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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14화 (214/273)

214화 알고 있는 위협 (1)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의 자격 검증 시험은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매우 다양하게 부여되었다.

누군가는 중세 시대 영주에 빙의해 적군의 성을 점령해야 하고.

누군가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정해진 숫자의 사람을 구해야 했으며.

누군가는 정해진 기간 특정 대상을 보호하는 임무를 받기도 했다.

“어? 장쉬에?”

“양우언 너도 설마 나랑 같은 임무야?”

“잠깐, 저기 초빙빙도 있어!”

“뭐야, 설마 우리는 단체로 하나의 임무를 받은 건가?”

중국에 난립하는 수많은 사냥꾼 단체 중, 제법 큰 규모에 속하는 공청단에는 10명의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이 있었다.

중국은 땅도 크고 인구도 많아서 시나리오 조각이 배치된 구역이 무려 12개나 존재했다.

그중 공청단은 중국 남부 지역을 담당했으며, 정권을 주도하는 신 상하이방의 ‘자칭 라이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자격 검증 시험에서 모두 동일한 임무를 배정받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가상 세계 속 중국의 주석을 하루 동안 알 수 없는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십시오.]

단 하루 동안 정해진 대상을 보호하면 끝나는 일.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가?

비록 중국 주석에게 접근하는 게 간단하지 않겠지만, 이를 해결하는 것 역시 과제의 일종이라 할 수 있었다.

“확인 결과 이 세상은 사냥꾼과 같은 특수 능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야.”

“그럼 이곳 사람들은 정신 공격 스킬에 취약하겠네?”

“맞아,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게 우리 단체의 꽃 초빙빙이 갖고 있는 매혹 스킬이지. 그걸 이용하면 중국 주석에게 접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꽃은 개뿔.”

주석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심플했다.

급수가 낮은 공산당 간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고위 간부들을 스킬로 매혹시켜 나가다 보면 머지않아 주석에 닿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작전이었다.

“내가 자네들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군. 상관만 소개해 주면 되는 거지?”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네.”

“무엇을 바라는가?”

그리고 다행히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마침 이들이 스폰된 장소는 드넓은 중국에서도 인구가 많은 베이징의 차오양구였고, 해당 구의 구청장을 구슬려 주석궁이 있는 중난하이 입성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순조롭네.”

“이야, 여기가 실제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초빙빙의 매혹 스킬만으로도 황제처럼 살 수 있을 텐데.”

“근데, 여기가 진짜 가상 세계가 맞는 거야? 너무 현실적인데?”

막힘 없이 계획대로 착착 일이 진행되니, 점차 긴장감이 옅어졌다.

하지만 세상일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응?”

“왜, 그래?”

“아니, 방금 하늘 위에서 푸른빛을 본 것 같아서.”

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조금 더 신중하게 살폈어야 했다.

중국의 주석을 보호하란 임무는 그가 위험에 처했단 뜻인데, 지나치게 상식적인 접근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시간 동안 주석은 이들의 보호밖에 있다는 의미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헉!”

“으악!”

“뭐, 뭐야?”

중난하이로 향하던 길.

이들을 반겨 준 것은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폭발음과 무섭게 치솟는 불길이었다.

[보호 대상이 사망하여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뒤이어 눈앞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메시지가 떠오르니, 이들은 불타오르는 중난하이를 보며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야 했다.

차라리 임무를 받자마자 중난하이에 쳐들어가 중국 주석을 납치해 숨겨 놓았다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딱 하루만 주석이 무사하면 이들의 임무는 성공으로 끝나는 거였으니까.

“설마?”

“저, 저 사람은?”

그때, 공청단 멤버들은 똑똑히 보았다.

붉게 물든 중난하이의 화염을 꿰뚫으며 치솟는 푸른빛 날개를.

더불어 그 푸른빛의 날개는 중국에서도 너무 유명한 것이었다.

“젠장!”

“알 수 없는 위협이라며! 저건 우리가 아는 위협이잖아!”

