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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79화 (179/273)

179화 급변 (3)

일단 생존 구역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먼저 제거하고 그 외 몬스터는 천천히 처치하면 될 것 같다.

현재 한국에 등장한 레벨 100 이상의 몬스터는 확인된 것만 13마리.

다행스럽게도 그 13마리 중 생존 구역을 직접 위협하는 몬스터는 아직 없다.

하지만 가능성 높은 몬스터가 5마리나 되고, 그중엔 레벨 145의 광역 보스도 있는지라 마냥 무시할 순 없었다.

‘최초 보상이 더해지는 특수 몬스터들도 있을 테니, 스킬북하고 희귀 등급 장비 왕창 벌겠네.’

어쩌면 쓸 만한 극상급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이 상황이 마냥 마이너스라고만 볼 수 없었다.

다만 상황 봐서 윤시아+클로에 팀이나, 최도겸과 김현수 파티를 포함한 최상위 사냥꾼들이 토벌할 수 있는 레벨 100대의 몬스터는 남겨 둬도 될 것 같다.

그들에게 이 상황은 전투 경험을 쌓고 파밍도 알뜰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까.

“지체할 이유가 없네요. 그럼 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사냥꾼 협회 본부를 나섰다.

본부의 인원들은 그런 나를 마중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런데.

“응?”

본부를 향해 의외의 인물들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혀, 협회장님.”

“김시우 씨 아닙니까?”

그는 바로 남부 패밀리의 리더이자 최근 3자 교류회란 국제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시우였다.

그리고 그의 곁으로 일본인과 대만인의 정보를 가진 인물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3자 교류회의 기둥이 되는 일본과 대만 측 리더가 아닐까 싶었다.

“대만의 시나리오 조각이 모두 모인 게 3자 교류회의 작품입니다.”

그건 강이솔의 말이었다.

귓속말처럼 전해 왔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레벨을 생각하면 아마 못 들은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랬군.’

사건의 전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김시우와 3자 교류회 간부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이솔이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얼굴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맞습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저희의 잘못입니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해서…….”

김시우의 시인에 나는 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들이 내게 죄를 고하기 위해 왔을 리는 없고.

지금 나는 몹시 바쁜 몸인지라 심플하게 물었다.

“그래서 용건이 뭐죠?”

그에 김시우가 쾅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무릎을 꿇고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 제발! 제발! 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 힘을 빌려주십시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는 속으로 놀랐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로 인해 이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들에겐 이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일은 저지른 건 당신들이지만, 해결은 나보고 하란 거죠?”

“면목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곡을 너무 세게 찔렀을까?

나름 우리의 경쟁 세력이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김시우가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마 이번 일로 적지 않은 희생자가 생길 터.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거 참…….’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목을 긁적여야 했다.

솔직히 지금 일어난 상황이 귀찮지만, 나는 무조건 대만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들이 시나리오 조각을 모으는 데 열을 올리지 않았으면, 이 사태를 일으킨 건 아마 사냥꾼 협회가 되었을 테니까.

쉽게 말해 열심히 조각을 모으던 우리 사냥꾼 협회는 운이 좋았고,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오명을 뒤집어쓴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차피 희귀 몬스터들을 처치하면 쏟아지는 보상도 적지 않고. 한국과 동맹국을 도운 뒤, 다른 나라에 힘을 보태 주는 것도 미래를 보면 득이 되는 행동이긴 해.’

‘아니지. 아예 인심 쓰는 척, 다른 나라를 도우면서 보상을 요구해도 되겠어. 나라를 구해 줬는데, 양심이 있으면 맨입으로 지나쳐선 안 되지.’

‘당연히 얘네들한테도 보상을 받아 내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김시우를 내려보며 말했다.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이번에 시나리오 조각을 모으면서 받은 최초 보상을 모두 협회에 양도하겠습니다.”

내 물음에 김시우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아마 이쪽에서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알아서 최초 보상을 바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최초 보상으로 뭘 받았으려나?’

모르긴 몰라도 시나리오 조각 관련 보상이면 꽤 좋은 걸 받았을 것 같다.

