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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13화 (213/273)

213화 시나리오 자격 검증 (4)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문열은 현재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수십 미터 깊이의 콘크리트 층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이고 들어 온 괴물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 무슨?”

비상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대통령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질 않았다.

처음 국정원장에게 그를 사로잡아 오란 명령을 했을 때만 해도, 눈앞의 이 남성이 현대 군의 무기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괴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개인 화기는 온몸에 두르고 있는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버리고, 전투 헬기에서 발사한 대전차 미사일은 맨손으로 막아 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를 좁은 지하 벙커 안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어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대통령님을 보호해!”

이런 상황에서도 경호처장은 침착하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문제는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경호원들까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란 사실이었다.

“으아악!”

-탕! 탕!

겁에 질린 경호원 하나가 패닉에 빠져 말릴 틈도 없이 권총을 뽑아 난사했다.

하지만 권총에서 발사한 탄환이 침입자에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고 건너편의 애꿎은 동료들만 맞혔다는 거였다.

“컥!”

“끄악!”

“이, 이 미친놈이!”

그 경호원의 폭주는 오래지 않아 끝이 났다.

-서걱! 툭!

“어?”

침입자의 손에 들린 검이 언제 뻗어진 건지 허공을 향해 있고, 동시에 그 경호원의 권총이 손가락 째 썰려 바닥에 떨어졌으니까.

“으아악!”

“크윽!”

“민주 씨! 민주 씨 정신 차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경호원을 비롯해 총에 맞은 사람들의 신음 소리와 비명이 지하 벙커 안에 울려 퍼졌다.

돌발 상황에 대통령은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두근. 두근.

위기감을 넘어 공포심을 느끼기 충분한 전개에 심장이 요동쳤지만, 대통령은 이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며 앞으로 나섰다.

“대, 대통령님!”

경호처장이 제지할 틈도 없었다.

“저들을 치료했으면 합니다. 호송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용기 있는 행동.

하지만 이를 어찌 받아들일지는 상대의 성향에 달린 일이었다.

그에 침입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를 마주한 모두가 어깨를 짓누르는 위압감을 마주했다.

그것이 상대가 쓴 투구의 효과임을 알 리가 없는 이들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런데…….

“제가 치료해 드리죠.”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말투.

짧은 대답이었지만, 덕분에 벙커 안의 사람들은 침입자가 한국인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윽.

“허…….”

마치 마술을 부리듯 그의 손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붉은 액체가 찰랑이는 병이 그의 손에 딸려 나오고.

사내가 그것을 깨뜨리자, 병 속의 내용물이 허공에 퍼졌다.

“어?”

“상처가?”

이내 흩뿌려진 붉은 액체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 사람들의 환부를 적시며,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부상이 말끔히 치료되었다.

심지어 권총째 잘려 나갔던 경호원은 손가락까지 새로 돋아나니, 벙커 안 사람들은 당혹감을 넘어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이를 기적이 아니면 뭐라 하겠는가.

대통령은 언제 두려움을 표했냐는 듯 허탈함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상대는 순순히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 왔다.

“제 이름은 서백호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급히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서 다소 과격하게 행동했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과를 겸한 자기소개.

동시에 그에게서 느껴지던 강렬한 위압감이 사라지자,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비로소 크게 숨을 들이켰다.

“대한민국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시다고요? 어떤 도움을 원하시는 겁니까?”

서백호와 박문열 대통령 사이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주도권을 쥔 건 대통령 측이 아닌 서백호란 거였다.

상대가 마음먹으면 대통령을 포함한 이 자리의 모두를 몰살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대통령은 결코 서백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국내외를 포함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이 어디가 있을까요?”

“네?”

대통령은 그의 말을 쉬이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서백호의 말은 이러했다.

“머지않아 세계 대전이 발발할 겁니다. 전 그 시발점을 찾고 있습니다.”

“…….”

“인터넷만 보면 지금은 유례없는 평화의 시기라 부를 수 있겠더군요. 하지만 국가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정부라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혹시 편집증(망상병)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

누구나가 개소리로 치부할 만한 이야기였다.

대통령 또한 황당했지만,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가 워낙 확신을 갖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존재 자체가 비상식적인 그의 말을 마냥 망상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기적이나 다름없는 그의 능력을 이미 보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대통령은 서백호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음…….”

그리고 곧 결론을 내렸다.

