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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08화 (208/273)

208화 보물찾기 (2)

굳이 눈앞에 자리한 이들의 사상이나 종교를 따질 필요는 없다.

지금 명심해 두어야 할 건 이들이 나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으며, 그 적대감 속엔 살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쉽게 말해 ‘적’이란 글자 단 하나로 표현되는 관계란 뜻이다.

-콰직! 빠각!

-끄악! 커억!

나는 적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마음씨가 좋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때문에 사방에서 덮쳐 오는 괴한들을 향해 오히려 거리낌 없이 몸을 날리며 손에 닿는 모든 걸 비틀어 부러뜨리고, 때려서 부숴 버렸다.

‘레벨이 꽤 높네?’

그런데 의외인 건 이 인간들이 괜히 나를 공격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레벨들이 상당하단 거다.

손으로 적을 붙들었을 때 느껴지는 저항력이나, 타격 시 피부를 타고 전해져 오는 신체의 내구성 등이 평범한 수준을 가볍게 넘어섰다.

사냥꾼 협회에 데려다 놓아도 상급 간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레벨의 사냥꾼들을 이런 식으로 쓴다고?’

버리는 패나 다름없는 사용법에 절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레벨만 높은 게 아니라, 강한 상대와의 싸움도 익숙해 보였다.

금속 와이어를 던지기도 하고, 미리 설치해 놓은 트랩으로 유도하기도 했으며, 저주, 커즈를 사용하는 등, 현재 사용 가능한 수단 내에서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둘러싸! 동시에 달려들어서 붙들고 늘어져!”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를 공격한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들이 까다로운 상대인 건 분명했지만,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함정을 간단히 파훼할 뿐만 아니라, 한 명을 처치하는 데 드는 수고는 단 한 방.

두 번 이상 손을 쓰는 경우 드물 정도였다.

‘꺼림칙한 놈들.’

그럼에도 놀라운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압도적인 전투력 차이에 겁을 먹고 주춤할 법한 상황 속에서도 이들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담담하다는 거였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길래 저러는 걸까?

“무슨 일이야?”

“어? 저 사람은?”

30명에 육박하던 놈들의 전력 중 7할을 쓰러뜨렸을 때.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젠장!’

내게서 한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일반인들의 난입은 상황을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갈 절호의 기회였다.

-파앗!

광신도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일반인들에게 몸을 날리자 나는 다급히 외쳤다.

“피하세요!”

“으악!”

“뭐, 뭐야 이 새끼들!”

하지만 흉흉한 기세를 뿌리는 복면인들의 기습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했고, 나는 즉시 이능의 날개를 펼쳐야 했다.

그리고 소닉 붐을 일으키며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비행으로 구조에 늦을 것 같을 땐, 블링크를 사용해 최대 스피드로 놈들을 주살했다.

“후우…….”

전력에 전력을 다하니, 적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고.

그런 적들의 예고 없는 공격에 당황하던 사람들이 나를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컥!”

그러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낸 것은 아니었으니.

어느 동양인 여성이 한 놈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기고 말았다.

‘무슨 개도 아니고.’

그나마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부상이야 얼마든지 회복시켜 줄 수 있으니까.

나는 여성의 목덜미를 거칠게 물어뜯은 놈의 목을 비틀어 던지고는 급히 최상급 회복 물약을 사용했다.

“가, 감사합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얼떨떨해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줬다.

동양인 여성은 죽다 살아난 덕인지 내게 어떻게 감사를 전할지 모르겠단 반응을 보였으나, 용건이 끝났다고 판단한 나는 등을 돌려 작은 숲속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신을 시야에 담았다.

그러다가 단 한 명.

목이 부러졌음에도 아직 죽지 않고 꿈틀대고 있는 적을 찾아 그에게 다가갔다.

“나로는 안 되니, 주변을 공격해 죄책감을 심어 주려 했던 건가?”

내 물음에 복면이 뒤집혀 입가가 드러난 놈이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네놈 같은 이교도가 주무르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지.”

“…….”

“전사들의 희생으로 인해 네놈과 우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도 마음 편히 발 뻗고 잘 수 없을 터. 네놈과 네놈의 가족들은 영원히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할 것이다.”

설마 이 모든 게 앞으로의 적대 행동을 위한 명분 쌓기였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자기 할 말만 하며 이죽거리는 놈의 모습에 말을 잃어야 했다.

-풋!

“어처구니없네.”

하지만 이내 놈이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오히려 엄포에도 유들유들 웃어 보이며 놈의 머리에 발을 얹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렇게 말하면 너희를 무서워할 거라 생각했냐?”

이어서 나는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놈은 표정이 일그러지고.

“너희 의지는 잘 알았다. 그럼 나도 앞으로는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겠네.”

“잠…….”

-빠각!

그리고 놈이 뭐라 대답을 하기 전에 끝을 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시절에도 거리낌 없이 시비를 걸던 게 저들이니, 상식으로 다가가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이 어려운 세상에서 인간끼리의 분쟁을 만들어야 하나?’

혹시 테러를 비롯해, 더럽게 싸우는 놈들의 협박에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분명 놈들은 내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 못할 경우, 거리낌 없이 내 주변을 건드리겠지만…….

굳이 이쪽에서 놈들의 공격을 대비하며 기다려 줄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이번 이벤트가 끝나면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행 좀 다녀와야겠네.’

바라는 게 분쟁이라면 들어줄 생각이다.

단지 놈들의 바람과 달리, 분쟁은 우리 쪽이 아닌 놈들의 고향에서 진행되겠지만.

* * *

기습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져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나는 잠시 그들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바로 이벤트에 집중하기 위해서.

