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00화 (200/273)

200화 무법자의 도시 장악 (1)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경비들의 머리 위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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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글자가 깨진 듯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상대의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저건 시스템의 오류 같은 게 아니다.

엔탈론 일대의 특성이지.

엔탈론에선 타인의 정보를 살필 수 있는 탐색 스킬이 먹통이 되는데, 이런 특징 덕분에 무법자들의 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다.

나인포의 말에 의하면 마계엔 엔탈론처럼 특이한 지형이 꽤나 많다고 한다.

‘몬스터 처치 시 아이템이나 경험치 획득량이 증가하는 곳도 있고, 디버프처럼 신체 능력치가 떨어지거나 보유 코인이 조금씩 증발하는 곳도 있고.’

엔탈론에서 탐색 스킬이 제 기능을 발휘 못 하는 것도 마계의 이런 특성 때문이란 것이다.

마계에도 인간족이 살고 있는 만큼, 엔탈론에선 우리가 마경을 건너왔다고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정체가 탄로 날 걱정이 없었다.

‘심지어 몬스터인 헬레나도 떳떳하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 다 했지. 마계에 자리를 잡기에 엔탈론처럼 안성맞춤인 곳도 없어.’

그런데 우리의 주요 거점이 될 엔탈론에 입성하려는데, 처음부터 방해가 들어오네?

나는 엔탈론 경비를 앞에 두고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혹시나 싶어 3천 코인씩 꺼내 그들에게 쥐여 주었다.

“하하하! 이 인간종 친구는 말이 통하는군!”

“자자, 어서 들어가게! 자유의 도시 엔탈론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랬더니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더없이 친절하게 행동하는 경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황당함에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비로소 엔탈론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시 입구를 지키는 경비부터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다니, 엔탈론이 어떤 곳인지 빠르게 체감되었다.

“와아!”

“오? 안은 생각보다 말끔한데.”

“그러게요?”

해골바가지가 걸려 있는 흉흉한 외형과 달리, 엔탈론의 내부는 깔끔하게 매직 블록을 쌓아 만든 듯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물론, 건물들은 통일성이 없고, 각각 개성들이 강했지만, 그게 또 이국적으로 보여 보는 재미가 있었다.

대신 바닥은 제대로 포장되어 있는 데다가 길도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어서 개성 강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음에도 묘하게 조화가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꼬치 하나!”

“자, 여기 있네. 하나에 50코인이야.”

엔탈론도 사람이 사는 곳이란 건지, 도시 입구 쪽으론 상업 시설이 몰려 있었고, 개중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제법 많았다.

시에나는 냄새 좋은 고기 꼬치를 발견하곤 바로 달려가 말릴 틈도 없이 구매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입가에 소스를 잔뜩 묻히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꽤나 맛있는 모양.

그런 시에나의 모습에 넘어간 나와 윌리아도 꼬치를 하나씩 구입해 먹었다.

“오, 진짜 맛있네?”

“그러게요?”

우리가 감탄하거나 말거나, 시에나는 이미 다음 가게에서 케밥같이 생긴 음식을 구매하고 있었다.

꼬치 50코인, 케밥 80코인. 무법자들의 도시라 그런 건지, 아니면 마계 자체가 그런 건지 대체로 물가가 비싼 편이지만, 우리 같은 사냥꾼들에겐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다.

“천국이네. 천국.”

마지막으로 30코인짜리 정체 모를 달콤한 음료로 목을 축인 시에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엔탈론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다가 나는 문뜩 음료수를 파는 가판대 앞에 절규하는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이런 흉흉한 그림을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걸어 놓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마계는 우리와 미적 감각이 다른 걸까?

“저기 아저씨, 이 그림은 뭐예요?”

“외지인인가?”

“오늘 막 들어왔거든요.”

“그건 이 가게가 스크림 스컬스란 조직의 보호를 받는 곳이란 의미이네.”

“아아…….”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다른 가판대 앞에도 비슷한 그림을 걸어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붉은 장미 문양’이고, 그다음으로 ‘절규하는 해골’과 ‘피 묻은 단검’ 그림이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가판들은 특정 조직에 돈을 내고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괜히 무법자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맛있네.”

나는 답을 해 준 보답으로 그가 판매하는 주스를 구매해 마셨고, 달콤하면서도 갈증을 제거하는 시원한 맛에 감탄하며 엔탈론의 상업 지구를 거닐었다.

