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개인 방송 (1)
레벨 210의 보스급 올더 데스나이트를 토벌하는 것에 성공한 나는 클라렌트라는 유일 등급의 장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만 이 클라렌트라는 무기를 직접 사용해 본 내 표정은 살짝 애매해졌는데, 기본 옵션은 듀랜달과 비슷하고, 내장 스킬은 성검을 발사형으로 사용한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검을 좋아한다지만, 굳이 자주 사용되는 무기들과 중복되는 옵션을 가진 무기를 추가로 갖고 다닐 필요성을 못 느꼈다.
어차피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무기를 간절히 바라고, 더욱 잘 사용해 줄 사람을 떠올리다가 박상만에게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상만 씨라면 잘 써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맡겨 주십시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검이 김민희가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길어서 박상만에게 클라렌트를 배정한 것이기도 한데, 검을 받아 든 그의 반응이 너무 격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박상만의 라이벌은 최도겸과 김현수라 할 수 있는데, 둘은 모두 유일 등급 장비를 배정받았으나, 본인만 못 가져서 많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메인 5팀 중 김민희 팀만 유일 등급 장비가 없다는 건데…….
최근의 페이스를 보면 머지않아 김민희에게도 하나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레벨이 200에 가까워지면서 유일 등급 장비의 획득률이 제법 높아졌어.’
과연 유일 등급이 마지막 등급일지, 아니면 더 상위 등급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유일 등급은 시간이 지나도 희귀 등급처럼 흔해지지 않을 진정한 고레벨 장비란 사실이다.
한국에 많은 유일 등급 장비가 퍼지긴 했지만, 이건 한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확인 결과 미국도 겨우 3개의 유일 등급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니까.’
유일 등급 장비를 단 하나조차 가지지 못한 나라가 대부분이고,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겨우 한두 개 정도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유일 등급 장비로 전신을 도배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우리 파티를 제외하고.
“형평성을 생각하면 떠돌이 상인 소환권뿐만 아니라, 유일 등급 장비 구입 비용도 받으셔야 합니다.”
그때, 강이솔이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현재 우리 수중에 남은 떠돌이 상인 소환권은 4장.
그중 2장이 내 몫, 2장이 협회 몫이다.
나는 클라렌트를 협회에 넘기는 대신 협회분 소환권 1장을 가져가기로 했는데, 강이솔은 당치도 않다며 한술 더 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떠돌이 상인 소환권이 있더라도 코인이 없으면 장비를 살 수 없으니까. 그럼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히 그편이 균형이 맞긴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강이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협회장이니 조금 더 마음대로 행동해도 될 것 같지만, 역시 공금은 멋대로 건들기가 힘들다.
그런데 강이솔이 알아서 명분을 만들어 주니, 고마울 뿐이다.
나는 김현수에게 클라렌트를 들이밀며 자랑하는 박상만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 보았고.
“곧 시작하겠네요.”
고가 브랜드의 오토매틱 손목시계를 확인한 강이솔이 말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약간의 오차가 있기 마련인지라, 분위기를 잡은 것치곤 바로 이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덕분에 강이솔이 뻘쭘한 표정을 지었고.
1분 정도가 더 지난 후.
[4개월 생존에 성공하셨습니다.]
[지난 네 달간의 생존 점수를 정산합니다.]
[생존 점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며, 보상은 인벤토리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눈앞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난 네 달간 전 세계 인구 79억 5,395만 2,577명 중]
[57억 9,552만 3,475명이 사망했으며]
[21억 5,842만 9,102명이 생존했습니다.]
생존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현황 메시지.
사망자가 지난달보다 2천만 명이 더 늘었으나, 중간에 전 세계에 재앙이 닥쳤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우리 만치 적은 사망자였다.
그도 그럴 게 첫 달에만 52억3천만의 인구가, 두 달째엔 4억2천만의 인구가, 석 달째엔 1억2천만의 인구가 사망했다.
대만 사태로 인해 전 세계가 큰 혼란에 빠졌던 것치곤, 이 정도면 충분히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존 능력이 높아졌단 의미야.’
