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05화 (205/273)

205화 일본 지부장 다나카 (2)

갑작스러운 고등 던전의 대규모 출현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휩쓸리고 말았다.

한 번이라도 클리어된 던전은 겉으로 입구가 드러나며 이용하고 싶을 때만 들어가면 되는 사냥터가 되지만.

클리어되지 않은 던전은 위치가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근처에 다가온 인간들을 잡아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대재앙 초기, 던전의 이런 특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빼앗겼다.

그러니 클리어되지 않은 던전은 함정 취급을 받는 것이고, 예고 없이 신규 던전이 대거 등장해 버리니 사람들이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귀환 스크롤을 보유하고 있다면 던전에 빠지더라도 쉽게 탈출할 수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이 세상엔 귀환 스크롤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월등히 많았다.

때문에 각국의 주요 사냥꾼들이 던전에 휩쓸린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 했다.

일본 제일의 사냥꾼인 다나카도 동료들과 함께 구조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런 다나카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귀환 스크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통신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탈출 불가, 통신 불가 옵션이 붙어 있는 말도 안 되는 던전이 존재했던 것.

다나카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동료들과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이 상황에 특별한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별수 없어. 정공법을 선택하는 수밖에…….”

다나카에게 섬광 혹은 아스나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은 파티의 서브 리더 아카리의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정공법이란, 던전을 탈출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의미한다.

첫 번째 방법은 던전마다 정해져 있는 타임 어택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

던전은 입장하면 제한 시간 이내에 클리어해야 한다.

이 시간이 모두 지나가 버리면 자동으로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오히려 이 규칙을 이용해 탈출하는 것이다.

[던전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 125시 38분]

하지만 이 지독한 던전은 타임 어택으로 주어진 시간마저 정상적이지 않았다.

5일 이상은 버텨야 나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고로 아카리가 말한 정공법은 시간 끌기 외에 다른 방법을 의미했다.

그건 바로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숨겨진 출구를 찾는 것이다.

“가자, 섬광.”

“이 새낀 이 상황에서도 컨셉을 못 버리네.”

“그것이 내 아이덴티티니까.”

-척척.

일반적으로 던전을 깰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안전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타임 어택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게 생존율이 높지만.

다나카 일행은 일본 최고의 사냥팀.

무리 없이 탐색을 이어 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입장 1시간이 경과하여 지형이 바뀝니다.]

이 던전의 지랄 맞음은 끝이 없었다.

미탐색 던전인 만큼 얼마나 넓을지, 얼마나 깊을지 알 수 없지만, 이 던전은 알아도 소용없다는 듯 수시로 지형을 바꾸는 미궁형 던전이었다.

[생물형 마리오네트 / 레벨: 130]

[저주의 키메라 / 레벨: 130]

심지어 탐색을 진행할수록 레벨 100으로 시작한 몬스터의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더니, 전투형 몬스터와 디버프형 몬스터가 세트로 등장하기까지 해 난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폭발 키메라 / 레벨: 50]

-콰아아앙!

곳곳에서 자폭형 몬스터가 등장하니, 아무리 일본 제일 사냥팀이라 하더라도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큭!”

“다나카!”

폭발 키메라는 일격에 처치할 수 있는 몬스터였지만, 그 크기가 주먹만 해서 혼전 상황에서 일일이 처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이놈들은 악질이어서 강한 상대가 아닌, 약한 상대를 노리니, 구조 대상인 초급 사냥꾼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린 다나카가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광인의 연구소]

“던전의 이름만큼이나 미친 곳이군…….”

동료들의 보호 속에 최상급 회복약을 이용해 부상을 치료한 그는 이를 악물며 다시금 위험한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스타 버스트……. 스트륌!”

그리고 그는 미친 듯이 검강이 깃든 쌍검을 휘두르며 근접 스킬을 난사해 몬스터들을 난도질했다.

