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마계에 어서 오세요 (2)
나는 스스로가 특출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투에 한에서만큼은 판단력도 좋은 편이고, 신체 능력도 높은 데다가.
그 신체를 컨트롤하는 제어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재앙이 없었다면 영영 깨우치지 못했을 기감도 비교 상대가 없을 만큼 예민한 편이며, 그 기감 덕에 적의 공격을 빠르게 포착해 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게 가능했다.
이는 분명 재능의 영역이다.
덕분에 나는 남들은 어려워하는 걸, 너무도 쉽게 해낼 수 있었다.
-콰아앙! 쾅!
“큭! 정신없네!”
“정신 차려 서백호! 가짜 백호 한 마리가 빠져나왔잖아!”
“백호 씨한테 뭐라 하기 전에 너나 정신 차려 시에나! 가짜 시에나 세 마리가 나를 집중 공격하고 있잖아!”
“데헷!”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단 것은 아니다.
내게도 분명 문제점은 있었다.
다만 이런 나를 지적해 줄 존재가 없어서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도플갱어들과의 전투는 매우 유익했다.
내 전투에서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으니까.
‘굳이 적의 공격을 기다릴 필요 없어! 먼저 나아가!’
‘더 빠르고 짧게 쳐 내! 아니, 그냥 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해 버려!’
‘적의 움직임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 마! 그냥 기감으로 느껴!’
그리고 나는 문제점을 하루하루 빠르게 고쳐 나가는 중이다.
아니, 정확하겐 강제로 고쳐지는 중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플갱어 떼들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가 없으니까.
[저는 여러분이 도플갱어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미리 부하들과 엔탈론에 들어가 정보 수집을 하고 있겠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도플갱어 사냥으로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동안, 나인포와 마족 수하들은 미리 무법자의 도시 엔탈론에 들어가 터를 잡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녀석이었는데, 고향인 마계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알아서 자기 할 일을 척척 찾아 움직이는 모습이 아주 바람직했다.
어차피 시스템으로 엮인 주종 관계인지라 놈은 나를 배신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마음 편히 수련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예고한 일주일이 지났다.
* * *
최대 20마리의 도플갱어가 한자리에 나오는 사냥터.
그곳에서 싸우는 우리 파티 멤버는 나, 윌리아, 시에나뿐만 아니라 헬레나와 펫 5총사(다켈프, 멍멍이, 룡룡이, 와일번, 와이번)가 함께다.
반면 우리를 상대하는 도플갱어는 나와 시에나로만 변모했을 뿐, 성직자인 윌리아를 비롯해 나머지 일행으로 변신하는 일은 없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놈들이 가지지 못한 다양함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싶지만…….
차라리 도플갱어들이 헬레나나 펫들로 변모를 해 주는 편이 전투가 쉬웠을 거란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도플갱어들이 심플하게 이룬 나와 시에나 조합이, 근딜과 원딜, 어느 한 부분 구멍이 없어 극강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하! 덤벼라 이 빌어먹을 가짜 엘프!]
“헬레나 저년 저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니지?”
그런데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원래는 자신으로 변모한 도플갱어와 싸워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점을 개선하는 게 목적이었으나, 상대가 워낙 막강해서 전투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모두가 함께 강해지고 있는 게 체감되었다.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엘더 이터 헬레나’는 우월한 피지컬로 혼자서 도플갱어 셋을 상대하는 게 가능해졌고, 나머지 펫들도 힘을 합쳐 도플갱어 하나를 상대하는 게 가능해졌다.
‘엄청난 발전이야.’
아무리 도플갱어라 해도 100%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그 도플갱어의 바탕이 되는 게 누군가?
바로 나와 시에나다.
