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87화 (187/273)

187화 개인 방송 (2)

레벨 1은 근력, 순발력, 마력, 세 능력치가 모두 5로 통일되어 있다.

이는 일반인의 기본 신체 능력이라 할 수 있는데, 영상 속 남성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어째서인지 레벨이 1임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해 보였다.

때문에 남성의 모습을 지켜본 영상 너머의 시청자들은 이런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 1인 거 맞지?”

“마, 맞아요. 머리 위에 현재 레벨이 몇인지 떠 있잖아요.”

[레벨: 1]

그리고 이런 의문은 영상 속 남성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레벨이 해명해 주었다.

하지만 답을 구했음에도 남성의 모습은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지난 이벤트 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자라는 건 아는데, 레벨1의 기본 능력치만으로도 저렇게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팅창에도 전부 같은 물음이 올라오네요.”

그건 그 남성의 영상을 지켜보는 시청자 모두 똑같았다.

채팅창에 물음표 가득한 글이 계속해서 올라왔고, 영상 속 남성도 이를 인지했다.

[아, 네. 저는 분명 레벨 1에 기본 능력치도 모두 5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거냐고요?]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이 어찌나 많은지 눈이 돌아갈 정도의 스피드로 갱신되었다.

그럼에도 내용을 파악한 게 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능력치가 같다고 해도, 걸을 때와 달릴 때처럼 상태에 따라 신체가 내는 속도와 힘은 다른 법이잖아요.]

[전 항상 전력으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망설임 없이, 지체 없이, 풀파워로요.]

그리고 남성은 수풀 속에서 등장한 고블린 두 마리를 발견하고 빠르게 튀어 나갔다.

남성의 돌격에 고블린들은 당황하면서도 곧바로 돌 단검을 휘두르며 대응했다.

그런데 남성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재빨리 손을 뻗어 돌 단검을 쥔 고블린의 팔 하나를 강하게 잡아당겼고, 그 과정에서 고블린들이 엉키며 자연스레 다른 개체의 공격도 상쇄되었다.

남성은 바로 팔을 붙든 고블린의 관절을 꺾은 후, 엘보를 휘둘러 재차 공격을 가해 오려는 다른 개체의 턱을 가격했다.

-키에엑!

-컥!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인 고블린이 비명을 지르고, 엘보에 얻어맞은 고블린은 비틀댔다.

그 후의 처리는 간단했다.

가볍게 양팔을 교차하는 것만으로 한 마리씩 고블린의 목이 꺾이면서 빛이 되어 사라졌다.

“대단해…….”

“와, 말도 안 돼.”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속도를 죽이지 않고 물 흐르듯 매끄럽게 연계되는 전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사전에 합을 맞춘 액션 영화를 감상하는 듯했다.

[참, 쉽죠?]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남성.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전투가 너무 압도적이라 일견 쉬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뜻처럼 간단할 리 없다는 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제 전투 영상이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잘 지켜봐 주세요. 사냥이 마냥 어렵지 않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럼 계속 고고!]

“넉살 좋네.”

“그, 그러게요.”

“더구나 진행도 쓸데없이 자연스럽고.”

“하하.”

영상 속의 남성은 세계 1위의 강자.

그럼에도 거만함 따윈 찾아볼 수 없고, 개인 방송 진행도 자연스러운 데다가, 전투는 호쾌하기 그지없으니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참, 쉽죠?]

다만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넣는 저 말은 왠지 모르게 열받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해당 영상은 개인 방송 채널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그 인기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시청자 수가 증명해 주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능력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를 분배하세요.]

잡은 고블린의 수가 10마리가 되니 레벨이 2가 되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분.

전투는 한 마리 사냥에 5초를 넘기지 않았지만, 경쟁자들 탓인지 아니면 이벤트 시작 초기여서 그런 건지 생각만큼 몬스터가 눈에 띄지 않아 최초 레벨업에 5분이나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돌 단검을 획득했습니다.]

