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시나리오 자격 검증 (2)
한반도에 배정된 시나리오 조각은 20개.
이중 사냥꾼 협회가 16조각, 대한민국 정부가 3조각, 북한 정부가 1조각을 보유하고 있다.
각 시나리오 조각의 보유자들은 검증 시험을 거쳐 20개 구역으로 나뉜 한반도 내의 영토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며, 이후 땅따먹기(영지전)를 시작하게 된다.
영지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직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세력이 나를 중심으로 동맹이 맺어져 있는지라 영지전을 패스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중립 전쟁관에 자리한 한반도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이 무사히 자격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혹여라도 탈락자가 발생하면 빈 영토가 어찌 처리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모두 장비 점검 끝나셨죠?”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자격 검증 시험에 참여하는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의 장비를 최상으로 맞춰 주었다.
아니, 정확하겐 시나리오 조각을 보유하지 않은 고레벨 사냥꾼들의 장비를 빌려준 것이다.
덕분에 철원 중립 도시 전쟁관에 자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내 물음에 사냥꾼 협회 소속이 아닌 사람들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 사태로 인해 남부 패밀리가 해체되어 군 소속이 된 경상도 킹스맨 김시우가 특히 의욕을 보였다.
내 라이벌임을 자청하던 때에 비해 오히려 사고를 치고 강제로 군인이 된 지금이 마음 편해 보인다.
“실망하시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이벌이라 칭하기엔 너무 멀어져 버려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로 혼란에 빠졌던 세계 문제를 수습하고 모두의 분노로부터 목숨 줄을 연명시켜 준 덕인지, 꽤나 극성스럽게 날 따르게 된 김시우였다.
그런 김시우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지, 그의 측근이었다가, 지금은 경찰청 산하에서 활동 중인 광주팀의 최준우가 고개를 내저으며 쓰게 웃었다.
“그래도 한반도에 서백호 협회장 같은 위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덕분에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그런데 김시우의 사탕발림에 경쟁하듯 북한군 소속 리명수 대좌가 말을 덧붙이자,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이 질 수 없다는 듯 가세해 내 얼굴에 금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요. 사람들은 협회장님께 더욱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만 해도 협회장님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몇 명은 죽었을걸요?”
아니, 이게 뭐 하자는 건지.
나는 낯 뜨거운 상황에 그들을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의 자격 검증이 시작됩니다.]
[자격 검증은 많은 시나리오 조각을 보유하고 있거나,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내외 휘하 동맹이 많을수록 난도가 상승합니다.]
곧이어 떠오른 이 메시지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많은 시나리오 조각을 보유하고 있을수록 검증의 난도가 높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내외 휘하 동맹이 많아도 그런다고?”
사냥꾼 협회 주축 멤버이면서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이기도 한 강이솔과 윤시아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복수의 시나리오 조각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너머 해외의 수많은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과도 동맹을 맺고 있으니까.’
이 규칙에 의하면 내 검증의 난이도가 얼마나 더럽게 어려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쾅!
“시스템 이 자식이 협회장님을 저격하는 거 아닙니까?”
원래부터 준비된 규칙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왜일까?
분노 섞인 윤시아의 반응대로, 자신의 뜻(전쟁)을 방해하는 나에게 시스템이 꼬장을 부리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시련이 발생한다면 그걸 돌파할 뿐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담담한 내 반응에 사냥꾼 협회 멤버들이 분을 삭였다.
“하긴, 협회장님이시라면.”
나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해 낼 것이란 믿음 때문인지, 소란은 길게 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우리가 둘러앉은 테이블 중앙으로 손을 내밀었다.
“가기 전에 파이팅이나 하죠.”
갑자기 이게 웬 오글거리는 짓인가 싶지만, 경직된 분위를 풀고자 내뱉은 말과 행동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좋다며 내 손등 위로 차곡차곡 손을 포갰지만, 한반도의 마지막 시나리오 조각 수집자이자 자칭 내 검도 라이벌이라는 엑스트라 A…….
가 아닌, 수원의 김현수가 말했다.
“이거 사망 플래그라는 거 아닌가?”
분위기에 초를 치는 그의 말에 나는 슈퍼히어로 흉내 내기 딱 좋은 눈깔 빔으로 그의 아랫배를 타격했다.
주먹을 휘두르는 수준으로 파워를 줄여서.
“억!”
우린 바닥을 뒹구는 그를 내버려 둔 채 그대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도 김현수의 광대 짓 덕에 경직된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시나리오 보유자에 대한 자격 검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격 검증이 시작되었다.
* * *
-빠빵!
-매앰! 매앰!
-와글와글.
-어제 북한이 발사한 3발의 미사일이 동해상으로 떨어져…….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어느 대로변.
한여름인지 머리 위에서 강렬한 햇빛이 떨어지고, 사방에선 매미 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귓속에 틀어박혔다.
평화롭기 그지없이 일상의 풍경 속에서, 나 홀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
‘이, 이건?’
좀처럼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곳은 바로 ‘강남대로’.
대재앙과 동시에 철저히 파괴된 지역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멀쩡하게 눈앞에 자리하고 있어서,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코스프레?”
“와, 씨……. 오덕 새끼 패기 쩌네. 주말 강남대로에서 코스프레가 웬 말이야?”
“몰카 아냐? 요즘 유튜버들 별의별 몰카 많이 하던데.”
환상?
아니, 그러기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이질적인 느낌 하나 없이 너무 리얼하다.
