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01화 (201/273)

201화 무법자의 도시 장악 (2)

사냥꾼이란 직업 자체가 몬스터와 싸우는 것인 만큼, 수시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위기를 이겨 낸다면 살 것이요, 이겨 내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를 이기며 나아가는 것이 사냥꾼이지만.

결국, 사냥꾼이란 존재도 얼마 전까지 평범했던 사람들인지라,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의 바람을 충족해 주고 길잡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사냥꾼 협회라 할 수 있다.

협회장 서백호를 포함해, 윤시아, 김현수, 최도겸 등 선구자들이 닦아 놓은 길을 답습해 나가는 만큼 목숨을 잃을 확률이 줄고, 공략법을 충실히 숙지하고 이용하다 보면 생각보다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덕분에 사냥꾼 협회처럼 뛰어난 선구자가 많은 단체는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어? 성훈이? 네가 왜 파티를 구하고 있어? 동료들은 어쩌고?”

“후우, 전부 하차했어.”

“뭐? 왜?”

“싸우는 거에 지쳤대…….”

“아아, 그렇구만. 안전한 삶의 유혹에 졌군. 하긴 그놈들 레벨이면 어디 가서도 굶고 살 일은 없을 테니까. 아니, 풍족하게 누릴 거 누리며 살 수 있겠지.”

“제길, 다 같이 협회의 간부가 되자고 약속해 놓고는.”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공략법이 존재하는 사냥터에 나간다 해도 싸우는 이상 죽을 위험은 있으니까.”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사냥꾼 협회라 할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성장의 딜레마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냥에 사냥을 이어 가며 레벨을 올리다가 제풀에 지쳐, 제자리에 멈춰 서거나.

자신 정도의 레벨이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며 지레 만족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당장 내일 어떤 새로운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벌써 안주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건 그렇지.”

“더구나 협회장님처럼 남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분도 계시는데, 자기들이 지쳤다고 하는 건 배가 부른 소리지.”

“맞는 말이야. 중도 하차하는 건, 협회장님께서 닦아 놓은 길을 제대로 따라 걷지 못하는 꼴이니까.”

그럼에도 사냥꾼 협회가 다른 단체들과 다른 점은 모두의 모범이 되고 솔선하는 존재가 그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계속 전진해서 협회장님처럼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인물이 될 테니까.”

“우리 성훈이 독기가 아주 바짝 올랐네. 대사는 중2병스럽지만, 마음가짐이 아주 좋아.”

덕분에 뜻을 함께하던 동료들에게 버려졌음에도, 새로이 파티를 구해야 하는 청년의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이내 그 청년은 쾌청한 하늘을 올려 보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 준 사냥꾼 동료에게 물었다.

“지금쯤 협회장님은 무얼 하고 계실까?”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리시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위험을 감내하고 계시겠지.”

“하긴 우리와 다르게 개척자인 그분은 모든 게 도전이실 테니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협회장 서백호의 근황.

두 사람은 감탄과 함께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함께 하늘을 올려 보았다.

* * *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사냥꾼 협회의 리더 서백호.

그는 현재 무법자의 도시 엔탈론의 뒷골목에서 피떡이 된 마족을 자근자근 짓밟으며 광포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하핫!”

평소 가볍긴 해도 실없이 웃음을 흘리며 누군갈 짓밟는 악인은 아니던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새끼야. 아까 전의 그 기세는 어디에 팔아먹은 거야. 또 지껄여 봐.”

“요, 용서를…….”

엔탈론은 무법자의 도시.

그런 곳에 있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놈이 있을 리 없는데, 놈들은 서백호가 이끄는 화이트 타이거와 영역 싸움을 함에 있어, 입부터 터는 버릇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놈들의 레퍼토리가 하나같이 같다는 거다.

서백호의 욕으로 시작해서, 이내 그의 곁을 지키고 선 미인 동료들에게 더러운 음담패설을 내뱉었다.

한두 번이면 모를까. 만나는 놈들마다 자신의 여친과 아끼는 동료를 향해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을 토하니, 화가 날 대로 난 것이다.

덕분에 엔탈론의 뒷골목에서 마족들보다 더욱 악마 같은 인간이 강림하고 말았다.

“이 새끼 주먹질에 그냥 죽었네?”

날붙이도 아니고, 주먹으로 안면을 으깨 적을 처치한 서백호를 보며, 그에 맞서던 적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로 인해 엔탈론엔 중소 길드를 먹어 치우며 급격히 성장 중인 화이트 타이거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서백호의 악명이 빠르게 퍼졌다.

‘화이트 타이거의 리더는 인간종이며, 그는 웃으며 사람의 얼굴을 부수는 취미를 갖고 있다.’라고.

“하, 항복하겠습니다. 얌전히 화이트 타이거에 복종을 맹세하겠습니다.”

덕분에 어느 순간부턴 싸우지 않아도 쳐들어만 가면 알아서 기는 단체들이 생겨났다.

“뭐야, 생각보다 쉬운데?”

“주인님의 악명이 한몫한 거죠.”

그로 인해 머지않아 화이트 타이거는 순식간에 엔탈론의 3대 조직조차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당연히 이쯤 되니, 기존 3대 조직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 *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더니…….”

“정말, 기가 차는군. 신입들이 활개 치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엔탈론이 만만한 곳이었나?”