[고블린 가죽 1장을 획득했습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내 방송의 시청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측 상단에 채팅창이 떠 있고, 또 그 위에 실시간 시청자 수가 카운팅되고 있었는데, 무려 7,2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꼬 유튜버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무지막지한 수치였다.

‘시스템이 전능하긴 한가 보네. 이 정도 인원이 한 채팅방에 몰려 있음에도 이렇게 환경이 쾌적한 걸 보면.’

나는 속으로 실소를 흘리고는 고블린에게서 획득한 돌 단검을 손에 쥐며 허공에 말했다.

“드디어 무기가 생겼네요. 이젠 야수형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대응이 가능하겠어요.”

단검은 자주 쓰지 않는 무기다.

그럼에도 나는 손에 쥔 돌 단검을 이리저리 돌리고 또 휘두르며 제법 능숙하게 사용해 냈다.

그리고 다음 타깃을 찾아 이동하는데, 그 와중에 재밌는 채팅 하나를 발견해 답했다.

“대재앙 이전에 제 직업이 킬러였냐고요? 설마요. 작년에 군대 전역하고 영상 편집 공부 후, 캐치 앤 쿡 영상과 서바이벌 영상을 찍어서 올리던 신입 유튜버였습니다. 채널이 슬슬 성장한다 싶을 때 이 난리가 나서 현실 서바이벌 중인 거고요.”

“에이, 슈퍼 솔저라뇨. 그런 거 아닙니다. 특수 부대 출신도 아니고요. 대한민국 남성은 성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군대를 다녀와야 해서 다녀온 겁니다.”

“제 한국 나이는 24살이고, 국제 표기로는 22살입니다. 아직 어리죠. 이런데도 많은 분들이 믿고 따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네, 검도 배웠습니다. 검도뿐만 아니라 태권도, 이종 격투기, 유도 등 이것저것 많이 배웠죠.”

질문에 한번 답을 하면 연이어 다양한 질문이 쏟아진다.

어차피 이젠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는지라,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물어 왔지만.

“아, 잠시만요. 놀이 보이네요. 빠르게 해치우겠습니다.”

중간중간 몬스터의 등장 덕분에 질문 세례의 흐름을 끊고, 내 마음대로 진행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컹! 커엉!

-푹!

이족 보행 하이에나인 놀을 발견한 나는 바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놀의 경험치는 고블린의 3배.

하지만 경험치 차이 이상으로 고블린보다 위험한 게 바로 놀이었다.

놈은 녹이 슬긴 했어도 제대로 된 검을 쥐고 있는 데다가 날카로운 이빨에 날렵한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푹!

-크륵…….

[놀을 토벌하여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놀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7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놀의 가죽을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놀이 휘두른 검을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해 낸 후,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목에 돌 단검을 꽂아 넣었다.

돌 단검 덕에 목을 비트는 과정이 사라지니, 오히려 고블린보다 사냥이 빨리 끝났다.

전투 시작 후, 3초 만에 끝이 나자 시청자들의 반응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렇게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은 후, 이렇게 유효타를 넣으면 되는 거니까요.”

“이때 제일 중요한 건 적의 공격을 제대로 보고 대응하는 겁니다. 당연히 전투 패턴을 숙지해 놓으면 더욱 쉽겠죠.”

그래서 설명을 덧붙였더니 기만이라며 난리를 친다.

원래 개인 방송이란 건 시청자와 스트리머의 티키타카가 중요한 만큼 사람들이 극성맞게 군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을 뿐이다.

“저는 딱히 연습하지 않아도 단번에 되던데.”

그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욱 불이 붙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그들에게 정상적인 답을 주었다.

“뭐 이게 안 되면 연습을 해야죠. 인간을 괜히 적응의 동물이라 부르는 게 아니더군요. 제게 싸우는 법을 배운 제자 중엔 동기들의 수준을 못 쫓아가는 멤버가 있었는데, 지금 그의 레벨이 110입니다.”

“노력하면 되긴 됩니다. 그러니 지레 포기하지 마세요.”

너무 잘난 척만 하면 재수 없다.

적절한 밀당이 중요한 거다.

