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10화 (210/273)

210화 시나리오 자격 검증 (1)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가 불타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범이슬람 연합 회의’에 속한 국가의 주요 인사들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보게 된 것은…….

불바다로 변해 버린 다마스쿠스의 풍경과 거친 포효와 함께 화염을 내뿜는 거대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이 포효를 내지를 때마다 공포심에 절로 무릎이 떨려 왔다.

“이게 무슨?”

“자네! 분명 사냥꾼 협회의 리더가 쳐들어왔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높으신 양반들은 체면상 두려움을 티 내지 못하고 괜히 젊은 사냥꾼을 물고 늘어졌다.

그에 사냥꾼 협회의 리더가 쳐들어왔단 소식을 전해 온 젊은 사냥꾼이 변명하듯 말했다.

“지, 진짜입니다! 자신을 사냥꾼 협회의 리더라 밝힌 남자가 당장 지정한 장소로 도망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할 거라 예고했었으니까요!”

“뭐? 그럼 예고한 공격이 저 드래곤이란 말인가?”

화염을 갈기처럼 두르고 있는 거대 드래곤.

설마 저게 펫이란 건가?

이들이 회의를 진행하던 장소가 지하 벙커였던 만큼 직접 공격 예고를 듣진 못했지만, 젊은 사냥꾼과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거짓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화아아아악!

-콰아아앙!

그때,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가 이들의 근처에 떨어졌다.

강렬한 열기가 피부를 타고 전해지고, 화염이 닿은 지역은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듯 큰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절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쩔 수 없이 민간인들을 사냥꾼 협회장이 지정한 장소로 피난시키고 있습니다. 덕분에 인명 피해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젊은 사냥꾼은 시리아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보고에 시리아의 대표를 포함해 누구 하나 뭐라 반응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휘이잉!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하늘에 돌풍이 불어오더니, 푸른빛 날개를 펼친 한 사내가 천천히 강림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미모의 두 여성 또한 녹색 빛의 날개를 펼치며 내려오니.

너무도 유명한 세계 최강의 파티를 한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이레귤러 팀…….”

일명 ‘이레귤러 팀’.

이는 범이슬람 연합 회의에서만 통용되는 호칭이 아닌, 전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서백호 파티의 별칭이었다.

“뭐, 뭣들 하는 거야! 어서 달려들지 않고! 저놈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돼!”

알제리의 대표가 다급히 외치자, 멍하니 있던 시리아의 대표 또한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

이들을 불러온 시리아 사냥팀의 젊은 간부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서백호 일행에게 달려들려던 자세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니 이것들이 지금. 뭘…….”

그에 범이슬람 연합 회의의 주요 인사들이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그 사냥꾼들이 장난처럼 신체가 토막 나서 바닥에 흩어졌고.

-투투투툭.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를 못 한 사람들은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젠장! 계속 공격해!”

그럼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모여드는 시리아의 사냥꾼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은 저치에 의해 죽고 말 테니까.

자신들이 죽으면 범이슬람 연합 회의는 와해될 테고, 한국과 서구를 중심으로 결성된 동맹의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눈앞의 서백호를 처치하기만 하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그러니 중세 시대 지휘관들처럼 병사(사냥꾼)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컥!”

“아아악!”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서백호 파티에게 닿지 못하고 토막이 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잠시 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색이 입혀지듯 두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제야 회의 멤버들은 사냥꾼들을 공격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검을 쥔 여성과 사신의 낫을 쥔 여성.

그 둘에게 시리아의 전사들이 맥없이 죽어난 것이다.

-턱.

덕분에 서백호 파티는 아무 방해 없이 지상에 내려왔다.

서백호의 파티원들과 시리아의 전사들을 몰살시킨 두 암살자까지.

아름다운 여성들에 둘러싸인 그의 모습은 마치 황제와 같아 보였다.

“당신들이 이벤트 때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어.”

통역 아티팩트를 통해 서백호의 음성이 이들에게 전해졌다.

뼈가 있는 말과 비웃음이 가득한 오만한 말투.

그들과 서백호,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우, 우리가 죽어도 뜻을 이어 너희에 대항하는 후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런 서백호의 발언에 범이슬람 연합 소속 시리아 대표가 그리 말했다.

결연한 그의 태도에 주변인들도 동조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탕질과 테러밖에 할 줄 모르는 놈들 주제에…….”

서백호는 불쾌함을 표했다.

하지만 뭘까?

이어진 서백호의 반응이 이상했다.

“하긴 여기서 당신들을 간단히 죽여 버리면, 쓸데없이 우상화를 시도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긴 해.”

“…….”

마치 너흴 평범하게 죽일 생각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내 여자 친구가 세뇌와 환상 등 다양한 정신계 스킬을 보유하고 있거든. 언제 써 보나 했는데, 당신들에게 써 보면 딱이겠어.”

“저, 정신계 스킬?”

“레벨이 높거나, 정신력 강화 아이템이 있다면 통하지 않겠지만……. 안전한 장소에서 입만 나불대는 당신들이 그런 대비가 되어 있을까?”

서백호의 말에 결연함으로 물들었던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말대로 이들 중 정신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고, 공격해! 공격하라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히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겁에 질린 그들은 다시금 시리아의 사냥꾼들에게 무지성 공격 명령을 내렸고.

서백호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의 허리춤에서 뽑힌 프라가라흐(자동 공격 검)와 시에나의 브라흐마스트라(자동 공격 화살)가 서로 경쟁하듯 두 줄기의 빛이 되어 적들을 꿰뚫었다.

