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일본 지부장 다나카 (1)
세계 곳곳에 이상 지형이 생겨나고 있다는 심상치 않은 소식에 나는 모처럼 마계를 벗어나 서울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사냥꾼 협회 본부가 있는 제1구역(올림픽공원)으로 이동했겠지만, 정부와의 정보 협력 때문인지 강이솔이 나를 부른 장소는 청와대였다.
-쿵! 쿵!
“매직 블록 추가로 도착했습니다!”
“인벤토리에 200개씩 넣어서 옮겨! 위에서 전부 숫자 세니까 혹시라도 빼돌릴 생각 말아!”
“거기 미끄러우니까 조심하세요!”
청와대 생존 구역에 도착하자 공사가 한창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냥꾼 협회가 세운 계획도시처럼 정부도 돈을 들여 자체 도시들을 짓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종로 청와대 생존 구역이었다.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종묘를 포함한 신규 도시는, 그 큰 규모만큼이나 동원된 인부도 많아 마치 대재앙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활기가 느껴졌다.
“어? 저 사람은?”
“사냥꾼 협회 협회장이다.”
“그 미인 파티원들도 있어.”
“와, 실물이 훨씬 낫네.”
하지만 그렇게 활기가 넘치는 공간에서도 우리 파티의 존재는 이질적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눈에 띄었다.
장비가 좀 화려해야지.
평소라면 사람들의 관심에 인사로 답을 해 주겠지만, 강이솔이 급하게 찾은 터라,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무심히 지나쳐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목적지인 청와대 본청에 도착했다.
“바쁘실 텐데, 갑자기 찾아 죄송합니다.”
“협회장으로서 급한 일이 생기면 당연히 와야죠.”
강이솔이 가장 먼저 다가오며 사과를 건네고, 나는 괜찮다며 그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청와대 앞엔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이 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반갑네, 어서 오게. 안에 회의실이 준비되어 있으니, 바로 들어가세.”
“네.”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짧은 인사를 나눈 나는 이내 청와대 안 대회의실로 안내되었고.
곧 태블릿 PC 한 대를 건네받았다.
태블릿 PC엔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는데, 그걸 본 나는 의문을 표하며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랬더니, 이전과 비슷한 사진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게 뭡니까?”
내가 사진을 보고도 이해를 못 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이솔이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울릉도와 제주도 사진입니다.”
그제야 나는 이상함을 알아챘다.
어째서인지 울릉도와 제주도에 길고 긴 대교(다리)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곳에 이리 거대한 대교가 있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
나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쉽게 이해했다.
“그러니까, 새로 생긴 이상 지형이 바로 이 대교들이란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추가로 사진 몇 장을 가리켰다.
“부산엔 대마도와 연결되는 대교가 생겼고, 대마도는 이키섬, 후쿠오카와 연결된 대교가 생겼습니다.”
“제주도는 완도와 연결되어 육로도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중국 상하이, 일본 나가사키와 연결되는 대교도 생겨났죠.”
“또한 서해의 백령도, 동해의 울릉도처럼 타국과 연결되지 않고 본토하고만 연결된 대교도 있으며.”
“진도, 완도, 거제도처럼 다리가 연결되어 있던 기존의 섬들도 더욱 튼튼하게 보강된 새로운 다리로 교체되었습니다.”
규모가 큰 섬과 육지, 국가와 국가를 잇는 다리들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이건 한국과 한국 주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본 규슈 지방부터 시작해 오키나와, 대만, 중국 푸저우까지 연결된 대교도 있고.”
“베링해를 관통해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를 잇는 대교도 생긴 데다가, 캐나다 동부와 영국을 잇는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대교도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뿐만 아니라 대륙과 대륙을 잇는 대교 또한 등장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잇는 다리라니, 족히 수천 km 단위의 다리가 생겼다는 건데, 이는 기존의 과학을 우습게 만드는 괴이한 시설이었다.
“지구의 모든 국가가 육로로 연결되었단 겁니까?”
“아직 완벽히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이런 시설이 왜 갑자기 생겼을까?
그동안 바다 건너는 걸 매우 어렵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친절하게 다리를 놓아 주다니…….
나는 오래지 않아 한 가지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었다.
“시기상 시나리오 전쟁을 위한 걸로 보이는군요?”
“현재로선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리가 연결되면 국가 간 전쟁에서 원정이 한결 쉬워질 테니까요.”
