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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98화 (198/273)

198화 마계에 어서 오세요 (1)

마계는 참으로 신기한 곳이다.

상상 속의 마계라 하면 사람이 살기 힘든 삭막한 세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마계는 예상과 꽤나 달랐다.

“회색의 숲이 아니라 은빛의 숲이라 해야 하는 거 아냐?”

“하하, 달빛을 받아 식물들이 반짝이는 게 꽤 예쁘죠?”

“그러게.”

이 회색의 숲이란 곳은 금속 느낌이 드는 식물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게 무척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린 탐색 중 은빛 나무들에 둘러싸인 푸른빛의 호수를 발견했는데, 몽환적이면서 신비로운 풍광에 흠뻑 빠진 윌리아와 시에나가 사진을 찍자고 보채서 나는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 들어야 했다.

[아다만티움 광석 / 채집물]

또한 풍경도 풍경이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게 마음에 들었다.

“오! 아다만티움 광물만 몇 개째야?”

고레벨의 채집물이 회색의 숲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아다만티움은 본래 마계의 광석이라 불립니다. 때문에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나는 이능의 날개 기능 중 하나인 마력 소모 없는 염력 스킬을 활용해 손도 안 대고 신속하게 아다만티움 채광을 해냈다.

[아다만티움 조각 8개를 획득했습니다.]

심지어 순도도 상당히 높다.

광물 조각 10개를 모아야 주괴로 만들 수 있는데, 하나의 광석에서 거의 주괴 1개 분량이 나왔다.

아다만티움은 4강 이상 강화에 필수 소재이며, 이번에 강화를 하면서 기존에 채집해 놨던 주괴를 모두 사용해 버린 탓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키에엑!

“그나저나 역시 마계란 건가? 몬스터가 정말 많네.”

그리고 마지막 마계의 특징.

그건 바로 몬스터가 정말 많은 데다가 평균 레벨도 상당히 높지만.

의외로 사냥이 어렵지 않다는 거였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몬스터가 레벨 150의 마계 고블린이었는데, 이 녀석들은 윤시아 파티만으로도 쉽게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몬스터들이 레벨에 비해 좀 약하지 않아?”

이런 내 감상에 윌리아와 시에나도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의 반응에 나인포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맞습니다. 이 회색의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다른 지역의 동급 몬스터들보다 약하다는 평을 많이 듣거든요.”

“그래?”

“더구나 여러분이 지구에서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온 저렙 몬스터들과 특성이 비슷한 놈들이 많아서 아마 더 쉽게 느껴지셨을 테지요.”

“아주 좋은 곳이네.”

하지만 모름지기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이 사냥터를 마족들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죠.”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 마침 그 이유가 등장했네요.”

나인포의 말에 우린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돌렸고.

곧 특이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새까만 그림자였다.

인간의 형태를 한 그림자.

“저게 뭐야?”

“회색의 숲 전역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몬스터로, 놈들이 이곳을 불모지 취급받게 만든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죠.”

나인포가 잠시 뜸을 들인 사이.

갑자기 그림자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자가 고치를 벗듯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리하여 등장한 것은 또 다른 나였다.

“놈들은 도플갱어입니다.”

“도플갱어?”

“특정 인물의 외형과 전투 능력을 카피하는 몬스터죠.”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윌리아와 시에나는 엿됐다는 표정으로 급히 전투태세를 취했다.

[도플갱어 서백호 / 레벨: 185]

도플갱어가 베끼는 건 능력뿐만이 아닌지 레벨도 나와 맞춰졌다.

곧이어 도플갱어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무슨!?”

녀석과 검을 마주한 나는 표정을 찌푸려야 했다.

놈이 찌르기 공격을 하는 척하면서 공격을 끊으려던 내 검을 올려 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만세 자세가 되어 버렸고, 몬스터 주제에 제법 신묘한 검술을 펼친 녀석은 곧바로 거리를 좁히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놈이 검을 회수해 휘두르는 속도가 만세 자세인 나보다 빨라 두 번째 공격은 검으로 막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내 손은 겨우 두 개가 끝이 아니다.

바리사다를 쥔 제3의 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과 스킬을 머금을 공격이 도플갱어를 양단할 기세로 휘둘러졌다.

“아니, 내가 저래?”

그런데 이놈은 상상치도 못한, 마치 서커스 단원 같은 움직임으로 바리사다까지 피해 내며 기어코 내게 뇌전이 깃든 검을 휘둘러 왔다.

-턱!

결국 나는 혀를 차며, 눈을 크게 떴다.

-팟!

그러자 내 눈에서 붉은빛의 광선이 뻗어 나가며 결국 도플갱어의 머리를 꿰뚫었다.

[빛의 마안 / 파츠형 장비 / 등급: 유일]

-눈에서 강력한 광선을 내뿜어 적을 공격한다.

그건 지난 이벤트에서 얻은 새로운 아이템으로 기존의 눈 한쪽을 떼고, 장착해야 하는 끔찍한 물건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눈깔빔은 위력이 강력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한 치의 딜레이도 없어서 위급 상황에 매우 유용했다.

“도플갱어가 다른 건 전부 따라 할 수 있지만, 유일 등급 장비와 그 장비의 내장 스킬만큼은 따라 하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상당히 위협적이긴 해도 여러분의 상대는 되지 못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렇군.”

이어진 나인포의 설명에 나는 안도하며 검을 거뒀다.

“괜히 쫄았네.”

시에나 역시 나처럼 활을 거두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윌리아만큼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겨우 이 정도로 끝나는 일이면 불모지 취급을 받진 않을 것 같은데요?”

