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80화 (180/273)

180화 큰 보상 (1)

시나리오 조각의 수집을 완료하면 발생하는 페널티인지, 아니면 인간의 빠른 성장을 위한 건지, 뜬금없이 고등 몬스터가 대거 등장했다.

대한민국은 사냥꾼 협회의 활약 덕분에 아무 피해 없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었으나,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았다.

100레벨 이하의 몬스터라면 각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테지만, 개중엔 레벨이 100을 넘는 녀석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고등 몬스터가 생존 구역 근처에 등장한다면 이에 즉시 대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

당연히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째서 이런 일이.”

“또 피난을 가야 하는 건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람들은 대재앙 이후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는 것이고.

각 생존 구역을 관리하는 정부 및 단체들도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를 어느 정도 해 왔기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지언정 전멸까지 가는 경우는 없었다.

사실 상황의 심각성만 따지면 오히려 생존 2달 차 이벤트였던 몬스터 웨이브가 더욱 컸다.

“이게 모두 대만 탓인 거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하지만 이번 일과 지난 일의 다른 점은 책임을 물을 곳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사태가 무조건 대만의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3자 교류회가 아니었으면 이 사태에 대한 오명을 뒤집어쓰는 건 우리 사냥꾼 협회가 되었을 테니까.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사태를 일으킨 대만을 심판해 주십시오.”

때문에 구해 준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만이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우리 사냥꾼 협회는 영웅 대접을 받으니, 맛있는 부분만 골라 빼먹는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그만큼 우리가 사태 해결을 위해 들인 노고가 크다지만, 대만이 포함된 3자 교류회가 재수 없게 걸렸다는 감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이건 누구 하나 욕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아닌가.

[협회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콜롬비아 보고타에 등장한 광역 몬스터를 방금 처치하고 남하하고 있습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파나마가 레벨 140의 엘더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까는 잠잠하더니…… 알겠어요. 다시 돌아갈게요.]

대한민국을 안정시킨 후, 우리 사냥꾼 협회는 대대적으로 해외 원정을 돌고 있었다.

우선 동맹국과 사냥꾼 협회 해외 지부가 관리하는 지역을 지원하고, 그다음 일반 지역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나를 포함해 사냥꾼 협회의 메인 전력 4할은 아메리카 대륙을 정리하는 중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일주일째가 된 지금, 북미는 완전히 안정에 접어들어, 중남미 안정을 위해 힘을 쓰고 있었다.

이런 우리 사냥꾼 협회에 현지 사냥꾼들과 자국 상황에 여유가 생긴 북미 사냥꾼들도 힘을 보태고 있었다.

-파앗!

“협회장님이다!”

“협회장님!”

잠시 후,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파나마에 도착하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지난 이벤트 대전 건으로 인해 얼굴이 널리 팔린 데다가 내가 지원군을 이끌고 아메리카 대륙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지라, 어디서든 날 발견하면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파앗! 쉐에에엑!

더구나 외형이 좀 눈에 띄어야지.

염력으로 10자루의 대검으로 이뤄진 손과 깃발, 흰색의 검을 등 뒤에 띄우고 다니고, 하늘을 날면 푸른빛이 날개처럼 펼쳐지니 멀리서도 모두가 알아보았다.

[엘더 씨서펜트 크샤트 / 레벨: 140]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바로 멀리 보이는 엘더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고.

‘천벌.’

듀랜달의 내장 스킬을 날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검에 엘더 몬스터가 기겁하며 몸을 틀었다.

검에 담긴 질량도 질량이지만 막강한 공격력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린다.

때문에 엘더 씨서펜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피한 위치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콰콰콰콰아아아앙!

미리 예측했다는 듯,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성검의 푸른빛이 뻗어 왔으니 말이다.

-키에에에엑!

덕분에 씨서펜트는 속수무책으로 머리가 박살 나며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무려 레벨 140의 엘더 몬스터를 공격 두 방으로 제압한 것이다.

물론, 그 공격이 하나같이 유일 등급 무기의 자체 스킬이었지만…….

