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16화 (216/273)

216화 알고 있는 위협 (3)

처음 서백호의 광역 도발을 받은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저게 광고라면 꽤나 어그로를 잘 끌었네.”

“그러게 말이야.”

다들 이를 장난과도 같은 광고의 일종이라 여겼다.

그럴 수밖에.

인간이 하늘을 날고 검을 휘둘러서 산을 날리다니,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아니던가.

“근데, CG가 되게 실감 나네.”

“영화 PV인가?”

“하하! 영화라기엔 주인공 생김새가 너무 평범하잖아. 뭐, 나름대로 분위기는 있어 보이지만.”

하지만 사람들의 가벼운 반응은 얼마 안 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다시금 불타오르는 중국 주석궁! 죽음의 자리가 되어 가는 중국의 왕좌.]

[지도상에서 사라진 러시아 대통령궁! 패닉에 빠진 러시아.]

[서백호: 중국과 러시아, 이 두 국가는 북한에 대한민국 선제공격을 지시하고, 평화 국면에 접어든 한반도를 흔들려 했다. 고로 전쟁을 기획한 두 국가의 지도자에게 심판을 내렸다.]

서백호는 마치 영화처럼 홀로 중국과 러시아의 지휘부를 쳐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영상을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든 적을 썰어 버리고, 건물을 일격에 날려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용.

어찌나 화려하고 멋들어진지, 누가 봐도 만들어진 영상 같았다.

그런데…….

[이것은 공작이 아닌 현실!]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초인의 등장! 초강대국의 지도자들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다!]

[변호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두 국가의 정상과 수뇌진. 과연 이것은 정의일까? 아니면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할 뿐인 범죄 행위일까?]

[서백호를 국제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중국과 러시아! 앞으로 서백호를 지원하거나 돕는 나라엔 무관용 보복을!]

두 나라가 발작하고, 언론에선 관련 소식을 연신 떠들어 대니, 긴가민가해 하던 사람들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슈퍼맨과 같은 초인이 등장했으며, 그 존재는 초강대국의 지도부를 마음대로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또한 그 초인은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을 향해선 정치적 문제를 따지지 않고, 거리낌 없는 무력 개입을 실행했다.

TV와 인터넷 등, 전 세계의 모든 매체가 일제히 단 한 명의 소식을 쏟아 내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백호의 뒤에 미국이 있다며 강하게 비난.]

[미국은 크게 반발 중.]

[백악관 대변인: ‘미스터 서’는 미국이 전쟁을 유발해도 똑같이 개입해 올 것이다. 그의 개입은 뒤에서 음모를 꾸민 당신들의 탓이니, 엄한 자에게 죄를 돌리지 말라.]

이에 자존심이 강한 중국은 북해 함대를 한반도와 일본 영도 사이를 횡단시키며 시위를 했지만…….

[괜히 무력 시위했다가 전멸된 중국의 북해 함대.]

[불타오르는 중국의 자랑 랴오닝함.]

[시위 한 번에 3할에 가까운 중국 해군의 전력이 증발했다.]

이번 상대에게만큼은 중국식의 엄포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도리어 서백호는 공개적으로 ‘그들은 학습 능력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을 했고, 덕분에 중국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반응과 별개로 국가와 언론들은 서백호의 존재에 지속적인 우려를 표했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미얀마에 등장한 미스터 서. 시민을 학살하던 군사 독재 정권 일소.]

[미스터 서, 부패한 소말리아의 지도자와 해적들을 소탕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 분쟁이 마무리되나? 카슈미르 지역에 등장한 미스터 서.]

그러나 서백호는 남들이 뭐라 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분쟁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고, 관련자들에게 무시무시한 철퇴를 휘둘렀다.

더불어 부패한 정치인과 독재자, 범죄 조직까지 쓸어버리니, 서백호의 존재에 대해 더 이상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엔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몰라. 저게 바로 정의지!”

“정의는 무슨 정의.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가 무슨 권리가 있어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니까 개입하는 거잖아. 그럼 손 놓고 있는 게 맞다는 거야? 안전한 곳에서 바른 척 입만 나불대는 건 누가 못 해?”

“말이 심하다?”

“심하기는 개뿔. 넌 스스로가 서백호를 평가할 만큼 떳떳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해? 드디어 평화를 얻은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에 목숨을 잃을 때 기부라도 한번 해 봤냐고. 제일 쓰레기가 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자신의 가치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야.”

“아니, 내가 뭐 잘못 말한 것도 아니잖아. 법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는 게 어떻게 옳다는 거야.”

“그럼 그 잘난 법으로 서백호가 개입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데?”

“그건…….”

