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보물찾기 (3)
김민희는 대한민국 사냥꾼 협회 소속 간부이자, 서백호의 부모님이 생활 중인 가의도의 주민이다.
더불어 대재앙 초기부터 서백호에게 사냥 노하우를 전수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김민희가 ‘협회장의 제자’란 호칭보다 최근 더 자주 불리고 있는 호칭이 있다.
그건 바로 ‘5대 사냥팀의 리더’이다.
놀랍게도 5대 사냥팀이라는 건 국내가 아닌 세계를 기준으로 한 평가이며, 대재앙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섬마을 시골 여성이었던 그녀는 이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로 유명했다.
“개끈질기네! 좀 꺼져!”
하지만 김민희는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진 세계 5대 사냥팀의 리더라는 타이틀이 허울뿐인 명예란 것을…….
실제로 그녀는 지금 이벤트 도중 등장한 몬스터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벤트 도둑 / 레벨: 180]
물론, 이벤트 몬스터와 김민희의 레벨 차이가 너무 컸다.
심지어 거대 낫을 휘두르며 공격 스킬을 뿌리는 저 몬스터와 달리 그녀는 무기와 공격 스킬도 봉인 당한 상태고.
그러나 몬스터를 뿌리치지 못한 채 꽁지 불붙은 강아지마냥 도망만 치는 현실은 그녀에게 큰 무력감을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필사적으로 이벤트 몬스터에게서 도망을 다녔을까?
“어? 선생님?”
김민희의 눈에 자신의 스승인 서백호와 그의 파티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당황하며 다급히 외쳤다.
“선생님 피하세요! 위험해요!”
김민희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오는 이벤트 몬스터가 너무도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다.
“시에나 님.”
“오케이!”
서백호의 호명에 시에나가 대뜸 까만 무언가를 김민희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높은 능력치 때문인지, 덕지덕지 두르고 있을 원거리 공격 관련 옵션과 패시브 스킬 때문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간 투사체에 ‘퍽’ 소리와 함께 흉악하게 생긴 악마형 몬스터의 고개가 꺾이고, 바닥에 주먹만 한 짱돌이 떨어졌다.
시에나가 던진 게 뒤늦게 돌임을 알게 된 김민희는 오히려 몬스터의 화를 돋우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했으나.
“읏챠!”
-콰아앙!
이어지는 서백호의 행동에 비하면 오히려 놀랄 일이 아니었다.
시에나의 돌팔매질과 동시에 서백호가 블링크로 접근하며, 대뜸 이벤트 몬스터의 팔을 낚아채 바닥에 매친 것이다.
“허어…….”
그리고 다음으로는 미친 듯한 파운딩이 이어졌다.
양팔을 무릎으로 눌러 움직임을 봉인한 몬스터의 흉악스러운 얼굴을 서백호는 무차별적으로 내리쳤다.
경이로운 신체 능력 덕분에 기관총처럼 매섭게 내리꽂히는 주먹질 한 방 한 방에 지면이 요란하게 울렸다.
-콰앙! 콰앙! 콰아앙!
김민희는 무려 레벨 180의 이벤트 몬스터를 맨손으로 두들겨 패는 서백호를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몬스터가 불쌍해 보일 지경.
-키에에엑!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맨손으로 싸워야 하는 서백호와 달리 몬스터는 공격 스킬과 무기의 사용이 가능하단 것이다.
염력인지, 어검술의 일종인지, 저만치 날아가 있던 몬스터의 거대 낫이 자아를 가진 듯 스스로 날아 서백호를 공격했다.
-콰앙! 쾅! 쾅!
그러나 몬스터의 공격은 뒤에 대기하고 있던 윌리아의 방어 스킬에 의해 모조리 막혀 버렸다.
공격 스킬을 쓰지 못할 뿐 방어 스킬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사이 몬스터는 계속해서 서백호에게 얻어맞았고, 이미 몬스터의 얼굴은 제 형태를 잃은 지 오래였다.
-키에에엑!
이후 녀석은 날개를 펼치며 탈출을 감행했지만, 서백호가 유연하게 등 뒤로 돌아가 백초크와 함께 목을 비틀자…….
-빠각!