이런 식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망자의 숫자도 계속 줄어들 터이다.
‘인간을 적응의 생물이라 하던가?’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서백호 님의 생존 점수는 1,023,562점으로 상위 0.000001%인 1등급에 속하며, 전체 순위는…….]
[1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생존 점수에 따른 순위표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난달의 성적표가 떠올랐다.
[전 세계 순위표]
1위. **** / 레벨: - / 1,123,562점
2위. **** / 레벨: - / 922,980점
3위. **** / 레벨: - / 905,502점
4위. **** / 레벨: - / 552,124점
5위. **** / 레벨: - / 532,925점
6위. **** / 레벨: - / 512,064점
7위. **** / 레벨: - / 500,982점
8위. **** / 레벨: - / 464,400점
9위. **** / 레벨: - / 455,715점
10위. **** / 레벨: - / 428,621점
지난달과 비교해 두 배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지만, 나는 2위와 3위의 점수를 보곤 당황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무시할 수 없는 라이벌이 생긴 걸까?
50만 점 대를 기록한 사람 중 3명은 미국의 제임스와 클로에, 한국의 윤시아로 추측되지만, 90만 점 대의 2명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황했는데…….
“음?”
“오잉?”
윌리아와 시에나가 옆에서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달 생존 순위부턴 NPC 출신의 동료도 포함됩니다.]
알고 보니, 2등과 3등이 윌리아와 시에나였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협회장님.”
“협회장님! 윌리아 님! 시에나 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주변의 시선을 인식한 건지 윌리아와 시에나는 텔레파시로 말했다.
[저희도 보상을 따로 준대요!]
[근데, 왜 내 순위가 왜 윌리아보다 낮지?]
만약 동료뿐만 아니라, 부하 NPC까지 포함되었다면 나인포와 그의 부하들까지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점수 차이가 너무 벌어졌네. 기존엔 다른 파티와의 차이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만 사태로 상급 몬스터를 쓸고 다닌 덕인지, 아니면 경쟁자들이 레벨 100을 넘긴 후 성장이 더뎌진 덕인지 차이가 좁혀지긴커녕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이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 여겼지만, 웃긴 점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순응하는 반응을 보인단 것이다.
‘그래. 아직까진 차이가 좁혀지고 있지 않지만, 점차 레벨 올리기가 힘들어지는 만큼, 나중엔 알아서 좁혀질 거야.’
독주 페이스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 생각한 나는 이내 쓸데없는 걱정을 내던졌다.
그리고 이어질 메시지를 기다렸다.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은 다른 사람들과 나와의 차이가 아닌, 곧 벌어질 생존 이벤트였다.
[4개월 생존 기념 이벤트가 실시됩니다.]
[4개월 기념 이벤트는 성장과 개인 방송입니다.]
[곧 이벤트 장소로 전송됩니다.]
예상대로 바로 떠오른 이벤트 관련 메시지.
다행히 이번에도 웨이브와 같이 일반 생존자들을 괴롭히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주제에 나는 의문을 표해야 했다.
“성장과 개인 방송?”
“이게 뭔 말이야?”
“그러게.”
이런 의문은 나뿐만 아니라 같은 자리에 모인 사냥꾼 협회 멤버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의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공간이동 특유의 부유감과 함께 이벤트 장소로의 전송이 곧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팟!
* * *
내가 도착한 장소는 1평 남짓한 새하얀 공간.
지난 이벤트와 달리, 동료들과도 떨어지고 말았다.
[해당 이벤트는 레벨 30 이상의 ‘활동 유저’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레벨 30 미만, 혹은 타인의 지원으로 레벨을 올린 ‘비활동 유저’는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참가 인원은 총 16,384,230명입니다.]
시작은 지난 대전 이벤트와 비슷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었으니…….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레벨이 초기화되고 기존 장비는 자동 해제되며, 기존 인벤토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파앗!
[레벨이 1로 초기화되었습니다.]
[장비가 모두 해제되어 기존 인벤토리에 보관됩니다.]
[신규 인벤토리 10칸이 지급되었습니다.]