속수무책으로 놈에게 당하던 파나마의 사냥꾼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나는 인명 피해를 낮추고자 주로 레벨 120 이상의 고등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특출난 보상을 주는 레벨 120 이상의 고등 몬스터를 독식하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덕분에 일주일 동안 마경에서 나인포의 계획에 따라 사냥해 오던 것 못지않은 속도로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서백호 / 레벨: 172]

오히려 위기 덕분에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벌리고 있단 뜻이다.

게다가 레벨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레벨 120 이상 고등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쏟아진 각종 아이템과 장비, 스킬 등.

엄청난 보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스킬북 워터 브레스를 획득했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워터 브레스 / 극상급 스킬북 / 액티브]

-고압의 물줄기는 모든 것을 절단하고 꿰뚫는다. 고압의 강력한 물대포는 드래곤의 브레스를 보는 듯하다.

-소모 마력: 10

레벨 140의 엘더 몬스터를 잡고 쓸 만한 스킬을 획득한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윌리아 줘야겠다.’

덕분에 우리 파티는 이번 일로 인해 각자 4~5개의 극상급 스킬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이런 식이면 모든 상황이 진정되고 난 뒤에는 얼마나 더 강해져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대만에서 건네준 떠돌이 상인 소환권도 있으니. 유일 등급 장비를 추가 획득하는 건 떼 놓은 당상.’

그래서일까?

보상이 확실한 만큼 타국에서 뺑이를 치고 있음에도 그리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윌리아와 시에나는 잘하고 있겠지?’

* * *

헬레나는 생각했다.

요정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가 있다면 그건 시에나가 분명하다고.

“하하하하하핫!”

하늘에서 빗발치는 강력한 빛의 화살이 이리저리 떨어져 내리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이에 사람들은 기겁하며 바쁘게 몸을 움직였고, 시에나는 그런 이들을 가지고 놀 듯, 생채기 하나 내지 않고 몰이를 했다.

마치 양치기처럼.

그러다가 도망칠 곳이 없어진 사람들을 향해 시에나는 신궁 비자야의 스킬인 거신의 심판을 사용해 단번에 압살시켜 버렸다.

“하핫! 버러지 같은 놈들 꼴 좋다!”

수백 명을 몰살시킨 시에나는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내젓는 건 엘더 이터 헬레나뿐만이 아니었다.

윌리아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죽이라니까.”

“저런 놈들은 그냥 죽이면 안 돼. 최대한 공포스럽고 고통을 느끼도록 해서 죽여야지.”

사람을 죽이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둘의 말투.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녀들이 NPC라 드디어 인간을 배신한 건가 의심할 수 있는 장면이었으나, 이는 전적으로 상대들에게 잘못이 있었다.

현재 그녀들은 인도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는데, 뉴델리를 장악하고 있는 단체가 인간 사냥꾼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몰랐다.

열렬한 환영 인사에 평범한 단체로 깜빡 속은 그녀들은 상대가 자신들의 음식에 미약을 탔단 사실을 알아챘고, 그 후 조사를 진행해 뉴델리의 실상을 파악한 것이다.

그 후 벌어진 일이 바로 앞선 토벌인 것이다.

인간 사냥꾼들은 도망치면 살려 준다는 시에나의 말에 놀아나 몰이사냥을 당하고 말았다.

“서로 도와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다음 생엔 하루살이나 잡초로 태어나 버려라.”

“모두가 우리 백호 님처럼 솔선수범하고 이성적인 지도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악인들의 다음 인생을 기도해 주는 시에나와 그런 그녀를 향해 뜬금없이 남자 친구 자랑을 늘어놓는 윌리아.

“예예, 그러시겠죠. 뽀뽀 이후로 진전이 없는 고자 남친이라 좋으시겠어요.”

“죽을래?”

덕분에 심술이 난 시에나는 괜히 이죽거렸고, 그에 발끈한 윌리아는 이내 이상함을 깨닫고는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너 우리 감시하냐?”