“서백호의 행위를 반대할 거면 최소한 해결법을 제시해야 할 거 아냐!”

서백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일부는 서백호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 신봉하기까지 했다.

[야당의 성민기 의원, 복면의 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해 골절상을 입다.]

[성민기가 누구인가? 서백호를 테러리스트라 칭하며 전 세계 국가가 연합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인물.]

[과거 성민기 의원은 중국을 상국으로 표현해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어…….]

평화를 위해 싸우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초인.

그렇게 서백호의 인기는 신드롬 수준을 넘어서 종교화가 되어 갔다.

덕분에 정치인들과 언론인들도 그의 행동을 함부로 평가하기가 힘들어졌다.

아니, 오히려 인기를 끌기 위해 그를 적극 지지하는 이들이 나타나니, 아이러니하게도 서백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음에도 UN과 같은 국제단체에서 제재를 거론하지 못했다.

당연히 서백호에게 한 번이라도 당한 적이 있는 나라들은 팔짝 뛰었으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선진국들은 그저 잠자코 내부 단속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군사 정권의 추락. 서백호로 인해 비로소 평화를 되찾은 미얀마.]

[같은 기간 전 세계의 분쟁이 평년 대비 약 80%가 줄다. 이것도 서백호의 영향일까?]

[러시아의 새 대통령 드미트리. 분쟁보다 평화를 우선시하는 러시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서백호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한 달째가 되었을 때.

불만이 있을지언정, 그가 평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서백호의 존재는 일종의 필요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 * *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그곳에서도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란 테러 단체가 장악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시선이 몰려서 그럴까?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후 의외로 잠잠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서서히 본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재앙을 아프간으로 불러들였다.

“잠깐, 무슨 소리 안 들려?”

“응?”

-고고고고고고!

“이, 이건 설마?”

마치 전투기가 날아오는 듯한 요란한 소리.

그에 탈레반의 병사들은 몸을 떨며 당황했고, 이런 이들의 반응에 호응하듯 무언가가 유성처럼 날아와 지상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악당 전문 뚝배기 파괴자 등장.”

그리고 울려 퍼지는 낮은 목소리.

놀랍게도 그 유성의 정체는 한 사내였다.

그는 사막의 강한 열기를 상회하는 화기를 뿜으며 몸을 일으켰고, 경악한 탈레반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듯 외쳤다.

“미스터 써(Mr. Sir)!?”

“젠장! 미스터 써다!”

모두가 그 난입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그는 초강대국의 지도자라 해도 망설임 없이 복을 베어 내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왜 자꾸 써써(Sir Sir) 거려. 써가 아니라 ‘서’라니까.”

미국이 그를 ‘미스터 서’로 칭한 이후, 마치 히어로 네임처럼 ‘미스터 써(Mr.Sir)’로 불리게 된 서백호였다.

그가 검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허공에 손을 뻗자, 새까만 검 한 자루가 손에 들리고, 겁에 질린 탈레반 병사들은 반사적으로 총을 난사했다.

-티티티티팅!

서백호는 보이지 않는 방어막에 둘러싸여 총탄이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방어막은커녕 준비 운동을 하듯 가볍게 휘두른 검으로 모든 총알을 막아 내는 묘기를 보여 주었다.

감탄사와 함께 박수 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러나 병사들은 반응할 수가 없었다.

“큭윽……!”

“아악!”

서백호가 총알을 막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튕겨 내어 산탄총처럼 잘게 쪼개진 탄환으로 군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되레 자신들이 쏜 총알에 당해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지자, 지휘관들은 발악하듯 허공으로 신호탄을 쏘았다.

현재 서백호가 쳐들어온 장소는 아프간의 수도이자, 탈레반 세력의 수도가 된 카불.

방비가 잘 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휘잉!

-팅! 티잉!

상공으로 연이어 쏘아 올려진 신호탄과 함께 사방에서 저격용 탄환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서백호를 둘러싼 투명한 방어구(빛을 엮어 만든 갑옷 시리즈)를 뚫지 못했고, 오히려 적의 위치를 파악한 그가 듀랜달로 몇몇 장소를 가리키자…….

-콰아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앙!

심의 심판처럼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며 주변 일대를 압착시켜 버렸다.

세간에 알려진 서백호의 가장 무서운 점이 바로 이거였다.

그는 목적 달성을 위해 주변의 피해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랜 최대한 민간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지만, 가상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의 손속에서 자비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이런 미친…….”

“신의 심판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검은 직경 100여 미터의 공간을 짓이겼는데, 그 공격이 연거푸 떨어지자 몇몇 병사들은 감히 대항할 생각을 못 하고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물리 법칙을 무시한 그 공격은 일견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두두두두두!