현재 엔탈론은 스크림 스컬스, 블러디 대거, 크림슨 로즈 이 3개 조직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범죄 조직인 이들이 하나의 도시를 차지하고 앉아 흔들리지 않는 권세를 누릴 수 있는 건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케일론 왕국의 대영주라도 움직인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들에게 엔탈론은 계륵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니까.”

마계엔 엔탈론을 정벌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정벌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마왕에게 고위 작위를 하사받은 대영주들인 만큼, 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 엔탈론을 차지하고자 병력을 일으킬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불어 3개 조직들도 나름 줄을 대고 있는 귀족들이 있었기에, 이번 일에 힘 있는 대영주가 끼어들었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럼 대체 이놈들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

“가능성이야 따지면 많지. 케일론 왕국이 아닌, 타국 대영주의 사주를 받은 걸 수도 있고. 외부의 거대 조직이 침투한 걸 수도 있고.”

즉, 당장으로선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마계는 매우 복잡한 세력 구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정보만으로 적의 뒷배를 추측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찜찜하긴 하지만, 어차피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야.”

“그게 뭐지?”

그러나 사실, 화이트 타이거의 뒷배를 안다고 해도 이 세 조직이 취할 행동 방침은 간단하게 나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그들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배제하느냐지.”

엔탈론에 제4의 세력의 등장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이들이 힘을 합쳐 척살하느냐였다.

규모는 3개 세력 중 가장 작지만, 리더의 레벨만큼은 가장 높은 블러디 대거 리더의 말에 스크림 스컬스와 크림슨 로즈의 리더들이 ‘음’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졌다.

“정체도 모르는 놈들을 받아들이는 건 역시 꺼려지는군.”

“그건 그렇지. 놈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득도 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두 리더의 대답에 블러디 대거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정해졌다.

엔탈론의 3대 조직이 신규 조직인 화이트 타이거를 척살하기로.

* * *

마계로 넘어오고 10일째이자 엔탈론에 입성하고 3일째.

그동안 우린 엔탈론에서 21개의 조직을 깨부수고 그들을 흡수하면서 세력을, 덩치를 불렸다.

덕분에 엔탈론의 현재 상황에 대해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에이 뭐야, 그럼 우리가 흡수한 21개 조직으론 엔탈론의 3대 조직 중 한 곳에도 못 미친다는 거네?”

“네, 그 3대 조직이 오랫동안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면서 세력을 불려 온 터라 중소 조직과의 차이가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만 거죠.”

나는 나인포의 이야기에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왠지 3일 동안의 노고가 헛수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규모입니다. 만약 저희가 엔탈론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크림슨 로즈에 붙게 된다면, 크림슨 로즈는 단독으로 나머지 두 조직에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죠.”

“응?”

그리고 뜬금없는 가설을 들이미는 나인포의 모습에 나는 의문을 표해야 했다.

“설마 크림슨 로즈에 붙으려고?”

그가 이런 가설을 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계획이라 생각하면 제법 그럴듯하다.

한쪽에 힘을 실어 줘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만든다면 더욱 편하게 엔탈론을 접수할 기회가 생기게 될 테니까.

하지만 가능성을 따지면, 그리 높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적으로 세력을 불려온 크림슨 로즈가 우리와 붙어서 나머지 두 팀과 싸우는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야 만들면 그만이죠. 그리고 사이가 좋으면 깨면 그만이고요.”

뭘까?

씨익 미소를 짓는 나인포의 표정이 음흉하기 그지없다.

팔짱을 낀 나는 나인포를 바라보다가 자세한 계획을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계획을 모두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그게 과연 먹힐까?”

“해 봐야죠.”

* * *

엔탈론 3대 조직은 서로의 사업 영역이 겹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3대 조직으로 뭉뚱그려 칭해지는 그들 내부에도 분명 힘의 차이는 존재했다.

그중 청부 살인 길드 블러디 대거는 3대 조직 중 가장 약소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블러디 대거를 쉬이 무시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엔탈론 최강자이자, 다른 두 조직의 리더를 압도하는 무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엔탈론에선 그가 나선다면 크림슨 로즈의 리더도, 스크림 스컬스의 리더도 처치할 수 있을 거란 말이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돌았었다.

“허, 그래서. 나에게 의뢰를 하러 왔다는 건가? 화이트 타이거 측에서?”

3대 조직이 힘을 합쳐 화이트 타이거를 척살하자고 약속을 하고 돌아온 날.

블러디 대거의 리더인 카인에게 화이트 타이거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내일 화이트 타이거를 공격하기로 한 카인 입장에선 썩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칫 크림슨 로즈와 스크림 스컬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카인이 마주한 인물은 화이트 타이거 측의 주요 간부인 나인포.

나인포가 그에게 의뢰를 거론하자 카인은 실소를 흘리며 단호하게 답했다.

“크림슨 로즈나, 스크림 스컬스를 향한 공격 의뢰는 받지 않을 거네. 우리 내부를 흔들려 해도 소용없어.”

하지만 나인포는 그런 게 아니라며 엄청난 거금의 코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희 화이트 타이거의 리더인 인간 놈을 제거해 달란 의뢰를 하러 온 겁니다.”

그리고 이어진 나인포의 의뢰 내용에 카인은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야 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화이트 타이거의 간부인 자네가 자신의 리더를 없애 달라고 한 게 맞나?”

“네, 맞습니다.”

재차 확언을 듣게 된 카인을 헛웃음을 흘렸다.

당장 내일 3대 조직에서 화이트 타이거를 쳐들어갈 예정인데 내부 싸움이라니, 이 무슨 콩가루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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