‘가판만이 아니라, 가게에도 전부 조직들의 그림이 걸려 있구만.’

그리고 잠시 후 우린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은 다양한 이종족으로 붐볐는데, 아무래도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마족이고, 그다음이 수인족, 언데드 순으로 인간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우리에게 수많은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흥미롭다는 시선을 던지고, 누구는 적대감을 보였으며, 누군가는 끈적한 시선을 던졌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도시의 신입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관심이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한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오셨군요.”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인포와 수하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K-패치된 인사였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건물 내부를 살폈다.

꽤나 널찍한 3층 건물로, 1층 메인에 바와 30석 규모의 테이블이 자리해 있었으며, 2층은 VIP룸 10개, 3층은 사무 공간을 갖춰 놓았다.

아직 영업은 하지 않고, 열심히 개점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우린 이곳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그럴싸하네. 수고했어.”

“마계에 거점이 생기는 거라 그런지 준비 과정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마족인가 봅니다. 마계가 이리 좋은 거 보면요.”

나인포의 어깨를 두들긴 나는 테이블에서 의자 하나를 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도플갱어를 상대로 충분히 좋은 경험을 쌓았어. 레벨도 192가 되었고.”

“그럼 슬슬 진행해도 되겠군요.”

“사냥 말이지?”

“맞습니다. 중소 규모의 조직부터 흡수해 나가기로 하죠.”

사냥감이 몬스터에서 마족으로 바뀌게 된다.

애초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거지만, 나는 한 가지 확인차 물었다.

“그런데 우리 전력만으로 이곳을 점령할 수 있는 거 맞지?”

“간단하진 않겠지만, 분명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엔탈론에 여러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레벨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많지만, 여러분의 실질 전투력은 레벨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니까요. 특히 백호 님을 상대할 수 있는 마족은 이런 변방에 없을 거란 게 제 판단입니다.”

“그래?”

지금까지 나인포가 한 말 중에 틀린 건 없었으니, 나는 믿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나인포에게 엔탈론의 대략적인 세력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엔탈론을 움직이는 대표 세력은 셋으로, 우리가 이곳에 오는 동안 가판대와 가게들에 걸려 있던 그림들의 주인이었다.

그들의 정보는 아래와 같다.

1. 스크림 스컬스 (문장: 절규하는 해골)

-해결사 길드로 의뢰비만 충분하면 어떤 부탁이든 해결해 주는 흥신소와 같은 곳.

-해외를 포함해 30개가 넘는 도시에 크고 작은 지부를 갖고 있으며, 길드장의 추정 레벨은 200.

2. 블러디 대거 (문장: 피 묻은 단검)

-청부 살인 길드지만,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일반인의 살인 의뢰만 받는 곳.

-엔탈론이 속한 케일론 왕국 6개 도시에 지부를 갖고 있으며, 길드장의 추정 레벨은 230.

3. 크림슨 로즈 상회 (문장: 붉은 장비)

-인신매매, 마약 거래 등, 음지의 장사를 주로 하는 상회로 엔탈론 최대 세력이다.

-엔탈론이 속한 케일론 왕국 12개 도시에 위장 지부를 갖고 있으며, 길드장의 추정 레벨은 210.

현재 엔탈론은 이 세 조직의 힘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도시의 치안 역시 이들이 관리하고 있다.

일단 중소 조직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 이 세 조직을 삼키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을 길게 끌 필요 없죠. 바로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야 좋지.”

엄연히 따지면 이곳을 포함해 앞으로 나인포가 관리하게 될 사업체 모두 내 거지만,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나인포가 하는 사업에 해결사로서 힘을 보태 주는 느낌이다.

조폭 영화에 한 발 담근 듯한 느낌도 들고.

“아, 그전에 이름을 지어 주시죠.”

“이름?”

나인포의 뜬금없는 요청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엔탈론에서 명성을 떨칠 저희 단체의 이름 말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오래지 않아 답을 주었다.

“화이트 타이거.”

“좋은 느낌이군요. 알겠습니다.”

내 이름 백호를 딴 조직명이었다.

* * *

“그러니까. 외지인들이 가게를 차렸다?”

“네, 아직 영업은 시작하지 않았는데, 규모가 제법 됩니다.”

“종족은?”