끝내 섬뜩한 소음이 울려 퍼지며 몬스터의 양손이 축 늘어졌다.
‘지, 지금 레벨 180의 몬스터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거야?’
놀라움이 너무 크니 오히려 황당함이 밀려 왔다.
서백호는 세계에서도 경쟁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존재.
때문에 세계 5대 사냥팀을 뽑을 때도 그의 팀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격하니, 서백호의 취급은 ‘규격 외’로 치부하는 게 옳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오! 황금 쿠폰 나왔어!”
“대박! 역시 이 몬스터들은 보너스였어!”
주변에 몬스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절규가 이어지는 와중에 서백호 파티는 보상을 보며 좋아라 했다.
아마 레벨 180의 날개 달린 악마형 몬스터를 보너스로 여기는 사람은 이들뿐일 것이다.
‘역시 난 아직 멀었어.’
서백호는 제자에게 꾸준히 동기 부여를 주는 참스승이었다.
* * *
레벨 180의 이벤트 도둑이란 몬스터를 사냥하면 때깔부터 범상치 않은 황금 쿠폰을 준다.
이 황금 쿠폰에선 특수한 보상이 랜덤으로 나오는데, 내가 확인한 보상의 종류는 아래와 같다.
[시설 뽑기권]
-정수 및 하수 처리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과 공격 및 방어 시설 등을 획득할 수 있다.
시설은 손쉽게 설치할 수 있으며,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무인 설비이다.
[탈것 뽑기권]
-육상, 비행, 수상, 수중 등 다양한 환경에 맞춤화된 탈것이 존재하며,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송용 탈것 또한 뽑을 수 있다.
[펫 격상권]
-일반 몬스터 베이스인 펫을 네임드 몬스터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강화 성공률 향상권]
-강화 시 성공률을 50% 향상한다.
[2,000점 교환권]
위 5종류가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황금 쿠폰의 보상이다.
2천 점 교환권은 일종의 꽝과 같은 느낌이지만, 나머지는 매우 좋아 보였다.
물론, 시설 뽑기권과 탈것 뽑기권은 써 봐야 알 것 같은데, 펫 격상권과 강화 성공률 향상권은 직접적으로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보상인 만큼 절로 군침이 흘렀다.
“앞으로 4분 남았어요! 우리 힘냅시다!”
때문에 우린 보이는 족족 이벤트 몬스터를 때려잡았고, 의도치 않게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구해 주었다.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그렇게 얼마나 몬스터들을 두들겨 팼을까?
머지않아 마지막 이벤트가 종료되었다.
“아, 아쉽네. 이벤트 몬스터가 더 빨리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시에나의 감상이었고, 나 역시 동의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우리 파티뿐이겠지만.
“헉헉! 죽는 줄 알았네!”
“진짜 마지막 10분은 끔찍한 시간이었다.”
“내 친구는 도망치다가 지쳐서 결국 이벤트 포기하고 귀환 스크롤 사용하고 말았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말이 이벤트 쿠폰을 강탈하는 도둑이지, 놈들에게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에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황금 쿠폰으로 얻은 보상을 정산하자며 다가왔다.
‘14마리밖에 못 잡았네. 역시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
아무래도 맨손으로 두들겨 패니, 사냥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 마리를 사냥하면 2~4개의 황금 쿠폰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은 황금 쿠폰은 총 48개.
얻은 보상은 이렇다.
-시설 뽑기권 10개
-탈것 뽑기권 7개
-펫 격상권 3개
-강화 성공률 향상권 11개
-2,000점 교환권 17개
역시 가장 많이 나온 건 꽝 포지션이나 다름없는 2천 점 교환권이다.
하지만 꽝이라고 해도 2천 점 교환권이 17개나 되니,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무려 34,000점에 해당하는 점수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니까.
마지막 이벤트여서 중요한 소비 아이템을 잔뜩 구비해 놓으려 했던 만큼 그리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시설 뽑기권과 탈것 뽑기권은 의외로 많이 나왔네.’
이쯤 되니 꽤나 궁금하다.
대체 얼마나 특별한 것을 주려는 건지.
‘강화 성공률 향상권도 11개나 나왔네.’
강화 성공률을 무려 50%나 올려 주는 아이템.