이런 내 추측에 강이솔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국가와 국가의 수월한 전쟁을 위해 다리를 세웠다고 생각하니, 사진 속 다리들의 멋들어진 풍경이 악의로 보였다.
“군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해당 다리에 접근하면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다고 하네.”
곧이어 대통령이 강이솔의 이야기를 받아 새로운 정보를 알려 주었다.
[해당 시설은 파괴 불가 시설입니다.]
[다리 위 포함, 주변 3km 이내에 건축 및 안전 구역, 웨이포인트 설치가 불가능합니다.]
[다리 위에서도 몬스터가 등장하며, 수중 및 공중 몬스터가 다리에 침범할 수도 있습니다.]
[길이가 100km를 넘는 장거리 대교의 경우 중간중간 웨이포인트와 안전 구역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다리 주변에 건축이 불가능하다?
침입 경로가 되는 대교 앞에 방어 시설을 못 짓는단 뜻이다.
이는 원정군 측의 침입을 쉽게 만들어 전쟁을 부추기기 위한 규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거 괜히 우리나라 뒤치기를 생각하는 멍청이가 등장하는 거 아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건 몰라도 시스템이 전쟁에 진심인 건 알겠다.
“그럼 타국과 연결된 다리 주변에 거점을 만들어 두기로 하죠.”
“하지만 3km 이내엔 건축이 불가능하다고…….”
“3km 밖에라도 거점을 만들어야죠. 그리고 수시로 다리 쪽으로 순찰을 가는 게 최선으로 보입니다.”
일본과 중국 2개국과 연결된 제주도는 한국의 주요 거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은 같은 사냥꾼 협회 소속이고 중국은 동맹이지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둘째 치고 왠지 중국은 언제든 틈이 보이면 배신할 것 같은 느낌이니까.
심지어 중국은 동맹 세력인 신 상하이방이 정권을 쥐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세력이 난립하고 있어서 배신 외에도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우린 상황이 나쁘지 않아. 일단은 주변이 전부 우호 세력으로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세계 지도를 보면 몇몇 지역의 큰 혼란이 예상되었다.
‘예를 들면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와 유럽+아프리카 지역 말이지.’
그중에서도 유럽과 아프리카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둘 사이를 가로막던 지중해에 수많은 다리가 생기면서 영혼의 맞다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과 달리, 아프리카 북부의 국가들은 중동처럼 우리와의 동맹을 거부한지라 더욱 뒤통수가 싸할 수밖에 없었다.
‘두 지역이 치고받게 된다면 나는 동맹의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어.’
갑자기 나타난 이상 지형 ‘대교(다리)’의 덕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러나 나는 머지않아 잡생각을 치워야 했다.
아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만큼, 미리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왠지 주요 용건이 남은 느낌인데요?”
그리고 왜일까?
안절부절못한 두 사람의 모습에서 뭔가 중요한 보고가 남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 곳곳에 생긴 대교들은 분명 큰 이슈임이 분명하지만, 급하게 부른 것 치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었으니.’
그래서 혹시나란 생각으로 물은 건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였다.
“죄송하지만 협회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진중한 표정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통령과 강이솔.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본론을 꺼내라 했고, 강이솔이 대표로 답했다.
“전 세계를 잇는 대교의 등장과 함께 고렙 던전들이 대거 생겨났습니다.”
“그래요?”
“네, 신규 던전은 대부분 레벨이 100을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레벨의 사냥터가 많아지는 건 반길 일이다.
나만 해도 레벨이 100을 넘긴 후부턴 사냥터 발굴에 어려움을 겪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레벨 100이 넘으면 하늘섬 세일론이나, 마경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루트지만, 그 두 곳은 딱 100렙을 달성하고 바로 가기엔 다소 위험하지.’
때문에 레벨 100 이상 던전의 등장 소식에 관심이 갔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이 말을 꺼낸다는 건, 그 고렙 던전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애석하게도 여러 사냥팀이 그 신규 던전에 휩쓸린 것으로 보입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대부분 귀환 스크롤을 가지고 있지 못한 30레벨 이하의 초보들이죠”
“허…….”
귀환 스크롤은 이벤트 점수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벤트 점수 상점 아이템은 고레벨 사냥꾼들 혹은 뒷배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이 없다.
이벤트에 참여한 사냥꾼 수천만 명 중 8할은 단 1점도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주요 사냥팀을 소집해 구조 활동을 실시하고 있지만, 손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그래도 강이솔의 빠른 일 처리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국도 난리겠군요?”
“맞습니다. 전 세계가 난리인 상황이죠.”