이 정도면 개죽음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범이슬람 연합 회의의 멤버들에게 새삼 눈앞의 인물들이 다른 이들과 격이 다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래.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신들이 자신만 살겠다고 서로에게 칼질을 하면 재밌겠어. 그렇게 추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을 우상화하는 멍청이는 없겠지.”

서백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무서운 계획에 알제리의 대표는 허망한 표정을 지어 보여야 했다.

“이 악마 같은! 사람을 죽여도 존엄성까지 짓밟을 순 없는 법이거늘!”

그에 서백호는 황당하단 반응을 보였다.

“너희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그래.”

이어서 서백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그림자에서 거대한 지옥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와앙!

그리고 그 지옥견이 포효를 내지르자 그들은 몸이 굳어, 눈 하나 뜻대로 깜빡이지 못했다.

-또각. 또각.

살아 있는 마네킹이 된 그들에게 매직 스태프를 쥔 윌리아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가왔다.

* * *

마지막 이벤트가 끝나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여행 계획을 세웠던 나는 의외로 싱겁게 끝난 일에 입맛을 다셔야 했다.

“범이슬람 연합 회의라 했나요? 마침 놈들의 지휘부가 한자리에 모인 덕에 손쉽게 일망타진하긴 했지만……. 괜찮을까요? 아주 극단적인 놈들이라면서요.”

범이슬람 연합 회의의 주축이 되는 세력은 IS와 탈레반, 알카에다, 보코하람과 같은 유명 테러 조직이다.

하필 대재앙과 함께 생겨난 레벨업 시스템은 이들의 힘을 키워 주는 수단이 되었고, 결국 테러 조직이 국가를 입맛대로 주무르는 수준이 되었다.

한국인 입장에선 IS나 알카에다나 그놈이 그놈 같지만, 중동과 아프리카에 난립하는 테러 조직들은 다양한 만큼, 각자의 이념도 달라 함께 행동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와 사냥꾼 협회라는 거악(?)이 등장해 세계를 한 세력으로 엮자 위기감을 느꼈고, 결국 힘을 합치게 되었다고 한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윌리아의 말대로 놈들이 극단주의 세력을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언제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음모를 꾸밀지 알 수 없다.

“연합 회의 멤버들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광고하고 왔으니, 조금은 시간을 끌어 주겠죠.”

그래도 내 스킬인 진실의 눈으로 최대한 문제가 될 만한 놈들은 미리 제거하고, 쓸모 있는 사람을 감시 인력으로 배치해 뒀으니, 어느 정도 대비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이 프리스트양, 너도 믿는 신을 위해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야?”

시에나가 문뜩 윌리아에게 특이한 질문을 던졌다.

“나 딱히 신 안 믿는데?”

“엥?”

다만 윌리아가 내뱉은 대답은 시에나도 나도 예상치 못한 거였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놀란 모습을 보이게 되어, 윌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성격 이상한 애가 엘프인 것처럼 제가 프리스트 출신인 건 그냥 기본 설정 같은 거죠.”

기본 설정이라니.

시에나는 그런 거였냐며 이해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NPC 출신인 그녀가 설정을 거론한 게 꽤나 신기했다.

그러다가 문뜩 NPC 출신인 그녀들은 자신의 출생이나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두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긴 하죠. 월광도에서 백호 님을 만나기 이전의 인생을 기억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맞아, 나도 그래.”

혹시라도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걸까?

나는 괜한 질문을 던졌나 싶어 걱정했는데, 이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에 안도하며 굳은 표정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 아니겠어요? 전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백호 님과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어찌 보면 두 사람의 행복은 내게 달려 있다는 말과 같아 어깨가 무거웠지만.

이미 많은 사람의 인생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이 늘어난다고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윌리아와 시에나는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좋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 보죠!”

나는 기분 좋게 두 사람에게 어깨동무를 시도했지만, 윌리아는 가만히 있는 반면, 시에나는 고양이처럼 자연스레 무빙으로 피했다.

참고로 이런 우리의 대화와 대비 되게, 등 뒤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가 활활 불타고 있다.

* * *

시리아를 다녀오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사이 내가 한 일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간이 사냥꾼 협회 일이나, 마계 엔탈론 시티의 일을 볼 때를 빼면 종일 사냥에 사냥을 거듭하며 레벨을 올렸다.

덕분에 우린 오래지 않아 레벨 200을 넘겼고.

[한국인 서** 님이 레벨 200을 달성하셨습니다.]

[세계 최초로 레벨 200을 달성한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됩니다.]

[모두 한국인 서** 님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에 이 사실을 요란하게 광고했다.

현재 최상위 파티인 클로에 주 팀과 윤시아 팀이 레벨 150을 막 달성한 걸 생각하면 까마득한 차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레벨 200을 달성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긴 했지만, 이런 말도 많이 들었다.

[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님 사람 맞음?]

[와, 난 레벨 130대부터 몬스터들 사냥하는 게 힘에 겹던데……. 너 진짜 사람 맞음?]

각국의 주요 사냥팀은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레벨 100을 기준으로 많은 사람이 한계를 느껴 성장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파티만은 뒤를 보지 않는 폭주 기관차처럼 나아가니, 놀라운 모양이다.

심지어 클로에 주와 윤시아 팀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 힘에 부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싸우는 것인 만큼 당연한 거라 할 수 있지만…….’

나는 종종 위험한 상황을 겪긴 해도 아직까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미 레벨 230대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동안은 이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이제 시나리오가 시작되는군요.”

“대체 영주 검증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걱정이네요.”

바로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철원에 위치한 중립 도시의 전쟁관이다.

이 전쟁관엔 한반도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다들 곧 진행될 검증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검증이란,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영주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의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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