전신에 넘치던 활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며 극심한 무력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능력치가 바닥까지 떨어진 신체에 적응해 나갔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벤트 도중 사망하게 되면 즉시 이벤트가 종료되며, 본래의 레벨로 부활하게 됩니다.]
사전 설명이 길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벤트이길래?
그와 함께 이벤트 기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24시간 동안 몬스터를 사냥하여, 레벨을 많이 올린 순으로 보상이 차등 지급합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참가자의 영상을 모든 생존자들이 지켜볼 수 있으며, 메시지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습니다.]
[레벨 성장과 별도로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한 스트리머에게도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이번 이벤트의 주제가 성장과 개인 방송이라 해서 뭔가 싶었는데, 말 그대로였다.
레벨 1부터 시작해 최대한 많은 레벨을 올리거나.
어그로를 끌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받던가.
[인간끼리의 전투 역시 가능하며, 타인을 척살할 경우 상대가 모은 경험치 일정량과 아이템을 강탈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벤트네.’
당연히 많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지만, 인간들과의 전투까지 염두에 두면 제법 변수가 많은 이벤트였다.
이번 이벤트는 능력치뿐만 아니라 기존 장비까지 봉인된 만큼, 시작점은 모두에게 공평했으니 말이다.
아마 이런 이벤트라면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참가자가 매우 많을 것이다.
‘그래도 개인 방송은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겠어.’
그런데 이걸 우연이라 해야 할까?
나는 명성이 높은 데다가 유튜버 경력까지 갖고 있다.
[3분 후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나라면 제법 많은 시청자를 처음부터 끼고 시작할 터.
문제는 이 시청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선 방송 자체가 재밌어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방송의 컨셉이다.
‘그래, 내 컨셉은……. 밥 아저씨다.’
오래지 않은 고민 끝에 나는 결정을 내렸다.
‘참 쉽죠?’라는 명대사를 남긴 화가를 따라 하기로.
‘일명. 사냥 참 쉽죠? 백호 아저씨.’
이벤트 시작 전까지 각자에게 주어진 3분의 시간.
나는 그 3분을 콘텐츠 기획에 알뜰하게 사용했다.
[이벤트 시작]
-파앗!
그리고 시작 알림과 함께, 내가 서 있던 한 평 남짓한 백색의 공간이 울창한 숲속으로 변했다.
그런 숲속에서 달랑 검은색 반팔 상하의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 나는 우측 하단에 뜬 채팅창을 시선에 담으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웃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세계 랭킹 1위 서백호가 인사드립니다.”
* * *
이번 이벤트는 아직도 선뜻 사냥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 싸우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교육 영상이면 재미가 없으니, 개인 방송이란 오락을 더한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하하! 잘나가는 사냥꾼들도 맨손으로 몬스터와 싸우게 되면 상대가 고블린이어도 당황하는구만.”
“그야 그렇겠지. 저들도 지금은 레벨이 1이잖아. 더구나 치유 수단도 없고.”
“하긴, 그나마 저들은 경험이라도 있어서 저렇게 싸울 수라도 있는 거지. 우린 엄두도 못 낼 일이니까.”
“이렇게 보면 저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긴 한데. 결국 저렇게 용감하게 도전하는 자세 덕에 강자가 될 수 있던 거겠지.”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꽤나 폭발적이었다.
뛰어났던 사냥꾼들이 레벨과 능력치가 초기화된 덕에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 고블린을 상대로 고전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고블린과 싸우는 모습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눈 거라 볼 수 있다.
때문에 고블린을 상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전하는 사냥꾼들을 보면서 비웃을 순 없었다.
“어? 혀, 형님들, 이 채널 좀 보세요.”
“뭔데?”
“응? 이 사람은 그 사람 아닌가? 지난 이벤트 대전에서 우승한…….”
“네, 그 사람 맞아요.”
그런데 고난이 가득한 사냥꾼들의 영상 속에서 특이한 채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맨손으로 고블린들의 목을 수수깡처럼 꺾으며 손쉽게 사냥을 이어 가는 괴물의 채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