이걸 11개나 손에 넣었다는 건 그만큼 많은 5강 장비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의외로 펫 격상권의 획득률이 저조해. 이게 가장 귀한 건가?’
겨우 3개밖에 나오지 않은 펫 격상권.
덕분에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멍멍이와 다켈프에게 두 개를 쓰고, 나머지 한 개는…… 뚱이? 아니, 뚱이는 이제 내 펫이라기보다 김민희의 펫이나 마찬가지야. 그럼 역시 룡룡이에게 쓰는 게 나을까?’
뭐, 당장 급한 건 아니니,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다.
“막판에 얻은 보상이 상당한데?”
“그러게요. 덕분에 마지막 이벤트를 알차게 보낸 느낌이에요.”
시에나의 말에 나는 동의하며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획득한 쿠폰의 정산을 시작합니다.]
[이벤트 상점은 정산이 완료된 직후 사용이 가능하며, 24시간 동안 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우리의 보상 확인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황금 쿠폰은 우리가 획득한 수많은 쿠폰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보물찾기로 얻은 모든 쿠폰의 정산이 완료되었다.
-점수: 102,535(황금 쿠폰 포함)
-특수 축복의 가루 72개
-희귀~유일 아이템 뽑기권 41개
-희귀~유일 장비 뽑기권 17개
-최상급~극상급 스킬 뽑기권 15개
이건 우리 세 사람의 보상을 합친 것.
겨우 1시간 동안 얻은 보상임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는 양이었다.
점수도 10만을 넘기다니,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게다가 보상에 만족하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오오, 역시 마지막 이벤트란 건가? 지금까지 이벤트 중 제일 많은 보상을 얻었어.”
“나도!”
“쿠폰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특히 구름 위에서 얻은 보상이 컸지.”
주변에 있는 사냥꾼들도 대체로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에 몬스터가 등장하면서 다들 고생하긴 했지만, 그만큼 얻은 보상은 달콤했다.
[원래 있던 장소로 복귀합니다.]
곧이어 주변의 풍경이 이색적인 이벤트 장소에서 서울로 되돌아오고.
나를 비롯해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이벤트 상점창을 열었다.
“이벤트 상점을 이용하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다들 신중하게 구매하세요!”
이어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다들 진지하게 턱을 괴며 고민해야 했다.
* * *
이벤트가 끝나고, 각국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시나리오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선은 동맹을 통해 전쟁을 최소한으로 막는 것이지만…….
회수하지 못한 시나리오 조각이 시스템에 의해 적대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세력이 존재하는지라 평화롭게 사태를 해결하긴 쉽지 않아 보였다.
“애석하게도 한국으로 향하는 길목은 우리에게 막혀 있소. 결국 한국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기보다 한국의 동맹 국가들을 공격하는 게 유효하지 않을까 싶군.”
사냥꾼 협회에 특히 비협조적인 대표 세력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밀집되어 있는 상황.
이들은 자신들만의 회의 기구를 만들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 단체의 회의 내용은 무언가 이상했는데,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보다 한국과 사냥꾼 협회, 또는 그들의 동맹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고 보니, 불가리아가 사냥꾼 협회의 유럽 진출 교두보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군.”
“오오, 그런가?”
괴이해 보이는 이들의 사고는 의외로 심플했다.
현재 세상에 발생한 모든 일이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자신들은 따를 뿐이니, 특별히 시나리오의 시작을 경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보단 새로운 세상을 이교도가 멋대로 주무르는 걸 용납할 수 없어, 이교도를 향한 심판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대재앙을 겪으면서 이들의 종교는 더욱 자기중심적이고, 과격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럼 불가리아에 전사들을 투입시켜 우리의 의지를 보여 주도록 하죠.”
“좋은 생각입니다.”
“동의합니다.”
서로 뭉쳐도 모자랄 상황에 인간끼리의 분쟁을 계획하는 이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았다.
이대로 두고만 본다면 세계는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때.
-콰아아아아앙!
“뭐, 뭐야!?”
“폭발음!?”
고장 난 이들의 브레이크가 강제로 듣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보고드립니다!”
“무슨 일이야!?”
“그놈…… 사냥꾼 협회의 리더가 쳐들어왔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