더불어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면서도 보는 이들을 감탄시키는 전투를 이어 가니, 이 채널이 어찌 잘되지 않겠는가.

레벨이 3을 넘고 4가 되었을 때.

내 채널의 시청자 수는 어느새 1억을 넘겼다.

이런 성적이 가능한 건 지난 이벤트 대전의 영향이 크지만, 들어온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머물게 만든 건 내 능력이었다.

“아 참…….”

그렇게 방송을 이어 가다가 나는 문뜩 궁금한 걸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제 동료들은 어떤 상황이죠? 법사와 궁수여서 맨손 서바이벌이 불리할 것 같은데?”

나는 시청자에게 윌리아와 시에나의 근황을 물었다.

그러자 윌리아와 시에나를 아는 몇몇 한국인 시청자들이 상황을 알려 주었다.

[시에나 님은 직접 활과 화살을 만들어서 고블린을 사냥 중이고요. 윌리아 님은 팀을 만들어 지휘관 역할을 하고 계세요.]

다행이다.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작게 안도한 나는 계속해서 시청자와 소통하며 사냥을 이어 갔다.

‘최고 레벨과 최고 시청자 전부 가져가야지.’

이벤트 보상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오크는 힘은 강하지만 순발력이 떨어지거든요. 놈이 공격할 때 슬쩍 피하고 다리를 걸면 이렇게 알아서 넘어집니다. 그다음 목을 가르면? 쉽죠?”

“그랑 다이어 울프는 기동성과 파워가 모두 좋죠. 하지만 다리가 한쪽이라도 다치면 기동성과 파워가 모두 급감합니다. 그러니, 한 방에 끝내려 말고 일단 다리에 상처 입히는 데 집중하면 이후 전투가 쉬워질 겁니다. 아 물론, 저는 그런 귀찮은 준비 과정을 넣지 않아도 한 방 컷이 가능하지만요. 이렇게요.”

“이건 따라 하지 마세요. 타이밍 안 맞으면 그냥 골로 갑니다.”

* * *

베네수엘라는 지난 대만 사태 때, 한국 사냥꾼 협회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배 째라는 식으로 구조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남미의 대표 세력이다.

베네수엘라는 대재앙 이후에도 독재 정권이 권력을 쥐고 있으며, 사냥꾼들은 그런 정권을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체제가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베네수엘라의 제일 사냥꾼이 독재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사냥팀은 철저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컸고, 덕분에 남미 전체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팀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베네수엘라의 대표 사냥꾼이자 독재자의 아들 파블로 니콜라스는 운 좋게 동료들을 빠르게 만나 손쉽게 이벤트를 진행해 나가는 중이다.

“우리 정도면 선두권 아닐까?”

“그렇겠지. 우리처럼 운이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어.”

“덕분에 시청자도 제법 많고. 하하, 이번 이벤트는 꿀이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상황이 급변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대, 대장!”

“왜?”

“저기, 저기 봐 봐.”

“응? 헉…….”

바로 베네수엘라를 위기에서 구해 준 한국의 영웅 서백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백호를 발견한 순간 찔리는 게 많은 그들은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젠장, 왜 하필.”

파블로가 처음 서백호를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은 충격이었다.

격이 다른 절대자의 등장.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백호를 향한 마음은 존경이 아닌 질투로 이어졌고, 파블로는 베네수엘라가 사냥꾼 협회에 지불할 구조비를 내지 않게 된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서백호가 싫다.

그러나 그의 강함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때문에 서백호를 발견한 파블로는 몸을 숨긴 것이다.

“우리가 꼭 숨어야 돼?”

“무슨 소리야?”

그런데 한 동료가 파블로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했다.

“레벨이 전부 초기화되고, 기존 장비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잖아? 더구나 저 사람은 혼자인 반면 우린 넷인데, 쫄 필요가 있어?”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파블로의 얼굴에 점점 짙은 미소가 걸쳐지고.

“이번 이벤트에서 인간끼리의 전투도 가능하댔지?”

“응.”

그건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파블로는 결정을 내렸다.

“저 새끼 우리가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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