다소 컨셉이 과하긴 하지만, 그는 서백호도 인정한 뛰어난 센스와 실력의 소유자.

그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극명했다.

“후우, 후우…….”

숨이 찰 정도로 쉼 없이 검을 휘두르던 다나카는 온몸으로 열기를 내뿜으며, 검을 수습했다.

그런 그의 앞엔 레벨 130대의 몬스터들이 쓰러져 푸른빛으로 변해 증발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컨셉만큼이나 화려한 그의 전투를 넋 놓고 바라보던 구조 대상인 초보 사냥꾼들은 중요 전력인 다나카가 자신들을 보호하다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연신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이게 어떻게 여러분 잘못입니까? 여러분도 피해자일 뿐입니다. 인간을 가지고 노는 시스템이 문제인 거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다, 다나카 님…….”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 다나카의 모습에 초보 사냥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의 위기를 넘겼음에도 웃음을 보이는 이런 모습 덕에 다나카는 일본 내에서 신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에 영혼을 판 매국노’니, ‘오타쿠’라며 손가락질을 당하긴 하지만, 그의 견고한 입지를 흔들 정돈 아니었다.

초보 사냥꾼들을 진정시킨 다나카는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야.”

그리고 그는 언제 웃었냐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멋들어지게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좋을 게 없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문제인 점이, 던전 1층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있음에도, 공략의 난도가 꾸준히 어려워지기만 한다는 거였다.

“잘하면 안전 텐트를 치고 한자리에서 5일 동안 버텨야 할지도 모르겠어. 운이 좋으면 그전에 구조가 올 수도 있겠지.”

이들이 행방불명되었단 게 알려지면 서울에서 직접 나설 확률이 매우 높다.

이곳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한들, 서백호가 움직인다면 사태는 해결될 가능성이 클 터.

그에 다나카는 창피함을 느껴야 했다.

“구조 활동을 하다가, 도리어 구조를 당하게 생겼네.”

하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자신들이 위기에 빠지면 구하러 와 줄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다나카가 매국노라 욕을 먹으면서도 사냥꾼 협회의 일본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움직이는 거였다.

그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최선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여기는 다나카였다.

“어떻게 할래?”

“텐트 치자.”

아카리의 물음에 다나카는 일단 안전 텐트의 설치를 지시했다.

안전 텐트는 구하기가 매우 힘든 아이템이지만, 레벨 100 넘는 파티라면 보유하고 있는 게 당연했다.

[안전 텐트 설치가 불가능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은 또다시 배신당했다.

“이런 빌어먹을 던전 같으니!”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최악의 던전.

안전 텐트를 설치하면 반경 5m까진 안전 구역으로 변하는 만큼, 안심하며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모두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다나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던전은 사람의 성장보다 오로지 죽이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곳이라고.

“이 자린 위험하니까. 일단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곳에 있으면, 아까 전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과 같은 전투가 계속될 터이다.

때문에 동료들은 지형이 바뀌기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걸 추천했고, 다나카는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생물형 마리오네트 / 레벨: 130]

[저주의 키메라 / 레벨: 130]

[폭발 키메라 / 레벨: 50]

하지만 이 괴랄한 던전의 특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방금 지나온 길을 되돌아왔음에도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와, 왔던 길로 되돌아온 건데……. 어째서?”

몬스터를 사냥할수록 장소와 관계없이 수준이 높아지는 건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몬스터의 수준이 오르는 건지 정확하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자력 탈출 가능성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것이고.

더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이 위험한 장소에서 언제 올지 모를 구조를 기다리며 싸워야만 했다.

“협회장님…….”

꼼짝없이 갇히게 된 다나카는 서백호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 * *

도쿄에는 총 두 곳의 생존 구역이 존재한다.

하나는 도쿄 하네다 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옛 에도성 부지이자 현 일본 왕의 거처로 알려진 고쿄이다.

