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03화 (203/273)

203화 무법자의 도시 장악 (4)

마계 주민인 마족과 인간, 수인 등은 몬스터가 아니다.

그들은 NPC로 표기되지만, 지구인과 비슷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고로 이들을 처치할 경우 아이템이 드랍되는 것이 아닌 실제 인간을 죽일 때처럼 보유한 아이템 전체를 수습할 수 있다.

게다가 지구에선 같은 인간이나 NPC를 죽이면 경험치를 얻지 못하지만, 마계의 존재들은 ‘적대적 진영의 NPC’라 그런지 처치할 경우 상당량의 경험치도 들어왔다.

‘이 말은 즉, 마계의 주민들은 내게 있어 최고의 사냥감이란 의미지.’

그리고 증거로 카인을 처치하자 레벨이 올랐을 뿐 아니라, 이것도 챙길 수 있었다.

[오브더나이트 / 단검 / 등급: 유일]

-마룡의 뼈를 깎아 만든 마법 단검으로 세상 어느 칼보다 예리하고 가볍다.

-오브더나이트로 적을 공격하면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주는 출혈 피해를 입히며, 출혈은 3번까지 중첩된다.

-무기의 손상 시 자가 수복을 한다.

-근접 전투 스킬 공격력 100% 증가.

-순발력+12

-자체 스킬: 그림자 검

[그림자 검 / 극상급 스킬]

-오브더나이트의 칼날을 분해한 후, 50미터 이내 원하는 장소에서 칼날을 재생성하여 적을 공격한다.

-단, 적의 신체 내부에 칼날을 생성할 순 없다.

-그림자 검은 매우 뛰어난 관통 효과와 절삭력을 갖고 있으며, 그 효과는 검강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스킬을 유지하기 위해 초당 2의 마력을 소모한다.

카인이 내게 주고 떠난 선물.

눈이 번쩍 뜨이는 옵션에 나는 연신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놀랍군요. 고작 범죄 집단의 수장이 유일 등급의 장비를 갖고 있다니.”

“얘 정도 레벨이면 갖고 있을 만하지 않아? 마계에선 유일 등급 장비가 우리보다 더 귀한가 보네?”

“아뇨,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래?”

“마계엔 이미 넉넉한 수의 유일 등급 장비가 풀려 있습니다. 다만 소수의 특별한 존재들이 독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을 뿐이죠.”

“아아, 귀족과 왕족들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럼 귀족 하나 털어먹으면 많은 유일 등급 장비를 구할 수도 있는 건가?

갑자기 마계가 보물 창고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에 나인포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딱 보이네요. 귀족을 건드리는 순간, 나라에서 움직일 테니 섣부른 짓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것참 아쉽게 되었다.

나는 윌리아의 뒤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다켈프에게 오브더나이트를 던졌다.

그러자 그녀는 날렵하게 단검의 손잡이를 낚아채고는 내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이내 다켈프는 윌리아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몸을 숨겼다.

“부하처럼 따르고 있긴 하지만, 몬스터인 헬레나에게 유일 등급 무기를 쥐여 줄 때도 당혹스러웠는데, 이제 일반 펫에게까지 유일 등급 무기를 주시는 겁니까?”

“난 이미 충분히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잖아. 그러니 남는 손에 쥐여 주는 것뿐이지. 그럼 파티의 전력도 오르고 좋잖아?”

“남는 손이요?”

나인포는 기가 막힌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 실소를 흘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진지하게 표정을 바꿔 나인포에게 물었다.

“과연 나머지 두 조직이 뜻대로 움직여 줄까?”

“엔탈론 3대 조직 중 하나인 블러디 대거는 다른 두 조직과 달리 특수한 곳입니다. 엔탈론에서 최강자란 타이틀을 가진 카인이 리더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지금의 권세를 누릴 수 있던 거니까요. 그런데 카인과 길드의 정예 30명이 한 번에 날아가 버렸으니…….”