놈들에게 정신이 팔려 마지막 이벤트를 날리는 건 너무 큰 손해 아니겠는가.

“백호 님!”

나는 다시금 전력으로 보물찾기를 이어 갔고, 그러다가 윌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재회였다.

하지만 나와 윌리아는 둘 다 마력 소모 없는 고속 비행이 가능한지라 오히려 함께 다니면 손해다.

그냥 각자 흩어져 더 넓은 면적을 조사해 보물을 찾는 게 이득이지.

“왠지 저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지 않나요?”

“그러게요.”

하지만, 우린 동행을 이어 가기로 했다.

이유는 이벤트 필드에서 매우 특별한 지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치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구름 위까지 솟구친 거대한 식물의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 위엔 더욱 특별한 보물이 있지 않을까?’

자연히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이런 게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우리의 계획을 시에나에게 알렸다.

[윌리아 님과 합류했어요. 구름 위까지 솟아오른 거대 식물 줄기를 발견했는데, 그걸 타고 올라가 보려고요.]

이정표로 삼을 곳이 생겼으니, 시에나에게 연락한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시에나의 반응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난 이미 올라가는 중인데?]

이미 본인은 이걸 발견했음에도 아무 말도 없이 먼저 올라가고 있던 것.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겠지만, 나와 윌리아는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우리도 올라가 보죠. 속도를 높이면 시에나 님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시에나는 그냥 버려도 되는데요.”

“하하…….”

그리고 우리 역시 시에나의 뒤를 이어 거대한 식물 줄기를 따라 하늘을 날았다.

우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식물을 오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식물의 줄기는 나선형으로 감싼 덩굴 덕에 걷거나 뛰어서 올라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마력 소모 없이 비행이 가능한 우린 직선으로 빠르게 비상했고, 곧 줄기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오…….”

이어서 눈에 들어온 것은 광활한 상공에 드넓게 깔린 구름과 그 위에 자리한 붉은 태양이었다.

“어이! 서백호!”

더불어 그곳에서 익숙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구름을 밟고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시에나였다.

구름 위를 걷는 엘프라니.

저 엘프가 괴팍한 성격을 갖고 있단 걸 모른다면 그저 신비롭고 동화스럽다 느낄 풍경이었다.

-퐁.

나와 윌리아는 시에나를 따라 구름 위에 발을 디뎠고.

“으악!”

윌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그 위에 섰으나, 나는 디딜 곳이 없어 추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제때 이능의 날개를 펴셔 변을 당하진 않았지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착한 사람들만 구름 위를 걸을 수 있어. 나 말고도 윌리아까지 걸을 줄은 몰랐지만.”

시에나의 말에 나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구름 위에 서 있는 게 그 증거다.

나는 다른 위치의 구름에 발을 얹었고, 이내 아무 문제 없이 다리로 딛고 설 수 있었다.

“조심히 걸어야겠네요.”

바닥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쉬이 분간되지 않으니, 조심해야 하는 장소였다.

나는 불만스레 혀를 차는 시에나를 뒤로하고 다시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방치되어 있는 쿠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짚으니…….

[5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5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기본 획득 점수가 지상이 3점이었던 것에 비해 5점으로 크게 증가했고.

[축하드립니다. 50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00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당첨 복권의 획득률도 훨씬 높은 것 같았다.

“오오! 역시 위로 올라온 게 정답이었네요!”

덕분에 나는 한껏 흥분해서 그리 말했고, 윌리아와 시에나도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슬쩍 남은 이벤트 시간을 보았다.

[이벤트 종료까지 19분 32초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3분의 1 정도의 시간이 남았음을 확인한 우린 신나게 탐색을 이어 갔다.

처음엔 운빨 이벤트라고 불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우리를 위한 이벤트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시스템이란 녀석은 그리 친절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란 걸.

[이벤트 종료까지 10분 남았습니다. 현 시간부로 이벤트 대상자들이 획득한 쿠폰을 강탈하는 도둑이 등장합니다.]

[남은 이벤트 시간 동안 도둑에게서 도망치십시오.]

[자칫 도둑에게 모든 쿠폰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하늘 곳곳에 암갈색의 게이트가 열리면서 새까만 날개를 가진 흉악한 생김새의 악마들이 등장했다.

“쿠폰만이 아니라 목숨도 빼앗아 가게 생겼는데?”

단순히 ‘도둑’이라 칭해지기엔 다소 위협적인 외형.

특히 그들이 하나같이 들고 있는 사신의 낫은 면도날과 같은 예리함을 품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무기를 뽑아 보려 했지만…….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무기 및 공격 스킬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이쪽의 공격 수단은 여전히 막혀 있었다.

“하, 참…….”

우리야 도망치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날개를 가진 저놈들에게서 도망치기란 쉽지 않은 일로 보였다.

심지어 쪽수마저 많았으니 말이다.

“어쩐지 보상 획득이 쉽다고 했어.”

아무래도 이번 이벤트는 획득한 보상(목숨 포함)을 지키는 게 진짜 룰인 것 같았다.

[이벤트 도둑 / 레벨: 180]

그런데 놈들의 정보를 살핀 나는 문뜩 한 가지 의문을 표해야 했다.

‘저놈들을 쓰러뜨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물론, 무기 없이 맨손으로 뚜까 패기엔 쉽지 않겠지만…….

윌리아와 시에나의 백업을 받으면 마냥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밑에서 짱돌을 주워 오길 잘했군.”

그리고 그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쿠폰을 찾고 있던 시에나가 쏜살같이 날아오며 말했다.

무기인 활을 봉인 당한 그녀는 투석꾼이 되기로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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