“마족과 인간족 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족은 그렇다 쳐도 인간족? 특이하네.”

수인족을 주축으로 구성된 엔탈론의 ‘중소 조직 블루혼’의 리더는 부하의 보고에 흥미를 표했다.

“주요 멤버들의 레벨이 꽤 되어 보이긴 하던데, 인원은 채 20명이 넘지 않습니다.”

“설마 독립 조직을 꿈꾸는 건가?”

“3대 길드 어디와도 접촉을 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독립 조직을 꿈꾸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우리가 먹어도 뒤탈이 없다는 거군.”

블루혼은 해결사 길드 스크림 스컬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단체로, 필요에 따라 전투원을 파견해 주는 용역업체 같은 곳이다.

조직의 규모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스크림 스컬스 같은 큰 조직에 전투원을 빌려줄 정도면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갖췄단 뜻인데, 최근 사업 확장에 관심을 보이던 도중 좋은 타깃을 발견했다.

큰 가게를 차릴 정도면 제법 자금력이 있단 소린데, 엔탈론에서 아무 기반 없이 단독으로 활동하려 하다니,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뭐가 또 있어?”

“놈들 사이에 있는 인간족 여자들의 미색이 상당하다더군요. 웬만한 서큐버스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요.”

“오오, 그래?”

더불어 이어진 소식에 미색을 밝히는 블루혼의 리더는 한껏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정보 수집 수고 많았어. 이 일이 잘 해결되면 한 몫 챙겨 주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블루혼의 리더는 황소 뿔을 머리에 달고 있는 거구의 수인.

그가 몸을 일으키자, 정보를 전달하던 여우 귀를 가진 작은 체구의 수인이 그림자에 가려졌다.

이어서 블루혼의 리더가 호기롭게 외쳤다.

“부하들을 모아라! 오늘 바로 그 가게를 친다!”

“네!”

블루혼 전투원들은 하나 같이 높은 레벨을 자랑하는 정예들.

그들은 자신들이 나서면 신생 업장 정돈 무리 없이 먹어 치울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뭐야, 이 새끼들 레벨에 비해 장비가 왜 이렇게 구려?”

“백호 님 파티를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유일 등급 장비는 마계 귀족들이나 가질 수 있을 법한 귀한 물건이니까요.”

“에잉, 장비 파밍을 한껏 기대했는데.”

“그래도, 코인이랑 경험치는 꽤 많이 주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 어쩔 수 없이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족을 부하처럼 거닐고 다니는 인간에게 레벨 150의 부하 셋이 단칼에 당하는 것을 본 블루혼의 리더는 말을 잃어야 했다.

‘마족이 인간을 부리는 게 아니라, 인간이 마족을 부린다고? 저, 마족도 상당히 강해 보이는데?’

심지어 인간족 중 한 명인 작은 여자는 이상하게 귀가 길었다.

마치 다크 엘프의 새하얀 버전처럼.

“평범하지 않은 놈들이구나. 너희처럼 강한 인간은 처음 본다. 심지어 귀가 긴 변종 인간도 처음 보고.”

“귀가 긴 변종 인간? 백호야. 쟤가 말하는 변종 인간이 나 말하는 거지?”

“하하, 쟤들 눈엔 시에나 님도 인간인 모양입니다.”

블루혼과 신생 업체가 마주한 곳은 메인 스트리트에서 거리가 떨어진 뒷골목.

폭이 5미터가 조금 안 되는 그 뒷골목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대치 중인 두 세력의 인원은 40:5다.

당연히 40은 블루혼 쪽이었으며, 방금 3명이 당하면서 37:5가 되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인간 남성의 검격은 대단했지만, 그럼에도 블루혼의 리더는 자신이 나서면 밀리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모두 나를 중심으로 전투 대형을 짠다!”

“네!”

그리고 블루혼 리더의 지시에 부하들 역시 자신들이 이길 거란 믿음을 보이며 대형을 짰는데.

-서걱.

“어?”

그 대형의 중심이자, 엔탈론에서 중소 조직임에도 유명세를 떨치던 블루혼의 리더가 단 1초 만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본 블루혼의 리더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런 리더를 일격에 베어 버린 인간 남성은 씨익 웃으며 남은 수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뭐야, 저 괴물 새끼는!”

이날, 엔탈론의 뒷골목은 수인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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