신중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발언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의 물음에 내 시선이 나인포에게 향해지고.

“회색의 숲에 있는 도플갱어는 결코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거죠.”

“뭐?”

그 말과 함께 주변에 자리한 아름드리나무 곳곳에서 숨어 있던 그림자가 나타나 나와 시에나로 변모했다.

나로 변한 도플갱어가 셋, 시에나로 변모한 도플갱어가 둘이었다.

“도플갱어는 유령 몬스터입니다! 빛 속성에 약해요!”

그건 나인포의 외침이었다.

그러고 보니, 윌리아로 변모한 놈은 하나도 없었는데, 아마도 그녀의 직업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윌리아 님!”

“네!”

다른 건 몰라도, 나로 변신한 놈이 셋이나 된다는 게 꽤나 위협적이다.

그래서 나는 다급하게 윌리아를 찾았고.

-끼에에에엑!

윌리아가 극상급 스킬인 ‘절대 회복’을 공격용으로 사용하자, 내 얼굴을 한 도플갱어가 지랄발광을 해 댔다.

“절대 회복! 절대 회복!”

놈들이 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제법 긴장을 했었는데.

유령 몬스터인 도플갱어는 윌리아의 공격 앞에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연신 하모니처럼 비명을 질러 댈 뿐이었고.

내 성검 칼립소와 시에나의 신궁 비자야 역시 성 속성 무기였기에 효과적으로 놈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와, 씨! 가짜 서백호 개무서워.”

블링크로 곁에 파고든 도플갱어 한 마리 때문에 큰 위기를 겪었던 시에나는 배꼽티가 되어 버린 후드티 구멍에 손을 넣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빛을 엮어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데, 나로 둔갑한 놈의 검에 방어구가 뚫린 것이다.

자칫했다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될 뻔한 경험을 한 덕인지 시에나의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후우, 방심했다간 골로 가겠네.”

확실히 회색의 숲이 위험하긴 한 것 같다.

괜히 마족들이 접근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보상은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나인포의 말에 메시지창을 확인한 나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플갱어는 대량의 경험치와 코인을 토해 내는 아주 귀중한 몬스터였다.

* * *

“저기가 네가 말한 곳이야?”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계에서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탐색이며.

다른 하나는 당연히 레벨업이다.

우리의 주요 활동 거점은 당연히 회색의 숲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주야장천 회색의 숲에만 머무를 건 아니다.

회색의 숲 안에 자리한 꽤나 높다란 언덕.

“저희가 초기 활동 구역을 회색의 숲으로 잡은 게 바로 저 도시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죠.”

나는 그 언덕에서 멀리,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를 볼 수 있었다.

“저기가 마계에서도 악명 높은 무법자의 도시 엔탈론입니다.”

나인포의 말에 의하면 마계에도 다양한 종족이 있다고 한다.

물론, 마족이 주류이지만, 수인을 비롯해 다양한 이종족이 살고 있고, 그중엔 적은 수지만 인간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마족이 아닌 이종족은 마계 사회의 주류라 할 수 없고,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가 바로 저 엔탈론이란 곳이었다.

“이종족의 도시라며? 그런데 왜 무법자의 도시라는 칭호가 붙어 있는 거야?”

“세상의 주류에 들지 못한 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 이들이 하는 일이라면 뻔하지 않습니까?”

“떳떳하지 못한 일들?”

“그렇습니다. 때문에 엔탈론이 무법자들의 도시인 거고. 저희 같은 외부인들도 끼어들 수 있는 곳인 거죠.”

마계에도 나라가 존재하고 나름의 법도가 있다.

그런데 엔탈론은 그런 법도가 피해 가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설명만 들으면 무시무시한 범죄 도시지만…….

다르게 말하면 저곳은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의 땅이란 소리였다.

“주인이 없다?”

“네, 저 도시는 3개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만약 저희가 저곳에서 활동을 시작한다면 그 균형을 깨는 것도 가능하겠죠. 여러분의 힘은 마계에서도 충분히 통하니까요.”

“흥미롭네. 그 말은 내가 엔탈론의 주인이 되는 것도 가능하단 거야?”

“제 판단으론 그렇습니다.”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마족을 부하로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인포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다만 엔탈론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은 일주일 후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왜?”

“더욱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죠. 일주일 사이 여러분의 레벨은 더 오를 테고, 전투력 역시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겁니다.”

“뭔가 생각이 있나 보네?”

“그렇습니다.”

“좋아, 믿도록 하지.”

중요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힘을 조금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뜻.

나는 나인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러분이라면 회색의 숲에서 일주일간 머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크게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만큼 여러분은 특별하니까요.”

“어? 어, 그래.”

나인포는 불안하게도 우리에게 특별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녀석은 언덕을 내려가 앞으로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싸워야 할 사냥터를 알려 주었다.

“한번 싸워 봤으니 요령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야, 아니…… 저건.”

그곳은 바로 앞서 싸웠던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사냥터였다.

다만 문제라면…….

“한 번에 최대 20마리까지 나올 수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위급하다 싶으면 윌리아 님의 방어 스킬을 쓴 다음 도주하세요.”

한 마리 한 마리가 쉽지 않은 도플갱어들이 떼를 지어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도플갱어는 보상도 후하지만, 전투 중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고, 이를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몬스터입니다. 놈들과의 전투 경험은 분명 앞으로의 활동에 더욱 큰 도움이 될 테죠.”

갑자기 호랑이 교관에 빙의한 녀석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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