다나카는 본래 오사카 세력이지만, 고쿄에서 주로 생활을 했는데.

그 이유는 심플하다.

고쿄가 아키하바라 근처에 위치해 있기 때문.

오타쿠인 다나카에게 아키하바라는 수많은 보물이 숨겨진 성지였다.

-지그시.

나는 무심코 발밑에 걸리는 책을 집어 들었다가 그것이 야한 만화책임을 깨닫고는 흠칫 놀랐다.

당연히 그 만화책은 옆에 있던 윌리아에 의해 저 멀리 날아가 버렸지만, 덕분에 나는 다나카가 왜 이곳을 아끼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과연 보물이 많이 숨겨진 곳이군.’

이런 내 인정과 관계없이 윌리아는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백호 씨에겐 이런 가짜보단 진짜가 앞에 있잖아요?”

이거 나 유혹하는 거 맞지?

그윽한 미소를 짓는 윌리아의 모습에 나중에 이곳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코스프레 샵에 들러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윌리아에게 어울릴 코스프레를 찾기 위해.

“지랄들 한다.”

“동감합니다.”

당연하지만, 이런 우리의 모습에 시에나가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옆에서 헬레나가 슬쩍 그녀의 편을 들어 주었다.

“저곳입니다.”

잠시 후, 우린 일본 지부 사냥꾼의 안내를 받아 어느 장소에 도착했다.

[광인의 연구소]

그리고 탐색 스킬에 클리어되지 않는 숨겨진 던전이 포착되었다.

“부디, 지부장님을 구해 주십시오.”

“맡겨 주세요.”

마족 NPC와 다켈프 등의 펫들은 윤시아를 비롯한 다른 사냥팀의 해외 원정을 지원하기로 하고, 일본을 찾은 건 나와 윌리아, 시에나, 헬레나 넷이다.

거의 온전한 파티 전력을 이끌고 일본을 찾은 이유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나카는 웃기긴 하지만, 실력은 진짜다.

그런데 그가 도망치지도 못하고 갇힌 장소라면 일반적이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전력을 다하기 위해 신중하게 장비와 동료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준비 됐습니까?”

“네.”

이어서 우린 던전에 입장을 했고.

곧 이곳이 얼마나 지랄 맞은 곳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제약이 진짜 많은 곳이네.”

“던전의 존재 자체가 악의로 느껴져.”

편의를 위한 시스템은 무엇하나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싸움만 하게끔 만든 던전.

그게 이 ‘광인의 연구소’란 곳이었다.

던전 입장 초반은 난도가 크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상대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이런 식이면 보스 앞에 도착할 때즘엔 몬스터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될지 예상이 안 되네? 설마 이 던전, 레벨 200대에 근접한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동료들은 그럴지도 모른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다나카랑 애들 찾을 수 있겠어? 지금 상대하는 몬스터 수준이면 녀석들은 죽고도 남았겠는데?”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몬스터의 레벨은 170대.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도 다나카 일행을 만나지 못했다.

만약 시에나의 말대로 그들이 죽고 만 거라면, 시체라도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린 다나카 일행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 던전이 우리가 그들과 만나지 못하게 나눠 놓기라도 한 걸까?

“이 던전에선 일반적인 방식으로 탐색을 이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결국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어쩌게?”

시에나의 물음에 나는 성검을 빼들며 답했다.

“이곳이 정상과 거리가 먼 곳이라면, 우리도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의문을 표하는 동료들을 보며, 나는 싱긋 웃으며 성검에 마력을 있는 대로 때려 박았다.

5강까지 풀강화 된 성검.

강화 효과로 인해 내장 스킬은 위력이 5배나 상승한 상태다.

곧이어 나는 제 자리에서 날아오르며 성검을 천장 면에 가져다 댔고.

-콰콰콰콰쾅!

이내 성검 방출을 난사했다.

그러자 푸른빛의 굵직한 광선포가 던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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