애석하게도 이들은 대한민국 사냥꾼 협회의 리더 서백호의 대항 진영에 속해 있었다.

[자격 검증 종료.]

[중립 도시로 귀환합니다.]

* * *

“하암…….”

중난하이를 불태우고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이 세계에 머무르며 언제 막이 오를지 알 수 없는 대전쟁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지만,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며칠씩이나 가상 세계 속에서 보내고 있을까?’

나처럼 난이도가 높은 임무를 받은 사람이 또 어딨겠냐만, 좀처럼 임무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바스찬, 젤라또가 먹고 싶습니다.”

“네, 백호 님.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이쪽 세계에서의 생활이 불만족스럽냐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바스찬이라는 이름의 요술 방망이를 얻은 덕분에 생활은 매우 안락했다.

참고로 ‘세바스찬(가명)’이란 건 내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는 40대 백인 남성으로 미국 중앙정보국의 한국 지부장이었다.

한국에서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해 백악관에 쳐들어갔다가 얻게 된, 전용 집사라 할 수 있다.

“백호 님, 젤라또가 준비되었습니다. 무슨 맛으로 드릴까요?”

“쌀 맛하고, 초코 맛이요.”

“여기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요구하든 10분 이내에 대령하는 엄청난 재주꾼이었다.

젤라또를 말하자마자 7분 만에 근처 호텔의 쇼케이스를 통째로 뜯어 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심심함을 달래고자 음악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하면, 최근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을 눈앞에 대령하기까지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내 앞에서 공연을 하는 아이돌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깃들어 있었지만…….

아무렴 나만 하겠는가.

“이거야 원.”

미국이 날 속일 생각이 아니라면 징조를 가장 먼저 알려 올 터이다.

덕분에 용산 대통령실 정원에 썬베드를 깔고 누워 한가로이 젤라또를 흡입했다.

근래 들어 이렇게 몸 편히 휴식을 취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띠리리리!

그렇게 마음은 불편한데, 몸만 편한 휴식을 얼마나 이어 갔을까?

세바스찬(가명)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본 나는 얼굴에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위로 들어 올려야 했다.

사람에겐 감이란 게 있지 않은가.

왠지 저 전화가 내가 기다리던 소식을 담고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뭐?”

크게 두 눈을 부릅뜨는 세바스찬의 모습을 보니, 정답인 모양이다.

나는 비로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백호 님!”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세바스찬이 나를 부름과 동시에 사방에서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를 지워야 했다.

지금 이 상황은 설마?

“북한에서 엄청난 양의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니다! 이곳 서울을 향해서요!”

주변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은 공습경보였다.

‘설마, 여기였어?’

세바스찬의 보고와 함께 국정원 소속으로 보이는 요원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마도 그들도 같은 정보를 알려 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였다.

“방어 가능합니까?”

내 물음에 세바스찬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서울이 대공 방어가 잘되어 있다고 해도 완벽한 방어는 힘들 겁니다. 놈들이 고작 한두 발을 쏜 게 아니니까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담담히 말했다.

“일단 저도 요격에 나서겠습니다.”

“네?”

“이건 제가 가져가죠. 실시간으로 정보 전달 부탁드려요.”

세바스찬에게서 무전기를 빼앗아 귀에 착용한 나는 이능의 날개를 펼쳐 최고 속도로 날아올랐다.

더불어 인벤토리에서 이벤트 점수 상점에서 구입했던 어느 물건들을 꺼냈다.

“이때를 대비한 건 아니었지만, 만약을 위해 챙겨 놓길 잘했네.”

그건 바로 오토마타였다.

내 지시에 따라 자동으로 적을 요격하는 방어 아이템.

심지어 하나같이 파츠 업그레이드가 된 녀석들로, 경비형 오토마타 10대와 감시형 오토마타 1대가 세트를 이루고 있다.

-휙! 휘익! 휙! 휙!