“더는 엔탈론에서 3대 조직이라 칭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아마 이 소식이 전해지면 크림슨 로즈와 스크림 스컬스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테죠. 블러디 대거의 추락은 엔탈론의 파워 밸런스 붕괴를 의미하니까요.”

조직의 규모로 따지면 크림슨 로즈가 엔탈론에서 가장 크다.

그것도 2위인 스크림 스컬스를 크게 따돌리는 수준으로.

하지만 2위인 스크림 스컬스가 3위인 블러디 대거와 손을 잡으면 크림슨 로즈라도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이제껏 파워 밸런스가 유지될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파워 밸런스를 유지해 주던 블러디 대거가 떨어져 나갔네?’

이는 크림슨 로즈에게 있어 단독으로 엔탈론을 장악할 기회란 뜻이며, 스크림 스컬스는 권력 유지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란 의미다.

사이가 좋은 척해도 놈들의 근본은 범죄 조직이다.

어제의 동지가 내일 적이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게 전혀 없다.

“스크림 스컬스가 엔탈론에서 명맥을 이어 가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블러디 대거의 잔존 세력을 온전히 흡수해서 규모를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희를 끌어들이는 거죠.”

“그런데 블러디 대거를 흡수하는 건 쉽지 않겠지. 분명 대세를 장악할 기회를 얻은 크림슨 로즈가 가만히 지켜만 보지 않을 테고, 우리도 끼어들어서 분탕을 칠 예정이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스크림 스컬스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다.

바로 우리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다.

‘기존 3강 체제에서 블러디 대거를 빼고 우리 화이트 타이거를 새로이 넣는 것.’

그게 스크림 스컬스가 택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생존 시나리오였다.

“좋네, 블러디 대거의 대가리를 없앤 것만으로 우리에게 향해질 견제도 타파하고 러브 콜도 받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최선의 작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되리란 보장은 없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수정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음 날, 블러디 대거의 카인이 정예들과 함께 죽었단 것을 알게 된 스크림 스컬스 측에서 발 빠르게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 * *

“지,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우리 화이트 타이거에게 화평을 청하면서, 어제 예상했던 제안을 그대로 건네 오는 스크림 스컬스의 부길마.

하지만 그는 우리가 내뱉은 말에 경악하며 크게 당황했다.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우린 스크림 스컬스의 제안을 받을 생각 없어. 크림슨 로즈 쪽에 붙을 생각이거든.”

“아니, 굳이 동등한 3대 조직 체제로 가자는 걸 깨고, 크림슨 로즈의 휘하에 들어가겠다고요?”

단호하게 크림슨 로즈 측에 붙겠다는 내 선언에 스크림 스컬스의 부길마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

당연히 어처구니가 없겠지.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엔탈론의 권력을 나눠 먹자고 싸움을 벌인 게 아니란 거지.’

우린 엔탈론을 ‘장악’하기 위해 왔다.

크림슨 로즈의 손을 들어주면 놈들이 알아서 스크림 스컬스를 처리해 줄 텐데, 뭐 하러 놈들의 손을 잡겠는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침 크림슨 로즈 측에서도 사람을 보내온 모양이니.”

“우리 스크림 스컬스가 크림슨 로즈에 의해 무너진다면 다음은 화이트 타이거의 차례입니다! 대체 왜 그걸 모르십니까!?”

오히려 바라던 바다.

그럼 우린 크림슨 로즈 한 조직만 박살 내면 상황이 끝나는 거니까.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

“이익!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

내 축객령에 스크림 스컬스의 협상 대표인 부길마가 욕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친절하게 그들을 배웅 보내고는 큰 기대 없이 우리 길드를 찾아온 크림슨 로즈의 사자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화이트 타이거의 리더 서백호입니다.”

그리고 크림슨 로즈의 사자를 정중하게 대접한 나는 그가 돌아갈 때, 동맹 요청 서류를 선물로 쥐여 주었다.

덕분에 크림슨 로즈의 사자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돌아갔고.

크림슨 로즈 측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를 낸 그 사자를 협상의 달인이라 치켜세워 주며 크게 포상을 했다고 한다.