예전엔 시에나가 자칭 700살이라고 주장해서 존댓말을 하던 윌리아였으나, 다양한 사건이 겹치면서 그녀를 향한 존중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윌리아의 차가운 지적에 시에나는 움찔거리며 변명을 했다.

“에, 엘프라 귀가 좋은 것뿐이야.”

그럼에도 윌리아는 불쾌하단 표정을 짓고, 헬레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생각했다.

‘미친X들. 피 냄새 가득한 곳에서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을까?’

하지만 윌리아와 시에나의 시선이 갑자기 헬레나에게 향해졌다.

“뭔가 시선이 기분 나쁜데?”

“그러게. 나도 느꼈어.”

“네, 네? 그, 그럴 리가요. 헤헤헤…….”

두 사람의 눈빛에서 광기를 읽은 헬레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최대한 순진한 척 굴었다.

윌리아와 시에나는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서백호만 없다면 이 둘을 상대로 그럭저럭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두 사람이 너무 강해져서 그게 불가능했다.

아직 먹고 싶은 위스키가 많은 그녀는 살기 위해 비굴해져야 했다.

“그, 그렇군요. 당신들이 살육의 천사와 죽음의 요정…….”

잠시 후, 한 무리의 인도인들이 달려와 어디서 들은 건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살육의 천사와 죽음의 요정.

그건 중국 내전 당시 활약했던 윌리아와 시에나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저 별명은 어떻게 인도까지 퍼진 거지?”

윌리아와 시에나는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고, 그에 움찔 놀란 인도인들은 쭈굴이가 되었다.

그래도 그 인도인들은 인간 사냥꾼들의 겁박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정상적인 사냥꾼들이었기에 괜히 말씨름을 하진 않았다.

“우린 다음 지역으로 떠납니다. 잠시 후 연락원을 두고 갈 테니, 잘 대우해 주시고,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바로 알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무튼 델리에서 용건을 마친 그녀들은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녀들이 다음으로 향할 장소는 뭄바이였다.

“그러고 보니, 인도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뭄바이에 엄청 강한 사냥꾼이 있다던데?”

“진짜 강하면 우리가 지원 갈 일도 없었겠지.”

“아, 그런가.”

강함의 기준은 제각기 다르다.

항상 서백호의 곁에서 싸워 온 윌리아와 시에나는 강함의 기준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생각하는 강함의 최소 기준은 적어도 윤시아, 클로에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윤시아와 클로에는 지난 이벤트 대전에서 모두 8강 안에 들었던 인물들.

이들 수준의 사냥꾼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

시나리오 조각 수집 최초 완료로 인해 전 세계에 발생했던 고등 몬스터 대란은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서야 정리되었다.

덕분에 우리 사냥꾼 협회는 동아시아와 중동, 유럽, 북미뿐만 아니라, 중미, 남미, 동남아, 호주, 아프리카까지 세계 각지에 웨이포인트를 찍게 되었다.

그리고 각국의 찬성하에 웨이포인트 곳곳에 대사관처럼 중계 인원을 배치하게 되면서 세계 각지의 소식을 빠르면 몇 분, 늦어도 하루 이내에는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활동 영역이 전 세계로 넓어졌네.”

그로 인해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우리 사냥꾼 협회에게 협력을 부탁해 왔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거나, 전 세계 소식이 한국에 모이니, 아예 연락소를 서울에 만들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전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적 행보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음에도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자꾸 들어오면 치안이 어지러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강이솔을 포함해 주요 단체의 행정부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더불어 대만, 아니 3자 교류회 문제도 남아 있다.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한 만큼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그 3자 교류회엔 ‘남부 패밀리’라는 한국팀이 속해 있는지라 상황이 복잡했다.

3자 교류회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납작 엎드리고 있지만, 같은 한국인 입장에서 그들의 목을 칠 수도 없는 입장이지 않은가.

“아, 난 몰라.”

“맞아, 행정은 행정 전문가들에게 맡기자고.”

그렇다 보니 행정부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지만…….

나는 모른 척 이를 무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직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린 보상을 정리해야지. 안 그래?”

그건 바로 보상의 정리였다.

그 양이 엄청난 만큼 이 역시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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