“최초 보상으로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에게 떠돌이 상인 소환권 1장과 희귀~유일 등급 장비 뽑기권이 1장씩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명이 바로 뽑기권을 사용하는 바람에 건네드릴 수 있는 건 떠돌이 상인 소환권 10장과 뽑기권 9장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보상 내용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청난 보상이다.

뽑기권도 뽑기권이지만, 유일 등급의 장비를 판매하는 떠돌이 상인의 소환권은 더욱 많은 유일 등급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란 뜻이기도 하니까.

‘안 그래도 코인이 많이 쌓여서 떠돌이 상인을 소환하려 했었는데.’

나 역시 떠돌이 상인 소환권을 한 장 갖고 있다.

그래서 여유가 되는대로 떠돌이 상인을 소환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소환권이 여러 장 있다면 전략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터이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협회 차원에서도.

“좋습니다. 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책임감 있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며 김시우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솔직히 거절하기엔 보상이 너무 좋았다.

결국 3자 교류회는 사냥꾼 협회가 먹을 수도 있던 욕을 대신 먹어 줄 뿐만 아니라 보상까지 토해 내게 생겼으니, 우린 맛있는 부분만 빼먹은 셈이 되었다.

‘다른 나라를 돌면서 코인을 보상으로 받아 내면 떠돌이 상인에 사용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겠어.’

떠돌이 상인에게서 유일 등급 장비를 구매하기 위한 자금 마련 계획까지 세운 나는 고생이 많았다며 김시우를 다독였다.

김시우와 그의 일행들은 내 속내도 모르고 그저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역시 사태 해결엔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자신들로 인해 발생할 희생자가 걱정인지, 한껏 죽은 얼굴색의 김시우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린 비행 전력도 꽤 있고,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제 부하들도 있으니, 여러분의 생각보단 빠르게 해결될 겁니다.”

“부하라시면?”

나는 퀘스트 의뢰주가 된 김시우를 위해 손가락을 튕겼다.

[마족 안드레 / 레벨: 190]

[마족 타미라 / 레벨: 185]

[마족 엔시스 / 레벨: 185]

그러자 주변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21개의 그림자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을 이끄는 리더가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마족 나인포 / 레벨: 200]

나인포를 포함한 마족NPC 21명의 등장에 강이솔을 제외한 모두가 경악하고, 나는 헛바람을 삼킨 채 굳어 있는 김시우에게 말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웬만한 놈들은 금방 정리하지 않을까요?”

나름 상큼하게 웃으며 답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내 미소에 김시우를 비롯한 3자 교류회 멤버들의 안색이 창백해지다 못해 파래졌다.

* * *

-휙! 고고고고!

서백호는 푸른 빛의 날개를 펼치며 고속으로 하늘을 날아 이내 반짝이는 별이 됐다.

더불어 윌리아와 시에나, 헬레나가 서백호의 플레임 드레이크(룡룡이)의 탑승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고.

21명의 마족들은 미스릴 와이번 두 마리(와이번, 와일번)에 나눠 탑승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협회장 일행이 뿔뿔이 흩어지자 사냥꾼 협회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협회장 일행 외에도 많은 이들이 와이번과 같은 비행펫을 갖고 있었으며, 무장과 레벨도 대단했다.

“저, 저, 저 괴물에 맞설 생각이었습니까?”

덕분에 협회 도시에 덩그러니 남겨진 대만팀의 리더 리즈웨이는 김시우와 히토미를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김시우의 남부 패밀리와 히토미의 일본 서부 연합이 사냥꾼 협회 본부와 사냥꾼 협회 일본 지부의 라이벌임을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시우와 히토미는 리즈웨이의 물음에 어버버 말을 잇지 못했다.

“사냥꾼 협회와 그 협회의 주력 멤버들이 대단하단 걸 지난 이벤트 대전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이건 아예 급이 다르잖아요.”

리즈웨이의 말대로다.

사냥꾼 협회가 대단하단 것은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다.

지난 이벤트 대전을 라이브로 모두가 지켜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보았던 모습도 사실은 전력의 극히 일부였단 생각이 드니, 그들의 라이벌을 자청했던 자신들의 행동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김시우는 헛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저분들이 그만큼 더 특별하단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우리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실 테니까요.”