“일단 국정원장을 부르도록 하죠.”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대통령이 순순히 서백호의 말에 호응하는 것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진심이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단 이곳에 앉아 계시죠. 바로 답이 나올 상황이 아닐 것 같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서백호란 이름의 낯선 존재 역시, 고분고분 대통령의 말에 따르자,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 * *

생각이 많아 보이는 타입의 대통령은 다행히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

나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소리칠 상황에도 선뜻 요구를 들어주었으니 말이다.

난이도 ‘극악’의 시험이다 보니, NPC라고 할 수 있는 정부 사람들이 전부 비협조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아니면 현지 사람들의 대응이 어떻건 대세를 막을 순 없다는 건가?’

나는 한껏 긴장한 채로 차와 함께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초밥을 내오는 비서실 여성 직원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마,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젊은 나이로 보아 그리 높은 직급은 아닐 테니, 아무래도 짬처리를 당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음식 배달이 엄청 빠르네요.”

“하, 하하.”

긴장을 풀라며 내뱉은 말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 말에 목을 움츠렸다.

그녀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인원이 나를 경계하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나로선 지금의 상황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도 국정원이 알아서 정보를 수집해 오지, 말만 하면 비서실에서 모든 것을 대령해 주지.

완전히 상전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세계에서라면 구해서 먹기 힘든 음식을 연이어 주문하며 미식을 즐겼다.

“배, 백호 씨!”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조사에 나섰던 국정원장 아저씨가 급히 돌아왔다.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정보를 물어 온 모양이다.

“아무래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예정인 것 같습니다!”

그의 보고를 들은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대만이라…….’

그리고 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빠졌다.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뭔가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군이 대만을 지원하면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던 중국과 미국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계기가 되긴 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미국의 동맹국들이 지원에 나설 수도 있는 거고.’

나는 마지막 초밥을 입에 넣으며 귀빈용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경호처장과 함께 대통령이 등장했다.

“대만, 아니 중국으로 갈 생각입니까?”

“그래야죠.”

대통령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대통령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서 내가 떠나길 바랄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의외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는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건?”

“위성 전화입니다. 1번을 누르면 나와 연결이 되고, 2번을 누르면 여기 국정원장과 연결이 되니까 갖고 있으세요.”

더불어 위성 전화까지 건네받으니, 나는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 나는 정체불명의 침입자이다.

이런 호의를 보일 이유가 없을 텐데?

“앞으로는 용건이 있으면 이렇게 쳐들어오지 말고 전화하란 뜻입니다.”

“아…….”

“그리고 어떤 능력을 갖고 있을지 모르는 규격 외 존재를 방치하기보단 연락이 통하게 만들어 놓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솔직한 답변.

덕분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위성 전화를 인벤토리에 넣어 두곤, 침입할 때 뚫어 놓은 구멍으로 향했다.

“어찌 할 생각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대통령의 진중한 물음에 나는 태연하게 답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존재를 없앨 생각입니다. 그럼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내 대답에 잠시 나에 대해 익숙해졌던 지하 벙커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흠칫 놀랐다.

내 말은 중국 지도자를 처치하겠단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 * *

괴이한 사내가 사라지고.

대통령은 맥이 탁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대통령님!”

경호처장이 대통령을 부축하고, 많은 이들이 황급히 몰려들었지만, 그는 필요 없다며 사람들의 손을 뿌리쳤다.

대통령의 이런 반응에 다들 면목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그들은 비상식 앞에 무력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걸 느꼈어. 다들 그렇지 않아?”

“그렇습니다.”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면 그건 문제를 넘어 무능이 된다.

오늘 겪은 일로 인해 대통령 경호 체제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상식을 목격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바로 대응팀을 만들고, 서백호란 자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일단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그도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에 국정원장은 알겠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날 밤.

[중국 국가 주석 사망!]

[불타오르는 중국의 주석궁 중난하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중난하이 수비군이 정체불명의 침입자와 격렬하게 싸웠으나 수천 명이 몰살당하고 패했단 소식이…….]

박문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멍한 표정으로 뉴스를 지켜본 뒤, 작전을 다시 짜기로 했다.

“이, 일단 대응팀은 없던 걸로, 그리고 서백호 영입도 그만둬.”

“네? 하지만 만약 그가 대통령님을 공격해 오면 어쩌시려고요?”

당황한 경호처장의 물음에 대통령은 해탈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죽지 모.”

“…….”

* * *

전쟁을 막으려면 싹을 자르면 된다.

그게 내 판단이었다.

“뭐야, 퀘스트 완료 같은 거 안 뜨나?”

하지만 자금성 위에 앉아 불타오르는 중국의 주석궁(중난하이)을 감상하고 있어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단 한 가지.

아직 시험을 통과한 게 아니란 뜻이다.

“여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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