돕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의 구조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으니까.
타국을 돕는 건 국내 문제가 해결되고 난 다음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구조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탐색 구역을 공유해 주세요.”
“여깄습니다.”
그리고 강이솔은 붉은 점을 찍어 둔 지도 한 장을 건네 왔다.
그 지도를 받아 든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전부?”
“정말이지, 면목 없습니다.”
그 지도에만 무려 20개가 넘는 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추가로 더 늘어날 경우 통신 반지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심지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여기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단 사실에 턱을 짚으며, ‘음’ 소리를 내야 했다.
* * *
빠른 탐색을 위해선 조사팀을 늘려야 한다.
때문에 나는 마계에서 나인포의 부하 일부를 불러들이고, 우리 파티도 쪼개서 새로운 탐색팀 6개를 만들었다.
-서백호 팀(헬레나)
-윌리아 팀(다켈프, 와이번)
-시에나 팀(멍멍이, 와일번, 룡룡이)
-마족 NPC 3개 팀(나인포 부하 3명씩)
완벽하다고 할 수 없는 전력 분산이지만, 다행히 사람들을 잡아간 던전의 레벨이 150 이하가 대부분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우리의 목적은 던전 공략이 아닌, 탐색입니다. 굳이 던전 내 모든 몬스터와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몬스터가 끈질기게 달라붙거나 싸워서 돌파하는 게 더 빠를 것이라 판단되는 경우는 당연히 싸워야겠지만요.”
“네, 알겠습니다.”
“오케이!”
나는 파티원과 부하들로 이뤄진 6개 팀에 담당 구역을 정해 주며, 탐색을 개시했고.
덕분에 매우 빠른 속도로 구조 활동이 진행되었다.
[헬하운드 / 레벨: 120]
[케르베로스 / 레벨: 140]
그리고 하늘이 도운 건지.
“백호 님! 저기요!”
나와 팀을 이룬 헬레나가 가리킨 손끝에 구조 대상들이 무사히 생존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저히 살아남기 힘들어 보기는 극한의 던전 속에서도 구조 대상들은 용케 몬스터들을 피해 다니며, 안전 텐트나 던전의 지형 등을 이용해 숨어 있었다.
“어어!? 혀, 협회장님!”
“여기예요! 여기!”
“사, 살았어!”
나는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달려가며 그들의 안전을 위해 주변 몬스터를 도륙했다.
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없는 레벨 100대의 몬스터들이었으나, 레벨 200대 몬스터와의 싸움이 당연해진 내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고, 거의 무슨 잡몹 마냥 도륙했다.
“모두 잘 버텨 주었습니다. 여기 귀환 스크롤입니다. 이걸 이용해 바로 복귀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일단 5명으로 이뤄진 생존자들을 구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해당 던전에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냥꾼의 수가 무려 51명에 달했으니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던전 1층 탐색했고, 추가로 29명을 더 구했지만.
“이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는 사망자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은 죽게 되면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사망자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인벤토리에 수습했다.
그렇게 다층으로 이뤄진 던전을 1층만 둘러보는 식으로 탐색을 끝낸 나는 바로 다음 던전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1시간 만에 4개의 던전을 돌 수 있었다.
고렙존이라며 등장한 던전임에도 내가 1개 층을 탐색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조자 92명, 시신 51구 수습.’
상상 이상의 생존율에 나는 안도를 하면서도 사망자들의 보면 씁쓸함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시스템 새끼.’
새로운 지형 및 사냥터를 추가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굳이 이렇게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녀석의 입장에선 인간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한 행동일진 몰라도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에선 기분이 더러웠다.
“다녀왔습니다.”
“나도 끝. 어휴, 빨빨거리고 다녔더니 힘들다.”
“복귀했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탐색이 시작되고 1시간 30분 정도가 흘러, 대한민국 내 긴급 상황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외부로 돌려야 했다.
아직 다른 나라들은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을 테니까.
[협회장님!]
마침 강이솔이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그가 물어 온 새로운 일거리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본 지부장 다나카가 속한 파티가 도쿄 아키하바라에 발생한 던전에서 구조 활동 벌이던 도중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통신 반지를 통한 연락도 먹통이고요!]
일본 지부장 다나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검은색 옷을 좋아하고, 항상 쌍검을 등 뒤에 X자로 교차하고 다니며, 파티의 서브 리더를 본명이 아닌 아스나라고 부르는 이상한 다나카지만…….
그는 레벨 120대로 우리 사냥꾼 협회 내에서도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