펫들이 힘을 합쳤다고 해도 우리를 상대로 1인분을 해 준다는 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중에서도 다켈프의 발전이 가장 커. 역시 지능이 높은 인간형이라서일까?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절대 특수 몬스터인 헬레나 수준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유일 등급의 단검을 비롯해 제대로 장비를 챙겨 주면 그에 준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원조 파티원인 멍멍이가 눈에 밟히긴 하지만…….
동물형 펫을 위한 장비가 따로 나온다던가 추가로 펫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지 않는 이상, 가능성이 높은 쪽을 지원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헬레나와 펫들의 전력 상승은 고무적이야. 당장 레벨이 몇 오르는 것보다 훨씬 강해진 느낌이니까.’
하지만 헬레나와 펫들이 총 4마리의 도플갱어를 묶어 놓는다고 해도, 20마리가 한꺼번에 등장하면 16마리의 도플갱어가 남는다.
즉,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나와 윌리아, 시에나의 실력이란 것이다.
“윌리아!”
“어스 퀘이크!”
-드드드드득!
누구보다 스킬을 많이 보유한 윌리아의 어스 퀘이크(극상급 스킬)에 도플갱어 사냥터 전체의 지면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러자 시에나로 둔갑한 도플갱어들이 녹색의 빛으로 이뤄진 보조 날개를 이용해 하늘로 날아오르고.
나로 둔갑한 도플갱어들은 디딤판을 사용해 허공을 달렸다.
도플갱어는 희귀 등급의 장비 기능까진 따라 할 수 있어도 유일 등급의 장비 기능은 따라 하지 못한다.
시에나의 비행 장비인 보조 날개는 희귀 등급이지만, 내 비행 장비인 이능의 날개는 유일 등급인지라 벌어진 상황이다.
물론, 이능의 날개 없이 비행 스킬로 날 수도 있지만, 가속 능력이 뒤떨어지는 만큼, 디딤판+도약 스킬 조합을 사용하는 게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날파리들을 먼저 제거해!”
“야! 날파리가 설마 내 모습을 한 도플갱어 말하는 거 아니지!?”
헬레나에 이어 윌리아에게까지 말로 공격을 받은 시에나였지만.
-피피핏!
쉴새 없이 움직인 시에나의 손은 탄막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공격 면적을 만들어 하늘의 일부를 뒤덮었다.
원래 그녀의 전투 스타일과 다른 요란한 수법이었다.
-휘휙! 휙!
시에나 도플갱어들은 열심히 하늘을 날며 해당 공격들을 피했지만.
-퍽!
[컥!]
-퍼퍽!
[끄악!]
화려한 공격 속에 숨겨진 저격 스킬이 은밀하게 가짜 시에나들을 꿰뚫으며 추락시켰다.
그렇게 도플갱어들을 손쉽게 해치우는 시에나를 저지하기 위해 나로 둔갑한 도플갱어들이 달려들었지만…….
“절대 회복. 그라비티 프레스.”
윌리아의 극상급 회복 스킬이 달려드는 가짜 서백호들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굳게 만든 데다가 고중력의 압박 스킬을 이용해 발을 묶었다.
곧이어 미리 사용해 둔 건지, 윌리아의 메인 스킬 절망의 빛이 하늘에서 시기적절하게 떨어졌다.
나로 둔갑한 도플갱어들이라고 해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절망의 빛은 5강 매직 스태프의 내장 스킬인 만큼, 도플갱어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증발해 버렸다.
마치 땅강아지인 검사 나부랭이는 결코 마법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스킬 운용이었다.
이렇게만 봐선 토벌이 간단해 보이지만, 도플갱어가 둔갑한 상대는 바로 나.
틈을 허락하면 바로 놈들의 칼날이 목을 베었을 터.
이는 스킬의 사용 타이밍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묘기였다.
“윌리아! 여기 더 남았어!”
“알고 있어!”
그리고 윌리아가 바로 시에나의 백업을 가니, 얼마 남지 않아 두 사람에게 배정된 도플갱어의 청소가 마무리될 터이다.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윌리아와 시에나가 해치운 도플갱어는 8마리.
