안도했다.
내가 나서면 문제는 빠르게 해결이 될 테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실은 일본과 러시아, 몽골 지부에서도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아아!”
“더불어 신 상하이방과 미국 측에서도 급히 도움이 필요하다며 연락이…….”
“…….”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은 쿨하게 반응했던 나를 당혹시키기 충분했다.
‘이거 저지른 놈들은 따로 있는데, 내가 뺑이 치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