11대의 오토마타가 나와 같은 속도로 비행했다.

그리고 서울 상공 5km 지점에 떨어지는 미사일들을 요격하도록 오토마타를 세팅했다.

감시형 오토마타가 미사일을 감지하면 경비형 오토마타가 요격할 거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향상된 오토마타라고 해도 미사일을 모조리 요격하긴 힘들 거야. 고각에서 내리꽂히는 미사일의 낙하 속도는 고작 마하 1~2 수준이 아니니까.’

오토마타를 통한 방어는 최후의 보루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선 북한의 미사일들이 오토마타 방어 라인에 도달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요격해 놔야 한다.

이미 군에서도 방어를 위한 요격 미사일들이 발사되었겠지만, 세바스찬의 비관적인 반응을 보면 요격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내가 최대한 많이 떨궈야 해.’

때문에 나는 직접 요격하기 위해 오토마타 방어 라인을 넘어 계속해서 고도를 높였다.

시스템은 이곳을 가상 세계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 시민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 막아 볼 요량이다.

* * *

“젠장! 왜 진작 알아채지 못한 거야!”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지하로 물자를 옮긴 것 같습니다.]

“하아, 이래서야 최악의 머저리 아닌가. 누군가가 계속 큰 전쟁이 일어날 거라며 조사에 조사를 당부했었는데…….”

[대통령님, 어떻게 대응할까요?]

용산 집무실 지하 벙커.

괴물 같은 존재로부터의 습격 후유증을 벗어나기도 전에 북한이 미친 짓을 벌여 주었다.

덕분에 박문열 대통령은 머릿속이 새하얘짐을 느껴야 했다.

대통령은 대응을 물어 오는 합참의장의 이야기에 정신을 차리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합참의장이 물은 대응이란, 단순한 요격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보복 공격의 여부를 묻는 것이지.

“미군의 반응은?”

“대통령님의 의사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전시 작전권은 지들이 갖고 있으면서, 정작 중요할 땐 책임을 떠넘기는군.”

대통령은 서백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거랬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을 하는 순간 전쟁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수도가 불타오를 건 안 봐도 뻔한 상황이니 말이다.

그는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

지금의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대통령은 결론을 내렸다.

“공격해. 평양을 비롯해 주요 군사 시설을 모두 날려 버려.”

[……. 알겠습니다. 바로 대응하겠습니다.]

설마 자신의 입으로 북한을 공격하란 지시를 내릴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때문에 대통령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제1차 요격 미사일이 북한의 공격 미사일을 사정권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감상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100여 발에 달하는 미사일이 서울을 향해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1차 21발 요격 성공…….”

그리고 이어진 보고에 대통령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고고도에서 떨어지는 탄도 미사일의 요격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처참한 요격률을 기록할 줄이야.

그래도 아직 절망하긴 이르다.

2차, 3차 요격이 예고되어 있으니까.

“2차 요격 18발.”

“3차…… 13발.”

하지만 뒤이어진 소식은 벙커 내의 모두를 굳게 만들었다.

요격률 도합 50%.

북한이 버릇처럼 내뱉었던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대사가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서울 일부가 불탄다고 끝이 아니야. 반드시 전부 쓸어버려 주마.”

대통령은 다짐과 함께 이어질 충격에 대비했다.

“…….”

“…….”

“응?”

그런데.

어째 조용하다?

분명 지진이라도 난 듯 요란하게 세상이 흔들려야 하건만, 너무도 평화로웠다.

“설마 불발탄?”

“그, 그럴 리가요.”

벙찐 표정의 대통령과 수뇌진.

그런데 이들에게 국정원장이 곧 답을 알려 주었다.

“그…… 서백호 씨가 남은 미사일 전부 요격했단 연락이 방금…….”

그 이야기를 들은 대통령은 황당함을 넘어서 경악했다.

“아예 피해가 없다고?”

“네, 기적적으로.”

“……그럼 북한으로 날린 우리 미사일은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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