인당 4마리를 처치한 셈이다.
그럼 남은 도플갱어는 이제 8인데.
-쾅! 서걱!
왜 아니겠는가.
그 8마리는 바로 내 몫이다.
나는 요란하지 않게 착실히 한 마리씩 배정된 도플갱어를 줄여 나갔다.
5강 성검의 내장 스킬을 이용해 파워로 적을 압살시킬 때도 있고, 아무런 스킬 없이 단순 칼질로 적을 처치할 때도 있다.
적보다 더 빨리 칼을 뻗고, 먼저 몸을 움직였으며, 보이지 않는 등 뒤의 공격까지 기감으로 착실하게 캐치해 냈다.
[이, 이런.]
[어째서 이런 차이가…….]
칼끝 하나 내게 스치지 못하니, 말 없던 도플갱어들조차 당황하며 대사를 토했다.
-파앗! 파앗!
더불어 나는 수시로 푸른빛을 뿌리며 움직여야 했는데…….
매우 높은 신체 능력치를 갖고 있음에도, 종종 몸이 내가 바라는 속도를 내지 못해서 이능의 날개의 비행 능력으로 순간적으로 몸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는 속도를 얻음과 동시에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염력. 제3의 손. 춤추는 검.’
그리고 그뿐 아니라, 나는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동안 손에 쥔 검을 제외한 나머지 전투 수단은 기습이나 방어 등, 보조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서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 나는 이미 변칙적이면서도 다양한 공격 옵션을 보유하고 있단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정면의 도플갱어 둘을 상대하면서도, 제3의 손과 염력을 이용해 등 뒤의 적과도 공격을 주고받는 게 가능해졌다.
‘여기에 분신 스킬과 폭주 스킬까지 사용하게 되면 무조건 승리지만.’
사냥보단 실력 증진이 목적인 만큼, 일발성 스킬은 배제하고 싸웠다.
그래서인지 우린 더욱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었고.
-파스스스.
“끝!”
“수고하셨어요.”
도플갱어 존에 들어서고 일주일째가 되어서 20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며 승리를 거두는 게 당연해졌다.
“일주일 사이 레벨도 제법 올랐지만, 전투 능력은 그 이상으로 높아진 느낌이야. 이 정도면 초기 목적은 달성한 거 아닌가?”
자랑스레 가슴을 펴며 턱을 치켜드는 시에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슬슬 이곳을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그럼 슬슬 가 볼까요? 마계의 무법자 도시란 곳에요.”
그래서 나는 다음 목표를 가리켰고, 이에 시에나는 크게 환영하는 기색을 보였다.
“오! 드디어 시작인가!? 시에나의 마계 평정 전설이!”
“마왕은 드래곤급이라던데?”
“우리가 순조롭게 성장해 나가면 혹시 알아? 우리도 드래곤급이 될 수 있을지.”
긍정적인 시에나의 반응에 나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도전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레벨 300을 시야에 담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이야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드래곤급은 몰라도, 일단 무법자 도시의 지배 계층까진 올라가 보도록 하죠.”
“좋았어! 마계 놈들을 부려 먹어 보자고!”
우선은 당장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무법자 도시 엔탈론에 자리를 잡고 마계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 * *
[엔탈론 시티]
나는 가까워진 무법 도시 엔탈론의 입구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피인지, 뭔지 모를 붉은 액체가 묻은 도시의 현판이 흉흉하기 그지없고.
도시를 따라 둘려진 낮은 성벽 위엔 빼곡하게 인간과 닮은 해골바가지들이 장식된 미친 장소.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의 활동 거점이 될 그곳을 향해 나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안 꺼져?”
“네?”
“꺼지라고. 더러운 인간종들아.”
나가긴 힘들어도 들어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던 무법 도시라 들었건만…….
어째서인지 경비 놈들은 우릴 입구 컷시키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