하지만 탈레반 수뇌부 입장에선 괴물의 침입에 손 놓고 당해 줄 수는 없는 노릇.

그들은 아프간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포획한 경공격기와 전투 헬기를 띄우고, 전차까지 투입해 서백호를 막아 보려 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아아…….”

“다 끝났어.”

그러나 잊으면 안 된다.

상대는 중국의 주력 함대마저 바닷속에 가라앉힌 괴물이란 사실을.

서백호가 듀랜달에서 성검 칼립소로 장비를 바꾼 순간, 푸른빛이 번뜩이며, 탈레반의 비장의 무기들을 일제히 날려 버렸다.

푸른빛이 뻗어간 직선상의 모든 게 날아갔다.

마치 연필로 검게 칠해 놓은 노트를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그럼 대장을 잡으러 가 볼까?”

그리고 서백호는 마치 산책 나온 사람처럼 무기를 내려놓은 채 항복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기감을 활성화했다.

그가 찾는 건 사람이 숨어 있는 지하 시설.

외부에 타깃이 있다면 어차피 탐색용 오토마타가 알아서 발견해 줄 테니, 그는 지하 시설을 찾아 움직였고.

“찾았다.”

곧 인간들이 활동하는 지하 구역을 발견한 그는 즉시, 눈깔 빔으로 구멍을 뚫어 통로를 만들었다.

* * *

내가 전 세계의 전쟁과 분쟁에 간섭을 하고 다닌 지 한 달째.

이젠 모두가 나 서백호를 분쟁의 리스크로 여기기 시작했다.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라면 홀로 대함대를 바닷속에 가라앉힌 나의 기습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덕분에 모두가 불필요한 분쟁을 자제했다.

덕분에 지금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는데…….

어째서일까?

내 과제는 도무지 끝이 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정도면 과제를 클리어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실제로 전쟁 발발률을 크게 낮췄는데?’

당연히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대로 이쪽 세상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내가 이 시험에 갇혀 있는 한 달 동안 원래의 내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지 걱정이 밀려왔다.

‘아무리 난이도가 극악이라도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무슨 힌트라도 주던가.’

그렇게 나는 기약 없이 전쟁과의 싸움을 이어 갔고.

탈레반이 설친다는 소식에 아프간으로 날아가 수뇌부를 날려 버리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힌트를 얻었다.

“개인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한들 세계를 움켜쥔 그분들에게 닿지 못하니…… 기대하라! 네 놈이 맞이하게 될 파멸을!”

탈레반의 우두머리가 이런 개소리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기 딴엔 뒤지기 전에 멋들어지게 예언이랍시고 지껄인 것 같은데, 나는 두 눈을 반짝여야 했다.

그래서 죽어 가던 녀석에게 최상급 회복약을 뿌려 되살렸고, 곧 죽을 거라 생각했던 놈이 기미 잡티 하나 없이 멀끔해진 최상의 상태로 눈을 뜨며 당황했다.

“안녕?”

나는 부활한 친구를 반겨 주었다.

“이, 이게 무슨?”

“뭐긴, 넌 이제 내 허락 없이 못 죽는다는 뜻이지.”

아마 놈은 내가 죽음조차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죽기 직전의 부상까진 치료할 순 있어도, 진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순 없지만.

놈의 눈에는 충분히 부활의 기적을 부리는 것으로 보일 거다.

덕분에 내게 겁을 주고 멋들어지게 퇴장하려던 놈의 계획에 지장이 생겼다.

“일단, 그분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줄래?”

“…….”

“테러리스트 주제에 신념을 위해 싸운다던 탈레반에게 실은 배후 세력이 있단 것처럼 들렸거든?”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순순히 부는 게 이로울 텐데?”

“끄억!”

나는 검지를 녀석의 명치에 쑤셔 박았다.

그러자 놈은 헛바람을 삼키며 몸을 숙였으나, 인벤토리에 수천 단위로 쌓인 회복 물약을 하나 꺼내 뿌려 주니, 또다시 말끔하게 새살이 돋아나며 부상이 회복되었다.

탈레반 지도자의 안색은 창백해지다 못해 시체처럼 탈색되었고, 희망을 발견한 나는 연신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세계를 움켜쥔 그분들이라며?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그런 건가?”

만약 음모론처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있다면, 내 과제가 끝나지 않는 것도 납득이 된다.

그 존재들에게 국가 간 전쟁마저 기획할 힘이 있다면, 놈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세계 대전은 언제든 또 일어날 테니까.

즉, 자격 검증 시험으로 내게 내려진 진짜 과제는 세상의 검은 손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된다.

‘목적도 모른 채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것과 명확하게 처치할 대상을 알고 있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은 거다.

3