그토록 바라 왔던 풍경이건만, 그 안에 자리한 내가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서인지 감격스럽긴커녕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아저씨,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오히려 내가 그동안 겪은 일들이 꿈이나 상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손을 뻗으면 잡히는 성검 자루를 본 순간 그런 의심도 날아갔다.
‘이제 와서 이런 풍경을 보여 주는 이유가 뭐지?’
지금의 상황은 내겐 기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게 장난기를 머금은 얼굴의 여학생들이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다며 다가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며 푸른빛의 이능의 날개를 펼쳤다.
-파앗!
“으악!”
“뭐, 뭐야?”
그리고 고속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미친!”
“내가 뭘 본 거야?”
발아래에선 수많은 사람이 경악성을 내뱉었지만, 나는 능력을 사용함과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격 검증을 위한 필드에 입장하셨습니다.]
그래, 난 이걸 위해 이곳에 있는 거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에 현혹돼선 안 된다.
나는 근처에서 가장 높은 빌딩 옥상에 착지하며, 이어질 메시지를 기다렸다.
[보유한 시나리오 조각: 3]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휘하 동맹: 821]
[자격 검증의 난이도가 대폭 향상됩니다.]
[난이도 ‘극악’ 설정.]
난이도가 극악이라니.
헛웃음밖에 안 났다.
하지만 다음 메시지 내용에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격 검증의 주제는…….]
[제3차 세계 대전 저지입니다.]
[가상의 지구에서 발생하는 제3차 세계 대전의 발생을 저지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게 뭔 개똥 같은 주제야.
설마 시스템이 한낱 개인에게 세계 대전을 막으라는 주제를 던진 게 맞는 건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가상의 지구에서 발생하는 제3차 세계 대전의 발생을 저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며 확인 사살 시켜 주듯 재차 과제를 알려 주었고, 나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 건데. 기한이나 과정 설명 같은 거 없어?”
그러나 시스템은 내 이번 물음에 대해선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없던 두통까지 생기는 느낌이다.
정보 수집까지 전부 내 몫인 모양이다.
‘청와대에 쳐들어가서 정보라도 구걸해야 하나?’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만, 시스템은 여길 가상의 지구라 표현했다.
그럼 이곳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마음껏 행동해도 되는 거 아닐까?
즉, 나는 예전의 현실과 완벽히 동일해 보여도, 자유도가 매우 높은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사장님, 저기 손님 좀 이상해요.”
“가만 내버려 둬. 진짜 이상한 사람이면 괜히 자극하지 않는 게 나아.”
지금의 나는 일반인과 급이 다른 신체 능력을 가진 초인이다.
덕분에 멀리서 PC방 알바생과 사장이 소곤소곤 내 뒷담화를 하는 게 너무도 잘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케첩이 듬뿍 뿌려진 핫도그를 입에 쑤셔 넣으며 포털 사이트에서 이런저런 뉴스를 살폈다.
‘원래는 마구잡이로 행동할 생각이었지만…….’
바로 청와대에 쳐들어가는 것보다, 그전에 일단 이곳의 상황부터 살피는 게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PC방부터 찾아왔다.
이곳의 배경을 보면 영락없는 대재앙 발생 전의 한국이지만, 시스템이 어떤 이상한 설정을 넣어 놨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
나 혼자 슈퍼맨인 양 날뛰다가 진짜 슈퍼맨이 등장하는 황당한 세계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때문에 신중하게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내가 있던 세계의 몇 년 후 미래인 2025년의 지구이고.’
‘빼코TV란 개인 방송 채널이 존재하지 않으며.’
‘전생에 주식 붐이 일었을 때, 흥미로 샀다가 물리고만 S전자 주식이 주당 10만 원이 넘는 엄청난 세계.’
더불어 알게 된 사실이 이 세상은 더없이 평화롭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있던 큰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종결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우크라이나의 분전과 전 세계의 지원 덕에 러시아는 별다른 소득 없이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했고, 그 이후 이렇다 할 잡음 없이 잠잠했다.
툭하면 시정잡배처럼 치고받던 중국과 인도도 서로 입만 털뿐이고, 중동과 아프리카 역시 웬일로 얌전했다.
‘전쟁의 기미가 없어 보이는데?’
현재로서 그나마 전쟁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바로 대한민국과 북한 말이다.
매일매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양국 관계에 해외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보내고 있어서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정도면 엄청난 사건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겉으로 드러난 정보가 전부는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북한이 좀 나대는 거 빼면 이 세상은 꽤나 평화로웠다.
-헙!
열기에 대한 내성 덕분에 뜨거운 핫도그를 간단히 두 입에 해치운 나는 대기업제 냉동 만두마저 해치운 후, 전생에서 본 적 없는 신제품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가능하면 이 음료 좀 챙겨 가고 싶네. 가상 세계라서 안 되려나?’
결국, PC방에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나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청와대로 가는 수밖에…….’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PC방을 벗어났다.
“손님 계산은요? 어어? 야!”
아니, 당당히는 아니었다.
마지막엔 달려야 했으니까.
극한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자격 검증 시험 속 세상에서 내가 가장 먼저 저지른 만행은 무전취식이었다.
“그거 비싼 거예요!”
그런데 완전 무전취식이라 하긴 뭐하다.
돈이 없어서 카운터에 금괴 하나를 던져 줬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땔감으로 쓰이는 내 세계의 지폐를 기념품으로 좀 챙겨 두는 거였는데.’
건물 옥상으로 달려 올라간 나는 잠겨 있는 빌딩의 문을 맨손으로 비틀어 뜯고는 그대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