* * *

리더를 잃은 블러디 대거는 끝내 3등분이 되어 우리 화이트 타이거와 크림슨 로즈, 스크림 스컬스가 사이좋게 나눠 갖게 되었다.

당연히 이는 스크림 스컬스에게 있어 종말 선언과도 같은 상황이었고.

“스크림 스컬스 놈들이다!”

“젠장, 더러운 크림슨 로즈 새끼들 같으니!”

“끄아아악!”

예상대로 크림슨 로즈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이렇게 가다니.”

그리고 스크림 스컬스는 3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리더가 죽임을 당하면서 끝을 맞이했다.

스크림 스컬스의 리더는 죽어 가면서 이런 대사를 내뱉었다고 한다.

“아아, 그래. 이게 모두 외지인인 화이트 타이거가 나타나고부터 생긴 문제였어.”

정답이다.

하지만 죽어 가면서 우언을 내뱉어 봤자 이미 늦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엔탈론의 거대 조직이 3개에서 단 며칠 사이 1개로 줄어 버렸으니 말이다.

블러디 대거가 자멸하고, 스크림 스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환호하던 크림슨 로즈였지만.

“뭐, 뭐야? 네놈들 설마?”

우린 놈들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엔탈론의 주인을 정하기 위한 마지막 전쟁의 문을 열었다.

“감히 엔탈론의 지배자가 된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리더가 이끄는 정예 파티 하나를 빼면 별것도 아닌 놈들이!”

“쳐라! 화이트 타이거의 리더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3억 코인을 포상하도록 하겠다!”

당연히 크림슨 로즈는 자신들이 화이트 타이거에게 질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화이트 타이거가 블러디 대거의 카인을 죽이긴 했지만, 함정을 이용해 죽였다고 생각했기에 이쪽의 정확한 무력 수준을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단체의 규모도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크니, 패배 시나리오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이런…….”

“괴, 괴물들이야.”

마음 놓고 날뛰기 시작한 나와 파티 멤버들에 의해 놈들의 전력은 처참하게 갈려 나갔다.

푸른색의 빛으로 이뤄진 날개를 펼치며 신나게 검을 휘두르는 나와 녹색 빛의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 원거리 공격을 난사하는 윌리아와 시에나.

몬스터를 부리며 사신의 낫을 휘두르는 헬레나와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어 극강의 공격력을 보이는 암살자 다켈프까지.

우리 파티를 상대할 수 있는 적은 현재 크림슨 로즈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망할, 처음부터 이럴 목적이었던 건가.”

그리고 머지않아 크림슨 로즈의 리더가 내 검에 사망하게 되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 모든 게 우리 파티가 엔탈론에 들어서고 단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엔탈론은 장악하는 것보다 뒷수습이 더 힘들었다.

애초에 우리가 이곳을 장악하기로 마음먹은 게 정보 수집을 위한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보 수집을 위해선 기존 조직들의 지부를 이용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게 없으니, 각 길드의 지부를 길들이려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당연하지만 나는 전사이지, 행정 전문가가 아니다.

엔탈론 관리 등 모든 일은 나인포에게 떠넘겼고, 과거 마계의 영주 출신이란 게 거짓이 아닌지 녀석은 꽤나 일 처리가 좋았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나인포를 통해 마계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정보망이 갖춰질 것이다.

“유능한 부하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네요.”

“하하.”

내 말에 윌리아는 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나인포의 일 처리가 좋은 덕에 우리 파티는 마음 편히 사냥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제 시나리오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나인포에겐 미안하지만, 시나리오가 진행된다면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알 수가 없으니, 우린 더욱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지이이잉.

그렇게 얼마나 사냥을 이어 갔을까?

나는 오랜만에 울리는 통신 반지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 반지는 사냥꾼 협회를 관리하는 강이솔과 연결된 것.

강이솔도 최근 내가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최대한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연락을 자제했기 때문에 나는 의아함을 표하며 통신을 받았다.

[혀, 협회장님. 어서 한국으로 돌아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지금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곳곳에 새로운 이상 지형이 생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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