“그건 그렇죠.”

김시우와 히토미가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을 보며 리즈웨이는 혀를 차며 물었다.

“이 사태가 무사히 마무리된다면 우린 저분들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게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에 김시우는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물러날 생각입니다. 저분의 라이벌이 되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하단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요.”

“물러나다니요?”

“3자 교류회와 남부 패밀리의 리더직을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아예 남부 패밀리를 사냥꾼 협회에 바치는 편이 동료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김시우의 대답은 3자 교류회의 끝을 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리즈웨이는 그의 결심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분명 3자 교류회에 있다.

지금은 혼란 때문에 모두가 그들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 추후 사태가 진정되면 3자 교류회는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터.

‘차라리 3자 교류회는 해체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분노가 온전히 대만으로만 향해지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결국 대만으로서도 이후에 취해야 할 선택은 한정적이었다.

‘우리도 사냥꾼 협회의 비호를 받아야 해. 그래야 살 수 있어.’

이제부턴 세력 확장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였다.

몬스터가 아닌, 같은 인간들의 분노를 막아 주기 위한 우산이 필요했다.

‘그것이 사냥꾼 협회에 세력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어.’

사냥꾼 협회가 뒤집어쓸 뻔했던 오명을 대신 뒤집어썼을 뿐만 아니라, 최초 보상까지 가져다 바치고, 이젠 고스란히 세력까지 바치려는 3자 교류회의 모습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였다.

* * *

-키에에에엑!

[광역보스 기간트 바실리스크 보르테스 / 레벨: 140]

“저, 저걸 무슨 수로 상대해.”

“우린 이제 끝이야.”

광역 보스는 엘더와 로드급 엘더보다 위에 있는 강대한 몬스터다.

그런 몬스터가 자신들의 생존 구역을 덮치려 하니, 멕시코 시티의 주민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우웅!

그런데 그때.

마치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푸른빛이 보이고.

-콰아아아앙!

-끼아아아아아!

생존 구역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으려던 바실리스크가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충격음과 함께 인근 빌딩에 날아가 처박혔다.

빌딩은 바실리스크의 거대한 동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어?”

“저, 저기 사람이…….”

그리고 방금까지 바실리스크가 위치해 있던 장소에 한 동양인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등 뒤에 새하얀 검과 깃발이 둥둥 떠 있는 모습.

“어?”

그런 그의 모습에 2주 전쯤 진행되었던 이벤트 대전의 영상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길?”

틀림없다.

그는 이벤트 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한국인 남자였다.

당시 이름은 서**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얼굴과 무장의 특징은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가 푸른빛을 뿌리며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거대 광역 보스를 향해 날아갔고.

-콰아아앙! 콰콰콰!

-키에에에엑!

이내 레벨이 무려 140에 달하는 광역 보스와 신화 속에서나 그려질 법한 전투를 이어 갔다.

“허허.”

“이럴 수가.”

저게 진정 사람의 모습이란 말인가?

생존 구역 바로 앞에서 진행되는 그 전투는 많은 시민의 목격하에 진행되었다.

개인이 레벨 140의 광역 보스와 단독으로 맞서 싸우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의 공격 한 방 한 방에 기간트 바실리스크의 비늘과 피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흩날리는 장면은 잔혹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웠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저 남자가 거대 괴물을 압도하고 있단 사실을.

“히, 힘내!”

“이겨라!”

멕시코 시티의 주민들은 그의 활약에 고무되어 열심히 응원했다.

마치 월드컵에서 자국팀을 응원할 때처럼.

그런 주민들의 응원이 사내에게 닿았을까?

-서걱!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절단음과 함께 기간트 바실리스크의 거대한 머리가 허공을 날아오르며 멕시코 시티 생존 구역 앞에 떨어졌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터져 나오는 환희의 함성.

주민들은 영웅을 칭송했지만, 그는 푸른 빛과 함께 바쁘게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의 칭송에 어깨가 으쓱해질 법도 한데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보며 멕시코 시티의 주민들은 생각했다.

미쳐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구원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저 사내가 일으키는 기적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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